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도서정보 : 이만교 | 2019-12-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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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작가상 수상 작가 이만교
16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투레질」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주제와 문체와 대화와 행동과 정신을 아우르는 예외적인 ‘속도’를 구사”(문학평론가 김화영)한다는 평을 들으며 제24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이만교의 신작 장편소설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가 출간되었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민음사, 2003) 이후 16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2009년 1월 20일, 부당한 재개발 보상 정책에 반발하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을 무장한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의 한가운데로 ‘임한기’라는 가공의 인물을 들여보내면서 진행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한기씨’가 왜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잃어야 했는지, 그에 대해 회고하는 인터뷰이 66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잊었거나 애써 잊고자 했던 ‘그날’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날 그곳에 존재했던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와
그날 그곳을 ‘지나친’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판에서 일하던 대학생 한기씨는 그곳에서 전문 도박꾼들에게 걸려들어 모아둔 돈을 모두 탕진하고 만다. 결국 시급이 더 센 알바를 찾아 파업 현장에서 용역으로까지 일하게 된 그는 머리를 서른 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꾀부리지 않는 그를 눈여겨본 용역업체 팀장의 알선으로 한기씨는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 국숫집을 열게 되고, 타고난 성실함 덕분에 국숫집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곧이어 재개발이 시행되자 터무니없는 보상 조건으로 가게를 빼앗기다시피 내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불합리함을 느낀 한기씨는 다른 세입자들과 연대해 조합과 시공사, 용역업체에 맞서며 점차 과격한 투사로 변해간다. 대책위 사무실에 들이닥친 여남은 명의 철거 용역을 단신으로 들이받기도 하고, 당구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그들에 맞서 허벅지에 큐대를 내리꽂는 자해를 하기도 한다. 부조리한 재개발 정책에 누구보다 분노하며 선봉에서 투쟁하는 그였지만, 때로는 쉽게 흥분해서 상황을 그르치거나 다른 지역 철거민들의 처참한 사례를 들먹이며 겁을 주기도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산다. 급기야 한기씨를 조합 끄나풀이나 용역 프락치라 의심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나고, 최후의 수단으로 망루를 올리기로 한 계획 역시 한기씨에게는 비밀에 부쳐진다. 그런데 철거민들과 경찰이 대치한 아비규환의 망루 사층에서 한기씨로 보이는 한 사람이 떨어지고, 그 시신마저 사라지면서 한기씨의 정체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이만교는 자신의 첫번째 장편소설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결혼과 사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속물성과 경직된 엄숙주의를 속도감 넘치는 문장으로 풍자한 바 있다. 이어 또다른 장편소설인 『머꼬네 집에 놀러올래?』에서도 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한 일가의 가족사에 덧대어 생생하고 경쾌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는,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에 이르러 사회적 위치나 이권에 따라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도시재개발 현장의 구조적 모순과 그 모순성에 의탁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삶을 거침없고 솔직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소설은 신문기자 ‘이만기’가 한기씨의 주변 인물 66명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연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소설의 형식이 이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귀담아듣게 만드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게 자신들도 처음엔 세입자 보상금으로 사백억 남짓을 책정해놓고, 실제로는 백이십억만 지급했어요. 자신들이 책정한 비용만 정직하게 사용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조차 아까워 용역을 쓴 겁니다.

권리금은커녕 이억 들어간 가게를 일억 주고 나가라 하고, 일억 들어간 가게를 삼사천 주고 나가라면 그게 전부거나 그나마 융자받은 건데, 누가 그냥 나가요.(53쪽)

평생 일궈온 자신의 터전을 헐값에 넘겨야 하는 세입자들과 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 어용 대책위를 만들어 회비를 뜯어가는 지역 건달들, 시공사와 계약을 맺고 정해진 기한 내에 철거를 마치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세입자들을 압박하는 정비업체 용역들, 조금의 보상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연대를 저버리는 사람들, 시공사의 눈치를 보며 철거민들을 외면하는 경찰, 그리고 그곳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까지…… 소설은 각자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따라 행동과 발언이 달라지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 재개발 현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신랄하게 드러내 보인다. 특히 온갖 저열한 방법으로 철거민들을 괴롭히는 용역들조차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장면을 통해서는 타인의 권리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선 자신의 이익을 차지할 수 없는 재개발사업과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을 뼈아프게 묘사한다.

작가가 선명하게 지적하듯, 용역들 뒤에는 경비업체가, 경비업체 뒤에는 정비업체가 있고, 정비업체 대표는 구청장과 향우회 회장, 부회장 사이이며, 이들 뒤에는 재벌 시공사가 버티고 있는 거대한 권력의 연쇄작용은 상대적 약자인 개인들에게는 크나큰 폭력으로 작동하며, 그 폭력성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정체성을 제대로 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한기씨와 함께 연대하던 철거민들이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들은 타인에 대한 판단이나 기억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집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평소 모습으로 퇴근하고, 나는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하나. 우리가 시위한다고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이나 가질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해도 저 사람들 역시 기억조차 못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59쪽)

용산 참사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이만교는 많은 사람이 잊고 있던 사건을 끄집어내 재조명한다. 안타까운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고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날의 멈춤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오히려 그날에 대한 기억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자신의 것을 보전하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다만 작가는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아닌 특유의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소설적 긴장과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한기씨의 정체를 특정하지 않고 끝내 그의 시신마저 사라지게 만들면서,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이며 소설을 읽도록 만드는 추리소설적 설정도 흥미롭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신작이 이토록 섬세하고 활달하다는 것은 그가 현실의 문제와 소설쓰기에서 한순간도 멀어지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 소설이 자주 소외되곤 하는 재개발 현장의 현실을 르포로도 손색없을 현장감 있는 언어로 되살려내고, 동시에 용산 참사의 진실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하는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다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해봐야 좋을 게 없는 말들은, 퇴고나 편집 과정에서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
이 글은 하려고 했던 말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게 된 말,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_‘작가의 말’에서


■ 책 속에서

이제 우리 애 장가보내야 하는데, 평생 안 놀고 이렇게 장사했는데 제 재산은 반쪽에 반쪽에 반쪽이 났어요. 이건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 뺏어간 거라구요.(60쪽)

제 생각을 솔직히 말하라면 그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장 정확히 본 건 바로 한기씨예요. 싸워보면 싸워볼수록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죽을 각오밖에는.(95쪽)

“오빠는 너무 이상해. 그냥 좋으면 좋은 거고, 안 좋으면 안 좋은 건데……”
내가 한숨짓자 오빠도 한숨을 쉬더군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면 아무 걱정도 않겠다.”(105쪽)

즈그들은 원래 한 놈만 노린다는 거라예. 즈그들 입으로 그라드만. 공평하게 괴롭히면 단합하니까 하나만 샘플로 노려서 조진다고.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 곳인지 가르쳐주겠다며. 진실을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126쪽)

자기도 모르게 투사가 되어버려요. 모르면 더 좋을, 더 편한 사실을 알게 돼요. 저희 어머니가 참사 나고 나서 텔레비전을 못 보셔요. 텔레비전이 무서워서요. 텔레비전이 무얼 감추고 있는지 알게 되니까.(147쪽)

경찰한테 말하니까 자기들은 불 끄는 사람이 아니래. 아니, 하지 못하게는 할 수 있잖아. 근데 자기들 임무가 아니라면서 웃기만 해. 소방관들도 왔는데, 둘러만 보고 그냥 갔어. 불을 꺼달라고 해도, 추워서 불 쬔다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끄냐면서. 아무도 우리 편이 아냐.(163∼164쪽)

감옥살이가 힘든 게 아니라, 재판 과정을 통해서조차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나라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힘들었어. 그때 그 불길에 휩싸여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겐 참 죄송한 말이지만, 그때 그냥 죽는 게 더 나았을 거 같아.(165쪽)

“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떨어져 죽었어요!”
……
사람들이 소리쳤어. 그래서 끔찍하지만, 더 끔찍한 사태로 이어지진 않겠구나 하는 기대가 내심 없지 않았어. 사람이 죽었으니, 진압 상황이 좀 진정되겠구나 싶었지. 그런데도 이놈들이 그대로 밀어붙이는 거야.(168쪽)

구매가격 : 8,400 원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도서정보 : 이장욱 | 2019-12-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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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
이장욱 4년 만의 신작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2015)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장욱의 신작 소설집. “정면으로 한 세계를 향해 대들어보겠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소설가 오정희)하다는 평을 들으며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최저임금의 결정」, 현대문학상 수상후보작 「낙천성 연습」을 포함해 그전보다 더욱 첨예해진 감각과 아름다워진 문장으로, 쓸쓸하지만 묘한 위로를 건네는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고 인간존재의 맨얼굴을 드러나게 했던 그간의 이장욱 소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율배반의 세계 자체와 시간의 흐름, 선과 악의 구분까지 허물어뜨리며 어딘가 단단히 비틀려버린 세상과 그 틈에서 최소한의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안간힘을 세련되고 날렵한 언어로 펼쳐 보인다.


뭔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엉뚱한 데서 영영 멈춰버린 시간과 더불어
혼자 캄캄해져서
어둠 속에 손을 넣어보는 사람처럼

표제작인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늦은 아침 “스트레칭 자세를 취한 뒤 슈만의 환상 소곡집을” 들으며 “알라딘 마일리지로 구입한 머그잔에 카누를 털어 넣”는 ‘그녀’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후에도 소설은 내내 ‘나’의 시선으로 그녀에 대해 서술하며 팽팽하게 이어지는데,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마지막에 이르도록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알 수 없고 심지어 그녀의 존재 자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명 시인인 ‘나’는 자신이 발표한 시를 교묘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 포스팅하는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이란 이름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점차 블로그 주인인 그녀(성별도 단정할 수는 없다)에게 빠져든다. 블로그에는 급기야 자신이 쓰지도 않은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올라오고, ‘나’는 그 시들이 자신이 쓴 시보다 더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이름이 붙은 시이므로 자신의 시라는 자기합리화로 그 시들을 문예지에 발표하고 문단의 찬사까지 받는다. 그러던 중 블로그의 업데이트가 중단되고, 계속해서 문단의 기대에 걸맞은 시를 발표해야 하는 ‘나’는 조급함과 두려움에 빠져 그녀에게 연락을 시도하는데……

‘나’는 그녀를 구성하는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에 집요할 정도로 매달렸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해지면서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3월(March)’보다 ‘4월(April)’이 앞서 있는 알쏭달쏭한 제목처럼 이미 세상에 나온 시나 글에 주인이란 있는 것인지, 나아가 정해진 공식이나 예정된 방향으로는 진행되지 않는 삶을 예측하기란 가능한 일인지 몽롱한 꿈을 꾸는 듯한 보르헤스적 환상성으로 날카롭게 되묻는 수작이다.

「최저임금의 결정」에서도 이장욱은 우리를 낯설고 어리둥절한 꿈 같은 세계로 이끈다. ‘나’는 편의점 알바생인 자신의 애인을 위협하고 사고까지 당하게 만든 편의점 사장을 살해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나’를 맞닥뜨린 사장의 입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순식간에 상황은 반전된다. 작가는 “다음달부터 최저임금 맞춰줄게”라며 알바생의 당연한 권리에도 생색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자주 화를 내는 사장을 줄곧 악인의 자리에 위치시키다가, 일순간 ‘나’가 스토커임을 폭로하며 두 사람의 역할을 맞바꾼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에쎄’를 찾는, 다분히 환상적인 존재인 대여섯 살 남짓의 소녀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모든 상황이 실제인지 혹은 누가 진짜 악인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가장 낮은 곳에서나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무대와 배역이 주어져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뒤틀린 세계에서 뒤틀리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의 삶의 지난함을 서늘하게 드러내 보인다.


뭔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마음속의 구멍과 비슷하다. 구멍으로 바람은 들게 마련이고, 그런 바람이라도 좀 들어야 숨을 쉴 수 있는 법이니까.(119쪽)

찰스 디킨스의 동명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데려다놓는 세계도 흥미롭다. 성공한 컨설턴트인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의 전 남친에게 전화를 받는다. 사내는 다짜고짜 “내 와이프가 잠든 침대에서 내 와이프의 남편이 되어 잠들고 싶다”며 만나줄 것을 요구한다. 사내의 말을 어설픈 치기로 느끼면서도 이상한 호기심과 기시감에 이끌린 ‘나’는 그를 만나러 간다. “면접을 보러 온 취업 지망생을 바라보듯이” 자신만만하게 사내를 대하던 ‘나’는 너저분한 차림의 노인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폭설을 뚫고 돌아온 집에서 마주한 아내의 얼굴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캐럴」은 흡인력 있는 이장욱의 문장을 따라 읽다보면 누구나 한번은 꿈꿔봤음직한 세계로 가닿아 있음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존재를 이야기의 마지막에 자주 등장시킴으로써 이 모든 것이 환상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이야기를 따라 낯선 세계로 떠났던 독자를 처음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독자들은, 어쩐지 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번은 만나게 될 것 같은 노인은 「행자가 사라졌다!」와 「양구에는 돼지코」에도 등장하는데, 이 두 작품이 주는 삶의 통찰도 되새겨볼 만하다. 「행자가 사라졌다!」는 ‘행자’라는 이름의 애완 뱀이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화자는 함께 사는 가족들을 한 명 한 명 용의선상에 올리며 행자의 행방을 추적하지만, 가족들은 저마다의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할머니 ‘행자’. 애완 뱀에게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인 할머니와 애완 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소설은 인생의 경험과 추억은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으며 그러한 위험성과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도사리고 있음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작가가 “유독 아픈 마음으로 썼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양구에는 돼지코」는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혼동하고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다른 수록작들보다 확연히 현실감이 강한 작품인데, “돼지코만 있으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남은 생을 향해 혼자 걸어가는 화자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특별한 감동을 준다.

“세상의 다른 곳에서, 당신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불러오는 능력”이 복화술이라고 말하는 복화술사의 목소리를 빌려 소설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메타픽션 형식의 작품 「복화술사」, 이율배반의 세상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끝내 성공하고 마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있는 화자를 통해 ‘낙천적으로는’ 살아내기 어려운 현실의 아이러니함을 꼬집는 「낙천성 연습」, 인디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팬클럽에서 만난 남녀의 기이한 잠버릇과 그보다 더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의 모습을 그리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삶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되묻는 「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 전직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화자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조금 삐걱거리다가 순순히 움직여주”는 목조 창문처럼 언제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환기하는 「눈먼 윌리 맥텔」도 이장욱의 소설세계가 도달한 성취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장욱은 어떠한 허들도 없이 일상과 환상을 넘나들고 능숙하게 이야기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다른 존재’가 되어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세계로, 혹은 쉬이 조합해내기 어려운 다채로운 시공간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거나 다소 괴상한 존재라는 시선에 놓인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결코 모자라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회가 그들을 존재의 밑바닥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우리를 안도하게 한다. 우리는 자주 불안하고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자꾸 마음이 캄캄해지지만, 까맣고 어두운 그곳에 천천히 손을 넣어 ‘다른 세계’로 이끄는 이장욱의 소설을 반가워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소설들 한 편 한 편을 가만히 떠올린다. 내가 이 소설들을 쓴 것이 아니라 이 소설들이 나를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 한 편이 나를 다른 펜으로, 다른 스타일로, 다른 인물로, 마침내 다른 세계로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쓰이기를 멈추지 않겠지. 그렇게 다시 쓰이는 것이, 또한 이 세계이기를.
_‘작가의 말’에서


■ 책 속에서

육이오를 경험한 사람은 육이오에, 유신을 경험한 사람은 유신에,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가난에 갇혀 살아가는 법이다. 평생 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면? 다들 지들처럼 사는 줄 알겠지. _「행자가 사라졌다!」

어떤 목소리가 누군가를 욕하면 다른 목소리가 그러는 너는 다르냐고 대꾸합니다. 한쪽에서는 뭐 대충 이렇게 살다 가면 되지 않나 중얼거리는 순간, 바로 너 같은 인간이 문제야! 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옵니다. 그들이 마주앉아서 웃고 울고 다투는 것이죠. _「복화술사」

뭔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마음속의 구멍과 비슷하다. 구멍으로 바람은 들게 마련이고, 그런 바람이라도 좀 들어야 숨을 쉴 수 있는 법이니까. _「크리스마스 캐럴」

두꺼운 뿔테안경에 말수가 적고 모범생처럼 보여서 고용한 알바였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녀석이 보낸 문자가 당돌하게도 이런 거였다. 사장님, 최저임금은 존재의 최저 수준, 즉 존재의 밑바닥입니다. 기본은 맞춰주셔야죠. _「최저임금의 결정」

네시라. 아직도 네시인가. 요즘엔 시간 감각이 없어서 말이야. 시간이란 게 흐르다 말다 하는 것 같다니까. 그러다 영원히 멈추겠지. 엉뚱한 데서. _「최저임금의 결정」

나는 누구이고 무슨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이 배역은 왜 당신이 아니라 나의 것인가. 아니, 이 배역은 왜 당신과 나만의 것인가. _「최저임금의 결정」

나는 내가 운전을 하고 그 사람이 옆에 앉아 있을 때가 좋았다. 그 사람은 내 옆에 앉아서 내 차를 타고 달리는데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나를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좋았지. _「양구에는 돼지코」

확실히 사람의 인생에는 네 개의 방향이 있다. 그것은 동서남북이다. 사람은 동서남북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 나는 네거리에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혼자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_「양구에는 돼지코」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인가. 자꾸 캄캄해져서 손을 넣어보게 되잖아. 거기서 뭐가 잡히나. _「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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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 사위 봄봄 씨

도서정보 : 이종열 | 2019-12-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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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절대 읽어서는 아니 된다. 김유정의 봄봄이 발표된 지 8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글이 많이 개정되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래서 본문을 흥미위주로 수정했으며 더하고 감한 부분이 상당하다. 또한 지금 시대는 80년 전과 달리 여성의 지위가 남성을 웃돈다. 그에 맞게 반전을 설정했다. 예) 장인님은 날 어수룩하게 생각하고 머슴으로 부려먹는다. 그러고도 사경을 안 줘도 되니 좋아 죽을 지경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장인님이 불쌍하고 가엾을 뿐이다. 장인님이 오만 악역을 다 맡으며 지독히도 재산을 불려놓으면 죽어서 지고 갈 수도 없을 그 재산이 어디로 가겠는가. 내가 점순이와 혼인을 꼭 해야 하는 이유였다.

구매가격 : 1,600 원

아포리아

도서정보 : 이토 미쿠 | 2019-12-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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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1318 문고 120권.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재난이었던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간접적 배경으로 구현한 근미래소설이다. 작가 이토 미쿠와 사진작가 시시도 기요타카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출신 작가들로, 시시도 기요타카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대지진의 참상과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들이 실제 다큐멘터리 사진을 실어, ‘24년 뒤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했다’고 가정한 작품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포리아’는 ‘길이 없는 것’ 그리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나 <아포리아 : 내일의 바람>은 결코 절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 사진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대지진과 쓰나미가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 있게 묘사한다. 그 시선은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내일을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에 주목한다. 재난을 경험했기에 가질 수 있는 겸허한 태도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삶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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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도서정보 : 현진건 | 2019-12-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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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현진건(玄鎭健)이 지은 단편소설. 1924년 6월 『개벽』 48호에 발표되었다. 한 인력거꾼에게 비오는 날 불어닥친 행운이 결국 아내의 죽음이라는 불행으로 역전되고 만다는, 제목부터 반어적(反語的)인 소설이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행운이 불어닥친다. 아침 댓바람에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 것이다.

거기에다가, 며칠 전부터 앓아누운 마누라에게 그렇게도 원하던 설렁탕 국물을 사줄 수 있으리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를, 1원 50전으로 불러 세운 학생 손님까지 만났기 때문이다.

엄청난 행운에 신나게 인력거를 끌면서도 그의 가슴을 누르는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하던 마누라 말이 계속 마음에 켕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님과 흥정하여 또 한 차례 벌이를 한 후 이 ‘기적’적인 벌이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길가 선술집에 들른다.

‘훈훈하고 뜨뜻’한 선술집의 생생한 분위기 속에서 얼큰히 술이 오르자, 김 첨지는 마누라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건주정을 하며 ‘원수엣돈’을 팽개치기도 하고 미친 듯이 울고 웃는다.

마침내 취기 오른 김 첨지가 설렁탕 국물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자, 이미 숨진 마누라와 빈 젖꼭지를 빨고 있는 개똥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았던 오늘 닥친 마누라의 죽음에 김 첨지 혼자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이 소설은 반어(反語)에 의하여 그 비극적 효과가 잘 드러나고 있는, 하나의 초점을 향하여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또한, 비의 배경도 아주 의미 깊게 설정되어 있다. 끊임없이 환기되는 불결한 겨울비의 이미지는 아내의 죽음을 예시하는 기능적 배경일 뿐만 아니라, 김 첨지가 놓인 ‘추적추적’한 환경 자체를 상징한다. 그것은 식민지 도시의 하층민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작가가 현실을 이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에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김 첨지는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식민지 민중이 겪는 고난을 대표하는 전형(典型)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김 첨지라는 인물전형의 창조는 1920년대 중반, 민중의 삶을 주로 다룬 신경향파문학(新傾向派文學)의 대두와 그 맥락이 닿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 개인의 문학적 변모에 주목하여볼 때, 이 작품은 지식인 중심의 초기 자전적 소설을 청산하고, 식민지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그 가장 큰 희생자인 민중의 운명을 추구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현진건의 소설 중 사회의식과 반어적 단편 양식이 가장 적절히 결합된 것으로서, 1920년대 사실주의적 단편소설의 백미로 평가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구매가격 : 500 원

덧니가 보고 싶어

도서정보 : 정세랑 | 2019-12-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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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할 때마다 어쩐지 덧니 위주로 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정세랑 장편의 시작은 이 소설이 열었다.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이는 그의 첫 장편소설!

2010년 1월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의 러브콜을 받는 등 각종 매체와 독자의 마음을 골고루 사로잡은 작가 정세랑의 ‘첫’ 장편소설이다. 분야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영토를 종횡무진하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필력은 이 소설에 아홉 개의 이야기를 짜넣으며 조합한 솜씨로 일찌감치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장르 소설가 재화가 작품 속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용기를 아홉 번이나 죽이게 되고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다는 게 작품의 큰 줄기다. 정세랑의 특장인 생동감 있는 대사의 말맛이 잘 살아 있는 이번 장편은 스릴러적인 긴장과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도 발랄하게 튀어오르는 탄성과 재치로 읽는 이에게 건강한 웃음을 남긴다.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인 이 작품은 동세대의 감수성과 달라진 지형을 영리하게 반영하며 거의 모든 문장을 고치고 설정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그동안 ‘한국 문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시험하며 다채로운 빛깔로 새로운 종이 되고자 꿈틀거려온 그다. 이제 새로운 독자들의 감수성이 펼쳐둔 지도 위 정세랑이라는 별자리는 그 한가운데서 빛난다. 좋은 이야기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이야기라고 믿는 작가 정세랑. 그가 썼으며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의 우주, 그 씨앗이 여기 있다.

“야간근무를 하면 말야, 세상의 망가진 부분들이 보여.”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용기는 장래가 촉망되는 럭비 특기생이었으나 무릎 부상을 당해 지금은 보안업체 출동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후임을 언제 뽑아줄지 기약 없는 막내 신세인 그에게는 선배들이 미루고 미룬 진상 업무만이 떨어진다. 그럴싸한 긴급상황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술에 취한 고객의 갑질을 상대하느라 골치가 아픈 그에겐 연하의 여자친구가 있다. 당돌하게 사랑을 요구하고 모든 것이 분명한 그애에게서는 누구나 좋아할 바닐라 맛이 난다. 그에 비하면 전 연인 재화는 늘 떨떠름한 초록색 맛이었다. 안고 있어도 안은 것 같지 않은, 속을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 재화는 딱딱할 정도로 진하고 단맛은 없는 녹차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의 피부에 이상한 문장이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한다.

“안 해. 아무도 안 만날 거고
이 끝나가는 세상에서 읽고 쓰기만 하다가 조용히 죽을 거야.”

뭔가 중요한 부분이 고장나버렸다면 더욱 들켜서는 안 된다.
상대가 알아버리면 바로 도망치고 말 테다.
용기가 그랬던 것처럼.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장르 소설가로 바쁜 삶을 사는 재화에게 용기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쯤은 함께하고픈 남자다. 이제는 멀리서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되었지만 소재 파악이라도 해둬야 지구가 멸망할 때 연락이라도 해보지 싶어 가끔, 헤어진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재화가 발표하는 소설마다 용기를 닮은 인물이 들어 있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재화가 작품을 하나씩 퇴고할 때마다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글씨로 새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재화는 자신의 우편물 봉투에서 정교한 칼집을 발견하곤 누군가가 자신의 우편을 뜯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인 선이 언니는 용기에게 부탁해 보안 장치를 설치하라고 권하지만 재화는 연락을 망설이는데……

재화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포털을 탄 듯 새로운 시공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에 감도는 끝맛에는 다른 차원에서 살았던,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존재가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겪는 슬픔, 후회, 연민, 분노, 원망,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 어쩌면 연애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여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이제 작품 속으로 워프할 일만 남았다.

시공의 용과 열다섯 연인들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해온 적 없는, 품격이 있다고까지 여겨지던 시공의 용이 어느 날 공물로 열다섯 명의 ‘처녀’를 요구해 충격에 빠진 마을. 청년들은 동굴로 그들을 구하러 가고 이 열다섯 연인들에게 시공의 용은 이상한 제안을 한다.

늑대 숲에 팔을 두고 왔지

기이한 병에 걸려 몸집이 거대해진 숲의 늑대들은 숲을 파괴하고 도시를 지으려던 인간들을 몰아낸다. 반면 여전히 숲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늑대족으로 불리며 인간과 늑대 양편에서 배척받는다. 어느 날 늑대족은 숲에서 팔을 크게 다친 인간의 아이를 구하게 되는데……

해피 마릴린

환경 악화로 인구정책이 강화돼 아이 대신 진짜 사람처럼 성장할 수 있는 자녀 로봇을 들이게 된 시대. 소녀 로봇 마릴린은 부모를 잃은 뒤 성장 업데이트를 거부한다. 자칫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강제로라도 로봇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제조사는 소송을 제기하고 퇴임을 앞둔 판사가 이를 맡게 된다.

러브 오브 툰드라

척박한 환경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툰드라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혹한이 찾아오고 만다. 이를 풀기 위해선 가장 깊은 얼음에 스스로 갇혀야 하는 희생주술이 필요하지만 어떤 부족장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가장 어린 여성이 자원해 얼음여왕이 된다. 겨울은 물러나고 여왕에게는 세 명의 연인이 차례로 찾아와 그 얼음을 녹이려 한다.

닭 발은 창가에

송도 최고의 시재로 이름난 기생 어홍. 어린 유생 규진에게 마음을 주고 물밑으로 도와준다. 시간이 흘러 첫 발령을 앞둔 규진을 따르기로 마음먹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다. 이별을 앞두고 어홍은 연인의 목에 매달려 서슬 퍼런 말을 속삭이는데……

물고기 왕자의 전설

언젠가 물고기 왕자가 찾아오면 사막이 물로 가득차리라 믿는 오아시스 사람들. 그들은 성인식으로 몸에 아가미 문신을 새기고 물고기를 먹지 않는 금기를 엄격히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오아시스를 탐낸 동쪽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준비한다.

항해사, 선장이 되다

우주여행 크루즈를 운항중인 항해사는 두 번이나 엉뚱한 좌표로 워프를 해 질책을 듣는다. 하지만 항해사 커뮤니티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담과 배의 실종 소식이 올라온다. 수집한 좌표들을 계산해본 항해사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나랑 시합을 할래?

작은 요새에서 태어난 공주는 결혼하게 된다면 왕국이 영원히 사라지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녀가 성년이 되자 이웃나라의 왕자들이 찾아와 저마다 자신이 저주를 풀어줄 특별한 상대라고 주장하고. 그들에게 공주는 자신과 시합해서 이기면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대신 그들이 지면 땅의 일부를 내놓는 조건으로.

그리고, 재화와 용기를 이어주는 마지막 단편 알파카 양 이야기.

구매가격 : 9,100 원

빛의 마녀

도서정보 : 김하서 | 2019-12-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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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빛 아래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생의 슬픈 무늬”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작가
김하서 두 번째 장편소설

첫 번째 장편소설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를 통해 ‘어디서부터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돈적 상황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불가해한 충동과 불안, 욕망을 날카롭게 묘파해낸 김하서 작가가 두 번째 장편소설을 펴냈다. 새소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빛의 마녀』는 ‘아이를 잃은’ 극심한 죄책감과 상실감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가진 두 여성이 공감대를 이뤄가는 이야기다. 특히 타인의 몰이해와 편견, 혐오적 태도에서 주인공 자신이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멸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녀”일지 모른다고 확신하는 독특한 설정과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속적 충돌을 통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의 슬픔’을 더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구매가격 : 9,100 원

샤를 페로의 동화

도서정보 : 샤를 페로 | 2019-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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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 //blog.naver.com/bigbrother65/221528223646 이 주소를 들어가면 엄마거위의 프랑스 탄생(1697)과 영국에서의 재탄생(1729) 샤를 페로의 이야기들에 대한 역사가 있어요. 10개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이야기 들이지만 많은 같은 이야기들이 요약되고 편역되고 또는 다른 곳으로부터 전해진 이야기여서 실제로 다른 결말을 갖고 있는 이야기가 더 친숙할 수 있어요. 빨간모자를 쓴 아이만 해도 이 이야기에서는 잡아 먹었어요 로 끝나지만 그림형제의 가정이야기에서는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가르고 구했어요 로 끝나요. 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 책에 있는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샤를 페로가 최초로 수집해 모아 놓은 가장 정통에 근접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겠지요.

구매가격 : 4,900 원

두더지인간들

도서정보 : 선조 | 2019-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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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하 생활자들을 두더지 인간 이라고 부른다. ‘두더지 인간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또 여러 방식으로 묘사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잊힌 사람들’ ‘부랑자’ ‘떠돌이’ ‘거지’ 등등. 그리고 그들은 판자촌과 빈민가 버려진 화차 하수구 등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철저히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동물로 여긴다. 그들은 본능에 의존하며 더이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 지상의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힘이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단지 나 자신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진 않겠지만 이 글은 제니퍼 토스의 두더지 인간 을 읽고 느꼈던 그 충격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날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겠다. 이렇게 훌륭한 글이 어떻게 소설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주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느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살다 보면 종종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이 책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되돌려주고 싶은 욕구가 물밀듯이 나의 가슴을 후려친 것이다. 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진정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그 심오함을 또는 인간의 문명과 그늘 그것의 불평등을 같이 느껴보고자 하였으며 내가 원한 것은 단지 시각의 변화였다. 이 책이 가진 본래의 내용과 힘은 되도록이면 훼손되지 않게 그리고 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은 그대로 두었다는 점을 밝히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내가 소설 형식을 빌어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삶을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며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미래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것을 부디 고려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저자인 제니퍼 토스에게는 내가 이 글을 쓴 것에 대한 불편함과 경솔함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바이며 나 또한 이들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점과 에오라지 느꼈을 이 감정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서였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변명해 보고자 함이며 아울러 조금이나마 너그러운 이해와 양해를 부탁드리고자 하는 바이다. 다시 한번 제니퍼 토스께 심심한 양해를 고한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터널 생활의 현실과 그들이 이루고 사는 공동체에 대해 말해줄 뿐 아니라 그들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그들과 정부 기관 및 자선 프로그램 혹은 비영리 지원 단체와의 대립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지하세계 노숙인들에 관한 진실 그들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믿기조차 힘든 진실을 일부나마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과 이들의 삶은 뉴욕시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우리는 우리 이름과 함께 우리의 과거와 실패를 지상에 두고 왔어요.’ -제니퍼 토스

구매가격 : 12,000 원

별을 잇는 손

도서정보 : 무라야마 사키 | 2019-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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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따뜻한 감동
15만 일본 독자가 사랑한 『오후도 서점 이야기』의 그 이후


책과 서점을 둘러싼 기적에 관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오후도 서점 이야기』의 후속작. 서점 청년 잇세이가 오후도 서점을 운영하면서 겪게 되는 우여곡절과 함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감동은 계속 이어진다.

사고와 오해로 인해 오랫동안 일하던 긴가도 서점을 그만두고 한적한 마을의 작은 서점 오후도에서 일하게 된 잇세이는 도시의 서점에서는 생각지 않았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인기작의 배본을 받지 못하거나 출판사 영업사원은 상대도 해주지 않는 등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서점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전에는 문고본만 담당해왔기에 모든 분야의 책을 서가에 진열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서점 운영에 대한 고민은 점점 쌓여만 간다.
인기 시리즈 소설 『검푸른 바람』 신간이 곧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오후도 서점에서는 배본을 받지 못해 고민하던 중, 잇세이가 예전에 근무하던 긴가도 서점의 사장으로부터 오래전 이야기와 함께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후도 서점에서는 구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소설 『검푸른 바람』이 다섯 권이나 들어 있는 의문의 상자가 도착한다. 우여곡절 끝에 음력 12월 25일, 사쿠라노마치 마을에 별 축제가 열리는 날, 서점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안고 마을에 모이기 시작한다.

전편 『오후도 서점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서점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면, 『별을 잇는 손』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는 서가를 둘러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보물창고 같은 서점,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책을 골라주는 서점 주인이 있던 추억의 동네 서점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작은 서점이 겪을 만한 애로 사항과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 작가, 출판편집자의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풀어나가면서, 등장인물들의 서점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꿈과 같은 이야기이자, 사람의 선의를 믿고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가진 이들을 격려하는 따뜻한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추천글
『별을 잇는 손』은 서점에서 일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제가 종종 잊고 마는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져버리는 바로 그것, 책을 대하는 진정성이라는 가치를요. 이야기 속 서점 사람들의 노동 이면에는 책을 사랑하고 책의 힘을 믿는, 강력한 진정성이 놓여 있습니다.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일본 아마존 독자 리뷰
★★★★★ 전작 "오후도 서점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그대로 나오는데 개성이 더욱 풍부해져서 매력적이었다.

★★★★★ 이 책은 전국서점원이 자신들을 위해 팔고 싶은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서점에서는 이 책을 사준 고객에게 뭔가 한두 마디 말을 건네고 싶어지면서, 아기 고양이를 안겨주는 기분으로 이 책을 맡기고 싶다. 분명 그런 책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책인가.

★★★★★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 기대고 위로하고 치유 받고 힘을 주는 이야기의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 읽고 나서 훈훈하고 따스한 행복감이 들었다.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 저자가 정말 서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책에 매료당한 많은 사람들의 심상풍경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책 속 문장들
그때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서점 주인아저씨와 그의 가족이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채로 오늘이 되었다.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토록 책과 서점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니, 어딘가 다른 동네에서라도 서점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활약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나, 그리워하려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미안해졌다. 가시와바 나루미라는 사람의 마음과 지성을 길러준 동네 서점은 이제 나루미의 추억 속에서만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추억 속으로 사라져간 서점이 많을 것이다. 나루미는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어 SNS는 하지 않지만, 그곳에 서점의 폐점 소식이 자주 올라온다고 들었다. 신문에서 하루에 하나씩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그 후 상황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여전히 매일 서점이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26쪽)

“봄에 말이야, 도난 사건과 그 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나는 오늘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네. 변명할 생각은 없네만 그때는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의식이 거의 없었다네. 나중에 사건에 대해 듣고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하고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적어도 츠키하라를 그만두게 하지는 않았을 걸세. 정말 미안하게 됐어.” (중략) “그래서 말인데, 나는 긴가도 서점을 위해 한 일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나 하려 하네. 그다지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들어보겠나?” (73-74쪽)

“이런, 죄송해요. 이 녀석이 사람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 녀석아, 그만해.”
뒤에서 양쪽 앞발을 잡고 준야가 겨우 떼어냈다.
“괜찮아요, 저도 개를 좋아하거든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토하고 싶은 마음도 잠시 사라졌다. 친근하고 품위 있는 개는 그 주인과 어딘가 닮아 있었는데, 개는 주인과 닮는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 착한 사람을 그렇게 웃음거리로 여기다니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162-163쪽)

“소노에는 정말 필요한 일을 알아서 잘한다니까.”
함께 지원을 나온 나기사가 소노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잇세이의 귀는 소노에의 목소리 끝에서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 낯선 장소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림책을 펼쳐 읽고 있는 모습은 마법의 책을 손에 들고 모두의 행복을 위한 주문을 읽어내려가는 착한 마녀 같았다. 이윽고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웃거나 환호성을 지르며 소노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나도 이 목소리를 좋아했었지, 하고 잇세이는 생각했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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