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수호지 10권
도서정보 : 이열 | 2021-06-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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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 기서(奇書)의 하나로 꼽히는 『수호지』가
거장 이문열의 문장으로 되살아났다!
이념적 인식을 배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가의 손끝에서 펼쳐진 장편소설 『이문열 수호지(전 10권)』
서른 해를 건너 ‘결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
천하의 108 영웅호걸들의 호쾌한 이야기
『이문열 수호지』는 중국의 북송(北宋) 말년, 간신들이 들끓던 정권에 농락당하자, 양산박의 송강을 중심으로 영웅호걸 108명이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행한다’는 기치 아래 산동의 수장현(壽張縣) 동남쪽 양산(梁山)에 모여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는 이야기다. 시내암이 쓴 원저의 방대한 양을 우리 시대를 대표한 이문열 작가가 그의 특유 필치로 생생하게 다시 탄생시켰다. 초판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내 이름으로 나가는 『수호지』로는 마지막 판이라 여겨 결정판’이라 이름 붙인 『이문열 수호지』가 다시 출간됐다.
“예로부터 신의가 없는 나라는 반드시 망하였고, 예의를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죽었으며, 의롭지 못한 재물은 반드시 빼앗겼고, 용기 없는 장수는 반드시 싸움에 졌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새삼 이상할 게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던 북송 말년에는 사치에 빠진 도군황제, 대신과 환관의 유착, 주변국과의 분쟁, 지방 관리들의 착취, 충의라는 이름하에 약탈과 식인을 일삼던 송의 군대 등에 의해 당시 백성들은 피가 마르는 삶을 살았다. 그런 세상의 억압과 부조리, 부패에 맞서 온갖 살인과 약탈, 분탕질을 치다가 양산박으로 모여든 도적 떼. 이야기는 송강, 노지심, 무송 및 좀도둑 시천, 물귀신 완소칠 등 108명의 도적 떼를 등장시키면서 그 시대 상황과 인물의 성격, 사건의 전개에 대한 묘사를 마치 바로 옆에서 팽팽한 합을 이루듯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이 책은 그저 험한 도적 떼들의 영웅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행하기로 맹세한 영웅호걸들이 때론 북송을 압박하던 요와 싸우기도 하고 부패한 관료들과 맞붙기도 하면서, 민심을 대변하듯 끊임없이 정의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그 모습이 혼탁한 지금의 우리와 일맥상통한 면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여전히 『이문열 수호지』가 읽혀 왔고 또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별히 이번 책에서 달라진 점은 10권 마지막에 수록된 『수호후전』을 과감하게 걷어낸 일이다. 중국 고전 『수호지』의 세 가지 판본인 『제오재자서 수호지』, 『충의수호지』, 『수호후전』을 엮어 완성한 『이문열 수호지』는 지금까지 여러 판쇄를 거듭하면서 『수호후전』을 축약했다가 다시 한 권 분량으로 할애하는 등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번 결정판에서 이문열 작가는 “세상에 나온 모든 수호지의 모음’이란 헛된 자랑에 젊은 내 마음이 끌려 벌인 일 같다”라고 하며 『수호후전』을 떼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좀 더 집약적으로 108 영웅호걸들 한 명 한 명을 따라가며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이문열 수호지』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정치가 마오쩌둥이 중국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수호지』. 책 속의 많은 줄거리를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정치 삶에도 도움이 됐던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문열 수호지』가 진짜 정의에 대해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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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괴담회
도서정보 : 전건우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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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포소설의 장인 전건우의 괴담집
# 일상과 환상이 뒤섞인 17개의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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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
도서정보 : 강경애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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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한 일이 이 현실에 실재해 있는지? 없는지? 그가 묻던 말에 아직까지도 그 대답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그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언제나 저녁밥을 늦게 짓는 나는 그날도 늦게 지어 먹고 막 설겆이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앉았을 때 밖에서,
“아저머이 계시유.”
하는 굵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냉큼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밖이 어둡고 더구나 그 음성이 평시에 듣지 못하던 음성이므로 누구인지 얼핏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찾으시오?”
나는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다가서며,
“아저머이 나유. 복순 아비유.”
그 순간 나는 반쯤 열어 잡았던 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갔습니다.
“복순 아버지! 이게 웬일입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그제야 그는 방안으로 들어 앉았습니다. 나는 일변 담배를 사오고 재떨이를 내놓으며 그를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옷은 아주 형용할 수 없이 남루하였으며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우울한 빛이었습니다. 이 맛전이 툭 솟아나는 아래로 눈은 깊이 들어가서 눈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멓게 보이는 그 눈 속으로 이따금 번쩍이는 안광은 나의 가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뭘하러 그가 우리집에를 돌연히 찾아왔을까 하는 불안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짐을 나는 느꼈습니다.
복순 아버지는 바로 우리 윗집에서 단간방을 세 얻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벌이가 없이 그저 그날그날 노동이나 해서 돈푼이나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굶고 지내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습니다. 나는 그의 아내와 좋아 지내고 어린 복순이를 귀애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이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구차하게 지낸 까닭입니다. 그들이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우두머니 앉은 것을 뻔히 알면서 우리만 밥을 지어다 놓고 먹기가 거북스럽고 미안하여 맘놓고 술이나 저를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때때로 찬밥덩이나 찌개국물이나 먹다 남은 것이 있으면 그들을 주었습니다. 주면서도 내 맘만은 항상 아수하여 어서 그들이 어디로 이사해 갔으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 복순이가 나를 보면 먹을 것을 줄 줄 알고 발발 기어오르는 데는 귀엽고도 가여워서 나는 한참씩이나 안아주었습니다.
“너 몇 살?”
복순이는 아직 말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지가 엉뚱하게 발달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그의 여윈 두 손가락을 쪽 펴보이었습니다. 나는 복순이를 꼭 껴안으며,
“두 살…… 이게 말두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알까.”
나는 그의 어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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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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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키타이스카야의 중심지에 있자 방이 행길편인 까닭에 창 기슭에 의자를 가져가면 바로 눈 아래에 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삼층 위의 창으로는 사람도 자그만하게 보이고 수레도 단정하게 보이며 모든 풍물이 가뜬가뜬 그 자신 잘 정돈되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쉴새없는 요란한 음향은 어디선지도 없이 한결같이 솟으면서 영원의 연속같이 하루 하루를 지배하고 있다.
이른 새벽 침대 속으로 들려오는 우유를 나르는 바퀴소리에서 시작되는 음향이 점점 우렁차게 커지면서 밤중 삼경을 넘어 다시 이른 새벽으로 이어질 때까지 파도소리같이 연속되는 것이다. 인간생활에는 반드시 음향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이 삼층의 전망을 즐겨해서 방에 머무르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가 의자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침 비스듬히 해가 드는 거리에 사람들의 왕래가 차츰차츰 늘어가려 할 때와 저녁 후 등불 켜진 거리에 막 밤이 시작되려 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조각돌을 깔아 놓은 두툴두툴한 길바닥을 지나는 마차와 자동차와 발소리의 뚜벅뚜벅 거칠은 속에 신선한 기운이 넘쳐 들리고 여자들의 화장한 용모가 선명하게 눈을 끄는 것도 이런 때이다. 그러나 반드시 또렷한 주의와 목적이 없이 다만 하염없이 그 어지럽게 움직이는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는 동안에 번번이 슬퍼져 감을 느낀다. 이유를 똑똑히 가리킬 수 없는 근심이 눈시울에 서리워진다. 인간생활은 또 공연히 근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 근심의 곡절을 따져 낼 수 없는 것이, 그 짧은 여행이 원래 걱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고향에 불행을 두고 떠난 것도 아니요 눈앞에 불행이 놓인 것도 아닌 까닭이다. 마음에 드는 거리를 실컷 보고 입에 맞는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흡족할 때까지 소풍을 하면 그만인 것이요, 또 그 요량으로 떠났던 여행인 것이나 마음은 반드시 무시로 즐겁지마는 않다.
호텔 아래편 식당에는 늙은 보이의 은근한 시중과 함께 기름진 버터며 로서아 수프며 풍준한 진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나 그 깨끗한 식탁을 대하면서도 어딘지 없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한 것은 웬일일까. 며칠만에는 식당으로 내려가기조차 귀찮아서 방 보이에게 분부해 늦은 아침식사는 대개 방에서 빵과 커피로 대신하게 되었다. 초인종으로 보이를 불러 그릇을 치우고는 다시 창에 가서 의자에 앉곤 한다. 행길에는 사람들이 훨씬 늘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는 길과 목적을 뉘 알수 있으랴. 나는 키타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한다. 사랑하므로 마음에 근심이 솟는 것일까.
“왜 이리도 변해 가는구 이 거리는. 해마다.”
변해 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듯 시선은 초점을 잃고 아득해 간다.
지금 눈 아래의 거리는 사실 벌써 작년 여행에 본 그 거리는 아니다. 각각으로 변하는 인상이 속일 수 없는 자취를 거리에 적어간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변했거니와 모든 풍물이 적지 아니 달라졌다. 낡고 그윽한 것이 점점 허덕거리며 물러서는 뒷자리에 새것이 부락스럽게 밀려드는 꼴이 손에 잡을 듯이 알려진다. 이 위대한 교대의 인상으로 말미암아 하얼빈의 애수는 겹겹으로 서리워 가는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보러 해마다 오는 것일까. ─ 이 변화를 보러.”
혼자 속으로 생각하자는 것이 그만 남에게 들려주는 결과가 되었다. ─ 우연히 등뒤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던 까닭이다. 노크를 듣고 보이인 줄만 알고 콧소리를 질렀더니 살며시 들어와 선 것이 뜻밖에도 유우라이다. 돌아다보고 나는 놀랐다.
“왜 놀라세요.”
“너무도 의외여서.”
“오겠다구 약속하지 않았어요.”
“약속 받은 것은 나두 기억하지만. ─ 아무리 약속을 했기로서니.”
“말을 어기는 사람인 줄 아세요. 밤까지 별로 일두 없구 해서 일찌감치 나서 봤지요.”
“하얼빈의 변화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
하며 다시 창을 향하니 유우라도 의자를 끌어다가 탁자 맞은편에 앉는다.
“어쩌는 수 없는 일이죠. 될 대로 되는 수밖엔요.”
철없는 무관심일까. 대담한 체관일까. 표정 없는 순간의 그의 눈이 아름답다. 슬픈 얼굴보다도 평온한 그 얼굴이 얼마나 더 효과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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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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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의 하나이다.
옛이야기라니 태고적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생애의 비교적 이른 시절에 속하는 이야기란 말이다.
이른 시절이라고 하여도 나의 나이 지금 오십의 고개를 반도 채 못넘었으니 이르고 지지고 할 것이 없지만 철 들고, 눈뜸이 나날이 새로운 지금으로 보면 무폭하고 주책 없던 그때는 옛시절이었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나 이야기 속의 행동에 지금으로서 본다면 어리고 불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한 시간의 핸디캡을 붙여 가지고 읽어 주어야 할 것이다.
해마다 해마다 겨울이 되어 굵은 눈송이가 함박같이 퍼붓는 시절이면 스스로 생각나는 이 많다. 깊은 겨울 고요한 밤 가난한 화로전을 끼고 창밖에 퍼붓는 눈소리를 들을 때에 해마다 겨울마다 변치 않고 생각나는 것은 일찌기 작별한 노군이다. 이글이글 타오는 페치카를 둘러싸고 탁탁 튀는 석탄 소리와 사모바아르의 물끓는 소리를 들으며 검은 창밖에 날리는 눈을 때 아닌 꽃으로 알며 붉은 책 노랑 책 들추면서 옛날의 왕자와 왕비 이야기에 꽃 피울 그 북국의 겨울을 이 땅을 떠난 지 오래인 그는 지금 어떻게나 지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에는 그에 대한 회포도 한층 더 깊다. 어떤 눈구덩이에 가 파묻히지나 않았을까. 깃들인 곳 없이 깊은 밤의 추운 거리를 벌벌 떨며 헤매이지나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마을 끝에 딸랑딸랑 방울소리 남기며 개에 맨 썰매 타고 눈 깊은 벌판을 달리고 있을까. 혹은 어떤 거리의 으슥한 회관에 모여서 낯설은 동지들과 함께 일을 꾀하고 있을까……생각할수록 궁금하여지고 동무의 자태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그가 이곳을 떠나 북에 잠긴 지 이미 오래이고 그 후로는 도무지 소식이 없었으니 그의 생사조차 알 길이 아득하다.
이제 고요한 밤 홀로 화로전을 끼고 앉아 밖의 함박눈 소리를 들으려니 그의 뒷일을 궁금히 여기는 회포 심히 간절하다.
큼직하던 노군, 호기롭던 노군, 그를 생각할 때마다 변함 없이 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당시 군의 가정에 일어났던 조그만 이야기이다. 옛날의 왕비 이야기는 페치카를 둘러싸고 사모바아르 끓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그들에게 맡겨 두고 노군을 생각하는 나는 눈 깊은 이밤 여기서 이야기를 되풀이하려 한다.
생각하면 노군은 나의 가장 친한 동무의 한 사람이었다. 죽마고우는 아닐지라도 막역지정이 두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었다. 하기는 세상에 죽마고우라는 것도 다 믿을 것이 못된다. 자라서 뜻이 다르고 길이 어긋나면 대천지원수로 변하는 소도 없지 않아 있으니까 말이다.
이와 반대로 이르는 바 죽마고우가 아니고 사귄 지 불과 사흘일지라도 생각이 맞고 행동이 같다면 죽마고우지정 이상 몇몇 배의 더 굳은 정이 두 마음을 한 끈에 굳게 얽어매 놓을 것이다. 이미 중학을 같이 하였으니 비록 사흘의 사귐은 아닐지라도 노군과 나와의 경우가 이러하였다.
중학도 삼년을 마치고 사년이 되면서부터는 바야흐로 철이 나고 심이 들 때이다. 단순하고도 하잘것없는 학과를 파지만 말고 좀더 눈을 넓게 떠서 유다른 책도 읽어 보고 동무와 모여 앉으면 색다를 이야기도 하여 볼 때이다. 환경과 생활을 의식하고 넓은 세상을 짐작하고 사회를 알고 시대를 느끼고 세상의 여론에 모름지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야 할 때이다.
노군과 나와의 사이가 가까와진 것도 이런 때였다. 몇해 동안 서로 무심하였던 것만큼 뜻이 맞는 이상 두 사람의 친분은 컸다. 틈만 있으면 같이 모이고 모여만 앉으면 이야기였다. 철저치는 못하나 일찌기 크로포트킨을 애독하고 ××을 알고 ××××를 짐작하였다. 여름의 서늘한 나무 그늘 속을 찾을 때나 겨울의 따뜻한 화로전을 낄 때에나 항상 이런 이들의 저서를 품에 지니지 않은 때는 없었다.
〈상호 부조론〉의 영역을 샀을 때이다. 어찌도 그것을 애지중지하였든지 표지를 싸고 속을 아끼고 둘 없는 보배로 여겼었다. 다른 책 다 제쳐 놓고 읽기 시작하여 좀 부치는 영어의 힘에 수많은 단어를 충실히 찾아가면서 한 줄 두 줄 한 장 두 장 꾸준히 읽어 간 것이 불과 몇 달이 안되어 〈상호 부조론〉영역 한 권을 훌륭히 독파하였다. 읽고만 나면 아낌없이 동무들에게 돌려가면서 빌려주었다. 좀 암직한 동무들을 모아서 책 읽고 토론하는 토요회(土曜會)를 조직하여 끝까지 꾸준히 끌고 나간 것도 노군이었다. 어떻든 잘 읽고, 잘 배우고 잘 이야기하였다. 때로는 입에 거품을 품으면서 모여앉은 학우 앞에서 마음껏 떠들어도 보고 때로는 분기 등등하게 세상을 비분강개도 하였다.
사실 그 열정만은 누구나 다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에 벌써 그에게는 상당한 이론의 체계가 보금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손아귀에 든든히 파악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체계가 점점 조직적으로 굳어갈수록 그 열정도 차차 커가고 익어갔다. 그때로 보아서는 자뭇 놀라운 일이었다.
이러한 노군과 뜻과 생각이 맞는 나와는 나날이 절친하여졌다. 책도 책이려니와 나중에는 돈주머니까지 내 것 네 것 없게 된 무던 착한 마음씨도 시원한 것이지만, 그의 굳센 용모도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의 하나였다. 거친 끌로 되고 말고 쪼아논 선 굵은 조각―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그의 얼굴이었다. 크고도 검은 눈에는 열정이 출출 넘치고 반듯한 콧날은 강한 의지의 초점이었다. 넓은 이마는 밝은 지혜의 권화인 듯하고 단단한 몸집에 굵게 뿌리박은 목덜미는 무진장의 정력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이런 얼굴에 어울려 이를 데 없이 조화를 주는 것은 그의 검은 네모테 안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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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운명
도서정보 : 채만식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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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리가 바뀌었다.
할머니(총기 좋은 할머니)가, 한 동네에 있는 둘쨋집에 온 것이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윤석(允錫), 승석(承錫), 중석(重錫)의 삼형제 가운데, 기미년(己未年) 삼일운동 적에 죽은 그 둘째아들 승석의 집이었다.
승석의 집이라고 하지만, 물론 대주(大主) 승석은 이미 죽어 없고, 유족으로 그의 부인 강씨(康氏)가 아들 원희(元熙)를 데리고, 따로이 한집(戶口[호구])을 이루고 사는 집이었다.
승석의 둘쨋집, 중석의 세쨋집과 더불어, 맏이 윤석, 멀리 경술년(庚戌年) 합방 후 의병에 투신을 하였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 광복운동을 하다 노령(露領)으로 간 뒤로 이내 소식이 없어, 필연 죽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그 윤석의 집도 같이 이 동네에 있었다. 윤석의 부인 고씨(高氏)가, 그 몸에서는 소생이 없어, 셋째 중석에게서 난 성희(成熙)를 양자로 들여, 같은 한 동네에서 역시 따로이 한 집(戶口[호구])을 이루었던 것이었었다.
큰집, 둘쨋집, 세쨋집이 그래서 다 이 동네, 한 동네에 있었다.
할머니는 늘, 둘쨋집에도 가서 며칠씩 있다, 큰집에도 가서 며칠씩 있다,
세쨋집으로 와서 한동안씩 있다 하면서, 어린 증손자들의 재롱도 보고, 장성한 손자들이 제각기 제 앞을 가려 가며 사는 양을 흡족하여 하기도 하고, 더러는 어느덧 흰머리가 성성한 며느리들과 함께 파란 많고 한(恨) 많던 과거를 회상하며 하염없어하기도 하고 하는 것으로 낙과 소일을 삼았다.
날씨는 한 이틀 춥는 체하더니, 오늘 아침부터 도로 풀리어, 해동머리의 봄날같이 푹하였다.
부엌에서는 할머니한테 대접할 밤참으로 시루떡을 찌느라고 컴컴한 부엌에서 아궁이의 장작불이 황황 타고 있다.
이 집의 젊은 주부요 원희의 아낙인 김씨(金氏)가 떡시루의 소댕을 얼고 긴 창칼로 여기저기 떡을 찔러본다. 부연 김이 솟아 부엌으로 가득 잠기고, 호박시루떡이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긴다.
칼 끝에는 아직도 날가루가 묻어나와 김씨는 소댕을 덮고 불을 더 싸게 지핀다. 옥녀─원희 내외가 고아를 거두어 기르는 수양딸이, 옆에서 같이 일한다. 여기도 불은 매양 깡통으로 만든 석유등잔불이다.
그 대추씨만한 등잔불을 등판에 받쳐놓고, 할머니와 며느리와 손자 원희가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어디 가서나 마찬가지로, 아랫목 벽에 기대어 발 벗은 두 다리를 포개 뻗고 편안히 앉았다.
아랫목 뒤 곁으로, 이불을 올려논 반닫이가 있고, 그 앞으로 며느리 강씨가 앉아 긴 담뱃대에 담배를 피운다.
아무리 같이 늙어가는 고부(姑婦)끼리라고는 하여도, 며느리로 앉아 시어머니 앞에서 장죽에 담배를 피우다니, 속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자못 어색하고, 체수 아닌 풍속이었다.
강씨가 나이 적은 남편 승석보다 한 살 더한 신묘생(辛卯生) 쉰여덟이요, 시어머니 되는 할머니가 일흔여덟이니, 같이 늙는다고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긴 담뱃대 꼿꼿이 물고 앉았다는 것은 예사 가풍(家風)은 아니었다.
일찍이 기미년에 둘째아들 승석이 죽고, 그의 아낙 강씨가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자, 시어머니인 할머니는, 이 며느리에게 일부러 담배를 가르쳤다.
나도 갑오 을미년(甲午乙未年)에 너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스물다섯 살의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이 날까지 살아왔다마는, 늙으나 젊으나 과부한테는 담배밖에 만만하고도 좋은 벗이 없느니라. 가슴 울적할 때, 마음 싱숭거릴 때, 외로울 때, 슬플 때, 밤잠 아니 올 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앉았느라면, 저으기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는걸……
너도 담배나 배워라. 그리고 내 앞이라고 어려워하지 말고 나 보는 데서 먹어라.
담배라는 것이 본시부터 우리 조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인즉은 임진왜란 적에 왜사람의 손으로 들어왔다고 하느니라. 그래서 담배를 가지고 상하를 가리는 것도 중년에 도학샌님들이 마련해낸 노릇이지, 근본에 있던 예법은 아니더란다. 워너니, 듣자면 술 담배를 가지고 상하를 가리는 풍습은 동양 삼국에서도 유독 조선뿐이라더구나. 서양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 사람이나 청국 사람들은 부자(父子) 대작(對酌)을 하고, 같이 앉아 맞담배질도 하고 한다더라. 술 담배도 음식일 바이면, 음식을 가지고 어른의 앞에서는 먹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애당초에 예법하고는 우스운 예법이지.
남이 무어라는 게 무슨 상관이냐. 코 벤 수치(羞恥) 아니고. 아무 걱정 말고서 담배 먹어라.
이러면서, 마침 장만하여 두었던 곰방담뱃대에 담배 서랍과 담배까지 내주었다.
그 날부터 강씨는 담배를 배웠고, 시어머니인 할머니의 앞에서 담배를 먹고 하였다.
남편 윤석이 경술년에 해외로 나가고 없어, 그때부터 벌써 과부나 진배없게 지내는 맏며느리 고씨가, 그것을 보고 부러워하다가, 동서(同媤) 강씨를 시켜, 시어머니한테 청을 넣은 것이, 그러다뿐이겠느냐고, 선뜻 허락이 나 고씨가 또한 담배를 배워, 시어머니 앞에서 담배를 먹게 되었다.
손윗 두 동서가 그러는 바람에 막내 중석의 아낙 윤씨는, 운덤에 담배를 배웠고, 어름어름하다 보니 어느 겨를에 시어머니 앞에서 담배를 먹고 앉았는 며느리가 되어버렸었다.
할머니는 삼사 년 후에 어지럽다고 담배를 폐하였지만, 세 집이 분가를 하기 전, 같이 한 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그래서 네 고부(四姑婦)가 어떡하다 한 방에 모이든지 하면, 제각기 길고 짧은 담뱃대를 물고 둘러앉았는 광경이란, 한바탕 기물스런 것이 있었다.
강씨는 일지감치 스물아홉에 남편의 참변을 보았다는 것이었고, 여의치 못한 환경에서 여러 어린 자녀를 양육하기에 고초를 겪었고, 그리고 이 집은 생업(生業 : 職業[직업])이 주장 농업인지라, 사철 농사일에 몸이 고되고 하기 때문에, 세 동서 가운데 제일 고생이 많고, 따라서 늙기도 제일 일찍 늙고 하였다.
얼굴에는 굵고 잔주름이 가로 세로 패이고, 머리는 하마 시어머니인 할머니만치나 세었다. 손이 북두갈고리 같다.
얼굴 바탕은 그러나 늙고 바스러지기는 하였어도, 모진 데가 없고 두릿하니 퍽 후덕하여 보이는 얼굴이다.
이 모친 강씨의 얼굴을 그대로 그려논 것이, 문앞 바로 중처럼 회색물 들인 솜바지 저고리를 푸석하니 입고 앉았는 맏아들 원희다.
사철 햇볕과 비와 바람 속에서 흙을 주무르며 사는 사람이라, 살결은 늙은 바위처럼 검고 거치나, 너부릇한 얼굴이며 유순하디유순한 눈이 지극히 마음씨 착하고 원만스러 보인다.
1932년 무렵에 전주 농업학교를 마치고, 한 삼 년 농사시험장의 기수(技手)를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와 이래 십오 년 착실한 농민으로써 흙에 묻혀 지나고 있었다.
약간의 자작답(自作畓)과 소작답을 부치면서, 일변 밭을 가지고 여러가지로 채소농사를 하여 시내에다 먹히고 하였고, 이 근년은 이 채소농사가 오히려 본업이 되다시피 하였다.
원희 아래로 동생 문희(文熙)와 누이동생 숙희(淑?)가 있으나, 문희는 의사로, 시내에서 병원을 내고 따로 나서 살고 있고, 숙희는 출가를 하였고 해서 그 둘은 시방은 이 집의 원식구는 아니었다.
방안에는,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할머니와 강씨와 원희와, 이런 어른들 말고 저의 어머니를 떨어져 저희 조모 강씨와 함께 이 큰방에서 자고 놀고 하는 원희의 어린 놈 철수(喆洙)와 경수(敬洙)가, 이놈들 역시 세쨋집처럼 초저녁부터 벌써 여기저기 함부로 나가떨어져, 한잠이 들었다.
이 달(11월 ─ 1948년) 초생에 집을 나가 한 달이 되어오도록 소식이 없는 세쨋집의 관희(觀熙)에 대하여, 두루 걱정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던 끝이었다.
방안은 잠깐 말이 끊기고, 묵묵한 가운데 강씨와 원희가 피우는 담뱃대에서 수심인 양 연기만 고요히 피어오른다.
푸뜩 할머니가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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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
도서정보 : 채만식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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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인형의 집을 나와서」·「탁류」·「레디메이드 인생」 등을 저술한 채만식이 심청전을 각색한 미완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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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괴담회
도서정보 : 전건우 | 2021-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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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포소설의 장인 전건우의 괴담집
# 일상과 환상이 뒤섞인 17개의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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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외출 1
도서정보 : 김중석 | 2021-06-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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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삶의 한없는 무게로 침목에 지혜로 본 한순간이기 때문에 매일 새
롭게 늘 행복했던 것이었다. 책임을 등에 업고 가야 하는 자식도 없는 사
이 뒤돌아서면 남이 되는 부부관계다. 13년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아내에게 선택받은 자신이 가슴 아프고 괴로워도 아내에게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인생이 살면서 뭔가는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고민은 길
지만 선택은 아주 짧았었다. 돈으로 모든 거 다 살 수 있어도 지나간 세월
을 살 수 없듯이 한 집안에서 서로 많은 걸 공유해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증오심도 없는 사랑이 존재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듯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나 보다.
한 순간 한 순간 지나가는 세월에 만족하며 애욕 찬 욕심으로 거물에 걸리
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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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외출 2
도서정보 : 김중석 | 2021-06-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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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삶의 한없는 무게로 침목에 지혜로 본 한순간이기 때문에 매일 새롭게 늘 행복했던 것이었다. 책임을 등에 업고 가야 하는 자식도 없는 사이 뒤돌아서면 남이 되는 부부관계다. 13년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아내에게 선택받은 자신이 가슴 아프고 괴로워도 아내에게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인생이 살면서 뭔가는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고민은 길지만 선택은 아주 짧았었다. 돈으로 모든 거 다 살 수 있어도 지나간 세월을 살 수 없듯이 한 집안에서 서로 많은 걸 공유해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증오심도 없는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듯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나 보다. 한 순간 한 순간 지나가는 세월에 만족하며 애욕 찬 욕심으로 거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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