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

도서정보 : 채만식 | 2021-01-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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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라디오의 지하선을 비끄러매놓고 나니, 그럭저럭 대강 다 정돈은 된 것 같았다.
책장과 책상과 이불 봇짐에, 트렁크니 행담 등속을 말고도, 양복장이야 사진틀이야 족자야 라디오 세트야, 하숙 홀아비의 세간 치고는 꽤 부푼 세간이었다. 그것을 주섬주섬 뒤범벅으로 떠싣고 와서는, 전대로 다시 챙긴다, 적당히 벌여놓는다 하느라니, 언제나 이사를 할 적이면 그러하듯이, 한동안 매달려서 골몰해야 했다.
잠착하여 시간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비로소 푸욱신 붙여 물고 맛있이 내뿜으면서, 방 한가운데에 가 우뚝 선 채, 휘휘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칸반이라지만 집 칸살이 커서 웬만한 이칸보다도 나았다. 웃목으로 책장과 양복장을 들여세우고, 머리맡으로 책상을 놓고, 뒷벽 중간쯤다가 행담과 트렁크를 포개서 이부자리를 올려놓고 했어도, 홀몸 거처엔 별반 옹색치 않을 만큼 방은 넓었다.
반자, 도배, 장판 일습이 집주름 영감과 주인집 마나님 말따나 파리똥 한 점 앉지 않고 정갈했다. 여름을 치른 벽이라도, 빈대피는 물론 곰팡이 슨 자죽도 없었다.
십상 잘 되었다고 다시금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러자 방안이 별안간 화안히 밝아졌다. 돌려다보니, 서향인 듯싶은 앞 쌍창으로 마침 끄물거리던 구름이 벗어진 모양, 햇볕이 가득 들여쬐었다. 장차 명년이나 가면 여름이 더울는지는 몰라도, 당장 이 가을과 겨울 동안 해가 잘 들겠어서 또한 신통하고 반가왔다.
해는 잘 들고, 방은 넓고 깨끗하고, 보매 집안도 안팎이 정사하고 겸해서 조용하고, 아무려나 모처럼(그도 우연한 기회에) 좋은 하숙을 얻은 것이 재삼 만족했다.
그새까지 유하고 있던 원동의 하숙을 불시로 옮아야 할 사정이 생겨서 두루 물색을 했으나, 우환중에 방이 귀한 이 당철이라, 조만하여 마차운 자리가 눈에 뜨이질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제는 저 앞 큰거리를 지나던 길에 허실삼아 복덕방 영감더러 문의를 했더니, 선뜻 데리고 와서 보여준 것이 이 집 이 방이었다.
마침 한 동네 이웃간이요 해서 내정을 익히 아는데, 서른두엇은 된 젊은 여인과 육십 넘은 친정어머니와 모녀 단둘이 살고, 영감은 그 여자를 첩으로 얻어 두고서 며칠만큼씩 밤이면 다녀가곤 하여, 참 절간같이 조용하니라고, 또 방 널찍하고 사람들 쌩패스럽지 않고 음식 솜씨 좋고, 무어 점Ÿ痔?하숙으로는 깍아마췄느니라고. 한갓 흠이, 식가를 오십 원씩이나 내라고 해서 좀 안되었지만, 그 대신 그 값이 거기 있느니라고.
앞을 서서 아기족거리고 걸어가면서 집주름 영감이 연해 이렇게 주워섬기며 추어 넘기며 하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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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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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신성하다.〉
이러한 표어 아래 A가 P고무공장의 직공이 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자기의 동창생들이 모두 혹은 상급학교로 가고 혹은 회사나 상점의 월급장이가 되며, 어떤 이는 제 힘으로 제 사업을 경영할 동안, A는 상급학교에도 못 가고 직업도 구하지 못하여 헤매다가 뚝 떨어지면서 고무공장의 직공으로 되었다.
〈노동은 신성하다. 〉
〈제 이마에서 흐르는 땀으로 제 입을 쳐라. 〉
〈너의 후손으로 하여금 게으름과 굴욕적 유산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라.〉
이러한 모든 노동을 찬미하는 표어를 그대로 신봉한 바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직공이라는 그룹에서 그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일종의 승리자와 같은 기쁨을 그의 마음 속에 깨달았다. 그것은 사회에 이겼다느니보다도, 전통성에 이겼다느니보다도, 한번 꺾여지면서 일종의 반항심보다도, 자기도 이제는 제 힘으로 살아가는 한 개 사람이 되었다는 우월감에서 나온 기쁨이었다.
「우으로 ?우으로.」
생고무를 베어서 휘발유를 바르며 흑은 틀어 끼워서 붙이며 이제는 솜씨 익은 태도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는 때때로 소리까지 내어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공장에 들어와서 한 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에 그는 여기서 움직이는 온갖 게으름과 시기와 허욕을 보았다. 힘을 같이하여 자기네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할 이 무리의 사이에도 온갖 시기와 불순한 감정의 흐름을 보았다. 남직공들이 지은 신은 비교적 공평되이 검사되었지만, 여직공이 지은 신은 그의 얼굴이 곱고 미움으로 〈합격품〉과 〈불량품〉의 수효가 훨씬 달랐다. 생고무판의 배급에도 불공평이 많았다. 서로 남의 신을 깎아먹으려고 서로 틈을 엿보았다. 자기가 일을 빨리 하기보다 남을 더디게 하기에 더 노력하였다. 흑은 남의 지어 놓은 신을 못 보는 틈에 자리를 내어놓는 일까지 흔히 있었다. 점심 시간에는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음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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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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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연하여 흘렀다.
〈고꼬와 미꾸니 노 난 바꾸리〉
가 낡아지고,
〈카츄샤가와 이야〉
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고꼬와 죠셍 호꾸단노니 하꾸리아마리노 오오록 고〉
가 각 곳에서 들렸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는 동안, ○○골 안의 오학동과 정방도 이전과는 그 지위가 온전히 반대로 되어 버렸다.
관리에 등용된 정방 자식들이 그새 이백여 년을 자기네의 조상이 받은 수모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하여 오학동에 대하여 가한 압박 때문에 (수리라 측량이라 양잠이라 세금이라), 마치 술집 회계비와 비슷한 헤일 수 없는 명목으로 착취를 당한 오학동은 지금은 몇몇 집이 겨우 자활을 하는 뿐, 대개는 모두 땅을 정방 종의 자식에게 팔아 버리고, 그래도 굶어 죽을 수는 없어서 이전에 종의 자식이라고 그렇게도 멸시를 하던 정 방 사람들의 소작인으로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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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 밤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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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창피창피 한대야 나 같은 창피를 당해 본 사람이 있겠나.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도 부끄러울세.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창피는 다시 한번 당해 보고 싶기도 하거든.
이야기할께. 들어 보게.
오 년 전 ― 육 년 전 ― 칠 년 전인가. 어느 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혈기 하늘을 찌를 듯하던 젊은 시절일세그려. 지금은 벌써 내 나이 삼사십.
얼굴에는 트믄트믄 주름자리까지 잡히었지만 이 주름자리도 없던 젊은 시절.
절기는 봄날. 우이동 창경원에 벚꽃 만개하고 사내계집 할 것 없이 한창 바람나기 좋은 절기일세그려. 얌전하던 도련님 색시들도 바람나기 쉬운 봄철에 그때 장안 오입장이로 자임하고 있던 이 대감이 가만 있겠나. 비교적 수입도 좋것다. 허위대 풍신 언변 남한테 빠지지 않고 시조 한 마디 가야금 한 곡조도 뽑아 낼 줄 알고 경우에 의해서는 호령마디도 제법 할 줄 알고 ― 장안 오입장이로는 그다지 축가는 데가 없던 대감일세그려. 그 위에 여관 생활하는 자유로운 몸이것다. 친구놈들도 모두 제법 한몫씩은 보는 놈들이것다.
― 이런 이 대감께서 말일세. 그 어떤 와류생심하고 ― 아니 이러다가는 교외정조가 나겠네. 도회풍경으로 사꾸라 만개하고 창경원에 야앵구경의 바람장이들이 몰려가는 날 몇몇 친구를 짝해서 한바탕 어디서 답청(踏靑)을 잘했다고 하세.
돌아오는 길일세. 친구놈들은 제각기 기생집으로 갈 놈은 기생집으로 가고 여편네 궁둥이를 찾아갈 놈은 제 집으로 가고 대감은 기생집도 그날 따라갈 생각도 없고 해서 여관으로 향했네.
밤도 자정은 지난 때. 야앵구경 갔던 연놈들도 모두 음란한 자리 속으로 바야흐로 들어갈 시간에 이 대감께서는 아주 호젓한 마음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여관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옥보를 옮기고 있지 않았겠나. 어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길 모퉁이를 돌아설 때일세그려. 웬 계집애와 탁 마주쳤네그려.
물론 예의를 차리는 이 대감이 사과를 했지. 고멘나사이(ごめんなさい ― 용서하십시오) 하고. 그러고는 그냥 지났지. 지나고 생각했네. 여기는 북촌이다, 북촌의 대로도 아니요 골목이다. 이 북촌 골목에 웬 남촌 계집애가 단 혼자서 그것도 자정이 지난 이 때에 방황하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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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도서정보 : 김동인 | 2021-01-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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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정성도 하늘은 몰라보았다. 어린애는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 마침내 가망이 없이 되었다. 은희가 십수 년 전에 어린 동생 만수의 최후에서 본 바의 현상― 답답한 듯이 헤적이던 온갖 행동을 멈추어 버리고 비교적 평온하고 온화한 모양― 을 은희가 필립에게서 발견한 것은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이었었다.
사흘을 미음만 조금씩 먹어 가면서 한잠을 자지를 않고 다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병간호를 한 은희는 이 날은 벌써 자기로도 자기에 대한 온 판단력을 잃은 때였었다. 아직껏 답답함에 못이겨서 헤적이던 어린애가 비교적 평온하게 될 때에 은희는 인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뿐 그냥 움직이지 않고 그 모양대로 앉아 있었다. 비교적 평온한숨을 규칙 바르게 쉬는 어린애의 얼굴을 때때로는 안개를 격하여 보는 듯이 때때로는 비상히 똑똑히 ― 바라 보면서 앉아 있는 은희의 머리는 각일각 나락의 밑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세상 만사가 모두 중하고 의미 없고 흐리멍덩한 가운데서 이리 바뀌고 저리 뒤채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가 짝이 없었다.
“만수야 너 필립하고 싸우지 마라.”
여기서 한 번 펄떡 정신을 차렸던 은희는 무릎을 조금 움직일 뿐 다시 어렴풋이 어린 필립을 내려다보았다.
즉 필립의 주위에는 불이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불이었었다. 시뻘겋게 불 붙는 가운데 필립의 얼굴만 두드러지게 나와서 답답한 듯이 양손을 헤적이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필립의 주위에 있는 불은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온갖 것을 다 사르려는 듯이 맹렬히 타올랐다. 필립의 옷에도 불이 당긴 모양이었었다. 몸이며 사위(四圍)를 온통 불에 둘러싸인 필립은 머리와 양손만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누구를 찾는 듯이― 틀림없이 어머니를 찾는 듯이 헤 적였다. 은희는 사랑하는 아들을 그 무서운 불에서 구하려고 맹연히 어린아 이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는 새빨간 처네이불을 손으로 쓸어안았다. 그 가 시뻘건 불이라 본 것은 전등에 반짝이는 비단 처네였었다.
필립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오래간만에 웃음의 그림자가 있었다. 일 주일 내외에 무섭게 여윈 필립은 그 여윈 뺨에 주름을 내며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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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도서정보 : 이상권 | 2021-01-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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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영화, 드라마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오천 년 희로애락을 함께한 신들의 이야기
중고등 국어교과서 수록작가와 함께 읽는 우리 신화

예전에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신으로 모셨다? 생태와 환경을 고찰하는 글로 교과서에 여러 작품이 수록된 이상권 작가가 이번에는 한국 신화 이야기를 선보인다. 『신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오천 년간 우리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신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청소년 인문서다.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산신령부터 왕으로 모셔진 외국인 관우신까지. 조상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담긴 한국 신화는 먼 무덤 속이나 오래된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웹툰으로 시작해 영화로 제작된 [신과 함께]를 비롯해 [도깨비]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등 드라마, 게임까지 여러 모습으로 변해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알아도 한국 신화는 잘 모르는 청소년들을 위해 저자는 스토리텔링 형식을 빌렸다. 이모와 아이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본문은 독자들이 한국 신화를 한결 더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민화나 옛 사진 등 시각 자료가 풍부하게 첨부되어 있어 직접 눈으로 보며 신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리 조상이 믿고 의지해 온 수많은 신들은 비록 작은 경전 하나 없지만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준 고마운 존재다. 조상들과 함께 살아온 이 신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의 또 다른 역사이자 문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9,100 원

영달동 미술관

도서정보 : 피지영 | 2021-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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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11명의 위대한 화가와 21편의 명작!
그들이 캔버스에 포착한 순간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선물이다

위대한 화가들이 남긴 명화(名畵)를 감상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그는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왜 저 그림을 보고 있는 나는 감동을 느끼는가?’, ‘화가들이 포착한 장면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좋은 그림은 그 그림과 화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마음에 와닿는다. 화가들이 포착한 생의 한 순간과 세상의 단편들이 인류의 보편적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은 개개인이 가진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에도 말을 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환]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그 그림과 마주하고 있다.

『영달동 미술관』은 ‘미술 소설’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화가와 그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고흐, 라울 뒤피, 마코프스키, 시시킨, 베르메르, 브뤼헐, 일리야 레핀, 렘브란트, 라파엘로, 모딜리아니, 밀레와 그들의 그림은 뛰어난 조연으로 등장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낙담하고, 한때의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부적절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영달동 주민들은 위대한 화가들이 그림 속에 숨겨 둔 메시지와 의미를 찾아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경험한다. 이 책의 원고를 단숨에 읽어 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영달동 미술관에 가면 오래전 마음의 상처, 고통, 번민, 죄책감투성이의 ‘나’를 만나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이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고 덧붙인다. 미술을 소재로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전개하면서도 이 소설이 상처 입은 현대인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이유는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최초의 목적이 ‘위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앞서 던진 처음의 질문들에 『영달동 미술관』의 방식으로 답을 해보자. ‘위대한 화가들이 남긴 그림이 말을 거는 대상은 이 책을 펼치는 바로 ’당신‘이다.’

구매가격 : 10,000 원

조선가인살롱

도서정보 : 신현수 | 2021-01-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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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두 소녀, 메이크업으로 통하다!
클렌징폼 대신 팥가루, 스킨토너 대신 미안수
21세기 소녀 강체리의 조선 효연 공주 구하기
『조선가인살롱』은 어느 날 갑자기 조선으로 타임 슬립한 21세기 소녀 체리가 현재로 되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미션을 수행하며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막힘없이 전개되고, 십대 소녀처럼 통통 튀는 유쾌한 문체와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닮아 ‘오리지널 조선 미녀’로 불리는 강체리.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체리는 자신 없는 외모를 성형 화장으로 감추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품 가게에서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깜깜한 터널이 펼쳐졌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니 황당하게도 조선에 와 있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스스로 임무를 찾아내서 1년 안에 완수해야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체리는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로 실어증에 걸린 효연 공주를 만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공주마마 말문 열기’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공주는 무슨 이유인지 체리를 심하게 거부하기만 하는데……. 체리는 과연 효연 공주의 마음을 열고 21세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구매가격 : 9,100 원

상경반절기

도서정보 : 채만식 | 2021-01-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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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저러고 어째서 이렇게 부지를 못하게 짜증이 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요새로 바싹 불면증이 더 도져 연일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더욱이 간밤에는 한눈도 붙여보지 못한 채 누워서 밝힌 터라, 신경이야 많이 까스라와졌겠지만 그렇기로니 무슨 그다지 뼈아플 까닭은 있으며, 어제 오늘 비로소 눈 거슬린 꼴이라고. 신경인들 또한 어제 오늘 비롯한 병이라고.
분명코 오랫동안 자극없이 한적하던 칩거생활로부터 별안간 이 소란하고도 정갈치 못한 분위기 속엘 들어온 탓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대로 더 심해 가다가는 죄없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지 싶다. 시방이라도 누구 톱톱한 상대나 있던지 하여 한바탕 실컷 좀 몰아 대주고 구박을 주고 했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으니.
그러나 그도 실상은 마음뿐이지, 공연한 기염이다. 그러한 경우를 당해 놓으면, 첫마디부터 흥분을 해가지고 침착을 잃는다. 자연 말을 함부로 하고서 되잡혀서는 뒷감당을 못한다. 결과는 망신만 번연하다.
이번 걸음일랑 차라리 작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만 같지 못할까 보다.
집에는 아내가 있다. 언제고 화풀이를 잘 받아준다. 아내면은 경우와 조리가 빠져도 위격으로 해넘길 수가 있어서 더욱 좋다.
마침 트집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겠다는데 저는 어제 아침에도 부중엘 들어갔더니 여럿이들 입었더라면서 우겨서 스프링을 입혀 보냈다. 정거장에 와서 본즉 스프링을 입은 사람이라곤 설렁하니 나 하나뿐이다.
추워서 도로 왔다고, 그리고 무얼 다 아는 체를 하더니 생으로 촌 쟁퉁이 구실을 시키느냐고 얼마든지 잡도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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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달

도서정보 : 채만식 | 2021-01-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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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달이 아들 내외가 , 그대도록 만류하는 것을 듣지 않고, 분에 넘치는 호강도 다 마다하고 부득부득 고향으로 내려가기로만 고집을 세우는 것은, 이유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강선달은 미상불 자기 말따나, 농사라든지 집안 살림이라든지가, 두루 마음이 뇌지 않았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이라면야, 가령 농사만 하더라도, 인제는 가을걷이밖에 남지 않았으니, 웬만큼 자기가 아니더라도 큰 손자가 영호가 저 혼자서 넉넉 해치울 수가 있었다.
또, 방금 며느리가 하던 말대로 어서 내려가서 일이 하고 싶어서……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단순히 일이 하고 싶어서만 어서 바삐 내려가지를 못해 앨 쓰는 것도 또한 아니었다. 아무리 일이 하고 싶어도 손발이 저리기로서니 한가을쯤 그걸 못 참을 바 없지는 않았다.
갑갑하다는 거도 일반이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거의 하루같이, 아침 어둘녘부터 온종일 날이 저물도록 들에서 살던 영감이다. 넓은 들에서 넓은 하늘 아래서, 활개를 펴고 맘대로 호흡하며 맘대로 일하고 살던 영감이다. 그리던 영감이 하루아침, 이 옹색스런 속에 와서 들박혀 있으려니 응당 갑갑증이 날 노릇이었다. 뜰이라야 두 걸음만 걸으면 세 걸음째는 앞 판장이 이마에 가부딪친다. 좌우는 이웃집 뒷벽이 답답히 가슴을 누른다. 하늘은 처마와 처마 사이로 손바닥만큼 올려다보인다. 하루의 태반을 좁고 더운 방구석에서 누웠다 앉았다, 서성거렸다 해야 한다. 강선달은 그래서, 이건 바로 전중이 살기보다 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암만 그렇더라도, 꾸욱 참고 견디자고 들면야 결단코 못할 것은 아니었다. 이 밖에도, 구실은 얼마든지 많이 있었다. 시골로 내려가겠단 말이 날 적마다 번번이 이유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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