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9 이상
도서정보 : 이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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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맞닥뜨린 식민지 조선 당대의 기념비요 자화상 역할을 하는 이상의 소설과 시, 그리고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천재’와 ‘광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 이상은 자유연상, 자동기술, 내적 독백 등의 실험적 구성과 문체로 식민지 근대와 그것에 촉발된 당대인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저자소개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애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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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4 이익상
도서정보 : 이익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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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익상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동인지 「폐허」와 「동경 조선인유학생회 학우회」를 통해 활동하였던 그의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본명은 윤상. 전주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보성중학교를 거처 일본대학 사회학과로 유학했다. 체일기간 중 동인지 『폐허』레 추가 합류하는 한편 "동경 조선인유학생회 학우회"의 기관지 『학지광』의 편집부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이익상은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학예부장,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문학외의 예술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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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5 이인직
도서정보 : 이인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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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의 포문을 연 <혈의 누>외에도 <귀의 성>과 <은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너무적다. 그러기엔 신소설의 가치가 너무나도 크다. 이제 이 작품집으로 우리 문학의 신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이인직 작가는 친일파로, 1862년 경기도 음죽군 거문리에서 태어났다. 1900년 대한제국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 후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1903년 마야코 신문 견습생으로 근무하여 일본어 소설 『과부의 꿈』을 발표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 소속 한국어 통역으로 발탁되어 종군했다. 친일단체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의 발간을 주도하고,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만세보에 『혈의 누』『귀의 성』을 연재했다. 이듬해 재정난에 빠진 만세보를 인수하여 대한신문으로 개제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08년 원각사에서 『은세계』를 창극 형식으로 공연하였으며, 『귀의 성』을 중앙서관에서, 『치악산』을 유일서관에서 발간하였다. 이후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이완용의 밀사 자격으로 일본을 내왕하였다. 1911년 경학원의 사성으로 임명되고 『경학원잡지』의 편찬과 발행을 맡았다. 1913년 『혈의 누』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다 중단하였다. 1916년 55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천리교예식으로 화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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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7 이해조
도서정보 : 이해조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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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탈과 봉건주의의 모순에 시달렸던 일제강점기 시절, 반봉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시대의 모순과 대결했던 선각자 이해조의 문제의식 짙은 신소설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소개
저자 이해조 李海朝 (1869~1927)는 신소설 작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10대손으로 1869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19세에 과거 초시에 합격한 바 있으며 구한말 《제국신문》 기자, 대한협회 간부 등을 지내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권리 신장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08년부터 1912년까지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등의 신소설을 꾸준히 연재하여 발간했다. 1913년 매일신보사를 퇴사한 후 1927년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구매가격 : 8,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8 이효석1
도서정보 : 이효석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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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를 노골적인 표현보다 은근한 생태를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만든 화분, 분녀, 저자의 고향 산촌을 배경으로 한 짙은 향수를 풍겨주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대표적인 작품을 2권으로 구성하였다. 저자의 모든 작품에서 강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지방색이 짙은 어휘라든가 그로부터 발산되는 향토적 정서를 흐뭇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냄새 같을까. 언니.”
“백합 냄새 같지.”
“무엇 말인데.”
격에 맞지 않는 대답을 우습게 여기면서 형의 얼굴을 쏘아붙인다.
“네 얼굴 말야.”
“괴덕만 부리네. 누가 얼굴 말인가, 라일락 말이지.”
가까이 온 형이 얼굴을 꽃송이를 휘어 가볍게 갈기며,
“장미 냄새 같잖우.”
“글세.”
“꿀 냄새두 같구.”
“냄새두 잘은 맡어.”
“사향 냄새두 나구.”
“수다스럽다.……”
형은 꽃봉오리 하나를 뜯어서 코 끝에 대면서.
“바로 말하면 라일락 냄새는 몸 냄새라나. 잘 익은 살 냄새라나. 가진비밀을 다 가진 몸 냄새.……알겠니.”
“언니가 수다스럽지 누가 수다스러우.”
찔레순을 꺾으면 푸른 진이 빠지지 돋아난다. 그 진을 손가락 끝에 묻혀서 풀장난을 하는 미란의 팔을 세란은 문득 휘어잡았다.
“아깝다. 이 고운 몸을 날도적한테 뺏길 생각을 하면.”
“망령이 났나봐.”
“무르녹은 봉오리가 하룻밤 비에 활짝 피어 버린다는 게 슬픈 일이란다.”
“아저씨가 며칠 안 오더니 실성해진 모양이지.”
“결국 단주가 날도적이 될 테지.……선머슴 호박이 떨어졌어.”
(소설 <화분> 중)
저자소개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구매가격 : 27,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9 이효석2
도서정보 : 이효석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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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를 노골적인 표현보다 은근한 생태를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만든 화분, 분녀, 저자의 고향 산촌을 배경으로 한 짙은 향수를 풍겨주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대표적인 작품을 3권으로 구성하였다. 저자의 모든 작품에서 강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지방색이 짙은 어휘라든가 그로부터 발산되는 향토적 정서를 흐뭇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냄새 같을까. 언니.”
“백합 냄새 같지.”
“무엇 말인데.”
격에 맞지 않는 대답을 우습게 여기면서 형의 얼굴을 쏘?
구매가격 : 16,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1 장지연
도서정보 : 장지연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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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 張志淵 )이 역술한 전기소설. 원작명은 미상이다. 1907년 광학서포(廣學書 孃 )에서 발간하였다. 표지에 ‘ 신소설 ’ 이라고 규정한 이 작품은 전10회로 되어 있으며, 잔다르크의 구국전사(救國戰史)를 중심으로 하여 그 생애를 전기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번안은 중국문헌을 매개로 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그런 보기를 인명표기에서 볼 수 있다. 곧, ‘ 카알 7세 ’ 를 ‘ 사이 뎨 칠 ’ 로 번역한 것 같은 예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다르크가 백년전쟁 때에 16세의 나이로 영국군의 포위를 뚫고 앞장서서 오를레앙성(城)을 탈환하고, 뒤에 영국군에 잡히어 화형(火刑)을 당한 사적을 전기소설로 엮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서구의 위인이며, 특히 구국의 영웅이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이는 역술가의 민족주의적 자보사상(自保思想)과 관련되는 것으로, 역사에 우의(寓意)하여 저항정신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장지연의 유일한 역술소설인 이 작품의 표지에 붙은 ‘ 신소설 ’ 이라는 용어는 독자를 혼란하게 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마도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국의 영웅숭배사상이 개화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일 것으로 사려된다.
저자소개
장지연 (1864년 ~ 1921년)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의 애국 계몽 운동가, 언론인. 본명은 장지윤. 아호는 위암(韋庵). 을사늑약 때에 쓴 반일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유명해졌지만 1914년 이후의 행적에는 친일 경력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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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2 정인택
도서정보 : 정인택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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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총력전 체제에 직면하여 국민문학으로 전향한 대표적 문인 정인택의 소설을 모은 작품집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서 박태원, 이상, 이태준 등과 교우하던 모던보이 정인택이 체제 협력적인 작품을 쓰면서 변모하는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정인택의 소설을 통하여 일제 강점기 총력전 체제하에서 국민문학을 수행한 전향 작가 정인택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1909년 9월 12일 서울 안국정에서 출생. 1927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동경으로 건너갔다. 1930년 1월 사회주의자의 좌절과 전향을 다룬 「준비」가 《중외일보》 현상공모 2등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 매일신보사에 입사하면서 박태원, 이상과 어울려 다녔다. 1939년 5월 매일신보사 학예부에서 문장사로 옮기면서 당시 편집장이었던 이태준과 함께 《문장》 편집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1940년 10월 문장사를 사직하고 매일신보사에 재입사하면서 일제의 문예정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45년 3월 22일 제3회 ‘국어문학총독상’을 수상하였다. 해방 후 정인택은 과거 자신의 과오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1950년 보도연맹에서 근무하였다. 그 후 전쟁의 동란 중에 부인과 세 딸을 데리고 월북했다가 1953년 북에서 사망하였다.
구매가격 : 6,8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3 정지용
도서정보 : 정지용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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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시의 자기전개 과정에서 정지용과 그의 시편들이 차지하는 역사적, 미학적 위상은 매우 견고하고 풍요롭고 또한 문제적이다. 그가 경도 유학생의 신분으로 참여한 『학조學潮』에 일찍부터 뛰어난 근대시를 발표한 시인이었다든가, 『시문학時文學』의 동인으로 참여할 때의 문단적 위치가 벌써 중진 그룹에 속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거나, 모더니즘의 인적 구심체였던 구인회의 핵심적 구성원이었다거나, 『문장文章』 그룹을 시 쪽에서 실질적으로 인도한 사람이었다거나 하는 화려한 문단사적 위치 말고도, 그의 시편들이 형성한 두터운 미학적 성층은 그로 하여금 한국 근대시사의 숱한 전범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성좌의 지위를 차지하게끔 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저자소개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백록담』『지용문학독본』등이 있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매년 5월에 지용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는 시와 시학사에서 정지용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구매가격 : 9,8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4 조기천
도서정보 : 조기천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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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한 시인 조기천. 어린 시절에 시베리아로 이주하여, 소년 시절부터 소련의 지방 신문이나 잡지에 짤막한 시를 발표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 아시아에 있는 조선사범대학 교원으로 근무하였고,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돌아와 조선신문사 문예부에서 활동하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북조선군 종군 작가로 참전하였다. 1951년 평양에서 미군의 폭격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47년에 발표한 서사시 《백두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혁명 사상’을 표현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소개
1913년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 촌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조기천의 출생지는 함경북도 회령으로,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0년 카자흐스탄 알마아따 작가 출판사에서 출판된 ≪시월의 해빛≫에 조기천의 약력이 1913년 스파스크 출생으로 명기되어 있고, 여러 증언 및 자료 등을 토대로 볼 때도 그의 출생지는 연해주 스파스크 촌인 것으로 확인된다. 17세에 스파스크 촌의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3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 조선사범전문학교에 입학해 1933년에 졸업했으며, 이 시기 ≪선봉(先鋒)≫ 신문에 첫 시 <파리꼼무나>(1930)와 더불어 <공격대원에게>(1931), <야외연습>(1932)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38년 7월 러시아 중(中)시베리아 옴스크 고리키 사범대학 러시아 문학부를 졸업하고 그해 9월부터 2년간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 시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서 세계문학사를 강의했으며, 1939년 8월 모스크바 종합대학 대학원에 파견되었으나 조선인은 일본 간첩이 될 수 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크슬오르다 시로 되돌아온다. 이후 대학의 교편 생활을 접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중앙아시아 고려인 신문인 ≪레닌기치≫에서 기자,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소련군에 지원 입대해 소련군 장교로 북한에 들어오게 되며, 소련군정 기관지인 ≪조선신문≫에서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문예총 작가 동맹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된다.
1946년 <두만강>을 필두로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북한의 토지개혁을 소재로 한 <땅의 노래>(1946), 항일 무장 투쟁을 다룬 <백두산>(1947)을 발표하면서 북한 문단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밖에도 <생의 노래>(1947), <휘파람>(1947), <네거리에서>(1947), <우리의 길>(1947), <항쟁의 려수>(1948), <조선은 싸운다>(1951) 등의 시를 발표했다. 1951년 이기영, 이태준, 임화, 한설야 등 당시 북한 문단의 최고 핵심 작가들과 함께 북한 최고의 훈장인 국기훈장 제2급을 수상했으며 195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51년 7월 31일 밤 12시경 미군 항공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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