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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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도서정보 : 로런 그로프 / 문학동네 / 2020년 06월 0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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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의 젊은 거장 로런 그로프 최신작

“이 절박한 시대에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소설.” 뉴욕 타임스

로런 그로프의 신작 소설집. 한국 독자에게도 커다란 사랑을 받은 『운명과 분노』 이후 삼 년 만에 발표한 최신작으로,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작가가 십이 년간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쓴 이 작품들은 모두 플로리다를 직접, 간접적인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미국 북부의 다른 주에서 태어나 플로리다로 이주해왔거나, 때로는 플로리다를 벗어나 이국적인 곳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지만 정서적으로 그곳에 계속 매여 있다.

구매가격 : 10,200 원

신을 기다리고 있어

도서정보 : 하타노 도모미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1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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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다.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해서 채용된 곳은 단 한 군데였다. 그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조건을 따지지 않으면 일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살 곳과 입을 옷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해의 마지막날, 나는 홈리스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 빈곤의 섬뜩함, 그럼에도 소망하지 않을 수 없는 작은 구원의 길.
작가의 경험을 바탕삼아 녹진한 리얼리티로 그려낸 청년 빈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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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도서정보 : 조남주 / 문학동네 / 2020년 06월 0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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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신작

우리 모두가 지나온 초록의 시간,
버겁고 외롭지만 함께라서 가능했던 그날의 이야기들

‘누가 내 얘기를 여기에 쓴 거지?’라고 할 만큼 한 개인에게서 공감의 서사를 예민하게 끌어내는 그가 이번엔 미열과 고열을 오가며 초록의 시간을 지나는 한 알 한 알의 존재에게 시선을 맞춘다. 숱한 햇볕과 바람을 들이고 맞으며 맛과 향을 채워 나가는 귤 같은 너와 나의 이야기. 사춘기나 과도기로 명명되는 시기를 쉽게 규정하지 않고, “어차피 지나갈 일, 별것 아닌 일, 누구나 겪는 과정으로 폄하하지 않고 그 자체의 무게와 의미로 바라보고 싶어 한” 작가의 다정한 응시가 담겨 있다.

구매가격 : 8,100 원

『21세기 자본』 이후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도서정보 : 이정우 / 문학동네 / 2020년 06월 0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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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스타 경제학자로 부상한 토마 피케티의 화제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 해제.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21세기 현재 전 세계가 당면한 심화된 불평등의 근원을 무수한 정치·사회·경제적 역사 자료와 통계 데이터를 통해 추적하며, 더 정의로운 미래 사회를 향한 대안을 그 결론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경제학자 이정우는 해제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문사철의 위력이다. 보통 경제학자들의 전문적 기술적 저서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통찰력을 이 책은 독자에게 선사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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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가브리엘

도서정보 : 할프단 프레이호브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2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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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없어?" 너의 짧은 질문에서 시작된 긴 편지

사랑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가족을 곁에 둔 모든 이들에게

첫 책으로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할프단 프레이호브의 가족에세이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아들 가브리엘에게 쓴 열 통의 편지가 담긴 이 책에는 자폐증 아들과 그 아버지가 섬마을에서 함께 보내온 날들이 한줄 한줄 섬세히 수놓아져 있다.

막내아들 가브리엘이 세 살 되던 해에 의사로부터 자폐증과 ADHD를 진단받으면서 그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브리엘에게 긴 인내심이 필요한 삶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한다. 가브리엘의 머릿속엔 온통 질문거리로 가득하다. 하늘나라에는 불이 안 나는지, 해적들이 자기 보물을 훔쳐가진 않을지, 인디언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지 하루하루 궁금한 것들이 넘쳐나는 가브리엘에게 아버지는 복잡한 세상을 설명해주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친구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가브리엘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가브리엘이 느끼는 호기심이란 사실 혼란에 가까우며 의문이 명확하게 풀리지 않으면 심각한 공포나 분노로 치닫곤 한다. 그런 아들에게 어떤 대답도 선뜻 해줄 수 없는 아버지는 쉬운 대답이 가장 어렵다는 역설을 일상적으로 깨닫는다.

책 속에는 내 아이의 자폐증을 이해하기 위해, 부모로서 여러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며 아이의 삶을 지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탐구했던 한 아버지의 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주변에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오해와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세상이 난폭하게 느껴질 때, 자꾸만 고립되어가고 마음이 닫히는 날들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아들을 위해 인생의 여러 속성에 대하여 고심 끝에 써내려간 아버지의 편지가 묶인 이 책은 언제나 무사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내면의 깊은 긍정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내미는 따뜻한 지지의 손길이다.

구매가격 : 9,800 원

씨씨 허니컷 구하기

도서정보 : 베스 호프먼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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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이 조지아의 복숭아처럼 달콤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북부의 외톨이 소녀 씨씨는 정신증을 앓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혼자가 되고, 남부의 투티 할머니에게 보내진다. 투티 할머니의 무한한 환대와 올레타 아주머니의 '천국의 맛' 시나몬 롤을 맛보고, 남부의 날씨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이웃 여성들을 만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씨씨의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봄이 찾아와도 마음은 여전히 겨울인 이들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무관심에 식어버린 심장으로 삶의 활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불꽃을 피워줄 유쾌하면서도 선한 소설.

구매가격 : 10,900 원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문학동네시인선 129)

도서정보 : 김형수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1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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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에 펴내는 김형수 네번째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문학동네시인선 129 김형수의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를 출간한다. 신동엽문학관 상임이사로 그의 안팎을 살뜰히 살피느라 제 그늘 아래로는 안 서는가 하였는데 간만에 수줍게 내미는 그것이 있어 열어보니 올올이 시였다. 쓰고 있던 그였다. 보고 있던 그였다. 한층 고요해진 목소리로 한층 말을 먹은 심중으로 침묵 속 그가 내민 시편들은 손에 들어간 힘이 아니라 펼친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만 같았다. 향기가 났다. 좇을 수는 있었으나 그조차도 잡으려 하면 연기처럼 사라지던 있다 없음이었다. 회한이란 무엇일까. 김형수 시인의 시편들을 읽다 문득 그 단어가 내 밖으로 불려나왔다. 뉘우치고 한탄함. 시끄럽고 요란할수록 꽉 차지 않았다 할 그 말, 회한. 땅을 치거나 가슴을 뜯음 같은 미련한 후회가 아니라 그저 차분히 거꾸로 돌아보고 있구나 함을 알게 하는 뒤안걸음 속의 손 탈탈 턺. 와중에 고마운 일은 고맙다고 미안한 일은 미안하다고 화가 나는 일은 화난다고 슬픈 일은 슬프다고 말하는 여전한 소년으로서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시인 김형수. 그 솔직함이 아직은 유효하여 그의 시는 더 쓰일 수 있겠다 싶은데 모두의 눈에 공평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그 허깨비, 그 시라는 무시무시한 허상을 가끔 본다고 하니 그 ‘가끔’에서 묘하게도 진실된 참상을 느끼게 된다. 그가 이고 진 주제들이 무거운 듯해도 그의 지게에서 내릴 때는 그 물 먹음이 다 빠진 뒤라 우리에게는 사뭇 가볍게 이고 갈 수 있게 함이다. 그의 내공이라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김형수의 시는 주마등 같은 노래라는 생각이다. 시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상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 나오는 가락이 그의 시를 빚어낸다.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시 그 과거의 의미를 되살려내려는 결기가 묻어난다. 그렇다고 오직 날 선 긴장이 팽팽하게 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음조는 자장가처럼 울린다.
_이택광 해설 「통속성의 미학화」 중에서

구매가격 : 7,000 원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문학동네시인선 133)

도서정보 : 김참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1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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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이곳에 와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 같다.”

문학동네시인선 133 김참 시집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가 출간되었어요. 199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 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을 펴낸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기도 하지요.

앞선 시집들의 제목을 제 소개를 좇아 읽어보셔서 짐작들 하시겠지만요, 김참 시인은 제 시의 출발점에서부터 환상의 축지법을 제 특기로 잘도 써온 이여요. 혹여 환상이라 하면 헛꿈 같은 것이 아니겠나, 혀부터 끌끌 차는 분도 있으실 수 있겠으나 허무와 맹랑함을 기저로 하는 데서 환상이 불러오는 상상의 그 ‘역(力)’은 공깃돌을 지구로 지구를 공깃돌로 순식간에 부풀렸다가 부지불식간에 오므라뜨릴 줄도 알지요.

무모한 일일 수 있음에도 시도해보는 일의 아름다움, 그 의지의 빠름, 그 빠름의 뜨거움, 그 뜨거움의 쏟아짐, 그 쏟아짐의 어찌할 수 없음, 그 어찌할 수 없음의 앎, 그 앎의 이상함, 그 이상함의 계절은 바야흐로 언제나 오늘. 김참 시인의 시들이 줄곧 묘하다 할 만큼 잡히지가 않고 고이지가 않고 절로 빠져나가고 절로 흐르는 데는 그 ‘오늘’만을 담보로 그 ‘오늘’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청춘’을 도통 놓을 줄 몰라서라 하겠지요.

시인은 왜 이토록 나이를 안 먹을까요. 시인은 어쩌면 이렇게도 나이를 안 먹을 수 있을까요. 새삼 시인의 시 안으로 뛰어들고 보니 바로 또 알겠는 것이 일단은 나이의 정의라는 것부터 주룩주룩 미끄러지고 있는 거예요. 누가요? 시인이요. 미끄덩미끄덩 밀쳐내고 있는 거예요. 훌렁훌렁 벗어버리는 거예요.

그도 말해요. 이 세상이 “아주 이상한 계절”이라고요. “이토록 이상한 계절”일 수가 없다고요. 이상하여 수상하다 말할밖에 확실한 게 없는 이 계절에 그는 제가 본 것만 말하고 제가 들은 것만 말하고 제가 맡은 것만 말하고 제가 만진 것만 말해요. 뜬 이불처럼 그도 떴다 가라앉곤 하지만 그런 그가 단언하는 것은 이 하나의 문장이라지요. 그러니까 “그가 죽은 이유는 그가 태어났기 때문이”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지도 않았을 것”(「알데바란」)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 빤함에 기댄 전언이요. 그렇잖아요. 이건 아니다 아니라 하며 빠져나갈 구멍이란 구멍에 죄다 뜨거운 물로 갠 시멘트를 부어 굳힌 단단한 명제잖아요.

그는 흡사 고무줄과 같은 사유를 갖고 노는 이 같아요. 그 고무줄을 늘이거나 그 고무줄에 묶이거나 그 고무줄의 유연한 탄성 안에서 재미를 찾는 순응이란 순함도 와중에 천성처럼 갖고 있다 싶은데요, 그래서인지 제 사유의 단면을 가위로 짤똑 끊거나 칼로 싹둑 자르거나 하는 적나라함은 감행하지도 않고 단행하지도 않아요. 정확하게 적어나간 단문의 문장이 몹시도 리드미컬하게 읽혀나가는 가운데 그가 움직이는 방향성에 연둣빛 싹이 보이는 건 그가 기댄 자연, 그 서정을 그가 사랑하기도 하는 까닭이 아닐까 짐작도 가요.

침대가 뜨고 이불이 뜨고 얼굴이 뜨고 팔다리가 뜨면 어딘가 이상한데 자연이 뜨면 결단코 이상할 것이 없는 이야기. “이상하다. 이곳에 와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 같다. 마을 한복판에 서서 나는 멀리 있는 산을 본다. 갑자기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구름 속의 산책」)라고 할 때의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이해되는 슬픔의 감정, 이 공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하는 걸까요.

그가 만든 ‘몽환’의 세계는 퍼져나가는 음악으로 달팽이들이 즐거울 수 있는 세상이지요. 숲으로 돌아간 기린들이 쭉쭉 길어져서 꽃목걸이 대신 구름을 목에 건 기린들이 우리들과 뒤섞여 있는 세상이지요. 왜 이렇게 꿈만 같을까요. 꿈에서 깨었다고 우리는 꿈이 아닌 세상 속을 살고 있는 건 맞을까요. “죽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구름 위로 올라오는 계절”(「가을」), 실은 그러지 않는 날들이 없고 그 ‘나선’ 속에서 살고 사라짐을 매일같이 계속 반복하는 게 우리라 할 때 높디높고 가볍디가벼운, 어쩌면 그것이 진리가 아니겠느냐 할 ‘구름’에게 닿기 위해 늘이면 늘어나는 목을 가진 ‘기린’으로 저 자신이 분해보는 과정, 그 시라는 행위의 가동 가운데의 건강성. 어쩌면 우리가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이유를 이런 능동성의 와중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지 않을는지요.

「기괴한 서커스 3」의 이 두 문장, “이미 다 알고 있는 레퍼토리지만 그래도 온다”라는 것이,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고 예고 없이 끝날 것이”란 게 비단 ‘서커스’만의 정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담장을 넘어 생과 사를 넘실대는 함의임을 다들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우리들의 발아래로 성난 황소처럼 구름이 흘러가는 계절, 가을은 아니지만 구름이 자주 뜨고 사물이 뜨고 우리들이 뜨는 이야기가 또 자주 떠서요, 글쎄요, 나는 것을 타고난 운명처럼 삼은 시들이랄까요.

맥 잡기보다 맥 놓고 싶을 때, 의미부여 같은 데서 맘껏 놓여나고 싶을 때, 그냥 뭐 멍하게 가만있어보고 싶을 때, 아무려나 흘러가는 구름처럼 책장을 넘기면 함께 흘러가고 있구나, 실감도 하게 하는 시집이 아닐까 하여요. 거기 나 있고요, 거기 우리 있고요. 멈춘 듯해도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우리 오늘도 그런 '맴돌곤'의 자기장 속에 스스로에게 속고 스스로를 속이며 있겠지요. 시인의 말마따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요.

이상하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때, 그림 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싶을 때, 그 내 그림에 그 네 그림을 더하고 싶을 때, 그리하여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을 때, 그렇게 펼치면 펼칠수록 역전에서 나아가 새로운 풍경과의 조우를 더없이 빈번하게 만들어줄 그런 시집이 아닐까 해요. 심심한 듯한데 간이 어려운 걸 보니 지금 이대로의 여기에 있음이 필요한 시들이 맞는가도 싶네요. 김참 시인의 이름이 낯설다면 생소하다면 이 시집부터 시작해보심이요. 날기 좋은 봄이고 연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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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마녀

도서정보 : 다카기 아키미쓰 / 엘릭시르 / 2020년 05월 0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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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유력해 보이는 용의자, 승산이 없는 재판, 하지만……
“무죄라는 확신이 든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변호인석에 설 작정이야.”

일본 미스터리 거장 다카기 아키미쓰의 법정 미스터리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에게 한 실업가가 찾아온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의 처리를 햐쿠타니에게 의뢰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의심하던 대로 살해당하고, 범인으로 세 번째 부인인 아야코가 지목된다. 햐쿠타니 센이치로는 그를 독살했다고 자백한 아야코의 변호를 위해 법정에 선다. 승산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사건의 행방은?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들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스물아홉 번째 작품 『법정의 마녀』가 출간되었다. 『법정의 마녀』는 요코미조 세이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 본격 미스터리 작가 다카기 아키미쓰가 1963년에 쓴 법정 미스터리 작품으로, 사회상을 반영한 원죄 사건을 많이 다뤘던 다카기 아키미쓰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시리즈 주인공인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여성을 변론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이 작품은, 아침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사건과 반전, 본격 미스터리식으로 풀어나가는 해결이 돋보이는 엔터테인먼트 법정 미스터리다.

●일본 미스터리 거장 다카기 아키미쓰의 법정 미스터리

『법정의 마녀』의 작가 다카기 아키미쓰는 긴다이치 고스케를 만들어낸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법의학 조교수 가미즈 교스케를 주인공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를 필두로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는데, 여러 시리즈를 발표해 다양한 탐정들을 선보였다. 본격 미스터리가 주류였던 일본의 미스터리 문학은 그 중심이 점차 사회파 미스터리로 옮겨가게 되는데, 다카기 아키미쓰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파적 요소나 하드보일드 등의 장르를 도입해 동향을 쫓으면서 본격 미스터리의 가능성을 추구해나갔다. 그런 와중에 선보인 것이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를 주인공으로 한 법정 소설이다. 법정 미스터리에 본격 미스터리식 해결을 추구하는 작품으로, 당시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법정 소설에 일본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법정의 마녀』는 이런 햐쿠타니 변호사 시리즈 중 하나로, 다카기 아키미쓰의 특기인 원죄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한 실업가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가족관계. 그리고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 실업가의 유언에 따라 주인공 햐쿠타니 변호사는 그 죽음을 추적한다. 실업가에게는 세 명의 부인과 배다른 자녀가 있다. 그리고 그의 젊고 아름다운 세 번째 부인은 외도가 의심되며 상대와 살인을 공모해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 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누가 봐도 유력한 용의자인 셈이다. 햐쿠타니 변호사가 패소로 이어질 것이 뻔해 보이는 이 사건을 수임한 데에 작중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들 역시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사건은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 법. 흥미를 자아내는 자극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수록 더더욱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법정의 마녀』는 과거의 사실, 인간관계가 얽혀 촘촘히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인물을 읽어나가는 보람이 있는 작품이다.


●일본의 페리 메이슨

“선생은 일본의 페리 메이슨이라 불리는 분이시니 뭔가 비장의 카드 같은 비책이 있으실 거 아닙니까.”
“일본의 페리 메이슨이라고요?”
센이치로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_본문 123쪽에서

변호사 출신으로 법정 미스터리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 미국 작가 얼 스탠리 가드너가 창조해낸 캐릭터 페리 메이슨. 자신의 직감을 따라 무고하다고 판단하면 온갖 위험에도 굴복하지 않고 변호를 해내고 마는 이 인물은 1957년부터 9년간 방송된 TV 시리즈의 큰 성공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법조인으로 일컬어진다.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원죄 사건을 맡는 햐쿠타니는 극중에서 종종 이 페리 메이슨에 비견된다.

“만약에 페리 메이슨이 일본의 원죄 사건 재판을 본다면 기겁을 하겠구먼.”
_본문 125쪽에서

프랑스어로 요정을 가리키는 ‘페리’는 『법정의 마녀』의 주인공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가 아내 아키코를 가리키는 애칭이기도 한데, 사대주의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자신을 페리 메이슨과 비견할 때마다 아키코를 보며 당신은 페리고, 난 메이슨. 우리 둘이 딱 한 사람 몫을 한다는 건가?’ 하고 웃곤 한다. 일본의 페리 메이슨이라는 말은 변호사 사이에서 조롱의 의미로 통하기 때문이다. 페리 메이슨은 탐정을 고용해 증거를 모으고 그것을 토대로 법정에서 극적인 역전극으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렇게 승소한 뒤 얻는 보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하지만 1950년 당시 일본에서 원죄 사건에 연루되어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은 보통 가난했다. 현재에 비해 수사 과정이 열악해 과학수사를 기반으로 한 증거물 수집이 어려웠고, 재판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실상 국선변호인에게나 지불되는 보수로는 재판에서 승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변호사 햐쿠타니는 당시 드물었던 법정 미스터리의 주인공으로서 페리 메이슨과 비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페리 메이슨을 빗대 자신을 자조함으로써 일본 법조계의 현실상을 풍자했다. 이런 햐쿠타니 변호사의 모습에서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비판하던 작가 다카기 아키미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그래서 가와세 씨는 저에게 부검 의뢰서까지 맡기신 거겠지요. 저도 지금까지는 설마설마했습니다만, 이렇듯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으니 저로서는 고인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받들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 그리해주십시오!”
고이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걸 흐지부지 덮어버리면 아버지께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실 테고…….”
그때 아야코의 입술이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꿈틀거렸다. 입가에 그 수수께끼의 미소가 다시 번졌다.
센이치로는 전율했다. 이 미소는 분명 ‘마녀의 미소’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52~53쪽)

“그럴지도 몰라. 부인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게 틀림없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해. 이번에는 단순한 동정이나 감정만으로 변호할 수 없어.”
센이치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어 말했다.
“페리, 부인을 면회하고 와야겠어. 무죄라는 확신이 든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변호인석에 설 작정이야.”
(94쪽)

구매가격 : 9,000 원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시인선 135)

도서정보 : 이원하 / 문학동네 / 2020년 05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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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이런 재능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을까._신형철(문학평론가)

혜성처럼 등장한 독보적 재능, 독특한 이력의 시인
이원하 첫 시집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원하 시인의 첫 시집을 펴낸다. 당시 “거두절미하고 읽게 만드는 직진성의 시였다. 노래처럼 흐를 줄 아는 시였다. 특유의 리듬감으로 춤을 추게도 하는 시였다. 도통 눈치란 걸 볼 줄 모르는 천진 속의 시였다. 근육질의 단문으로, 할말은 다 하고 보는 시였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시였다. 시라는 고정관념을 발로 차는 시였다. 시라는 그 어떤 강박 속에 도통 웅크려본 적이 없는 시였다. 어쨌거나 읽는 이들을 환히 웃게 하는 시였다”는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 그의 시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라는 독특한 감각의 제목을 달고 있었고, 당선 직후 문단과 평단, 출판 관계자와 새로운 시를 기다린 독자들의 입에 제법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았고, 미용고를 졸업해 미용실 스태프로 일하고, 영화 <아가씨>에 뒷모습이 살짝 등장하는 보조 연기자로 살아온 이력도 한몫했다. 이십대 중반, 늦다면 늦은 때에 문학을 만나 시를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산 것과 신춘문예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개성 역시.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이제 총 54편의 시를 아우르는 첫 시집의 제목으로 독자들을 새로이 마주한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시집을 펼치면 차례 페이지부터 신선하다. 4부로 나뉜 구성에 각각의 부제목이 ‘새’ ‘싹’ ‘눈’ ‘물’이다. 한 음절로 된 단어들인 동시에 ‘새싹’과 ‘눈물’로 읽어도, ‘새싹눈물’로 읽어도 각각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짤막한 부제목 아래 다소 긴 편인 시의 제목들.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풀밭에 서면 마치 내게 밑줄이 그어진 것 같죠’ ‘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등등의 제목은 글인 동시에 말 같고, 혼잣말인 듯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인 듯하다.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_「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전문


어깨에 힘을 뺀 자연스러운 그만의 문법을 차례 페이지에서 우선 맛본 뒤 본격적으로 읽게 되는 첫 시가 등단작이자 표제시인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다. 제주에 핀 수국과 바람 등 서정적인 소재에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같은 묘한 매력의 경어체 활용,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같은 천진한 듯한 단호함까지. 이원하 시의 힘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나 시집의 해설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는 이 시 한 편만 읽고서는 “어떤 마음의 역사가 이 시를 쓰게 하였는지를. 이 웃음 뒤에 어떤 세월이 있으며, 이 아름다운 경어체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으리라 예고했다. 요컨대 이 시를 시작으로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의 ‘끝이 없다는 정체’를 하나씩 만나고 난 뒤, 다시 돌아와 이 시를 한번 더 읽을 때 비로소 이 시를 완전히 갖게 되리란 것.

분명 시집을 읽어갈수록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또렷해진다. 그는 훌쩍 제주로 떠나 살기로 한 사람, 자주 바다를 바라보고 자주 나가 걷는 사람. 날이 차가워지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 남은 미련을 곱씹는 사람, 혼자 몰래 울고, 그 울음은 숨기고 덮으려 웃는 버릇을 들인 사람이다.


바람은 차갑거나 뜨겁고
나무는 키가 작거나 크고
한 시절은 머물거나 건너가며
말 한마디는 사람을 달래거나 그 반대인데
너는 하나예요
_「그늘을 벗어나도 그게 비밀이라면」 부분


추억하는 일은 지쳐요

미련은 오늘도 내 곁에 있어요

내가 표정을 괜찮게 지으면
남에게만 좋은 일이 생겨요
(…)

속은 한번 상하면 돌이킬 수 없어서
아껴야 하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어서
목요일은 잔뜩 풀이 죽어야 했어요
_「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부분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 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_「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부분


빛을 비추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웃기만 했어

얼마나 오래 이럴 수 있을까
정말 웃기만 했어
_「빛이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부분


낮이란 낮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낮에는 자꾸 다짐하게 되니까 새 마음 먹게 되니까
내가 잘 보이니까

자주 무섭다가
그 상태 그대로 매번 웃는다

섬에 살다보니
섬과 처지가 같아진 것이다

혼자 한가해서 매번 혼자 회복하는 것이다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_「동경은 편지조차 할 줄 모르고」 부분


미련이 남아 괴롭고, 용서하지 못할 것이 있어 괴로운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너’를 향해 하는 말들은 속삭임인 듯 편지인 듯한 경어체로, 습관적으로 웃기를 택한 나와 혼자 울기 좋은 나의 속내는 읊조림인 듯 일기인 듯한 평서문으로 만날 수 있다. 문체에 따라 어느새 독자가 화자의 표정을, 마음의 안부를 살피며 읽게 되는 기묘한 독서 경험.

웃는 것으로 자신의 결여를 가려온 화자가 “바다 한가운데 놓인 화분 같은 섬”(「필 꽃 핀 꽃 진 꽃」)에서 자기만의 꽃을 피우는 과정을 담은 것이 이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제주라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서사를 탐구해온 이의 기록 말이다.


영원히, 말고
잠깐 머무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전화가 오면 수화기에 대고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자랑해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자랑해
이렇게요
_「환기를 시킬수록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부분


그는 노을과 함께 곧 이 섬을 떠나죠
그뿐이고 그러니 오늘뿐이고
모든 것들은 원래 다 그렇죠

봄날의 꽃처럼
한철 잠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죠

올해는 오늘까지만 아름답다,

이렇게요
_「노을 말고, 노을 같은 거」 부분


다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로 돌아온다. 이제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어하는 나.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으로, 그것은 감추는 말인 동시에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제주의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힌 새 같은 나이지만, “발전에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기도 하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라고 말하는 이의 얼굴은 역시 웃음기를 머금고 있으리라. 이렇듯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 이제 여러분이 이 사람을 만날 차례이다.


그는 이제 울지 않기 위해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어서 웃는 사람이 되었다. 이 웃음은 그가 쟁취해낸 것이지만 그는 이것이 제주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자, 그러니 시집 전체가 아니라 이 시만 읽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어떤 마음의 역사가 이 시를 쓰게 하였는지를. 이 웃음 뒤에 어떤 세월이 있으며, 이 아름다운 경어체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를. 시집은 여기서 끝나고 그는 계속 가야 할 길이 있다. 자연에서 자유로 가는 길, 우리도 그 길 위에 있고, 시는 오로지 그 길 위에만 있다. 이원하의 시는 자유를 바라보는 자연의 노래다. _신형철, 해설 「자연에서 자유까지―웃는 사람 이원하」에서


■ 시인의 말

편지 아닌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그 편지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해요.

저 아직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2020년 4월
이원하

구매가격 : 7,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