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홀린 광대 (한국문학전집 030)
도서정보 : 정영문 | 2021-10-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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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삼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창작과 번역 작업을 유연하게 오가며 우리에게 낯설고 매력적인 독서 체험을 선사한 작가 정영문의 세번째 장편소설 『달에 홀린 광대』(2004)를 한국문학전집 제30권으로 선보인다.
정영문의 시그니처인 만연체 문장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화자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가 알맞게 어우러져 “그의 소설세계에서 전환점에 해당”(문학평론가 손정수)되는 소설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달에 홀린 광대」 「산책」 「숲에서 길을 잃다」 「양떼 목장」 「배추벌레」 「횡설수설」 등 여섯 편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연결하면서도 각각이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공통의 연결점을 마련하여 기존의 장편소설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 모델을 제시한다. 이 여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불안과 권태와 냉소와 유머로써 삶을 바라보는 정영문 소설의 독특한 시각이다. 『달에 홀린 광대』는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지 않고 끊임없이 샛길로 빠져드는 화자를 내세움으로써 천천히 에둘러 가는 산책의 시간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풍경을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구매가격 : 9,800 원
재능의 불시착
도서정보 : 박소연 | 2021-10-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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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당해도 침착해야 하는 능력이 도대체 회사 어디에 필요한 걸까요?”
직장이라는 우주를 아직 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일하는 이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보내는 가장 적당한 위로
건강검진 센터의 그녀가, 그리고 내가 만난 많은 그들이, 삶에 잡아먹히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신과 사랑하는 존재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그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글을 써나갔다. (…) 그래도 당신 덕분에 나는 불시착하지 않았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시리즈로 10만 직장인들의 지지를 받은 박소연 작가의 첫 번째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이 출간됐다. 국무총리상을 수상할 정도로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왔던 저자가 일 잘하는 노하우를 담은 전작들과는 완연히 결을 달리한 첫 소설집에는 ‘일 잘하는’ 이들이 아닌 ‘일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종종 초과하기 마련이지만)의 시간, 즉 인생의 3분의 1을 보내는 직장이라는 곳의 복잡다단한 생태계를 가로지르는, 또는 배회하는 이들. 직장인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꼈을 야릇한 소외감, 비릿한 자괴감, 소박한 연대감 앞에서 짓게 되는 미묘한 표정들을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통해 그려내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지구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아요.” “어쩌면 나는 31세기형 인재가 아닐까?”
한밤중, 건물들의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시 앞에 홀로 선 '외계인 같은 나'에게 보내는 여덟 편의 산뜻한 응원
이 책은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묘한 퇴사 절차를 밟는 막내 사원의 사연(「막내가 사라졌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나섰다가 이상과 현실의 아찔한 거리감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악의 없이 무능한 직장 내 ‘빌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전설의 앤드류 선배」), 취미라 해야 할지 특기라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조차 애매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재능의 불시착」),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종종 우리를 구원해주었던 소소한 영웅들(「언성 히어로즈」)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아주 일부분을 좋아하는 것뿐이면서 안 맞는 일로 가득 찬 일을 직업으로 골랐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나에게 이 직업은 지하철에서 파는 델리만쥬 같았던 거다. 냄새를 맡으면 참을 수 없이 끌리지만 실제로 먹게 되면 예상과 다른. 간식일 때 만족스러운 음식을 삼시 세끼 먹게 되자 삶이 엉망이 되었다.
_「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중에서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직장인들의 핫한 키워드들, 직장 내 괴롭힘 및 갑질(「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남성 육아휴직자의 오만과 편견(「누가 육아휴직의 권리를 가졌는가」), 반려동물을 위한 가족 돌봄 휴가 제도 활용법(「노령 반려견 코코」) 등의 에피소드도 함께 담았다. 높은 공감 능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로 인한 약간의 현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짠내 나지만 건강한 위로가 동시에 말을 거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결국에는 “모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일하는 나’를 인정하게끔 만드는 여덟 편의 이야기들.
구매가격 : 21,168 원
국궁
도서정보 : 송주성 | 2021-10-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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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는 호랑이가 덮쳐와도 활의 시위를 놓지 못하고 호랑이 밥이 될 위기를 맞는다. 그 순간 하늘에서 화살이 날아와 호랑이 가슴에 명중해 목숨을 구한다. 호랑이는 숲으로 사라지고 활골 처녀 초승이 생명을 구한 인연으로 윤후의 국궁 스승이 된다.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고 사망하자 새 왕이 된 오고타가 몽골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해 온다. 용인 처인성에서 김윤후는 국궁으로 몽골군 사령관을 사살한다. 압록강을 넘어 몽골군은 철수하고 김윤후는 고려의 영웅이 된다.
김윤후는 백현원으로 돌아와 초승을 잊지 못해 수도정진하지 못한다. 어느 날 백현원으로 찾아온 초승이 사랑을 고백하고 김윤후를 파계승으로 만든다. 몽골군은 고려의 왕과 무신들이 강화도에서 버티며 항복하지 않자 다시 침략해 오고 경상도와 전라도로 넘어가는 충주를 함락시키기 위해 충주성으로 몰려온다. 김윤후는 충주성 방어 임무를 맡아 충주민과 함께 전투준비를 한다. 하지만 수만 명의 몽골군을 보고 충주민들은 전위를 상실하고 몽골군에 투항해 목숨이라도 건지자고 김윤후에게 애걸한다. 그는 노비문서와 빚문서를 충주민들 앞에서 불태우고 몽골군을 물리치고 승리하면 모두에게 벼슬을 내리겠다고 약속한다. 충주민들은 죽을 각오로 마지막 전투태세를 갖춘다.
구매가격 : 6,000 원
트라이앵글
도서정보 : 임경택 | 2021-10-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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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얘기하지. 기회가 오면 잡으라고. 근데 사실은 말야, 기회는 잡는 게 아니야. 내가 잡아 끌어오는 거지. 내가 흘린 피, 땀, 눈물 그리고 노력들이 얽히고설켜 밧줄이 되고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기회를 묶어 끌어오는 거야. 그러니 결국 그것들이 부족하면 밧줄이 약해 기회가 나에게 오다가 끊어지고 말지.”
“기회를 끌어올 수 있을 만큼 노력했는데도 오지 않으면요?”
“그 반대지.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끌어올 만큼 노력을 하지 않은 거야.”
구매가격 : 7,200 원
인생에서 힘든 점들
도서정보 : 미야 | 2021-10-15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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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의 인생살이. 그녀가 살아온 성장기를 다루었다.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고, 독일에 유학 가 파티쉐로 정착하며 밤에는 작곡 과제를 하고 살고 싶었던 그녀는,
뜻밖의 건강 상황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 남들과 같이 생활하고 살아왔지만, 새벽이 되어도 그녀는 쉽게 잠들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아파서 그때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 어지럽기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제대로 해내야만 그 다음 것이 보인다는 것.
살아가며 조금씩 마음이 아픈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그들을 통해 삶을 배워나가게 되었다.
독선적인 성격에 친구가 없는 병주, 가장 인간 답지만 사이코 기질이 넘쳐나 건강마저 위태로워 억울한 진.
오랜 공시생을 하다 어느 날 조현병에 걸려 완치하게 된 교육원 동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찬우 아저씨의 루게릭 병 소식 등.
그들과의 이야기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이나 병을 낫고 싶어 한다는 것과 세상의 다양함을 알아가게 되는데...
20대 초부터 무엇 하나 뜻대로 착착 풀리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대한 깨달음과, 처지에 맞는 재도전을 다루었다.
구매가격 : 6,600 원
낙엽기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10-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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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슭에 붉게 물든 담쟁이 잎새와 푸른 하늘, 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이 한 폭도 비늘 구름같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장 먼저 가을을 자랑하던 창 밖의 한 포기의 벚나무는 또한 가장 먼저 가을을 내버리고 앙클한 회초리만을 남겼다. 아름다운 것이 다 지나가 버린 늦가을은 추잡하고 한산하기 짝없다.
담쟁이로 폭 씌어졌던 집도 초목으로 가득 덮였던 뜰도 모르는 결에 참혹하게도 옷을 벗기워 버리고 앙상한 해골만을 드러내게 되었다. 아름다운 꿈의 채색을 여지없이 잃어 버렸다.
벽에는 시들어 버린 넝쿨이 거미줄같이 얼기설기 얽혔고 마른 머룽송이 같은 열매가 함빡 맺혔을 뿐이다.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이 푸르던 뜰에서는 지금에는 푸른 빛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거의 날마다 뜰의 낙엽을 긁어야 된다. 아무리 공들여 긁어모아도 다음 날에는 새 낙엽이 다시 질볏이 늘어져 거듭 각지를 들지 않으면 안된다. 낙엽이란 세상의 인총1같이도 흔한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긷듯 며칠이든지 헛노릇으로 여기면서도 공들여 긁어모은다. 벚나무 아래 수북이 쌓아 놓고 불을 붙이면 속으로부터 푸슥푸슥 타면서 푸른 연기가 모로 길게 솟아오른다. 연기는 바람 없는 뜰에 아늑히 차서 울같이 괸다. 낙엽 연기에는 진한 커피의 향기가 있다. 잘익은 깨금의 맛이 있다 나는 그 귀한 연기를 마음껏 마신다. 욱신한 향기가 몸의 구석구석에 배어서 깊은 산 속에 들어갔을 때와도 같은 풍준한 만족을 느낀다. 낙엽의 연기는 시절의 진미요, 가을의 마지막 선물이다.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타 버린 낙엽을 재를 묻어 버림으러써 가을은 완전히 끝난 듯싶다. 뜰에는 벌써 회초리만의 나무들이 섰고 엉성긋한 포도시렁이 남았고 담쟁이 넝쿨이 서리었고 국화 포기의 글거리가 솟았고 잡초의 시들어 버린 양이 있을 뿐이니 말이다. 잎새에 가리었던 둥근 유리창이 달덩이같이 드러나고 현관 앞에 조약돌이 지저분하게 흩어졌으니 말이다.
낙엽을 장사 지내고 가을을 보내니 별안간 생활이 없어진 것도 같고 새 생활이 와야 할것도 같은 느낌이 생겼다. 적어도 꿈이 가고 생활의 때가 온 듯하다. 나는 꿈을 대신할 생활의 풍만을 위하여 생각하고 설계하여야한다. 가령 나는 아내를 대신하여 거의 사흘 돌이로 목욕물을 데우게 되었다. 손수 수도에 호스를 대서 물을 가득 길어 붓고는 아궁에 불을 넣는다.
음산한 바람으로 아궁이 연기를 몹시 낸다. 나는 그 연기를 괴로이 여기지 않는다. 눈물을 흘릴 지경이요, 숨이 막히면서도 연기의 웅덩이 속에서 정성껏 나무를 지피고 불을 쑤시고 목욕간의 창을 열어 연기를 뽑고 여러 차례나 물을 저어 온도를 맞추고 하면서 그 쓸데없는 행동, 적어도 책상에 맞붙어 책을 읽고 글줄의 쓰는 것보다는 비생산적이요, 소비적이라고 늘 생각하여 오던 그 행동을 도리어 귀히 여기게 되고 나날의 생활을 꾸며 가는 그런 행동이야말로 가장 생산적이요, 창조적인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정리되지 못한 가닥가닥의 생각을 머릿속에 잡아 넣고 살을 깍을 정도로 애쓰고 궁싯거리면서 생활 일에 단 한 시간 허비하기조차 아깝게 여기고 싫어하던 것이 생활에 관한 그런 사소한 잡일을 도리어 귀중히 알게된 것은 도시 시절의 탓일까.
어두운 아궁 속에서 새빨갛게 타는 불을 보고 목욕통에서 무럭무럭 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나는 이것이 생활이다, 이것이 책보다도 원고보다도 더 귀한 일이다, 이것을 귀히 여김이 반드시 필부의 옹졸한 짓은 아닐것이며 생활을 업시여기는 곳에 필부 이상 뛰어날 아무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고 두서 없는 긴 생각에 잠겨도 본다.
이윽고 더운 물 속에 몸을 잠그고 창으로 날아들어와 물 위에 뜬 마지막 낙엽을 두 손으로 건져 내고 안개같이 깊은 무더운 김 속에 몸과 마음을 푸근히 녹일 때 이 생각은 더욱 절실히 육체 속에 사무쳐 든다.
거리의 백화점에 들어가 그 자리에서 거피를 갈아서 손가방 속에 넣고 그 욱신한 향기를 즐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물론 이러한 생각으로부터이다. 진한 차를 탁자 위에 놓고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나는 그 넓은 냉방에다 난로를 피우고 침대 속에는 더운 물통을 넣고 한겨울 동안을 지내게 할까 어쩔까 그리고 겨울에는 뒷산을 이용하여 스키를 시작하여 볼까 어쩔까 하고 겨울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기를 아내와 의논한다.
시절이 여위어갈수록 꿈이 멀어갈수록 생활의 의욕이 두터워짐일까. 생활, 생활, 초목 없는, 푸른 빛 없어진 멀숭하게 된 집 속에서 나는 하루의 전부를 생활의 생각으로 지내게 되었다. 시절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일가. 심술은 결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구매가격 : 500 원
산정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10-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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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나 가으내나 그스른 얼굴이 좀체 수월하게 벗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해를 지나야 멀쑥한 제 살을 보게 될 것 같다. 바닷바람에 밑지지 않게 산 기운도 어지간히는 독한 모양이다.
"호연지기가 지나친 모양이지."
동무들은 만나면 칭찬보다도 조롱인 듯 피부의 빛깔을 걱정한다. 나는 그것을 굳이 조롱으로는 듣지 않으며 유쾌한 칭찬의 소리로 들으려고 한다.
"두구 보게. 역발산 기개세 않으리."
큰 소리도 피부의 덕인 듯, 나는 그을은 얼굴을 자랑스럽게 쳐들어 보이곤 한다.
학교에 등산 구락부가 생기면서부터 신 교수 박 교수와 세 사람이 하는 수없이 단짝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을 인솔할 때 외에도 대개는 세 사람이 주동이 되어서 등산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 차례차례로 산을 정복해 왔다. 학교와 가정과 거리와 그 외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세상 - 산을 새로 발견한 셈이었다.
한 두 번 오르는 동안에 산의 매력이 전신에 맥쳐 오면서 산의 맛을 더욱 터득하게 되었다. 동룡굴을 뚫고 묘향산을 답파한데서부터 시작되어서 여름부터 가을 동안 차례로 장수산을 정복하고 대성산을 밟고 가까운 곳으로는 사동까지 나가고 주암산을 돌기는 여사로 되었다. 일요일만 돌아오면 으레 걸방들을 짊어지고 나서게 되었다. 거리에 나가 별일 없이 하루를 허비하거나 집에서 책자를 들척거리는 것보다도 한결 그 편이 더 뜻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룻길을 탈없이 다녀만 오면 가슴 속이 맑아지고 몸이 뿌듯이 차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 어느 구석에 포개져 가는 것 같다. 사람의 일생은 물론 노동의 일생
이어야 되나, 산에 오름을 결코 소비적인 행락이 아니요, 반대로 참으로 생산적임을 알게 되었다. 기쁨과 함께 오는 등산의 공을 몸과 혼을 가지고 느끼게 되었다. 동무가 말하는 호연지기가 그스른 피부 그 어느 구석에 간직해 있다면 산의 덕이 이에 더 큼이 있으랴.
스타킹 위로 벌거숭이 무릎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등산모를 쓰고 륙색을 메고 피켈을 짚고 나선 모양은 완전히 세 사람의 야인이다. 선생이니 선비니 하는 귀찮은 직책과 윤리를 떠나서 평범한 백성으로 변한다. 그 자유로운 모양으로 거리를 지나고 벌판을 걸을 때 벌써 신 교수가 아니고 신 서방이며 박 서방 이 서방인 것이다. 하기는 이 범용한 지아비 될 양으로 거추장스런 옷 벗어 버리고 등산복으로 갈아입는 셈인 것이다.
그 범속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 륙색 속을 더 충실히 채워 가지고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나 목적지는 처음부터 결정된 때도 있고 차리고 선 후에 작정되는 때도 있었다. 그 날 같은 날은 나선 후에 작정된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머뭇거리면서 어디로 갈까를 망설이던 끝에 작정된 것이 서장대 방면의 코오스였다. 서장대로 나가 야산들을 정복하고 남포 가도로 나서서 돌아오자는 것이었다.
그 날의 세 사람의 륙색 속을 별안간 대로상에서 수색당했다면 요절할 광경을 이루었을는지도 모른다. 김말이 점심밥과 술병과 과실이 든 것은 별반 신기한 것이 못 되나, 항아리 속에 양념해 넣은 쇠고기와 석쇠와 숯이 그 속에 있을 줄야 누구나 쉽게 상상하지 못할 법하다. 산허리에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걸고 맑은 공기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는 생각이었다. 별 것 아니라 고깃집 협착한 방 안의 살림살이를 하늘 아래 넓은 자리 위로 그대로 이동시키자는 것이었다. 워낙 고기를 즐기는 박 서방의 제안이었으나 그 기발한 생각은 즉석에서 두 사람의 찬동을 얻어 그날의 명물 진안이 된 것이었다.
따끈 쪼이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은 알맞은 가을 날씨였다. 나뭇잎이 혹은 물들고 혹은 떨어지기 시작하고 과실점 앞에는 햇과실이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하는 시절이었다. 보통문을 지나 벌판을 나섰을 때 세 사람은 쇠고기 항아리와 석쇠와 숯과 밥을 짊어지고 다리가 개운들 했다. 시들은 잡초가 발 아래에 부드럽고 익은 곡식 냄새가 먼 데서 흘러온다. 알지 못할 새빨간 나무 열매가 군데군데에서 눈에 뜨이는 것도 마음을 아이같이 즐겁게 한다.
밭둑을 지나 산기슭에 이를 ?까지도 신 서방의 이야기는 전하는 법이 없다. 거리에 있을 때에는 엄두도 안 내던 이야기가 일단 길을 떠나게 되면 세 사람 사이에 꽃피기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총중에서도 신 서방의 오산 있었을 때의 가지가지의 쾌걸담은 늘 나의 귀를 끈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기서 많은 인생의 폭을 살아온 듯, 뒤를 잇는 이야기가 차례차례로 그림같이 내 눈속에 새겨진다. 동료와 낚시질을 떠났다가 비를 만나 주막에 들어 소주 타령을 했다던 이야기 -.
구매가격 : 500 원
오후의 해조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10-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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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안의 기맥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가 인쇄소의 문을 연 것은 오정을 조금 넘어서였다.
마음과 몸이 울르르 떨렸다.
그의 계획하여 가는 일의 위험성에서 흘러나오는 불안과 또 한 가지 쌀쌀한 일기에서 받는 추위 때문에였다.
십일월을 반도 넘지 않은 날씨이니 그다지 매울 때가 아니련만 늦은 비가 한 줄기 뿌리더니 며칠 전부터 일기는 별안간 쌀쌀하여졌다.
어제밤 M·H점 좁은 온돌방에서 그 집 가족들 속에 섞여 동무들과 늦도록 일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서 설핀 새우잠을 잔 것이 더한층 그를 으시시하게 하였을 것이나 그것보다도 더 많이 마음을 압도하는 일의 중량이 그를 물리적으로 떨게 하였던 것이다.
사건이 폭발한 지 불과 며칠 안되는 이제 물샐틈없는 경계망은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길 가는 사나이는 모두 그를 노리는 것 같고 거리의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눈이 숨어 그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도 같았다.
인쇄소를 찾아 뒷골목으로 들어올 때 그는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으며 인쇄소 마당에서는 또한 얼마나 기웃거렸던가.
문선부 최군에게 끌려서 전에도 한번 이곳을 찾은 일이 있었지만 주인을 매일 회사에 출근하므로 사무소는 안주인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인쇄기계가 세 대나 놓였고 직공이 이십명이 가까운 결코 소규모가 아닌 이 인쇄소를 찾은 것은 첫째로는 문선의 최군과 굳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이러한 인쇄소의 허수한 기회를 타서였다.
「신간 광고 삐라를 오천 장 박을 터인데 오늘중으로 할 수 있을까요?」
「잡지사에서 오셨읍니까?」
우둥퉁하고 이가 약간 밖으로 뻗은 호인일 듯한 일녀가 반가이 맞이하면서,
「지금 마침 손이 비어 있으니 될 수 있지요.」
하고 이 「잡지사에서 온 손님」에게 의자를 권하였다.
물론 손이 비어 있는 줄도 최군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었다.
창하나를 격하여 바로 공장이었다.
점심시간이므로 기계소리는 멈추었고 물주전자를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직공들이 창으로 들여다 보였다. 그들 속에 섞여 최군의 그림자도 어른거렸다.
「아마 미농지판으로 해야 할걸요.」
하고 그는 여러 장 되는 원고를 서슴지 않고 그에게 내 보였다.
전부가 국문이요 한자는 약간 섞였을 뿐이므로 물론 그에게는 내용을 알 리 만무하였다.
「그럼 곧 시작하겠읍니다.」
일녀는 원고를 들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기계소리가 울리며 일이 시작된 것은 불과 몇분 후였다.
원고는 물론 우리들의 계획대로 최군에게로 돌려 채자와 식자를 그가 아울러 맡았다.
「여러 번 정판 할 것도 없도록 단번에 주의하여 고르게.」
하꼬를 들고 케이스 앞에 서서 채자에 정신없는 최군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그는 공장을 나왔다.
여주인은 부엌에서 칼소리를 내고 사무소는 텅비었다.
그는 혼자 화로를 끼로 앉아서 지금 침침한 방에서는 동무들이 로울러를 밀며 역시 등사실에 분주하게 있을 것을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매가격 : 500 원
계절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10-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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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에 못갈 바에야 공동변소에라도 버릴까?」
겹겹으로 싼 그것을 나중에 보에다 수습하고 나서 건은 보배를 보았다.
「아무렇기로 변소에야 버릴 수 있소.」
자리에 누운 보배는 무더운 듯이 덮었던 홑이불을 밀치고 가슴을 헤쳤다. 멀숙한 얼굴에 땀이 이슬같이 맺혔다.
「그럼 쓰레기통에라도.」
「왜 하필 쓰레기통예요?」
「쓰레기통은 쓰레기만은 버리는 덴 줄 아우― 그럼 거지가 쓰레기통을 들쳐 낼 필요가 없게.」
건은 농담을 한 셈이었으나 보배는 그것을 받을 기력조차 없는 듯하였다.
「개천에다 던질 수밖에.」
「이왕이면 맑은 물 위에 띄워 주세요.」
보배는 얼마간 항의하는 듯한 어조로 말뒤를 채쳤다.
「―땅속에 못 파묻을 바에야 맑은 강물 위에나 띄워 주세요.」
「고기의 밥 안되면 썩어서 흙되기야 아무데 버린들 일반 아니요?」
하고 대꾸를 하려다가 건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보배에게서 문득 「어머니」를 느낀 까닭이다. 그것이 두 사람의 사랑의 귀찮은 선물일망정―아직 생명을 이루지 못한 핏덩이에 지나지는 못할망정-몇달 동안 배를 아프게 한 그것에 대하여 역시 어머니로서의 애정이 흘러 있음을 본 것이다.
유물론자인 건이지마는 구태여 모처럼의 그의 청을 거역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원대로 하리다.」
하고 새삼스럽게 운명의 보를-다음에 보배를 보았다. 눈의 착각으로 보배의 여윈 팔이 실오리같이 가늘어 보였다. 생활과 병에 쪼들려 불과 일년에 풀잎같이 바스러져 버렸다. 눈과 눈썹이 원래 좁은 사이에 주름살이 여러 오리 잡혀졌다.
단간의 셋방이 몹시 덥다. 소독용 알콜 냄새에 섞여 휘덥덥한 땀냄새가 욱신욱신하다. 협착한 뜰안의 광경이 문에 친 발 속에 아지랑이같이 어른거린다.
몇포기의 화초에 개기름같이 찌르르 흘러 있는 여름 햇볕이 눈부시다. 커어브를 도는 전차 바퀴소리가 신경을 찢을 듯이 날카롭다.
「맑은 물에 띄우면 이 더위에 오직 시원해 할까?」
보를 들고 일어서려할 때 보배는 별안간 몸을 뒤틀며 괴로와한다. 또 복통이 온 모양이었다.
「아이구……」
입술을 꼭 물었고 이마에는 진땀이 빠지지 돋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전신은 새우같이 꾸부러졌다.
「약이나 먹어 보려우?」
건은 매약을 두어 알 보배의 입에 넣어 주고 물을 품겼다. 이불 위로 배를 문질러도 주었다.
한참 동안이나 신음하다가 보배는 일어나서 뒷문으로 나갔다. 몸이 무거운 것이다.
구매가격 : 500 원
일기
도서정보 : 이효석 | 2021-10-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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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거리에 유숙하고 있는 순회극단의 단장의 딸인 여배우가 지난날 아침 여관 방에서 돌연 해산을 하였으나 달이 차지 못한 산아는 산후 즉시 목숨이 꺼져 버렸다는―근래의 소식을 우연히 아내에게서 듣고 나는 아침 내내 그 생각에 잠겼다.
여배우는 그 전날 밤까지도 무대에 섰다 하니 오랫동안의 불여의한 지방순회에 끌려 다니느라고 기차에 흔들리고 무대에 피곤한 끝에 그 참경을 당하였음이 확실하다. 어린 시체를 동무들과 함께 근처 산에 묻고 온 산아의 아비인 남배우는 울적한 심사를 못이기면서도 저녁 연극이 시작되려 할 때(낯설은 곳에 핏덩어리를 묻은 오늘 오히려 무대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누나) 탄식하고 그의 역편인 <아리랑>의 주연의 화장으로 힘없는 얼굴의 표정을 감추었다고 전한다.
열 일곱밖에는 안된 영락의 여배우와 그의 애인인 낙백의 남배우―나는 웬일인지 루놀망의 <낙오자의 무리>를 문득 생각하며 두 사람을 그 작품속에 「그 여자」와 「그」에게 비겨도 보았다. 학교에서는 훈화가 있어 학생들에게 관극을 금하였다. 나는 두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수록에 그 조그만 극단의 생활을 위협하는 결과가 되는 나의 「교육」의 직무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이날에 시작된 것은 아니나 이런 생각에서 오는 우울도 덮쳐서 나는 이날 유심히고 출근의 길이 울가망하고 싫은 것이었다.
기어코 좋은 일은 없었다. 나는 이날을 「흉일」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침 수업이 막 시작되려할 무렵에 급사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직원실로 뛰어 들어왔다.
「열차가 전복했어요.」
영문을 몰라 모두 눈이 멀뚱했다.
「―남행 첫차가 지금 망간 성견 다리목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어요. 연기가 시꺼멓게 피어 오르겠지요. 」
그 차에는 북쪽 근촌에서 오는 통학생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산변을 염려함보다도 먼저 거의 본능적으로 황급한 충동에 끌려 모두들 직원실을 뛰어나갔다.
운동장에서는 다리께가 멀리 바라보였다. 분명치는 못하나 엇비슷이 삐뚤어진 열차의 모습도 보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시꺼먼 연기―어느 구석에서 그 많은 연기가 나왔는지 하늘을 구름장같이 한바탕 푹 덮었다. 까마귀의 떼 같은 그 불길한 연기의 덕지가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벌써 흉측한 변의 그림자를 엿보이고 있는 듯도 하였다. 고요하고 섬?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겨우 통학생들의 안부가 머리속에 떠오르자 머리들을 모으고 불안스럽게 웅절웅절 지꺼이기 시작하였다. 꾀바르게 자전거로 현장에 달려가는 동관도 벌써 몇사람 나섰다. 이들이 가져올 정보를 기다리면서 한참 동안이나 여전히 웅절웅절하고 있는 동안에 난을 당한 통학생이 한두 사람씩 학교에 다다랐다.
물에 빠져 양복이 푹 젖은 이, 이마에 피 묻은 이, 턱에 혹을 붙인 이―전장의 부상병같이 이들은 각각 그 무슨 상처와 흔적을 가지고 힘없이 허둥허둥 교문을 들어왔다. 운동장에 이르기가 바쁘게 궁금히 기다리고 있는 동무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버렸다.
「철교 위에 걸리자 날카로운 기적을 연해 울리며 차가 두어번 주춤주춤 서더니 한쪽으로 넌지시 휘어 떨어진단 말야. 섬?하여 눈을 꾹 감고 몸을 옴크리고 있노라니 어느덧 차창이 발밑에 놓였고 물이 몸에 철렁철렁 찬단 말일세. 정신없이 창을 깨뜨리고 나와 보니 개천가 돌밭에는 벌써 쓰러진 사람, 정신없이 어릿어릿하는 사람, 난장판이야.」
흥분에 몰려 정신없이 지껄이던 학생은 문득 어디가 거북하여 졌는지 몸을 요동하기 시작하였다.
「―자세히 볼 여유도 없이 뛰어 왔으나 아마 죽은 사람도 여럿 될거야.」
하고 어릿어릿하더니 그 자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이 먼저 달려온 패들은 흥분된 판에 생기도 있고 겉에는 그닷한 상처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기실 각각 그 어디인지를 크게 다쳐 나중에는 결국 모두 병원에 수용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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