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조 건국이야기
도서정보 : 차상찬 | 2019-09-2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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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공양왕(恭讓王) 9월에 드디어 전제를 크게 개혁하여 백성이 모두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고 노래하였다. 또한, 당시 민간에서는 ‘목자위왕(木子爲王)’(역주: 이성계가 왕이되다)라는 참언까지 유행하여 일반인들의 민심이 태조에게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였다. 날개 달인 맹호처럼 조준(趙浚), 남은(南誾), 정도전(鄭道傳), 하륜(河崙), 배극렴(裵克廉), 조인옥(趙仁沃), 조박(趙璞) 등 50여 무관이 모두 태조를 추대하려고 하였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6,000 원
고려 태조 건국이야기
도서정보 : 차상찬 | 2019-09-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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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태조의 부하에는 용장 용맹스러운 졸병이 많으나 문사에 능통한 사람이 적었으므로 개국 초기에 관제를 정하고 국정을 삼가 결단하는 데에는 전혀 궁예의 남아있는 신하인 박유(朴儒)를 등용하였다. 또한 통일 이후에는 신라의 문사를 채용하였다.
정치상으로 중요한 사람은 심곡사(審穀使)를 설치하여 장마와 가뭄, 기근을 준비하고 전제(田制)를 정하여 부렴(賦?)을 가볍게 하였다. 혹은 창고 있는 포곡(布穀)을 풀어 백성의 노비되는 자를 구조하였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2,500 원
고려 태조 건국이야기
도서정보 : 차상찬 | 2019-09-2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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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태조의 부하에는 용장 용맹스러운 졸병이 많으나 문사에 능통한 사람이 적었으므로 개국 초기에 관제를 정하고 국정을 삼가 결단하는 데에는 전혀 궁예의 남아있는 신하인 박유(朴儒)를 등용하였다. 또한 통일 이후에는 신라의 문사를 채용하였다.
정치상으로 중요한 사람은 심곡사(審穀使)를 설치하여 장마와 가뭄, 기근을 준비하고 전제(田制)를 정하여 부렴(賦?)을 가볍게 하였다. 혹은 창고 있는 포곡(布穀)을 풀어 백성의 노비되는 자를 구조하였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2,500 원
점 잘 보는 집 점 잘 보는 무당 찾는 기술
도서정보 : 닥터 카르마 | 2019-09-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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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100만명시대
신점/굿/사주/빙의
무속사기가 당신을 노린다
알아야 안 당한다.
한국의 무당 100만명시대, 날마다 일어나는 무속사기에서 당신을 지키기 위한 무속신앙 A~Z 이것만 알아도 무속사기 안당한다. 무속사기를 예방하는 비법과 같은 책! 실제무속인이 알려준 최초 무속사기 예방 노하우와 절대지식!
구매가격 : 15,000 원
면암 최익현은 과연 시대에 뒤처진 인물이었을까
도서정보 : 김정언 | 2019-09-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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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초록
면암 최익현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그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민에게 존경받는다. 전국 각지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가 주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던 외고집으로 단식 끝에 순절하신 면암 선생의 기개를 숭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를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가 조선의 고위 관료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을 막지 못했고, 서구의 근대 사상과 기술을 배척하며 기존 고루한 유교적 질서를 고수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둘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의 올곧은 신념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뒤떨어졌던 한계를 지닌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가 밟아온 역사 속 모든 인물은, 정말 극히 일부 인물을 제외하곤 양면성이 있다. 심지어 이완용도 러일전쟁(1904)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독립협회 설립(1896) 등 애국적 활동을 했고, 나라를 팔아먹고 난 뒤인 일제강점기에도 고종의 신임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완용과는 결이 다르지만, 면암 최익현도 이처럼 양면성과 관련한 논란이 많기에, 이 논문에서는 최익현 선생 업적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그리고 저자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저자는 오늘날 역사의 뿌리가 되는 ‘근현대사’를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 혼란의 역사 속에서 시대에 뒤처진 사상을 가진 인물 최익현을 왜 현대인들이 존경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근현대사 교양서를 읽던 중... 깜짝 놀랐다. 그가 고종황제와 주고받은 수 백통의 서신 안에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루하고 옛것만 고집하는 노인네인 줄 알았던 면암 최익현이, 엄청난 현실 감각과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 강화도조약으로 일어날 연쇄적인 조약 등을 예측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고종에게 수십 년간, 수백 통의 상소문을 올렸다.
저자는 이를 깨닫고 ‘시대에는 뒤처졌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킨 최익현’이란 뿌리박힌 프레임을 깨고 싶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TV 역사 토론 방송 진행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한 반응을 본 후, 기존 교육체계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큐니버시티’ 최성호 총장과의 논의 끝에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미리 말하지만, 저자는 ‘아마추어’ 역사 전문가이다. 고등학교 이과 출신에, 인문학과 관련 없는 ‘생명과학대학’을 졸업했고, 역사를 공부한 거라고는 ‘공무원 한국사’, ‘고등학교 세계사’와 다수의 교양서가 전부이다. 이 책도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썼다.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경로도 전공자보다는 한계가 있고, 그렇기에 논문에 쓴 역사적 사실 일부가 틀릴 수 있다. 저자는 혹시라도 존재하는 역사적 오류를 지적해 주는 것은 당연히 수용한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에는 ‘자신만의 관점’이라는 다양성도 함께 존재한다는 관용 정신을 가지고 이 논문을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일부 사람들은 “면암 최익현은 고집만 셌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야.”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개인적으로 최익현 선생의 흔들리지 않는 철학뿐만 아니라, 특히 그의 선견지명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현대를 사는 우리도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 논문을 발간하게 되었다.
역사를 한가지 관점만으로 바라보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란 걸 이제 온 국민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이에 동의한다. 이를 아는 독자라면 이 논문이 기존의 학설과 조금 벗어나더라도, 흥미롭게 읽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거라 믿는다.
구매가격 : 1,000 원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도서정보 : 백승종 | 2019-09-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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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수양 서적”, 『중용』
이 한 권의 책은 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나
2,400여 년 전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용』이라는 책은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든 주인공이다. 아직까지도 이 책을 “최고의 수양 서적”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중용』은 조선의 왕과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책이자 조선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조선의 왕과 선비들은 『중용』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시대가 당면한 과제를 『중용』을 통해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중용』이라는 한 권의 책이 조선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실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저자는 『중용』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역사가로서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중용』이 어떻게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되었는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이 책은 『중용』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정치 사상사를 정리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500년 동안 『중용』을 두고 펼쳐진 선비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그들의 치열했던 성찰과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중용』의 역사를 읽는 것은 조선 역사를 읽는 새로운 방법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용』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사를 이해하는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중용』이라는 책은 애초에 중국에서 이념투쟁의 도구로 탄생했다. 유교는 초기부터 도가, 묵가, 법가, 불교와 사상적으로 싸워야 했다. 사상투쟁을 치르면서 유교의 논리는 더욱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조선에서도 『중용』은 사상투쟁의 무기로 활약했다. 조선 초기 선비들은 『중용』을 이용해 불교세력을 공격했다. 두 진영 간에 공방전이 치열했으나 세종과 성종 대를 지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 수준이 크게 높아져 불교세력은 완전히 조정에서 축출되었다. 조선의 사회문화적 주도권은 성리학자들이 쥐게 되었다.
16세기 조선에는 성리학을 위협할 만한 ‘이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조선의 왕과 선비들은 『중용』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했다. 『중용』에서 이상국가를 건설할 토대를 발견한 것이다. 큰선비 이언적은 『중용』 20장에 나오는 ‘구경설(九經設)’에 주목했다. 구경설이란 공자가 정치를 하는 아홉 가지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수신(修身)이 가장 먼저고, 어진 이를 존중하고(尊賢), 나와 가까운 이를 친애하고, 여러 신하를 내 몸처럼 여기고, 백성을 자녀처럼 대하는 것 등이다. “공자가 말한 통치의 요체는 자신을 바로잡고 근본에서 시작하여 말단에 이르며, 가까운 데서 출발하여 먼 곳까지 두루 미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언적과 같은 선비들은 구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성리학적 이상세계가 실현된다고 믿었다.” 17세기 후반까지 선비들은 구경설을 통치 철학의 핵심이라고 확신했다.
개인의 수양이 더 중대하다고 여기는 선비들도 『중용』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정치적으로 혼탁한 조정을 떠나 초야에 머무는 선비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군자가 되기 위한 수신의 철학을 『중용』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조익 같은 선비들이 시종일관 마음을 보존하고 성찰하기 위해 『중용』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16세기 말부터 조선 사회는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으면서 선비들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들은 앞선 세대가 이루어놓은 형이상학과 수양론을 결합해 예학(禮學)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냈다. 김장생 등은 『중용』에서 ‘예禮’의 중요성을 발견해 예학적 질서를 수립했다.
중용 열풍, 그리고 중용이 드리운 그림자
15세기 이후 『중용』의 열풍은 대단했다. 율곡 이이는 주희의 『중용장구집주』에 오류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익 같은 학자는 주희의 학설과 다른 주장을 폈다. 당시만 해도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17세기 후반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전쟁을 거치면서 사회문화 전반에 보수화 경향이 심해졌다. 일상적으로 엄격한 사상 통제가 이루어졌다. 주류 선비들은 주희의 주장을 글자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철저히 신봉했다. 그들에게 주희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윤휴는 주희의 『중용장구집주』를 새롭게 저술했다. 윤휴는 『중용』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상으로 끌어내렸다.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경전을 굳이 복잡한 형이상학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윤휴의 이러한 시각은 송시열과 같은 보수적인 선비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당시 대부분의 선비들은 주희의 저작을 숭배했고, 한 치라도 벗어나면 마녀사냥을 당했다. 윤휴를 비롯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몇몇 선비들은 결국 ‘사문난적’으로 몰려 고난을 면치 못했다.
정조 대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사회의 갈등이 심해졌다. 정조는 천주교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성리학을 더욱 강조했다. 성리학적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정조는 『중용』에 큰 기대를 걸었다. 신하들과 『중용』을 공부하기도 하고, 경전에 대한 논술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정조는 주희의 주석을 그대로 따랐다. 초야에 묻혀 주희의 주석서를 깊이 연구한 시골 유생들을 발굴해 높은 벼슬을 주기도 했고, 그들을 대궐로 불러들여 어전에서 『중용』에 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문체를 검열하고 중국에서 서적을 구입하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리게 된다. 정조는 특정한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저자는 중용이 조선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살펴본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 사회가 특정 이념에 몰입할 때 어떤 폐단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멀지 않은 때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1990년을 전후해 와르르 무너진 동구권 국가들, 즉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걷던 소련,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의 패망 원인을 뒤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때로 진취적이고, 때로 구태의연했던,
선비들의 다양한 해석
유교 경전 가운데서 『중용』은 가장 난해한 책으로 손꼽힌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중용』을 해석하는 관점은 실로 다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용』의 개념을 철학적 관점에서 소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비들의 다양한 해석을 충실하게 소개한다. 장유, 윤증, 김창협, 이덕무, 홍대용 등 뛰어난 선비들이 『중용』에 관해 품었던 의문과 대답을 들어보면 『중용』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17~18세기 조선 사회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로운 경전 해석을 탄압했다. 그럼에도 개성 있는 선비들은 경전을 무비판적으로 숭배하지 않았다. 윤휴는 주희의 『중용』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중용』을 편찬했다. “윤휴가 편찬한 새로운 『중용』은 주희의 것보다 논리적으로 세련되었다. 그의 설명에는 군두더기가 없고, 주장도 체계적이고 일관적이었다.”
윤휴의 연구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성호 이익과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성호 이익은 실증적이고 비판적으로 『중용』을 연구해 『중용』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잘못 알려진 통념과 개념에 대해서도 바로잡았다. 일례로 이익은 4대를 제사 지내는 조선의 풍습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했다. 공자와 맹자가 어려서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밖에도 이익은 철저한 문헌 연구를 통해 많은 학문적 결실을 거두었고,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분위기임에도 용감하게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대 최고 수재로 손꼽힌 실학자 정약용의 견해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정조가 실시한 친시(임금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시험)에서 정약용이 작성한 답안지를 옛 문헌에서 발견했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통해 저자는 출제자 정조의 의도와 정약용의 학문적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용』의 핵심을 묻는 45개 문제가 남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주희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답안은 제외하고 정약용의 독특한 의견을 담은 답안 5개를 소개한다. 그리고 저자의 논평을 덧붙여 두었다.
과연 정약용은 어떤 답안을 제출했을까. 저자는 정약용의 답안지를 꼼꼼히 살핀 결과 그가 깊이 갈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조정은 보수적이었고, 창의적인 대안보다는 주희의 학설을 더 철저히 익히도록 독려했다. 정약용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지만, 성호 이익을 계승한 학자로서 형이상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또한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람들이 절대자를 믿지 않기 때문에 타락한 생활에 빠지기 쉽다고 서술했다.
“정약용의 답안지를 들여다보면 모순적이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주류 성리학계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거기에서 이탈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자신의 갈등을 명백한 언어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내면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왜 『중용』에 주목해야 하는가
18세기 이후 지배층의 보수성이 더욱 완고해지자 새로운 이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정감록’ 반란 사건이 자주 일어났고, 여러 지식이 융합해 동학이 태동한다. “동학은 『중용』의 하늘을 새롭게 해석했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곧 하늘이었다. 최시형은 만물이 다 하느님이요, 너도 하느님, 나도 하느님, 사람도 물건도 본질적인 차이나 구별이 없다고 선언했다. 『중용』에 언급된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된 경지(천인합일)가 새롭게 정의되었다고 하겠다.”
『중용』은 조선 선비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책이었다. 16세기 이후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회 변화의 이면에는 항상 『중용』이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한 권의 책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화가 요구될 때마다 선비들은 『중용』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중용』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제야말로 또 한 번 중용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중용은 위기의 시대마다 늘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21세기라고 무엇이 크게 다를까. 새 시대의 중용 해석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한 헌장을 되새기는 작업이기를 바란다.” “최고의 수양 서적”, 『중용』
이 한 권의 책은 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나
2,400여 년 전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용』이라는 책은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든 주인공이다. 아직까지도 이 책을 “최고의 수양 서적”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중용』은 조선의 왕과 선비들이 가장 사랑한 책이자 조선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조선의 왕과 선비들은 『중용』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시대가 당면한 과제를 『중용』을 통해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중용』이라는 한 권의 책이 조선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실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저자는 『중용』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역사가로서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중용』이 어떻게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되었는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이 책은 『중용』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정치 사상사를 정리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500년 동안 『중용』을 두고 펼쳐진 선비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그들의 치열했던 성찰과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중용』의 역사를 읽는 것은 조선 역사를 읽는 새로운 방법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중용』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사를 이해하는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중용』이라는 책은 애초에 중국에서 이념투쟁의 도구로 탄생했다. 유교는 초기부터 도가, 묵가, 법가, 불교와 사상적으로 싸워야 했다. 사상투쟁을 치르면서 유교의 논리는 더욱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조선에서도 『중용』은 사상투쟁의 무기로 활약했다. 조선 초기 선비들은 『중용』을 이용해 불교세력을 공격했다. 두 진영 간에 공방전이 치열했으나 세종과 성종 대를 지나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 수준이 크게 높아져 불교세력은 완전히 조정에서 축출되었다. 조선의 사회문화적 주도권은 성리학자들이 쥐게 되었다.
16세기 조선에는 성리학을 위협할 만한 ‘이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조선의 왕과 선비들은 『중용』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했다. 『중용』에서 이상국가를 건설할 토대를 발견한 것이다. 큰선비 이언적은 『중용』 20장에 나오는 ‘구경설(九經設)’에 주목했다. 구경설이란 공자가 정치를 하는 아홉 가지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수신(修身)이 가장 먼저고, 어진 이를 존중하고(尊賢), 나와 가까운 이를 친애하고, 여러 신하를 내 몸처럼 여기고, 백성을 자녀처럼 대하는 것 등이다. “공자가 말한 통치의 요체는 자신을 바로잡고 근본에서 시작하여 말단에 이르며, 가까운 데서 출발하여 먼 곳까지 두루 미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언적과 같은 선비들은 구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성리학적 이상세계가 실현된다고 믿었다.” 17세기 후반까지 선비들은 구경설을 통치 철학의 핵심이라고 확신했다.
개인의 수양이 더 중대하다고 여기는 선비들도 『중용』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정치적으로 혼탁한 조정을 떠나 초야에 머무는 선비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군자가 되기 위한 수신의 철학을 『중용』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조익 같은 선비들이 시종일관 마음을 보존하고 성찰하기 위해 『중용』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준다.
16세기 말부터 조선 사회는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으면서 선비들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들은 앞선 세대가 이루어놓은 형이상학과 수양론을 결합해 예학(禮學)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냈다. 김장생 등은 『중용』에서 ‘예禮’의 중요성을 발견해 예학적 질서를 수립했다.
중용 열풍, 그리고 중용이 드리운 그림자
15세기 이후 『중용』의 열풍은 대단했다. 율곡 이이는 주희의 『중용장구집주』에 오류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익 같은 학자는 주희의 학설과 다른 주장을 폈다. 당시만 해도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17세기 후반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전쟁을 거치면서 사회문화 전반에 보수화 경향이 심해졌다. 일상적으로 엄격한 사상 통제가 이루어졌다. 주류 선비들은 주희의 주장을 글자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철저히 신봉했다. 그들에게 주희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윤휴는 주희의 『중용장구집주』를 새롭게 저술했다. 윤휴는 『중용』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상으로 끌어내렸다.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경전을 굳이 복잡한 형이상학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윤휴의 이러한 시각은 송시열과 같은 보수적인 선비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당시 대부분의 선비들은 주희의 저작을 숭배했고, 한 치라도 벗어나면 마녀사냥을 당했다. 윤휴를 비롯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몇몇 선비들은 결국 ‘사문난적’으로 몰려 고난을 면치 못했다.
정조 대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사회의 갈등이 심해졌다. 정조는 천주교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성리학을 더욱 강조했다. 성리학적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정조는 『중용』에 큰 기대를 걸었다. 신하들과 『중용』을 공부하기도 하고, 경전에 대한 논술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정조는 주희의 주석을 그대로 따랐다. 초야에 묻혀 주희의 주석서를 깊이 연구한 시골 유생들을 발굴해 높은 벼슬을 주기도 했고, 그들을 대궐로 불러들여 어전에서 『중용』에 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문체를 검열하고 중국에서 서적을 구입하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리게 된다. 정조는 특정한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저자는 중용이 조선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살펴본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 사회가 특정 이념에 몰입할 때 어떤 폐단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멀지 않은 때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1990년을 전후해 와르르 무너진 동구권 국가들, 즉 현실사회주의 노선을 걷던 소련,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의 패망 원인을 뒤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때로 진취적이고, 때로 구태의연했던,
선비들의 다양한 해석
유교 경전 가운데서 『중용』은 가장 난해한 책으로 손꼽힌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중용』을 해석하는 관점은 실로 다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용』의 개념을 철학적 관점에서 소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비들의 다양한 해석을 충실하게 소개한다. 장유, 윤증, 김창협, 이덕무, 홍대용 등 뛰어난 선비들이 『중용』에 관해 품었던 의문과 대답을 들어보면 『중용』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17~18세기 조선 사회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로운 경전 해석을 탄압했다. 그럼에도 개성 있는 선비들은 경전을 무비판적으로 숭배하지 않았다. 윤휴는 주희의 『중용』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중용』을 편찬했다. “윤휴가 편찬한 새로운 『중용』은 주희의 것보다 논리적으로 세련되었다. 그의 설명에는 군두더기가 없고, 주장도 체계적이고 일관적이었다.”
윤휴의 연구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성호 이익과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성호 이익은 실증적이고 비판적으로 『중용』을 연구해 『중용』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잘못 알려진 통념과 개념에 대해서도 바로잡았다. 일례로 이익은 4대를 제사 지내는 조선의 풍습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했다. 공자와 맹자가 어려서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밖에도 이익은 철저한 문헌 연구를 통해 많은 학문적 결실을 거두었고,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분위기임에도 용감하게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대 최고 수재로 손꼽힌 실학자 정약용의 견해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정조가 실시한 친시(임금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시험)에서 정약용이 작성한 답안지를 옛 문헌에서 발견했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통해 저자는 출제자 정조의 의도와 정약용의 학문적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용』의 핵심을 묻는 45개 문제가 남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주희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답안은 제외하고 정약용의 독특한 의견을 담은 답안 5개를 소개한다. 그리고 저자의 논평을 덧붙여 두었다.
과연 정약용은 어떤 답안을 제출했을까. 저자는 정약용의 답안지를 꼼꼼히 살핀 결과 그가 깊이 갈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조정은 보수적이었고, 창의적인 대안보다는 주희의 학설을 더 철저히 익히도록 독려했다. 정약용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지만, 성호 이익을 계승한 학자로서 형이상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또한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람들이 절대자를 믿지 않기 때문에 타락한 생활에 빠지기 쉽다고 서술했다.
“정약용의 답안지를 들여다보면 모순적이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주류 성리학계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거기에서 이탈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자신의 갈등을 명백한 언어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내면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왜 『중용』에 주목해야 하는가
18세기 이후 지배층의 보수성이 더욱 완고해지자 새로운 이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정감록’ 반란 사건이 자주 일어났고, 여러 지식이 융합해 동학이 태동한다. “동학은 『중용』의 하늘을 새롭게 해석했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곧 하늘이었다. 최시형은 만물이 다 하느님이요, 너도 하느님, 나도 하느님, 사람도 물건도 본질적인 차이나 구별이 없다고 선언했다. 『중용』에 언급된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된 경지(천인합일)가 새롭게 정의되었다고 하겠다.”
『중용』은 조선 선비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책이었다. 16세기 이후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회 변화의 이면에는 항상 『중용』이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한 권의 책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화가 요구될 때마다 선비들은 『중용』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중용』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제야말로 또 한 번 중용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중용은 위기의 시대마다 늘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21세기라고 무엇이 크게 다를까. 새 시대의 중용 해석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한 헌장을 되새기는 작업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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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문화 답사기 진도 제주편
도서정보 : 김준 | 2019-09-20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바다에서 쓴 21세기 ‘섬 대동여지도’,
섬의 생존과 일상을 찾아 진도와 제주의 섬에 가다
『섬문화 답사기』는 한국의 3,300여 개 섬 가운데 460여 개 유인도를, 20여 년에 걸쳐 낱낱이 누비면서 기록한, 발로 쓴 장편 답사기이자 장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고독과 고립의 공간인 섬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와 거친 바람이라는 숙명적인 제약에 온몸으로 맞서며 미역줄기처럼 질기게 살아온 섬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의 역사와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새로운 과거 혹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섬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변모를 추적한 농축된 자료이기도 하다.
『섬문화 답사기』 [진도 제주편]은, 총 8권으로 기획한 ‘한국 섬총서’ 프로젝트의 장중한 서막을 열어젖힌 첫 번째 권 [여수, 고흥편]과 [신안편], [완도편]에 이은 네 번째 권이다. 진도로 대표되는 진도권에 있는 섬들과 제주 본섬과 그에 딸린 9개 섬의 일상과 자연에 맞선 투지를 기록한 이 책은 새로운 해양문화의 보고서이자 섬의 미래를 탐색한 자료집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구매가격 : 12,000 원
감자로 보는 세계사
도서정보 : 야마모토 노리오 | 2019-09-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류 역사와 문명에 기여해온 감자!
재배 면적으로는 모든 작물 중 4위를 점하는 감자. 남미에서 재배종으로 탄생한 후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감자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에 감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도 아울러 살펴본다.
안데스의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40년에 걸쳐 히말라야, 아프리카, 유럽, 일본 등지를 조사한 저자가 감자와 인간의 관계 속에 숨은 역사의 드라마를 엮어낸다.
구매가격 : 8,800 원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도서정보 : 헬렌 .M. 로즈와도스키 | 2019-09-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제는 바다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시간이다.
영원한 항해자, 인류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 바다의 역사
역사는 이미 일어난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변한다.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면 과거를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대부분 육지에 편향되어 있다. 콜럼버스의 발견을 그저 새로운 대륙의 발견이라 믿고, 중생대는 공룡의 시대라고만 믿어왔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러할까?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역사에 새로운 관점을 추가한다. 육지의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가 아닌 바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다. 이 책은 영원한 항해자, 인류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한 바다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역사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눈을 선물한다.
캄캄한 심해에 가려진 찬란한 인류의 역사
예부터 바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바다는 역사의 주요 무대였다. 흔히 ‘푸른 행성’이라 불리는 지구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바다에서 온다. 바다가 없었다면 지구도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그저 가스나 암석 덩어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광대하고 푸른 물은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시켰고, 그들을 길러냈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바다의 역할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사실상 인류의 모든 시간은 바다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신대륙의 발견, 제국의 탄생 등 세계사를 뒤바꾼 큰 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다. 유럽 변방의 조그마한 나라인 네덜란드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어떻게 제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영국은 이들을 꺾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어 온 세상을 누볐을까? 답은 바다에 있다. 이들은 모두 바다를 접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인간이 날아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상상력이 없던 시절, 바다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 곧 힘이었다.
바다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건만, 우리가 땅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의 찬란한 역사는 캄캄한 심해 속에 숨어버렸고, 개발의 한계점에 다다른 육지에서 인류 문명은 갈 곳을 잃었다. 현재 인류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다. 해수면 상승으로 남태평양의 섬 두 개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0.6도나 상승했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미지의 공간, 바다에서 다시 시작하는 진짜 세계사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는 육지에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단 하나도 없었던 시절부터 바다가 흘러온 역사뿐만 아니라 바다가 어떻게 인류의 문명을 꽃피우고, 발전시키고, 때로는 삼켜버렸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출간된 바다에 관한 책은 주로 과학 서적이었다. 역사책이라고 해도 지중해나 태평양, 동아시아 연안 등 특정 해역에 관한 것이 대다수였다. 이 책의 저자는 10년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모든 바다의 역사를 개괄한다. 바다의 자연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고고학과 역사, 사회와 문화적 측면까지 모두 다룸으로써 바다와 같이 광대한 시선으로 역사를 읽어내고자 했다.
이 책은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역사’를 담았다. 바다가 들려주는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항해자의 호기심,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는 큰 바다 동물을 사로잡는 용맹함, 별과 바람의 길을 읽는 지혜의 이야기다. 우리의 선조들이 육지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어떻게 ‘바다’라는 새로운 길을 열고 개척해왔는지, 그 거대한 힘이 어떻게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는지 읽어가다 보면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곳도 더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변하지 않지만 역사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이야기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헤쳐 가기에 부족하다. 지금이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할 때다. 이 책을 통해 바다와 세계사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가 바다에 남긴 인류의 보물 같은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길 바란다.
구매가격 : 10,500 원
시와 반시 2019. 가을
도서정보 : 시와반시편집부 | 2019-09-01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계간 시전문 문예지 「시와반시」 가을호.
구매가격 : 6,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