전제자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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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 모를 꿈을 훌쩍 깨면서 순애는 히스테리칼하게 울기 시작하였다. 꿈은 무엇인지 뜻을 모를 것이다. 뜻만 모를 뿐 아니라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검고 넓은 것밖에는 그 꿈의 인상이라고는 순애의 머리에 남은 것은 없다. 그는 슬펐다. 그는 무서웠다. 그 꿈의 인상의 남은 것의 변화는 이것뿐이다. 탁탁 가슴에 치받치는 울음을 한참 운 뒤에 눈물을 거두고 그는 전등을 켰다. 눈이 부신 밝은 빛은 방안에 측 퍼져 나아간다.
(아직 안 돌아왔을까?)
생각하고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맥 난 손으로 짐작으로 풀어진 머리에 비녀를 지르고 두 팔을 무릎 위에 털썩 놓은 뒤에 졸음 오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그러면서도 어떤 때에는 아무런 말이라도 순종하는 벌써 스물 둘이 되었지만, 아직 외도란 하여 보지도 못한 그의 오라비 동생의 네모난 얼굴이 나타났다.
「꼭 돌아왔다.」
그는 중얼거리고 눈을 떴다. 그에게는 밸은 좀 세지만 그렇게 정직하던 애가, 순애 그에게 말하라면 남자란 다?하면서도 또 차마 사람으로 나서는 못할 일?외도를 하리라고는 사실은 어떻든 생각은 안 하려 하였다. 남에게 눌러서만 살던 사람은 다 그렇거니와 순애도 무슨 일이든 사실보다 자기 본능에 대하여 자신이 더 많았다.
그러나? 여기도 순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오라비 P의 이즈음 행동에 대한 한 점의 의혹이 있다.
P에게는 이즈음 알지 못할 벗이 흔히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중절모를 빗쓰고 키드 구두 소리 부드럽게 순애 같은 가정의 여자에게도 한 번 보아서 건달인 줄 알 만한 사람들이었었다. 그들이 와도 집안에서 P와 무슨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고 언제든지 P를 더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P도 이즈음은 모양 차림이 차차 심하여지며 어떤 때는 술이 잔뜩 취하여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
순애는 어떠한 사실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에는 역시 자기 본능이 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치맛고름을 매면서 문을 열고 나섰다. 발은 달빛은 푸르게 적적히 어두운 뜰에 비치고 있었다. 순애는 짧게 비치는 검은 자기 그림자와 함께 발자국 소리 안 나게 가만히 걸어가서 건넌방 툇마루에 무릎을 꿇고 바늘구멍만한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안 돌아왔다.」
좀 있다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오라비는 순애가 본 바와 같이 아직 안 돌아왔다. 이십 사 촉의 밝은 전등은 빈틈없이 그 방을 비추고 있고, 순애 자기가 펴놓은 자리는 아직 그냥 적적히 방안에 벌려 있으며 그 머리맡에는 책상과 그 밖의 몇 가지가 규칙 있게 놓여 있으되, 그 방의 주인인 순애의 오라비는 아직 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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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도서정보 : 현진건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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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玄鎭健)이 지은 장편소설. 1933년 12월 20일부터 1934년 6월 17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그 뒤 1939년 박문서관에서 『현대걸작장편소설선 4』로 간행하였다. 단편작가로 출발한 현진건이 처음으로 장편에 붓을 든 작품이다. 1930년대는 일제의 검열이 심하여지고, 또한 출판사정의 악화로 소설의 발표가 주로 신문연재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독자의 취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소설가들은 검열을 피하면서 독자의 호기심도 충족시키고 자신의 현실 인식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 양식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적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젊은이 김여해와 홍영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홍영애는 돈 때문에 부자인 박병일과 결혼한다.

이에 분노한 김여해는 신방을 습격하게 되고, 독립군 군자금을 위한 범행이라는 박병일의 조작에 따라 5년간 징역을 살게 된다. 그 뒤 출옥한 김여해는 복수의 심정으로 박병일의 동생 은주를 강간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병일은 자신의 체면을 위하여 동생을 자기 회사의 간부이자 대학동창인 원석호의 후처로 보내려 한다.

오빠의 이기적인 처사에 충격을 받은 은주는 한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하는데, 이를 알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김여해는 강에 뛰어들어 은주를 구출한다. 한편, 박병일은 기생 명화에게 빠져 홍영애와 갈등을 일으키고, 명화를 알게 된 김여해 또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명화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박병일도 김여해도 아닌 해외에 망명한 독립투사 김상열이었다.

김상열이 밀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하여 명화를 만나자 김여해는 질투심으로 그를 고발하려다가, 그 임무의 중요성과 애국정신을 알게 됨으로써 명화를 양보하고 대신 임무를 맡는다. 김상열은 은주와 명화를 데리고 다시 해외로 나가고, 김여해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되어 취조 도중 자살한다.

이 작품은 신문 독자의 흥미를 유발, 지속시키기 위하여 일곱 개의 복잡한 삼각관계를 연속시켜 나가면서도 작자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 대응 방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것은 당시 사회의 두 유형의 인간상을 통하여 나타난다. 한쪽은 자신의 재산만을 위하여 환락과 비열 속에 사는 박병일·원석호 등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민족을 위하여 일제와 투쟁하려는 김상열·명화 등이다.

이 사이에서 김여해는 개인적 감정, 즉 사랑·질투·복수 등에 사로잡혀 있던 평범한 청년에서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에 눈떠가는 인물로 변모한다. 결국, 김상열·명화·김여해를 긍정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작자는 일제에 대한 적극적 투쟁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통속성과 사회의식을 조화시키려 한 1930년대 전기 장편소설의 한 표본적 작품이라는 데에서 그 소설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통속성과 민족 현실의 인식이 조화롭게 결합, 형상화되지 못함으로써 통속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구매가격 : 2,000 원

신문지와 철창

도서정보 : 현진건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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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쭙잖은 일로 삼남 지방 T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츨을 보낸 일이 있었다.
사월 그믐께 서울에서는 창경원 밤 꽃구경이 한참일 무렵이었다. 앞문 목 책과 뒤 쇠창살 사이로 햇발은 금강석과 같이 부시다. 조각밖에 아니 보이는 하늘가로 흰 구름의 끄트머리가 어른어른 떠돈다.
지금까지 문 앞에서 서성서성하고 있던 우리 방에서는 제일 존장인 오십 남짓한 구레나룻이 한숨인지 감탄인지 분간 못할 소리로 읊조렸다.
“에에헷! 일기는 참 좋군! 저 홰나뭇가지를 보시오. 거기는 바람이 있구려. 새파란 잎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곧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 같구려.”
나는 그 절묘한 형용사에 놀래었다. 그는 주막집 주인으로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꾸려가다가 수상한 청년 한 명을 재운 죄로 벌써 열이틀째 고생을 하고 있는 중늙은이다. 그에게 이런 시흥이 있을 줄이야! 나의 눈에도 그 홰나무가 뜨인 지는 오래였다. 경찰서 마당 소방대 망루가 있는 바로 옆에 그 홰나무는 넓은 마당을 덮은 듯이 푸른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때마츰 불어오는 동풍을 안고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휘영휘영 흔들린다. 갇힌 이에게는 그 자연스러운―자연스럽지 못한 경우에 쪼들리는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러운 데 주렸으랴―푸른 빛이 끝없는 감흥을 일으켰음이리라. 그 바람을 따라 아모 거리낌 없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는 모양이 어데까지 자유스럽고 어데까지 즐겁게 보였음이리라. 하늘에 날아 오르는 것 같다는 한 마디 말에 그 홰나무의 형용과 아울러 그의 처지와 감정과 심회를 여실하게 나타낸 것이다.
‘경우가 시인을 낳는구나.’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구레나룻의 탄식과 내 한숨은 단박에 전염이 되었다. 한 칸 소침한 우리 방에 빡빡하게 들어찬 열두 명의 입에서는 마치 군호나 부른 듯이 일제히 한숨이 터졌다. 한숨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곳에는 그것같이 전염 잘되는 것은 없었다. 한 사람이 쉬면 왼 방이 모조리 따르고 한 방에서 일어나면 삽시간에 각 방으로 퍼져,
“후우!”
“아이구우!”
하는 소리가 마치 회호리바람과 같이 지나간다. 이 아모런 의미 없는 숨길에 얼마나 많은 뜻이 품겼으랴, 얼마나 많은 하소연이 섞였으랴. 그것은 입술에 발린 천마디만마디 말보담도 몇 백 곱절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미어지는 제 가슴 한 모퉁이를 역력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말라 가는 제 피 방울방울을 무더기로 뿜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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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도서정보 : 염상섭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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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은 식민지 시대 빼어난 문학작품의 하나로, 작가로서 염상섭의 위치를 굳혀준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소설사상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의 걸작 「삼대(三代)」(1931)의 준비 과정에 속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안의 형편과 실상을 목격하고 깨달아간다는 설정을 통하여, 식민사회의 병폐를 식민지 지배국의 상황과 대비시켜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적 대립은 여정의 단계에 맞추어 점층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여러 국면이 ‘무덤’으로 은유되는 한 상황으로 쉽게 용해될 수 있었다. 반면, 묘지로부터의 탈출이 지향하는 해방의 공간이 일본이라거나, 진상을 목격하면서도 이면과 원인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추구하는 자유가 개인적인 것에 한정된다는 등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이 작품 속의 공동묘지나 아내의 죽음 등의 문제가 1920년대 한국 낭만주의의 연장선 위에서 설명된다고 할 때, 그러한 인식을 사회 진단적 의미로 확대시킨 데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구매가격 : 1,000 원

임종

도서정보 : 염상섭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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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없으면 약이라두 지어 올 일이지. 사람이 성의가 없어.]
침대 위에 간신히 부축을 하여 일어나 앉은 병인은, 만경에 빠진 사람 같지도 않게 의식이 분명하고, 숨결은 차지마는 말소리도 또랑또랑하다. 병인은 어제부터 새판으로, 입원하기 전에 대었다가 맞지 않는다고 물린 한의(漢醫)를 병원 속으로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은 다 제쳐놓고 자기의 병 중세를 잘 이해하고 의사와 수작이라도 할 만한 아우 명호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 오늘, 두 번을 갔다 오면서 의사가 시골에 출장을 가서 못 만났다고 약도 못 지어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툭 건드리기만 하여도 끊어질 듯한 신경만 날카로운 병인은, 자기를 속이는 것만 같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판이라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서 퇴원부터 하시고, 의사는 있다 저녁 때 불러오기로 하죠.]
오늘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전차를 타기도 어중된 거리라, 걸어서 왕복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실에 들어선 명호는, 웃통을 벗어 놓고 땀을 들이며 찬찬히 병인을 달랬다. 오늘 해를 넘길지 모르는 병자에게, 성의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몹시 섭섭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으나, 어쨌든 한약첩쯤 급한 것이 아니라, 예정대로 퇴원을 어서 시켜야 하겠는데, 또 딴 소리가 나올까 보아 어린 아이 달래듯 달래려는 것이었다.
[퇴원은 무슨 퇴원. 약이라도 지어 가지구 나가야지 이대루 나갔다간 당장 숨이 맥혀 죽어!……]
남의 고통은 조금도 몰라주고, 성한 사람들이 저의 대중만 치고 저의 형편 좋을 대로만 하겠다는 것이 화가 나서 역정을 와락 내어 보았으나, 숨결이 또다시 되어지며 말은 입 속에서 어룸하여져 버렸다. 병자는 성한 사람들의 자기에게 대한 동정과 성의가 부족하다고 늘 불만으로 넘기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동정이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나, 한편에 있어서는 비굴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육체의 고통이 극도에 오를수록 모든 사람이 부족하게 구는 것만 같고, 자기를 돌려내고 민주를 대는 듯싶어 고까운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퇴원은 놀라는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는 아마 길게 끌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벌써부터 나온 문제인데, 병자의 반대로 미루미루하여 오던 것을 어제 한약을 먹겠다는 말끝에 거기 따라 명호가 부쩍 우겨서, 당자도 찬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신이 말짱할 때는 옆의 사람이 송구스러울 만치 입원료가 더껌더껌 많아지는 걱정도 하고, 죽은 뒤의 장비 마련까지 하던 사람이 병세가 차차 침중하여지고, 육체적 고통이 시시각각으로 볶아져 대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잊어버리고, 덮어놓고 병원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것이었다. 그것은 병원에 누웠댔자 별수가 없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다만 하나 주사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뇌일혈(腦溢血)로 인사 불성에 빠질 뻔한 것을 백지장 한겹지간에 요행히 붙들어서 한약으로 머리와 피를 내려앉게 하여는 놓았었지마는, 한달 전에 입원할 때, 이백 얼마라는 혈압(血壓)을 오륙십 그램씩 두 번이나 쥐어짜듯이 하여 피를 빼고, 무슨 주사인지 미국치를 비밀 가격으로 사들여다가 연거푸 놓고 한 덕에, 간신히 부지를 하여 온 머릿속이요, 심장이다. 거기다가 신장염이 곁들여서 부증이 들쭉날쭉하다가 어쩐 둥 하여 부기가 내리고 구미가 붙기 시작을 하여 한동안 수미(愁眉)를 폈던 것이나, 지금 와서는 완전히 마취제와 강심제의 농락으로 꺼져 가는 등잔의 심을 돋우고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약이 없어 죽다니! 하기야 돈이 없지, 약이 없겠나!]

구매가격 : 500 원

백금

도서정보 : 최서해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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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참을 수 없다.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지배되어 팔을 벌리고 눈을 뜨면서 벌떡 일어난다. 결국 굳센 내 두 팔에 잔뜩 안긴 것은 나를 덮었던 이불이다. 내 눈앞에는 으스름한 창문이 보일 뿐이다. 나는 한숨을 휴 쉬었다. 지금 그것이 허깨비인 줄 모르는 것이 아니로되, 그래도 무엇이 보일 듯하고, 무엇이 들릴 듯하게 마음에 켕긴다.
“백금아! 백금아! 백금아…….”
나는 나도 알 수 없이 구석을 노려보면서 나직이 불렀다. 보이기는 무엇이 보이며, 들리기는 무엇이 들려? 으슥한 구석에 걸린 의복이 점점 환하게 보이고 창을 스치는 쌀쌀한 바람 소리만 그윽할 뿐이다.
“흥! 내가 미쳤나?”
내 몸은 힘없이 자리에 다시 쓰러졌다. 머리는 띵하고 가슴은 쩌릿하다.
슬그니 덮은 두 눈딱지까지 천 근 쇠덩어리같이 눈알을 누른다. 또 온갖 사념이 머리를 뒤흔들고 열이 올라서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백금이 간 지가 벌써 몇 달이냐? 그가 갔다는 이 선생의 손으로 쓰신 어머니의 엽서를 받던 때는 청량리 버드나무 잎이 바야흐로 우거졌던 때더니 벌써 그것이 떨어지고, 삼각산에 흰눈이 내렸다. 성진(城津) 동해안(東海岸) 공동 묘지에 묻힌 그의 어린 뼈와 고기는 벌써 진토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있다고 하면 마천령(魔天嶺)으로 내리쏠리는 쓸쓸한 바람 속에 누워서 이 밤 저 달 아래 빛나는 바닷 소리에 얼마나 목메인 울음을 울까?

백금이는 내가 스물 한 살 때, 즉 신유년 7월 22일에 서간도(西間島)에서 낳은 딸이다.
“손자가 나면 백웅(白雄)이라고 하쟀더니 손녀니까 백금(白琴)이라 하지!
백두산 아래에 와서 얻은 거문고라고 허허.”
이렇게 아버지께서 그 이름을 지으셨다. 백금이는 거칠은 만주 산골에서 낳기는 하였으나 어머니(아내)나 아버지(나)보다도, 할아버지(아버지)와 할머니(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곱게곱게 컸다.
그러나 악착스런 운명은 우리에게 평화로운 날을 늘 주지 않았다. 백금이 두 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어머니, 아내, 백금, 나 이 네 식구는 아버지와 갈리게 되었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는 삼인방(三人坊) 고개에서 아버지와 작별할 때 점점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섧게섧게 우는 백금의 울음에 우리는 모두 한숨을 짓고 눈물을 뿌렸다. 아버지는 우리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그 고개 마루턱에 지팡이를 짚고 섰었다.
태산 준령을 넘어서 북간도 얼따오꼬우〔二道溝[이도구]〕에 나온 우리는 이듬해 즉 백금이가 세 살 나던 해 봄에 두만강을 건너서 회령(會寧)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백금이는 어정어정 이웃집으로도 걸어다니고 쉬운 말도 하고 어른들이 가리키는 것을 집어 오기도 하였다. 온 집안의 정성과 사랑은 더욱 더욱 그에게 몰렸다. 어머니께서는 맛나는 것만 얻으셔도 백금이 백금이, 이쁜 것만 보셔도 백금이 백금이 하여 귀여워하셨다. 심지어 그때 우리 노동판 회계인 T의 내외분까지 백금 백금 하여 자기 자식같이 받들었다. 내가 노동판에서 늦게 들어가서 기침을 컹 하고 문을 열면 어미 무릎에서 젖을 먹던 백금이는 통통 뛰어나오면서,
“해해 아부지! 아부지! 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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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변

도서정보 : 윤기정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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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칠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사람이 드문드문 다니는 서울의 밤거리를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어느 요리집에서 여러 친구들과 해가 있어서부터 먹고 마시기를 시작한 것이 자정이 넘어 새로 한시가 바라볼 때까지 진탕만탕 정신없이 먹고 놀다가 지금 첩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빌어먹을 자식들 인력거는 무슨 인력거야? 이렇게 걸어가도 잘만 가지는데’ 발이 허청에 놓이는 것같이 조금 비틀거리며 분명치 못한 혀 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까 요리집 대문간을 나올 때에 여러 친구들이 인력거를 타자고 하는 것을 기생들만 태우게 하고 그들은 그대로 돌려보냈다.
인색하기 짝이 없고 돈만 아는 성칠의 본색을 이런데서 알아볼 수 있다. 어째서 그들과 어울려먹기는 먹었지만 요리집을 등지고 나올 때에는 어지간히 후회를 하였다. 그래 인력거를 타면 한 두 사람도 아니요 여럿이니까 돈이 어지간히 들것을 생각하고 자기부터 걸어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고년, 소리도 잘 하더라”
“고년, 어여쁘기도 하더라”
그는 아까 요리집에서 지난 일을 낱낱이 머리에 그려보며 생각나는 대로 입버릇같이 웅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다.
요리집에서 일어난 일, 어제 낮에 일어난 일, 이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처음에는 밤에 지난 모든 그림자와 말소리와 노랫소리가 똑똑히 나타나고 들리고 하더니 나중에는 낮에 지난 일이 더욱 똑똑하게 그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게 되었다. 그는 이따금씩 의미있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낮에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낱낱이 순서 있게 생각하기를 시작하였다.
어느 때인지도 모르고 곤히 자는데 첩이 무슨 잠을 이렇게 자느냐고 흔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떴다. 첩은 생글생글 웃으며 얼굴을 갸웃이 내리 굽어보고 있다.
“무슨 잠을 이렇게 주무시우? 지금이 어느 땐데”
하고 첩은 드러누운 사나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갖은 애교를 다 부린다.
“이건 왜이래? 남 잠도 못 자게 곤해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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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류정

도서정보 : 윤백남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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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 와우산(臥牛山) 기슭에 있는 정자 안류정(安流亭)에 기류하고 있는 이종성(李宗城)은 오늘도 조반을 마친 후에 점심을 싸 가지고 강변으로 나갔다.
동저고리 바람에 삿갓을 쓰고 낚싯대를 메고 가는 그의 모양은 누가 보든지 한 개 늙은 어옹에 틀림이 없었다.
와우산을 서남쪽으로 흘러 내려 강물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조그마한 절벽과 몇개의 바위가 홀연히 솟아 있었다.
이종성은 그 한개의 바위 위에 가지고 온 점심 그릇을 곁에 놓고 낚싯줄을 늘였다. 위수에 곧은 낚시를 느리고 때를 기다린 태공 여상(呂尙)도 있거니와 이종성도 고기잡히기를 고대하는 눈치는 없었다.
이때 대갓집 별배같은 위인이 와서,
『대감, 소인 물러가겠읍니다.』
하고 노옹의 등 위에서 굽실하고 절을 하였다.
어옹은 강물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옮기지도 아니하고,
『왜 하루 묵어 간다더니.』
『대감께서 기력이 안녕하신 줄 아오면 곧 돌아가서 젊은 영감께 전갈을 올리는게 지당하올가 해서 곧 물러가겠읍니다.』
『오냐, 가거라. 가서 나는 아무 별고 없다고 하고 서울집에도 별일이 없더라고 해라.』
하고는 돌아다 보지도 아니하였다.
삿갓 쓴 어옹이 대감이라 불리우다니 이 과연 뉘인가?
이조 제 이십 일대 영묘조(英廟朝) 때의 유명한 재상 영의정 이종성이다.
그런데 일국의 영상이 어이하여 안류정 별장에 기식하고 삿갓 쓰고 낚시질하기로 날을 보내고 있는가 거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조는 문소의(文昭儀)라는 간악한 궁녀에게 고혹하여 궁중에 있어서의 모든 처사가 그릇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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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일생

도서정보 : 이광수 | 2020-06-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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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색한인 아버지와 기생 출신의 어머니를 둔 이금봉은 미모와 재주를 갖추었지만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물욕과 색욕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첩을 두기 위해 아내를 내쫓고, 금봉의 어머니는 우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첩살림 등으로 불우하게 자란 금봉은 아버지가 정해 준 혼처를 뿌리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금봉의 미모를 탐하던 학교 선생 손명규가 금봉에게 학비를 대주겠다며 동경 유학을 권한 것이다.

동경에서 금봉은 처음 접하는 교회 학교의 엄숙하고 종교적인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청년 운동가 임학재를 만나 종교적 동정과도 같은 사랑에 빠진다. 인생의 향락을 단념하고 조선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학재의 뜻에 따라 금봉은 자신도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학재가 비밀결사 활동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가자 금봉은 자신에게 구애를 펼치는 심상태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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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거짓말의 최후의 한마디

도서정보 : 코노 유타카 | 2020-06-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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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대기업 하르윈이 “4월 1일에 연봉 8000만 엔(한화 8억 이상)으로 초능력자를 한 사람 채용한다”라는 거짓말처럼 아주 놀라운 소식을 알린다. 심사를 거쳐서 자칭 초능력자 일곱 명이 3월 31일 밤에 거리에서 벌어지는 최종 시험에 참가하게 된다. 시험을 응시하는 대학생 이치쿠라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목적이 있는데….

그는 다른 참가자 소녀 히비노와 손을 잡고, 한 통밖에 없는 채용 통지서를 빼앗기 위해 책략을 구사하여 속고 속이는 상황에 도전한다. 끊임없이 심리전이 이어지는 미스터리. 가장 평범한 지원자. 대학생 이치쿠라는 대기업 취직도, 자신만의 목적도 이룰 수 있을까!?

구매가격 : 8,4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