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난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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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어떤 날 황혼이었다.
목포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밤차는 호남선 송정리역(松汀里驛)에 닿았다.
고요한 시골 산천을 울리는 차 바퀴 소리가 뚝 그치자 뒤이어 내리는 손님, 오르는 손님들로 하여 쓸쓸하던 시골 역은 들썩하였다. 들썩한대야 서울 정거장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리는 장날이나 그렇지 않으면 명절 때밖에 사람의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골이라 매일 몇 차례씩 들레게 되는 정거장은 참말 위태하고도 복잡한 곳이었다.
이삼 분 되나 마나 해서는 들레던 물결도 고요하여졌다. 그때는 오를 사람은 다 오르고 내릴 사람은 다 내려서 출구 밖으로 나온 때였다. 인제 들리는 것은 기관차가 뿜어내는 김 소리와 역부들이 외치는 미미한 소리였다.
그것은 극히 미미한 소리였다. 기관차의 숨소리에 위협을 받았는지 사람의 소리는 소리로서의 아무 효력도 보이지 못하였다. 다닥다닥 잇닿은 차장으로 들여다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들은 보는 사람의 눈에 많은 존재를 비추어 주지만 그것도 딱 버티고 길게 늘어진 엄연한 차체의 존재에 대면 역시 미미한 존재이었다.
이 존재가 다시 김을 뽑고 하늘에 뻣뻣이 그은 굴뚝으로 검은 연기── 불꽃이 섞인 검은 연기를 심술궂게 뿜으면서 지나간 뒤의 정거장은 여전히 쓸쓸하였다. 좀 과장하여 말하면 십 리에 하나 되나 마나한 장명등 불빛은 점점 흐려 가는 대지를 꿈같이 비췰 뿐이었다. 그러나 찍혀 눌렸던 모든 것은 숨을 내쉬는 것 같다.
땅거미 점점 짙어가서 먼 산 산날이 하늘가에 물결같이 보이면서부터 봄은 봄이나 그저 겨울 기운이 남아 흐르는 하늘에는 별들이 가물가물 눈을 떴다.
인제는 스쳐가는 실바람에 갈리는 보리싹의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플래트폼’과 역실에서 어물거리는 사람들까지도 고요히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흐뭇이 지친 끝에 솜같이 부드럽고 푸근한 안정을 바라는 고요함이었다. 그러나 또 미구에 굉굉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 그 엄연한 기계는 그네들에게 그네들이 바라는 안정을 허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 지금의 사람들은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기계로 말미암아 한평생의 안정을 잃는 것이요 자칫하면 목숨까지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운명을 저주하고 또 운명을 믿는 것을 보면 가긍하고도 우스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다.
그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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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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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에 기우는 쌀쌀한 초가을 볕은 ×잡지사 이층 편집실 유리창으로 불그레 흘러들었다.
“오늘은 끝을 내야지……. 오늘도 끝을 안 내주면 어떡한단 말이오?”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길죽한 김은 불도 피우지 않은 난로 앞에 서서 가는 눈을 심술궂게 굴렸다.
“글쎄 어째 대답이 없소?”
저편 남창 앞에 놓인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최는 김의 말을 부축하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동창 아래 책상에 기대여 앉은 주간을 건너다보았다. 뚱뚱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키를 가진 주간은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피우면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보 주간 영감!”
퉁명스러운 굵은 소리로 부르는 것은 입술이 두터운 강이란 사람이었다.
그 소리에 주간은 슬그머니 머리를 돌려서 강을 건너다보았다. 김이 서 있는 난로 앞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던 강은 신문축을 저편 책상 위에 홱 집어던지면서,
“그래 우리 소리는 개소리오? 왜 대답이 없소?”
하고 주간을 뚫어지게 건너다보았다.
“입이 붙었어요?”
가는 눈으로 강과 같이 주간을 건너다보는 김의 소리는 빈정대는 듯하였다.
“하하하.”
주간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입을 커다랗게 벌려서 웃었다.
“입은 안 붙었군! 웃는 걸 보니 힝.”
하고 김이 빈정대는 바람에 최와 강도 벙긋하였다. 그러나 주간의 두 눈은 실룩하여졌다.
“그렇게 웃으면 만사가 편할 줄 아시오? 당신은 배가 부르니 웃음이 나지만…….”
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은 주간의 앞으로 의자를 끌면서,
“그래 어떻게 작정인지 어서 요정을 내야지 인제는 우리도 더 참을 수가 없는데요!”
하는 소리는 좀 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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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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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는 오늘 아침에 여느 때보다 한 시간 가량이나 일찍 출근하였다. 그가 사에 들어선 때는 아홉시 오 분 전이었다. 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이렇게 일찍 출근한 것은 일을 일찍이 마치고 오후 세시에 영도사로 나가려는 까닭이다. 어떤 친구가 오늘 오후에 영도사에서 생일 턱을 한다고 어젯밤에 박인화도 청하였던 것이다.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아침 햇발은 벌써부터 더위를 몰아붓는다. 그는 창을 열어 놓고 문장(門帳)을 내린 뒤에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어제 보다 남은 원고와 준장(準張)을 끄집어내 놓고 부지런히 붓질을 하였다.
그가 이렇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층층다리로 쿵쿵 올라오는 자취 소리가 들린다. 빠르고 둔탁한 것은 사환애의 발소리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가 앉은 맞은편 문이 열리면서 디미는 것은 아니나다를까, 검데데하고 기름한 사환 애의 얼굴이었다. 방바닥을 쓸고 책상들을 닦아 놓은 것을 보아서는 벌써 왔다가 어딘지 나갔던 것이다.
“너 어디 갔던?”
박인화는 사환의 인사를 받으면서 그를 치어다보았다.
“아침에 댁으로 누가 가시잖었에요?”
사환은 딴전을 부리면서 그를 치어다본다.
“안 왔어……. 누가?”
그도 의아한 눈초리로 사환애를 마주 바라보았다. 사환애는 저편 테이블 위에 놓은 종이 조각을 집으려고 그편으로 몸을 주면서,
“아까 누가 선생님댁 번지를 묻고 길까지 물어 보는뎁시요.”
하더니 집은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백…… 백영훈씨라는…….”
“어디 보자…….”
그는 사환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이가 오셨든?”
그는 받아든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서투른 연필 글씨로 휙휙 ‘백영훈’이라 쓰고 또 그 옆에 ‘최일천’이라 썼는데 그 이름 아래에 죽을 사(死)자만은 한문으로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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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저녁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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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순간 뒤에 노자작의 노염에 불붙는 눈은 휙 돌아와서 아들의 얼굴에 정면으로 부어졌다.
“네게는 ― 네게는 ―.”
노염으로 말미암아 노자작의 숨은 허덕였다 ―.
“네게는 아비가 그렇듯 노쇠해 뵈더냐!”
일찌기 호랑이 같은 재상으로서 선정(善政)에 학정에 같이 그 이름을 울리던 노자작의 면목은 여기서 나타났다. 얼굴은 누렇게 여위었지만 거기서 울려나오는 음성은 방을 드렁드렁 울리었다.
다시 흥분해 가는 아버지의 앞에 두식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창황하여 할 때에 아버지는 다시 고함쳐서 저편 방에 있는 충복 왕보를 불렀다.
“야. 왕보야 ― 왕보야 ―.”
충실한 왕보였다. 비록 잘 때라도 주인에게 대한 주의는 끊치지 않고 있던 왕보는 주인의 부름에 곧 이 방으로 달려왔다. 그 왕보에게 향하여 노자 작은 마치 어린애같이 자기의 처지를 호소하였다.
“왕보야. 나는 좀 자고 싶구나. 그런데 이 ― 이 ― 이 사람이 귀찮게 굴어서 잘 수가 없다. 날더러 노쇠했다는구나. 날 제발 좀 자게 해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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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평 성충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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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으로서 제31대 의자왕에게 국운이 위태로워짐을 간언하다 투옥된 성충을 묘사한 김동인의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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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동생을 따라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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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가 해운대를 배경으로 창작하여 1930년에 『신민』에 발표한 단편 소설. 서술자가 해운대에서 단소 부는 남자를 만나, 그의 사연을 들으면서 죽음까지 서술하는 액자 형식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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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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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일에도 흥미를 갖고 즐기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불쾌한 일이 있으면 서로 위로하는 것으로 일상의 번뇌를 잊고 살아가는 소시민의 근대적 가정 분위기를 소상하게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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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류
도서정보 : 최서해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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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강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이따금 뜰가 수수밭을 우수수 스쳐간다. 마당 가운데서 구름발같이 무럭무럭 오르는 모깃불 연기는 우수수 바람이 지날 때마다 이러저리 흩어져서 초열흘 푸른 달빛과 조화되는 것 같다.
벌써 여러 늙은이들은 모깃불가에 민상투 바람으로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끝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주인 김 서방은 모깃불 곁에 신틀을 놓고 신을 삼는다. 김 서방의 아들 윤길이는 모깃불의 감자를 굽는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가물과 장마를 걱정하고 이른 새벽 풀끝 이슬에 베잠방이를 적시면서 밭에 나갔다가 어두워서 돌아와 조밥과 된장찌개에 배를 불리고 황혼달 모깃불가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네에게는 한 쾌락이다.
“날이 낼두 비 안 오겠는데.”
수염이 터부룩하고 이마가 훨렁 벗어진 늙은이가 하늘을 치어다보면서 걱정하였다.
“글쎄, 지냑편에는 금시 비올 것 같더니 또 벳기는데…….”
서너 살 되었을 어린애를 안고 앉아서 김 서방의 신삼는 것을 보던 등이 굽은 늙은이는 맞장구를 치면서 하늘을 보았다.
퍼렇게 갠 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리었고 군데군데 별이 가물거렸다.
“보리 마당질할 생각하면 비 안 오는 것두 좋지마는 조이와 콩 다 말라죽으니……. 참 한심해서.”
하는 이마 벗어진 늙은이의 소리는 타 들어가는 곡식이 안타까운지 풀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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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개정)
도서정보 : 박완서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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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연작 자전소설
“지금 다시 박완서를 읽다”
2021년은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꼬박 10년이 되는 해다. 그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박완서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연작 자전소설 두 권이 16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생전에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는 모두 출간된 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소설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이자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독자들의 끊임없는 애정으로 ‘160만 부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 두 권은 결코 마모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한 고(故) 박완서 작가를 형상화한 듯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모티프로 재탄생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연작 자전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로,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 보낸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를 그리고 있다.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1930년대 개풍 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더불어 작가가 1940년대 일제 치하에서 보낸 학창 시절과 6·25전쟁과 함께 스무 살을 맞이한 1950년 격동의 한국 현대사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향 산천에 지천으로 자라나던 흔하디흔한 풀 ‘싱아’로 대변되는 작가의 순수한 유년 시절이 이야기가 전개되어갈수록 더욱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아름다운 성장소설로, 박완서 문학의 최고작이라 일컬어진다.
구매가격 : 9,000 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개정)
도서정보 : 박완서 | 2021-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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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연작 자전소설
“지금 다시 박완서를 읽다”
2021년은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꼬박 10년이 되는 해다. 그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박완서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연작 자전소설 두 권이 16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생전에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는 모두 출간된 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소설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이자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독자들의 끊임없는 애정으로 ‘160만 부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 두 권은 결코 마모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한 고(故) 박완서 작가를 형상화한 듯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모티프로 재탄생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의 연작 자전소설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치던 스무 살 박완서의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작중 주인공 ‘나’가 스무 살의 성년으로 들어서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 성년의 삶을 그려낸 이 소설은 공포스러운 이념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도 생명과 삶에 대한 갈망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뒤틀린 이념 갈등 아래 삶의 공간을 생생하고도 눈물겹게 그려낸 이 작품은 미완으로 끝났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작이며,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으로 남아 있다.
구매가격 : 9,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