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도서정보 : 백수린 | 2023-06-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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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담길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눈부시게 서툴렀던 시절에 바치는 백수린 첫 장편소설
발표하는 작품마다 흔들림 없는 기량을 보여주며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소설가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가 출간되었다. 2011년 데뷔한 이래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중편소설, 짧은 소설들과 산문을 발표하는 동안 조급해하지 않고 장편의 그릇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기다린 그가 등단 12년 만에 펴내는 첫 장편소설인 만큼 이 작품의 탄생이 더욱 반갑고 귀하다. 『눈부신 안부』는 2021년 봄부터 2022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이토록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절찬리에 연재되었다. 작가는 특유의 성실하고 꼼꼼한 소설쓰기로 연재와 개고에 임한 끝에 지극히 완성도 높고 아름다운 첫 장편을 자신의 이력에 추가하게 되었다.
백수린은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에서 일찍이 “충실한 기본기”는 물론 “안정적인 보조와 감각으로 자기 세계를 부풀려가는 정통적인 스타일”(문학평론가 서영채)을 보여주었고, 두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을 통해 누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안전한 껍질이 “더 깨진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샅샅이 알고 싶다고 마음먹”(소설가 김연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하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더욱 섬세하게 벼려냈다. 그리고 작가에게 2020 한국일보문학상을 안겨준 세번째 소설집 『여름의 빌라』로 “인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가장 우아하게 말하는 법. 그런 걸 찾는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시인 박연준)는 평을 받으며 삶의 불가해한 아름다움을 문장 위에서 구현하는 독보적인 감각을 드러내 보였다.
『눈부신 안부』는 백수린이 그간 이루어낸 이러한 성취가 집대성된 작품이다. 비극적 사건을 회피하려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던 한 인물이 어른이 된 후 한층 품 넓은 시야로 서툴렀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좇는다. 차분하게 쌓여가는 서사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한 치유와 성장에 도달하려는 한 인간의 미더운 움직임이 백수린의 다정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아름다운 결이 지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확장되는 근사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백수린 소설세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타국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홀로 마련해야 했던 한 아이를
다정히 보듬어준 파독간호사 여성들
그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넓어진 시야로 유년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보려는 진중한 발걸음
『눈부신 안부』의 책장을 펼치면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성실히 거짓말을 해야 했던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의 이름은 ‘이해미’. 1994년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친언니를 한순간에 잃고 너무 일찍 인생의 비극성을 깨달아버린 아이다. 엄마와 아빠는 언니를 잃은 고통을 해미에게 감추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하고, 여동생 ‘해나’는 아직 어려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마냥 해맑아 보인다. 장녀가 된 해미는 선의의 거짓말로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고 해나의 응석을 받아주며 혼자 슬픔을 삼켜낸다. 아빠와 별거하기로 결정한 엄마를 따라 해나와 함께 독일 G시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도 해미는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숨길 뿐이다.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낯선 나라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그렇게만 말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본문 중에서)
G시에서도 해미는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무혐의의 거짓말을 이어간다. 그런 해미의 고독과 불안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따뜻하게 손 내밀어준 사람은 해미의 친이모 ‘행자 이모’다. 행자 이모는 파독간호조무사가 되어 건너간 독일에 정착하여 ‘마리아 이모’와 ‘선자 이모’, 그 밖의 많은 파독 간호 여성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이모’들의 보살핌 속에서 해미는 자신보다 앞서 타국에 자리잡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파독간호사들의 건강한 활력과 긍정성에 감화된다. 그 여성들이 가족과 국가를 위해 삶을 희생한 집합체가 아닌 개별 주체로서 내뿜는 고유한 개성과 매력을 접하며, 해미는 멈춰 있던 일상을 조금씩 재가동한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지?”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흠칫 놀라 선자 이모를 돌아다보았다. 선자 이모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흰빛이 너울대는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테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답지?”
언제나 표정이 적어 화난 것처럼 보이던 선자 이모의 얼굴에 드리워진 꽃그늘이 바람이 불 때마다 레이스처럼 어른거렸다. 마리아 이모가 우리를 웃기기 위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할 때마다 꽃물이 번지듯 환해지던 선자 이모의 얼굴.(본문 중에서)
마리아 이모의 딸 ‘레나’, 선자 이모의 아들 ‘한수’를 사귄 후 해미의 독일 생활은 더욱 찬란히 빛나기 시작한다. 한수가 해미와 레나에게 비밀스러운 부탁을 해오면서 세 아이의 우정은 한결 끈끈해지는데, 그 부탁이란 한수의 엄마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첫사랑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선자 이모의 일기를 몰래 읽어나간다. 일기 속에는 선자 이모가 1973년 독일로 떠나온 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직해온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흩어져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첫사랑의 이니셜이 ‘K.H.’라는 사실뿐. K.H.를 찾기 위해 온갖 추리와 상상을 펼치며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동안, 해미는 점차 밝고 천진한 모습을 되찾아간다.
나는 도시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곳이 내 자리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가족도 행복에 거의 가까워져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언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의 행복이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속으로 언니에게 말을 걸어야 했을 만큼의 행복.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본문 중에서)
그러나 자신이 있을 곳을 드디어 마련했다는 따스한 안도감도 잠시,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해미는 또 한번 커다란 상실을 겪은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해미는 여전히 유년의 비극에 붙들려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과의 깊은 교류를 자제하며 지내던 해미는 어느 날 대학 동창이면서 미묘한 연애 감정을 주고받기도 했었던 ‘우재’와 우연히 재회한다. 그리고 해미의 마음을 열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우재로 인해 타인을 향한 해미의 감각이 다시금 깨어나기 시작한다. 해미는 다시 한번 선자 이모의 일기를 읽으며 K.H.를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오랫동안 고스란히 묻어두었던 상처를 들추어 실패로 남겨두었던 지난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재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볼 수도 있으리라 믿으며.
이제, 거대한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여렸던 어린 자신과 대면하기 위한 해미의 용기 있는 전진이 시작된다.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해의 인사
『눈부신 안부』는 어린 시절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으려 했던 해미가 그후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한번 K.H.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서사의 굵직한 줄기를 이룬다. 이 두 번에 걸친 시도를 통해 해미는 자신이 그사이 훌쩍 성장했음을 느낀다. 어렸던 자신의 시선으로는 끝끝내 알아챌 수 없었을 K.H.에 관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내면서, 해미는 자신을 좌절하게 만들었던 유년 시절의 한계가 당시로서는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인정해나간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넓어진 시야를 통해 과거를 용인함으로써 해미는 머지않아 과거가 될 현재의 자신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해미가 자기 자신과 화해하며 눈부신 도약을 이루는 과정을 지켜봐주는 타인들의 존재 또한 소중하다. 그들은 해미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내면세계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해미의 안부를 묻는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선뜻 손 내미는 이러한 행위가 때로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고 소설은 말한다. 이 다정한 소설을 펴내며, 이제 백수린은 독자를 향해 손을 내민다.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백수린, ‘작가의 말’) 좋겠다고.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 어느새 당신에게도 소중한 이들에게 용기 내어 다가갈 힘이 차올랐을 거라고.
『눈부신 안부』에는 삶의 갖가지 비극으로 인해 멀어졌던 타인과의, 나아가 자기 자신과의 진심어린 화해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나가기로 다짐한 인물들의 발걸음이 그려져 있다. 그 진중한 발걸음에 실린 힘은 읽는 이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되어 더욱 상냥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가려는 현실의 동력으로 전환된다. 허구의 세계로부터 창출된 실재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 아닐까.
◆
작가가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쓰며 누구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지를 살피면 그 작가의 디딘 곳과 향하는 곳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왔다. 『눈부신 안부』를 통해 백수린 작가가 부른 이름들이 찬란했다. 외로움은 다른 투명한 감정들과 얼마나 닮고 닮지 않았는지, 거짓말과 이야기가 어디에서 엉키고 또 풀리는지, 백수린의 질문들에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천천히 답장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아름답고 강렬한 발신의 책이, 착신과 회신으로 다음 이야기들을 탄생시킬 것이다. _정세랑(소설가)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기도 전에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었다. 어떤 소설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읽는 동안 나는 인물들의 내면으로 저벅저벅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문득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와버렸음을 깨달았다. 백수린의 문장과 서사가 가진 힘이다.
어째서 이토록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 있어서, 삶을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걸까. 어째서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과 아픔, 슬픔을 간직하고서도 나아가보려는 용기를 갖게 만드는 걸까. 읽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닌 무수히 많은 사랑을 만난 것 같다. 저마다의 삶의 반짝임을 만난 것 같다.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하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정한 마음이 전하는 안부만으로도 가능해지는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_안미옥(시인)
그즈음엔 주변에서 장편소설로 써보라며 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어떤 이야기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여름의 식탁에서 ‘파독간호사’에 대한 어떤 일화를 듣고 첫 장편소설을 마침내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그날 내가 떠올렸던 이야기, 내가 쓰고 싶었고 쓸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이야기와 실제로 완성된 이야기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지만, 첫 장편을 쓸 수 있으리라는 예감으로 벅차올랐던 그 마음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_백수린, ‘작가의 말’에서
구매가격 : 11,200 원
디 에센셜 한강(무선 보급판)
도서정보 : 한강 | 2023-06-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디 에센셜 한강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 산문을 한 권으로 만난다!
한강 작가는 1993년 등단 후 30년 가까이 문학이 삶에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상실과 고통 앞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나─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을 다양한 장르로 써왔다. 소설과 시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나 자신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와 글을 함께 담은 산문집, 시와 소설이 어우러진 작품집 등을 꾸준히 펴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아트를 통한 비주얼 퍼포먼스 작업도 이어가며 텍스트 밖으로 자신의 공간을 확장했다. 한국인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아시아 최초로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는 등의 쾌거를 이루며 국경을 넘어 한국문학의 센세이션이자 상징인 이름이 된 그를 ‘디 에센셜 한국작가 편’의 첫번째 작가로 선보인다.
『디 에센셜 한강』에는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과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이 담겨 있다. ‘상실의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마주한 한줄기 빛’이라는 한강 소설의 미학이 응축된 작품들이다. 한 권으로 만나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그려나가는 문학 지도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예전의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이기보다 닮은 사람(들)이다. 교정지를 읽는 동안 그 사람(들)과 묵묵히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사주에 역마가 들어서인지 무던히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는데, 오직 쓰기만을 떠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집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_『디 에센셜 한강』 ‘작가의 말’에서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희랍어 강의 수강생과 강사로 만난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침묵과 어스름이 놓여 있다. 말言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 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되고 단단한 언어인 희랍어처럼, 고르고 또 고른 절제된 단어들로 세계를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하던 것들, 영원과도 같은 어떤 찰나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더불어 언어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사유하는 한강 작가 작품세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_『희랍어 시간』,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인간은 어떻게 회복되는 존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숙고가 스민 두 편의 단편소설. 육체와 정신의 상처와 그 회복의 과정을 통해 죽음에서 삶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듯 “시간만 지나면 낫는대. 누구나 다 낫는대”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시간 밖의 또다른 시간을 그리면서 그들은 천천히, 온몸으로 삶을 향해 간다.
당신은 모른다.
목이 말라서 눈을 뜬 차가운 새벽,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흠뻑 젖은 눈두덩을 세면대 위의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리라는 것을 모른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당신의 손이 거푸 떨리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뱉어보지 않은 말들이 뜨거운 꼬챙이처럼 목구멍을 찌르리라는 것을 모른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_「회복하는 인간」,
어쩌면 시간이란 흐르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때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그 시간의 당신과 내가 빗소리를 듣고 있다구요. 당신은 어디로도 간 게 아니라구요. 사라지지도, 떠나지도 않았다구요. 언젠가부터, 당신과 동갑인 남자를 만날 때마다 세월이 변화시켰을 당신의 얼굴을 막막하게 그려보던 버릇을 버린 것은 그 때문입니다.
_「파란 돌」,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외 4편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에 단편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한강 작가는, 소설을 쓰는 틈틈이 시 또한 쓰고 발표했다. 2013년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출간하였고, 이 가운데 다섯 편을 골라 이번 『디 에센셜 한강』에 실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새벽에 들은 노래」 「심장이라는 사물」 「마크 로스코와 나─2월의 죽음」 「해부극장 2」가 그것으로, 제목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시의 정조가 느껴진다. 고독과 슬픔, 삶과 죽음, 어스름이 짙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사이 드러나는 환희의 순간까지, 작가 내면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영혼의 싸움이 정제된 언어로 잔잔히 빛난다.
•산문 「종이 피아노」 외 7편
유년의 기억부터 그리운 사람과의 추억, 글쓰기의 의미까지, 여덟 편의 산문에는 한강 작가의 나직한 음성이 스며 있다. 1980년 광주에 대한 기억과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던 시기의 일화가 담긴 「여름의 소년들에게」와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쓴 「백 년 동안의 기도」를 비롯해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후의 소회를 담은 「출간 후에」 등 작가의 내밀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구매가격 : 11,900 원
매트릭스
도서정보 : 로런 그로프 | 2023-05-3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 신작
조이스 캐럴 오츠 상 수상 |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버락 오바마,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등 선정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2015)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쥔 소설가 로런 그로프가 단편집 『플로리다』(2018) 이후 삼 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매트릭스』를 펴냈다. 프랑스어로 시를 쓴 최초의 여성으로 알려진 12세기 실존 인물 마리 드 프랑스의 생애를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탁월하게 재구성한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지적인 문체와 독창적인 세계관, 물 흐르듯 우아하면서도 몰입도 높은 서사를 어김없이 보여주며 “산문의 거장”이자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라는 타이틀을 공고히한다. 『매트릭스』는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운명과 분노』에 이어 두번째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2021)에 올랐으며 조이스 캐럴 오츠 상(2022)을 수상했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파이낸셜 타임스> <에스콰이어> <마리 클레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NPR 등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작인 『아르카디아』(2012)가 1970년대 히피 대안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매트릭스』는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올라가 십자군전쟁이 한창이던 중세의 혼란기 한복판으로, 그곳에 자리한 혁명적인 여성 공동체의 중심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가난한 잉글랜드 수녀원의 부원장으로 임명된 열일곱 살짜리 왕가의 사생아 마리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 소외된 공동체를 부강한 불가침의 성역이자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유토피아로 바꾸어놓는 치열한 과정이 생생한 필치로 유려하게 펼쳐진다. 로런 그로프는 남성들만의 역사를 걷어내고 그 아래에서 번득이는 여성들의 지성과 비전을, 다채롭게 빛나는 우정과 사랑과 다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작가의 섬세하고 정밀한 언어 감각은 중세 수녀원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창문으로 들이치는 바람의 촉감까지 마법처럼 구현해내며 “팔백여 년 전의 중세에 동참한 듯한 긴박한 현장감으로 질식할”(구병모) 것 같은 느낌을 안기는 동시에, 남다른 기지와 지혜와 강인함으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한 여성의 영웅적 삶을 조명하며 “오직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어온 서사시의 새로운 원형에 도달한다”.(천희란)
존재 자체가 혁명인 여성, 마리 드 프랑스
그가 일군 공동체의 웅장한 일대기이자
오직 여성의 언어로 쓰인 서사시의 새로운 원형
1158년, 열일곱 살의 마리는 흩뿌리는 찬비 속에서 추위에 떨며 홀로 잉글랜드의 어느 왕립수녀원에 도착한다. 굶주린 스물 남짓의 수녀들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 누추한 회색빛 공간은 왕가의 핏줄이지만 강간으로 잉태된 사생아라는 신분과 건장하고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 탓에 평범한 귀부인의 삶을 누릴 수 없는 마리에게 주어진 감옥이자 유배지다. 이 우울한 수녀원처럼 그녀의 남은 인생도 온통 회색빛일 거라고, 절망 속에서 마리는 생각한다. 게다가 마리를 이곳으로 내쫓은 사람이 그녀가 가장 경애하는 빛나는 여인, 왕비 알리에노르라는 사실이 마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평생 한 번도 종교적인 믿음이나 신앙심을 가져본 적 없는, 남성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여성을 열등한 성별로 취급하는 종교에 의문과 반감만을 가지고 있던 마리에게 수녀원은 너무나도 낯설고 척박한 곳이다. 물론 난데없이 왕비가 보낸 이 거대한 체격의 어린 신임 부수녀원장을 보는 수녀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캄캄한 새벽부터 깨어나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 듯한 기도를 올려야 하는 고된 일과 속에서 마리는 다시 밝고 따뜻한 왕궁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왕비에게 바치는 진심어린 사랑의 시를 지어서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왕비에게서는 매번 침묵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녀원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각오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 비참한 곳에서 주어진 삶을 최고로 살아내리라는 각오, 자신을 쫓아낸 자들이 스스로 한 일을 후회하도록, 언젠가 자신의 위엄을 보고 경외감을 느끼도록 만들겠다는 각오가. 그렇게 마리는 수녀원을 개혁하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계획에 돌입한다. 겸손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수녀들에게 각자 가장 못하는 일을 시키던 관행을 능력과 강점에 따라 배분하도록 고치고, 엉망인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직접 소작농들을 찾아가 위협하며 밀린 소작료를 걷는다. 처음에는 마리의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침에 거부감을 느끼던 수녀들도 점차 수녀원의 운영이 체계화되고 생활이 풍족해지는 것을 보며 마리의 능력을 인정하고 따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마리의 권위 말고는 누구의 권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녀원이 늘 존재해온 이 땅에 계속 살겠지만, 그녀의 딸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 미로에 둘러싸인 채로 안전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오롯이 지내며 자급자족할 것이다. 여자들의 섬이 되는 것이다. ” _본문 중에서
어느덧 기도와 노동으로 점철된 삼십 년의 시간이 흘러 마리가 수녀원장이 되었을 때, 수녀원은 백 명에 가까운 수녀와 수십 명의 하인과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번영한 곳이 되어 있다. 그러나 마리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따금 들이치는 바깥세상의 위협, 전쟁과 남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더욱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던 마리에게 동정 마리아의 첫번째 환시가 찾아온다. 사랑의 빛이 반짝이는 마리아의 얼굴과 함께 흩날리는 장미 꽃잎으로 된 미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리는 그것이 수녀원 주변에 미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임을 이해한다. 그들의 성스러운 집이 외부인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요새, 온전한 여자들만의 세계가 되도록. 그리하여 마리의 지도 아래 거대한 창조의 프로젝트가 개시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여성들의 손에 의해 지상에 두번째 에덴동산이 형태를 갖추어나가기 시작한다.
역사 속에 묻힌 중세의 시인에서
과거의 땅에 미래를 건설한 위대한 여성 지도자로
이 소설에 영감을 준 실존 인물 마리 드 프랑스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2세기 잉글랜드 헨리 2세의 왕궁을 드나들며 유명한 로맨스 서사시와 우화집 등을 남긴 뛰어난 여성 시인이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로런 그로프는 대학에서 마리 드 프랑스의 작품을 번역하는 수업을 듣다가 까마득한 시간의 베일 속에 묻힌 이 인물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후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로프의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르던 중세의 시인은 21세기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점점 구체화되어, 과거의 땅에 미래를 건설한 강력하고 뛰어난 여성 지도자로 현재 속에 재탄생했다. “여성으로서 자율권을 잃어가는 이 나라에서 권력에 대해, 자율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낼 필요성”을 느꼈다는 작가의 말처럼 마리의 삶은 사실적으로 구현된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시의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몸으로 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잘못된 것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녀는 한 번도 납득된 적이 없었다. 신도 당연히, 당신이 모든 일을 좋게 해냈으니, 모든 일이 좋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_본문 중에서
로런 그로프가 형상화한 『매트릭스』 속 마리 드 프랑스는 외모부터 성격, 그리고 종교를 대하는 태도까지 당시 여성들에게 기대하거나 강요했던 전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마리는 신을 섬기는 순종적인 성직자가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자신과 수녀들의 안전과 이익을 쟁취해내는 투쟁가이자 정치가다. 마리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성스러운 종교적 환시(vision)는 뛰어난 지도자에게 찾아오는 혁신적인 ‘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리는 수녀원에 평생을 바쳤으나 그 행위는 그저 희생적인 고행이나 봉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취이자 보람이다. 작가는 성애적인 욕구를 포함해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기쁨을 수녀원의 성스러운 여인들에게 허락한다. 육신을 가진 지상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긍정한다. 마리의 야망을 통해 수녀원이 부강해졌듯 수녀들의 영혼은 각자의 성취와 육체적 기쁨을 통해 비옥해진다.
구매가격 : 11,200 원
앨프리드와 에밀리 (세계문학전집 228)
도서정보 : 도리스 레싱 | 2023-05-3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
허구와 현실의 비극적 간극을 넘나들며 그려낸 부모의 삶
거장 도리스 레싱이 자신의 아버지 앨프리드와 어머니 에밀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픽션과 논픽션을 한 권의 책으로 구성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제1부는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부모의 다른 삶을 상상한 허구이고, 제2부는 전쟁이 남긴 외적 ․ 내적 상처를 끌어안고 아프리카 식민지 농장에서 고군분투했던 가족의 실제 삶을 담은 회고이다. 뇌졸중으로 투병하면서도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레싱의 마지막 결실인 이 작품은 민은영 번역가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따스하고 애틋한 소설과, 생생하고 통찰력 있는 회고적 성격의 글 각각의 특색을 살려 정확하고 세심한 문장으로 옮겼다. ★ 2007년 노벨문학상 ★ 2008년 <타임스> 선정 ‘전후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소설 속의 부모와 현실의 부모, 슬프고도 애틋한 간극
2007년 스웨덴 한림원은 도리스 레싱에게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풀어낸 서사 시인”이자 “분열된 문명을 응시하는 작가”라는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1919년 태어나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페미니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식민지, 인종차별 등 20세기 인류 사회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레싱이 2008년 발표한 생애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자기 부모였다.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절반은 소설, 절반은 회고록이라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전개된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잠시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각자의 짝을 만나고 평생 친구로 남는다. 잘생긴 크리켓 선수 앨프리드는 고향 농장에서 일하며 야무진 아내,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 똑똑한 에밀리는 런던에 가서 간호사로 일하다 저명한 의사를 만나 결혼한다.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지만 그가 남긴 유산과 인맥을 활용해 교육 자선사업가가 된다.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은 평화 속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젊은이들은 해외에 나가려고 타국의 전쟁에 자원한다. 이런 세태를 걱정한 앨프리드의 아이디어와, 에밀리의 자금과 행동력이 만나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기도 한다.
제2부는 부모와 작가 자신이 현실에서 경험한 삶이다. 부상병과 간호사로 병원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는 옥수수를 키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선전을 보고 아프리카 농장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남로디지아의 농장은 경제적으로 성공하기엔 너무 볼품없었고 이제는 농장을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족의 목표가 된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어 나무 의족을 사용하는 아버지는 끔찍했던 경험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나중에는 당뇨병까지 생겨 괴로운 말년을 보낸다. 어머니는 식민지에서는 영국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 남편을 돌보느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한다.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오히려 레싱과 남동생은 어머니와 멀어지고 만다. 부모가 살았던 에드워드 시대 영국과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아프리카 식민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찬란했던 대영제국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환상에 젖어 식민지로 떠났던 사람들이 좌절을 겪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모든 전쟁을 종식할 전쟁’이라는 제1차세계대전의 별칭이 무색하게 곧이어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이번에는 남동생 해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앨프리드와 에밀리』의 절묘한 구성은 극적 대비를 이루며 독자에게 두 세계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충격을 안긴다. 읽는 순간 눈앞에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듯 따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제1부는, 『풀잎은 노래한다』 『금색 공책』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레싱의 대표작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의외라고 여길 만하다. 레싱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천진한 아이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전쟁이 남긴 부상과 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실제 아버지와 달리, 소설 속 앨프리드는 아버지의 평생소원이었던 영국 농부로 살며 장수하다 세상을 떠났다. 중산층처럼 살고 싶은 욕망과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했던 어머니는, 소설 속에서 자녀는 없지만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 자선사업가로서 사교계에서 존경받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목적이 단순히 허구와 현실을 대비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면, 부모에게 선사한 허구의 삶에도 그 나름의 슬픔이 있고 상처가 있다. 앨프리드에게는 버트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이다. 앨프리드 부부는 술집으로 버트를 찾으러 다니고 그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느라 애쓴다. 또 기나긴 평화에 질린 아들들이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나갈까 노심초사한다. 에밀리는 남편을 갑자기 잃고 재산을 탐내는 친척들에 맞서며 자선사업을 운영한다.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마음 맞는 배우자를 만나거나 자식을 얻지는 못해 주위의 연인들을 보며 아쉬워한다.
제1부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제2부의 삶이 오로지 비극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로 연결된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은 때로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경이로웠고 아버지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레싱은 본국에서 정규교육을 받는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절대 평탄하지 않은 유년시절이었지만 식민지 농장에서 보낸 그 시절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레싱이 이후 인종, 계급, 성별의 격차에 항거하는 지식인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도리스 레싱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강력한 작품 중 하나
레싱의 작품 목록 중에서도 『앨프리드와 에밀리』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저 마지막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우선 이 작품은 말년에 이른 레싱이 평생 이해하려고 애썼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건네는 화해의 시도이자 결국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부모의 전기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전기인 것이다.
“여전히 이렇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유산에서 헤어나려고, 자유로워지려고 애쓰고 있다. (…) 내가 글로 쓴 그대로의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이 내가 빚어준 삶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좋겠다.” _도리스 레싱
어린 시절 레싱은 아버지의 전쟁 경험담이 듣기 싫어 귀를 막으면서도, 아버지의 이야기는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이라며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경우는 달랐다. 어머니에게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정당성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았고, 레싱은 자신과 남동생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투쟁했다. 많은 딸들과 마찬가지로 레싱 역시 ‘나는 어머니처럼 되지 않겠어’라고 되뇌었고 그가 어머니에게 느낀 분노는 격렬했다. 레싱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듯이,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시대가 낳은 피해자였음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앨프리드와 에밀리』가 발표된 2008년 당시 레싱의 나이는 아흔에 가까웠다. “그 무시무시한 유산에서 헤어나려고, 자유로워지려고” 노력중이라 말했던 레싱은 이 마지막 작품을 통해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다음으로 작품의 특이한 형식에도 주목해야 한다. 소설은 물론이고 시,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문학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레싱의 실험적 태도가 이 작품에서도 빛난다. 부모의 삶이나 전쟁이라는 소재는 무수히 반복되어왔으나, 픽션과 논픽션을 한 권으로 담은 신선한 구성 덕분에 『앨프리드와 에밀리』에는 진부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흑백사진 역시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제1부의 끄트머리에 있는 「설명」이라는 글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누구에게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려주면서 독자를 자연스럽게 제2부로 이끈다. 소설만 따로, 혹은 회고록만 따로 출간했다면 다소 밋밋한 작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두 가지 성격의 글을 하나로 엮어 각각의 합보다도 더 큰 감동을 만들어냈다.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내용 면에서도 형식 면에서도 “레싱의 가장 강력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레싱은 이 작품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존재인 ‘책’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다. 유년시절에 일어난 “좋은 일은 딱 하나”였고 그것은 바로 독서였다. 책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문학계 최고의 영예를 얻은 대작가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들, 추억 속의 도서 목록을 줄줄이 읊는다. 수많은 동시대 작가의 작품에 추천사를 아끼지 않으며 책에 대한 애정을 기꺼이 드러냈던 레싱. 어린 시절의 그가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느리게 배송되어 오는 책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구매가격 : 11,200 원
클래식 라이브러리 005 - 변신
도서정보 : 프란츠 카프카 | 2023-05-3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도서 소개
기묘한 울림을 주며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예견한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 단편 4선
“나는 「변신」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_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어떤 사회학적, 정치학적 성찰도 말해 줄 수 없었던 (우리 세기에 입증된 그대로의) 인간 조건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었다.”
- 밀란 쿤데라(체코 작가)
“주제와 배경은 장편과 단편이 본질적으로 같다. 이야기의 진행이나 심리적 침투는 다르다. 이런 면에서 카프카의 단편들이 장편들보다 우수하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작가)
무소속성과 혼종적 경계인을 그려 낸, 카프카의 대표 단편 출간
「변신」, 「굴」, 「학술원 보고」, 「단식예술가」
후세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중 네 작품을 선정하여 아르테에서 출간했다. 번역은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목승숙이 맡았다. 현재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너무도 다양한 층위와 의미로 읽히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정확하면서도 원문의 내용과 표현을 그대로 살려내려고 공들여 우리말로 옮겼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프란츠 카프카)
카프카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체코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글을 쓴 독일어권 작가다. 자수성가하여 아들 또한 그렇게 자라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평범한 체코의 학교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 입학하는 독일식 학교를 다녔으며 법률을 전공했다. 이러한 그의 성장 과정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를 체코인도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무소속성, 혼종적 경계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평생 보험공단에서 일하며 퇴근 후에 글을 썼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 초저녁까지 잠을 잔 뒤 밤늦게까지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했다. 그의 미사여구 없는 간결하고 정밀하며 무미건조한 문체는 문어체 투의 프라하 독일어의 영향이다.
이러한 그의 생활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서,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으면서 1883년에 태어난 카프카가 마치 21세기 오늘 여기에 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벌레로 변해 있고, 나만의 굴(세계)을 구축해 놓았는데 너무도 불안하고,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하여 낯선 곳에서 원숭이가 된 기분으로 적응하려 애쓰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 내야 하고,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 세계와의 불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 등이 그의 작품 속에서 특유의 메타포를 통해 너무도 섬세하고 절절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현실과 비현실,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진지함과 유머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세계를 이야기하며, 일상적인 일들에서 조금씩 뒤틀리는 비일상을 표현하고, 자못 진지한 가운데서도 한자락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굴」은 ‘건축’, ‘건축물’로도 번역되는 카프카의 미완성 단편으로, 카프카가 평생을 살았던 프라하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소리 혹은 다른 동물일 수도 있는 동물이 땅 밑에 자기만의 굴을 파는 이야기다. 적의 침입을 잘 막아 내는 동시에 유사시에 탈출하기도 용이해야 하며, 먹이를 비축해 두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도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 동물건축가는 이리저리 분주히 다닌다. 어쩌다 자신의 먹이를 쌓아 놓은 성곽 광장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이지 않는 적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으로 안절부절한다. 그것은 잠시의 안정과 끊임없는 불안 속을 헤메이는 현대인을 닮았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변신』은 첫 문장의 힘을 이야기의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가족 부양을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르 잠자라는 영업사원에게 일어난 변화가 그 자신과 가족 사이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오는지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어떤 사건이나 사고에 따른 미묘하고도 씁쓸한 관계의 변화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학술원 보고」는 아프리카 골드코스트 해안에서 잡혀 온 원숭이가 유럽 사회에 적응해 온 5년의 과정과 소회를 학술원에서 보고하는 형식의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연극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인간 세계와 문명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서려 있으며, 동시에 동화된 원숭이로서 다른 원숭이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 등도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동화된 유대인에 대한 가장 천재적인 풍자”로 평가받는다.
「단식예술가」의 소재인 단식공연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세기 전환기’에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성행했던 오락 공연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단식과 예술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나 유리 상자에 갇힌 채 일정 기간 단식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이 공연은 사업 수완이 있는 공연 매니저에 의해 대대적으로 선전되며 신문과 잡지의 지면을 장식했다고 한다. 단식을 자신의 예술로 승화해 내려고 하는 예술가와 이를 상업적으로만 활용하려는 매니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 등이 그려진다. 카프카가 죽기 전까지 교정을 보며 애착을 보인 작품이라고 한다.
카프카의 삶과 작품에 대해 옮긴이는 이렇게 말했다.
반유대주의, 서부 유대인과 동부 유대인 간의 반목, 민족주의, 사회주의가 교차하던 프라하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카프카는 ‘사이에 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온정주의로 인해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영향으로 동물은 그의 작품에서 자주 타자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정확한 설명이나 해석을 담지 않고 비유적 언어를 즐겨 쓴 카프카의 작품은 시공간을 망라하는 보편적 층위, 시대 밀착적 층위, 자전적 층위 등 다양한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다의적 해석을 허용한다. 이처럼 카프카의 동물 또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차원과 결부되며 인간 내지는 문명과 거리를 둔 자연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긍정적 함의에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인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인간, 동물로 비하되는 타 인종, 존재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유로 읽히며 해석을 발굴하는 기쁨을 선사해 왔다.”
◎ 책 속으로
“삶의 정점에 이른 지금에도 나는 한시도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없다. 어두운 이끼가 낀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탐욕스러운 코로 그 주위를 킁킁대며 쉴 새 없이 냄새를 맡는 꿈을 자주 꾼다.”(「굴」 중)
“나는 내가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정해져 그렇게 살도록 내맡겨진 존재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며, 끝없이 여기서 사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내가 원하고 이곳 생활에 지쳤을 때 초청을 거역할 수 없을 누군가가 나를 자신에게로 부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굴」 중)
“ 커다란 굴은 무방비 상태로 저기에 있고, 나는 더 이상 애송이 견습생이 아니라 노년의 건축가다.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남은 힘조차 말을 듣지 않는다. ”(「굴」 중)
“어느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변신」 중)
“ 이 작은 빨간 사과들은 감전된 듯이 바닥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서로 부딪쳤다. 살짝 던진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을 스쳤지만 상처를 입히지는 않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와 반대로 연이어 날아온 사과 하나가 그레고르의 등에 확실히 박혀 버렸다.”(「변신」 중)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나갔고, 가능한 한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치려고 바닥에 머리를 바싹 갖다 댔다. 음악이 그에게 이렇게나 감동을 주는데, 그가 동물이라니? 마치 그에게 갈망하던 미지의 양식에 이르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변신」 중)
“존경하는 학술원 회원 여러분! 영광스럽게도 여러분들은 제게 예전 원숭이 시절의 삶에 관해 학술원에 보고해 달라고 요청해 주셨습니다.”(「학술원 보고」 중)
“한 발은 뺨에 맞았습니다. 가볍게 스치기만 했는데 털이 싹 밀린 커다란 빨간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 상처로 인해 전혀 맞지도 않을뿐더러 확실히 어느 원숭이에게서 빌려 온 빨간 페터라는 이름이 제게 붙었습니다”(「학술원 보고」 중)
“ 한번은 어느 마음 좋은 사람이 단식예술가를 가엾게 여겨서 슬픈 이유가 단식 때문일 것이라고 그에게 설명하려 들자, 한창 단식 중이던 그가 분노를 터뜨리며 짐승처럼 우리를 흔들기 시작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단식예술가」 중)
“왜냐하면 제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믿어 주세요. 그것을 찾았더라면 이목을 끌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단식예술가」 중)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학의 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에 대하여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아르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이에 앞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거장의 자취를 찾아가는 기행 평전 시리즈로 호평을 받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명성을 잇는 또 하나의 야심 찬 시도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공간’을 통한 거장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형제 격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거장을 만나는 세 개의 다리, 즉 ‘공간’과 ‘작품’과 ‘생애’가 비로소 놓이게 된 셈이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지만, 아르테에서는 우리 시대 젊은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문가급 역자에 의한 공들인 번역은 물론이고, 고전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무겁고 진중한 느낌에서 탈피하여 젊고 산뜻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번역의 질적 측면으로 보나,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의 외관으로 보나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오늘날 젊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약 5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봄과 함께 첫선을 보인 『슬픔이여 안녕』(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평온한 삶』(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지음, 안시열 옮김), 『워더링 하이츠』(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를 시작으로 아르테에서는 『변신』, 『1984』에 이어 『인간 실격』, 『월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올 한 해 총 19종의 세계문학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구매가격 : 12,000 원
클래식 라이브러리 006 - 1984
도서정보 : 저자명 : 조지 오웰 역자명 : 배진희 | 2023-05-3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도서 소개
가장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예술적인 고전!
디스토피아적 SF 문학의 원조
〈르몽드〉 선정 세기의 책 100선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의 책 100선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사회를 경고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재’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조지 오웰의 탁월한 저항 소설 『1984』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조지 오웰을 전공한 배진희가 맡아서 오웰이 쓴 문장부호 하나까지도 고심해 가며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는 전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소수 독재를 영속시키기 위해 그들이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 어떻게 ‘우매한 대중’으로 만들어 지배하는지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다. 전체주의 사회의 운영 체계, 감시 체제, 기만 방법, 고도의 심리 조작, 역사 왜곡 기술 등이 매우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무심히 접해 온 뉴스와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인간 역사에서 전체주의, 즉 독재는 빈번하게 출현하고, 지금도 번연히 자행되고 있기 때문에 『1984』는 자신이 처한 사회와 역사의 실상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언제나 필독서가 될 것이다.
자서전 같은 소설?!
흔히 조지 오웰의 글을 ‘자서전 같은 소설’이라고 평할 때는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지 작가 연보 몇 페이지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은 그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구도 그처럼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작가로 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의 식민지 인도 벵갈 지방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는 자녀 교육을 위해 먼저 영국으로 왔고, 이후 조지 오웰은 중산층인 집안 형편에는 버거운 사립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계급 차별을 경험했고, 이는 그의 정치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다.
오웰은 20대 초반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고, 글을 쓰기겠다는 일념으로 런던과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이어 갔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 참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군입대 무산, BBC 프로듀서 근무, 『트리뷴』 편집장 등의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현실감을 더하는 묘사와 대화로 되살아난다.
1948년과 『1984』, 그리고 오늘
조지 오웰이 『1984』의 초고를 완성한 때는 1948년이다. 이 시기는 20세기 인류가 두 번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후다. 제2차 세계대전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끝이 났고, 세계는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져 냉전에 돌입했다. 두 체제 모두에서 인간성과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이러한 시기에 오웰은 인간 역사에서 언제고 등장할 수 있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며 『1984』를 썼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It depends on you, don’t let it happen.(그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소설의 배경은 핵전쟁 이후의 1984년 현재다.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 3대 초대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오세아니아에서는 빅 브라더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거리에서도 집에서도 근무지에서도, 어디서나 두 눈을 움직이며 사람들을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행동뿐만 아니라 미묘한 표정, 목소리 톤의 변화까지도 심지어 마음까지도 감시한다. 빅 브라더가 항상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당이 권하고 시키는 일 이외에는 그 무엇도 해서는 안 된다.
하급 당원인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부에 근무하며 먼 과거의 역사부터 지난주의 경제 데이터까지, 당의 명령을 받으면 모든 역사와 진실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텔레스크린의 눈을 피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윈스턴은 검은 머리의 한 여자로부터 의문의 쪽지를 받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삶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윈스턴은 빅브라더의 감시가 닿지 않는 곳에서 줄리아와 은밀하게 만나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어 채링턴 씨의 상점 위층을 빌린다.
어느 날 윈스턴은 자기 편이라 확신한 오브라이언의 초대를 받고 줄리아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간다. 오브라이언은 암흑 속에서도 투쟁해야 한다며 반당 조직인 형제단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 윈스턴은 채링턴 씨의 방으로 오브라이언이 건네준 책을 읽는다. 그때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떨어지면서 텔레스크린이 나타난다.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는 어딘가로 끌려가는데…….
이 작품은 완전한 절망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주인공 윈스턴은 패배하더라도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전형을 제시하고 범인류적인 미래의 저항 의식을 추구한다. 그는 체제에 대한 저항의 실패를 예견하면서도 실패에도 더 나은 실패가 있다며 자신의 무사안일이 아닌 체제의 전복을 위해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읽으면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가 인류의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또 다른 윈스턴과 줄리아를 기다리는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신어로 ‘진부’라고 부르는 진실부는 첫눈에도 다른 건물들과 놀랄 정도로 판이하게 달라 보였다. 그 건물은 반짝이는 흰색 콘크리트 벽이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진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로서 하늘 높이 300미터나 치솟아 있었다. 흰 건물의 전면에는 윈스턴이 서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고 우아한 글자체로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쓰여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당이 과거에까지 손을 뻗어 이 사건 저 사건에 대해 ‘결코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고문이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일 것이다.”
“윈스턴은 썼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 계급에 있다.”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아는 것이 없어서 사소한 것에만 집중할 뿐 어느 곳에도 불만을 표출하지 못한다. 아무리 큰 죄악들이 세상에 횡행해도 변함없이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동자 집에는 텔레스크린도 없었다.”
“자유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만약 그런 자유가 허용된다면 다른 모든 것도 따라온다.”
“진정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큰 것은 못 보고 작은 것만 볼 줄 아는 개미 같았다. 점점 기억은 퇴색되고 기록이 날조될 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인민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는 당의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사소한 육체의 고통이 거대한 가치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외관상으로 영웅적이든 비극적이든 어느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전쟁터에서나 고문실에서나 침몰하는 배에서나 싸워야 하는 진정한 쟁점들을 항상 잊어버린다. 인간에게는 사소한 육체의 문제가 우주보다 크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려워. 당신은 젊어서 나보다 아마 더 두려울 거야. 분명 가능한 한 우리는 죽음을 미룰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별 차이가 없지.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거든.”
“소수라고 해서 아니 혼자라고 해서 미쳤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에는 진실과 허위가 있는데 세상에 대항하면서까지 진실에 혼자 매달려 있다고 해서 미친 것은 아니다.”
“제정신은 통계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당신들은 실패할 겁니다. 뭔가가 당신들을 굴복시키고 말 겁니다. 삶이 당신들을 패배시킬 겁니다. (중략) 이 세상에는 당신들이 절대 정복할 수 없는 뭔가가 있습니다.”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학의 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에 대하여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아르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이에 앞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거장의 자취를 찾아가는 기행 평전 시리즈로 호평을 받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명성을 잇는 또 하나의 야심 찬 시도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공간’을 통한 거장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형제 격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거장을 만나는 세 개의 다리, 즉 ‘공간’과 ‘작품’과 ‘생애’가 비로소 놓이게 된 셈이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지만, 아르테에서는 우리 시대 젊은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문가급 역자에 의한 공들인 번역은 물론이고, 고전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무겁고 진중한 느낌에서 탈피하여 젊고 산뜻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번역의 질적 측면으로 보나,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의 외관으로 보나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오늘날 젊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약 5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봄과 함께 첫선을 보인 『슬픔이여 안녕』(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평온한 삶』(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지음, 안시열 옮김), 『워더링 하이츠』(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를 시작으로 아르테에서는 『변신』, 『1984』에 이어 『인간 실격』, 『월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올 한 해 총 19종의 세계문학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구매가격 : 15,840 원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
도서정보 : 박해수 | 2023-05-2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끔찍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본질을 꿰뚫다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과감하게 선보이는 기묘한 이야기들 호러, 미스터리,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일곱 개의 세상 눈을 뜨니, 안방 침대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었고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정신이 점점 선명해지는 가운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누구든 놀라지 않을 각오로 눈을 부릅 뜨고 있던 찰나,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만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나’였다. “안녕? 놀라게 해서 미안해. 보시다시피 내가 너고 네가 나야.”또 다른 나는 나를 협박하여 각종 통장의 비밀번호를 캐려고 했다. 거부하니 돌아오는 것은 전기 충격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 뜬금없이 금융 정보를 캐묻는 걸까? 표제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는 갑작스러운 도플갱어와의 조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을 역행하여 서술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전개를 선보인다. 도플갱어는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각종 정보를 캐내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지는 과정이 기괴하고 섬뜩하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집을 구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끌’이 존재하는 현실에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박해수 작가는 데뷔작이자 첫 소설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에서 기괴한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표제작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를 포함하여, 601호에 괴물이 산다는 설정으로 기괴함을 보여주는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끝없는 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사람의 몸에서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 뼈로 인해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뉜 세계를 그린 「몰락한 나무들의 거리」, 로봇의 오작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 죽음이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는 「신의 사자와 사냥꾼」, 코로나 이후 막강한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아비규환이 되어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에 대해 이야기는「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까지 총 일곱 편의 디스토피아가 수록되어 있다. 재미뿐만 아니라 현재를 담아내는 것에도 집중하다 공포 소설에서 엿보는 우리 세상의 현주소 기괴한 이야기지만 절대 허황되고 뜬금없는 내용이 아니다. 박해수 작가는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담아냈다. 「블랙홀 오피스텔 601호」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에서는 ‘집’에 대한 열망과 허망함을, 「범인은 로봇이 분명하다」에서는 로봇이라는 완벽해 보이는 존재의 불완전함을, 「신의 사자와 사냥꾼」에서는 주변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쾌락만을 쫓는 인간 군상을, 「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에서는 극한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려내며 어디선가 겪어본 듯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해원 씨. 현재 정식으로 고용된 직장은 없으시고요?” “네, 없습니다. 몇 년 전 일자리를 잃고는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이다 보니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좋네요. 서류를 보니까 연소득이 500만 원 정도로 잡히셨고요.”소득 이야기가 나오자 해원은 불안해졌다. 어쩌면 지원자들 중에 500만 원도 못 버는 인간들이 수두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가난했어야 하나? -P.32, 「세컨드 헤븐, 천삼백하우스」 중에서 “도망치지 마라, 태기야.”태기는 속으로 움찔했다. 양정은 이상할 정도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다른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난 네 녀석 속을 다 안다고.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 현실로부터 말이야. 넌 항상 내가 마약이나 하면서 현실 도피한다고 조롱했지만 실은 그 반대야.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건 바로 너라고. 우린 이 세상의 꼭대기에 결코 올라갈 수 없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왜냐하면 먹이 사슬은 이미 완성됐으니까. 치고 올라갈 틈이 없다고. 사람들이 왜 마약에 매달리는지 알아? 자신이 누군지 잊고 싶기 때문이야.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거든. 마약에 취해서 모든 걸 잊은 채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거지. 그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이야.”-P.203, 「신의 사자와 사냥꾼」 중에서 쾅! 쾅! 쾅! 쾅! 드디어 요란스럽게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살려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안에 계시면 제발요!”여자가 내 집까지 오고 말았다. 나는 방 한가운데에서 어정쩡하게 선 채로 굳어버렸고 머릿속으로는 양심과 생존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원래는 감염 여부를 생각해 열어주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막상 여자가 문을 두들기며 도움을 청하자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군가 살기 위해 나에게 매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P.264, 「한때 홍대라고 불리던 곳에서」 박해수 작가는 쓰라린 현실의 모습을 가감없이 녹여내며 이야기에 진정성을 더한다. 현실은 늘 희망적이지만은 않기에 우리는 이야기로부터 위로를 얻고, 그 속에서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우리 곁의 이야기를 날카롭게 그려낸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는 ‘호러·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새롭게 써 내려간 하나의 또 다른 장르가 될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현실’적인 이야기 단순한 공포에서 입체적인 실상으로 진화하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상상으로 만들어낸 그 어떤 공포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실’이 아닐까. 뉴스를 보면 공포 영화보다 훨씬 잔혹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단순한 ‘공포’에 열광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공포 소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제가 그려낸 세계는 오래전 퇴색해버린 슬픈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했거나 SF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슬픈 운명의 세계 말입니다. 사람들이 강시, 처키, 프레디, 터미네이터에 열광하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겠지요. 무섭지만 나름의 흥취가 있었던 그 시대는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현실이 더 살기 힘들고 무서우니까요. -P.277,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무서운데 재밌는’ 이야기. 『나의 집이 점잖게 피를 마실 때』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저 기괴하기만 한 플롯에서 벗어나 현재를 고민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의미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작가의 의무이자 공포 소설의 의무가 될 것이다. ■ ON 시리즈 오리지널(Original) 네오픽션(Neofiction) 시리즈 ‘ON’은 자음과모음의 장르문학 브랜드입니다.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SF 등 ‘읽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소설을 소개합니다. 허구 속 재미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사회의 빛과 어둠을 담아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복기합니다.
구매가격 : 15,000 원
각각의 계절
도서정보 : 권여선 | 2023-05-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한끗이 만들어내는 차이,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권여선 신작 소설집
2021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기억의 왈츠」,
2020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실버들 천만사」,
2019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하늘 높이 아름답게」 수록
유려하고도 엄정한 문장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며 한국문학이 신뢰하는 이름이 된 작가 권여선이 삼 년 만에 신작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펴낸다. 술과 인생이 결합할 때 터져나오는 애틋한 삶의 목소리를 담아낸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에두르지 않는 정공법으로 현실을 촘촘하게 새긴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이후 일곱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봄날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한데 모였다. 1996년에 등단해 사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하며 많은 사람의 인생작으로 남은 작품들을 선보여온 권여선은 이번 소설집에서 기억, 감정, 관계의 중핵으로 파고들며 한 시절을, 한 인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직시의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하는 곳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원래 생겨먹은 데서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기억의 속수무책, 감정의 속수무책, 관계의 속수무책
우리를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권여선의 계절 소설
소설집의 제목인 ‘각각의 계절’은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114쪽)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일흔두 살에 병으로 죽은 ‘마리아’를 회상하는 성당 신도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리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재구성한다. 신도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앞다투어 이야기하며 마리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 시선에는 마리아를 자신들보다 아래에 놓는 은근한 배타성이 담겨 있다. ‘베르타’ 또한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91쪽) 하고 생각하며 그들의 위선을 예민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의문은 “자신이 왜 이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91쪽). 그에 대한 답변이 소설 마지막에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베르타는 마리아가 죽기 전 그녀와 함께 동행했다가 어떤 여자의 양산에 눈가가 찔리고 주저앉는데, 황급히 자신에게 다가와 눈가를 살피려는 마리아에게서 구취를 맡고 그녀를 밀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린 베르타는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114쪽)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같은 쪽) 하지만 ‘고귀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는 그 가차없고 엄격한 눈으로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리아는 성당 신도들이 퍼즐을 맞추듯 조각조각 이어붙여 완성된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는 그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히는 소설집의 제목은 계절뿐만 아니라 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특히 다른 어떤 관계보다 질기고 단단하게 엮여 있는 모녀를 ‘각각의 계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는 코로나19로 일하던 체육관이 휴관에 들어간 어느 날 딸 ‘채운’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가까운 곳으로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자고. 이혼을 한 후 채운과 따로 살고 있는 반희는 그 제안에 다소 놀란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어서,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50쪽)어서, 채운과 자신을 끈끈한 모녀 관계로 묶기보다 고유한 개인으로 지켜주고 싶어서 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왔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반희에게 채운은 “갑자기 말이 빨라”지면서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자기가 아는 펜션이 있다고, 차 몰고 갔다 차 몰고 오면 된다고, 거기서는 밥도 해먹을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일이 없다고, 거기 꼭꼭 숨어서 아무도 안 만나고 그 근처만 산책하고 그렇게 딱 하루만 지내다 오면 괜찮지 않겠느냐며”(49~50쪽), 마치 반희가 거절하리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고, 서로를 엄마나 딸이 아니라 ‘반희씨’와 ‘채운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가정 내 역할이 아닌 한 개인으로 서로를 지켜주려는 이 행동은 여행의 산뜻한 시작을 알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해 그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 깨닫게 된다. 반희에게 있어 채운은 자꾸 살피고 점검해야 하는 딸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채운에게 있어 반희 또한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반희는 담배를 끄고 두 손을 맞잡았다.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진한 흙내와 풀 향이 스쳤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79쪽)
서로를 이어주는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밧줄로 꼬아 더 단단하게 연결하기. 뜻밖이면서 자연스러운 이 전환은 계절의 변화를 닮아 있는 듯하다. 계절이 달라지면 필요한 힘도 달라지듯이 두 사람은 이제 그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자신들 앞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계절이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의 연결된 흐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구분함으로써 현재의 계절을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권여선이 우리에게 건네는 건 지금 필요한 새로운 계절, 그러니깐 ‘각각의 계절’인 듯하다.
구매가격 : 10,500 원
미국을 노린 음모
도서정보 : 필립 로스 | 2023-05-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우리 삶은 악몽이 된다.”
비뚤어진 선동, 요동치는 민심, 가려진 진실
최악의 악몽으로 다시 쓰는 역사
반드시 읽어야 할 또하나의 필립 로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꼽히는 필립 로스 타계 5주기를 맞아 문학동네에서 『미국을 노린 음모』를 선보인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이다.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해 미국의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한 유대인 가족의 삶은 하루아침에 참혹한 비극을 맞이하는데…… 아홉 살 소년의 눈에 비친 히스테리, 무지, 악의, 어리석음, 증오, 두려움의 역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잘못 뽑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에 대한 끔찍한 예언이자 악몽을 보여준다.
“역사란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야.
심지어 평범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언젠가는 역사가 된단다.”
“이제 노벨문학상만 받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해마다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데뷔 이래 50여 년간 서른 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매번 꾸준히 주목을 받아옴은 물론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꼽히는 필립 로스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필립 로스 타계 5주기를 맞아 문학동네에서 『미국을 노린 음모』를 선보인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이다. 로스는 이 작품으로 “미국을 테마로 한 탁월한 역사소설에 수여하는” 미국 역사가협회상(2005)과 영국 WH 스미스 문학상 ‘올해의 도서상’(2005)을 수상했다. <가디언>은 “로스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썼다. 살아 있는 모든 이의 피부를 파고드는 역사를 그보다 잘 포착해내는 작가는 없다”라고 평했다. 2019년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HBO에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미국의 전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40년 대선에서 찰스 린드버그에게 패배해 3선에 실패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성공해 미국의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는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을 것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고, 고립주의와 친파시즘,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정책을 펼쳐나간다. 미국 사회는 급격히 우경화되고 국민들은 분열한다. 그리고 한 유대인 가족의 삶은 하루아침에 참혹한 비극을 맞이하는데…… 아홉 살 소년의 눈에 비친 히스테리, 무지, 악의, 어리석음, 증오, 두려움의 역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직 필립 로스만이 쓸 수 있는 유크로니아(Uchronia, 과거의 허구적 시기) 소설이자 최악의 악몽으로 다시 쓰는 역사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다. 이것은 악몽이다. _뉴요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찰스 A. 린드버그는 실존 인물이다. 1927년 5월, 25세의 스턴트 비행사이자 항공 우편 비행사인 찰스 린드버그는 단엽기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뉴욕에서 출발해 서른세 시간 삼십 분 후 파리에 착륙한다. 이 최초의 무착륙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으로 그는 국민 영웅에 등극한다. 그의 도전과 성공은 대공황으로 시름하던 미국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전 국민의 희망이자 우상이 된 그는 당시 대통령 쿨리지로부터 훈장을 받고 미국 육군 항공단 대령으로 임명된다. 나치의 항공기 개발에 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독일을 드나들던 그는 친구에게 “그(히틀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베를린에서 열린 만찬회에서 ‘독일제국에 봉사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독일독수리공로훈장을 수여받는다. 히틀러가 체코와 폴란드를 침공한 뒤, 그는 미국의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입주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은연중에 미국의 참전을 종용하는 세력으로 유대인을 지목한다.
필립 로스는 어느 책에서 몇몇 공화당 고립주의자들이 린드버그를 1940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시키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린드버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상상력을 펼쳐간다. 그러자 우리가 알던 역사와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린드버그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미국은 유럽 전쟁에서 발을 떼지만, 사실상 나치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유대계 미국인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히스테리가 극에 달하고 국민들은 극렬하게 분열한다.
로스는 “그(린드버그)가 출마하고 당선되는 것이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공화당 고립주의자와 민주당 개입주의자로 양분되다시피 했다. 반유대주의 단체들의 활동은 맹렬했고, 헨리 포드는 기독교 지상주의를 설교했고, 린드버그는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주창했다. 작품 속 사건들은 철저히 사실적 토대 위에서 펼쳐졌다. 작가는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을 작품으로 끌고 들어오면서도 근거 없는 상상력을 펼치지 않았다. 이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의 일대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의 이런 노력을 뒷받침한다. 이 소설의 가장 소름 돋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모든 최악의 악몽이 사실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잘못 뽑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때아닌 디스토피아 소설 열풍이 불었다. 문학작품들에서 예견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하고야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디스토피아 소설 열풍의 중심에 필립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가 있었다. 이 소설은 이런 열풍에 힘입어 HBO방송국에서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을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 『위대한 미국 소설』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암울한 미래를 충분히 생생하게 그려냈다. 미국사회에 처절한 경고를 던진 이 소설이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잘못 뽑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에 대해 또 한번 끔찍한 예언이자 악몽을 보여주는 듯하다.
구매가격 : 13,000 원
연기 인간
도서정보 : 알도 팔라체스키 | 2023-05-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과
가장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덧없는 만남!
인간의 욕망, 군중의 광기를 풍자한
20세기 이탈리아 미래파 환상문학의 수작
《연기 인간》 이탈리아 원전 국내 최초 번역 출간
현실과 환상을 정밀하게 직조한 섬세한 문학 기법으로
인간의 욕망, 군중 심리의 폭력성을 풍자한 미래파 환상문학의 수작
20세기 이탈리아 미래파의 선두주자, 알도 팔라체스키가 《연기 인간》으로 한국 독자와 처음 만난다. 팔라체스키의 대표작 《연기 인간》은 현실과 환상을 정밀하게 직조한 섬세한 문학 기법으로 인간의 욕망, 군중 심리의 폭력성을 풍자한 소설이다. 팔라체스키는 예술계 전반에서 온갖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도들이 명멸하던 20세기 초반, 미래파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던 1911년 《연기 인간》 초판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시와 소설, 영화, 드라마, 평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친 그는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무려 다섯 차례나 《연기 인간》의 개정판을 출간했다. 문학과 이 작품을 향한 그의 꾸준한 열정과 각별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1958년 일흔셋의 팔라체스키는 《연기 인간》의 다섯 번째 개정판을 발표하면서 “《연기 인간》은 내게 환상적 글쓰기의 극치이자 행복한 예술적 출구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 이탈리아 원전 번역으로 출간된 《연기 인간》은 《신곡》, 《데카메론》 등 이탈리아 고전을 유려하고 충실한 번역으로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온 번역가, 작가, 인문학 연구자인 부산외국어대학교 박상진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작가 알도 팔라체스키에게 《연기 인간》은 사실상 그의 삶을 관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이나 고쳐 쓴 작품이지만 1911년 처음 발표한 초판본에는 다섯 차례의 개정판에서 반복하거나 대체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고갱이’가 담겨 있다는 역자의 의견에 따라 초판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문장이 ‘연극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희곡을 읽는 듯한 생생함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국 독자에게 처음 소개되는 낯선 작가의 삶과 작품의 현대적 의의를 상세히 풀어낸 ‘옮긴이의 말’은 작품의 감상과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연기 인간》 표지 일러스트는 오픈 AI가 개발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시스템 DALL·E 2를 활용했다. ‘full of fog(안개가 자욱한)’, ‘outline of a man(남자의 형체)’, ‘pastel color(파스텔 색상)’, ‘low contrast(낮은 대비)’ 등의 설명을 입력해 AI가 생성한 여러 이미지 중 소설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적절히 가공해 만들었다. 100년 전, 과거와 전통을 철저히 거부하고 실험적인 시도로 오직 미래로 나아가고자 열망했던 미래파 작가 알도 팔라체스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 ‘연기 인간’을 최첨단 AI 기술을 활용해 재탄생시킴으로써 현대적 의미와 재미를 더하고자 했다.
구매가격 : 11,62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