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범죄의 붉은 실
도서정보 : 미스터 펫 / 엘릭시르 / 2020년 05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미스터 펫의 작품 세계
『범죄의 붉은 실』에는 현대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라는 미스터리 본연의 즐거움은 물론, 작품 곳곳에 뿌려놓았던 복선을 철저히 회수하여 의문점이 남지 않는 개운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것이 미스터 펫의 스타일이다. 또한 본격 미스터리의 구조에 일상 미스터리와 블랙 유머까지 곁들이며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제4회 런랑청추리문학상에 가작으로 입상한 「살의라는 이름의 보고서」는 미스터 펫이 처음으로 쓴 추리소설로,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등장인물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된 줄거리에서 폭발적인 의외성이 느껴진다’는 호평을 받았다. 살인을 자살로 연출하기, 밀실 트릭이라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요소가 새롭게 변주된다. 주인공은 대학생 때 학점과 평판은 물론 친구까지 빼앗아 간 상대와 재회하고, 그가 다시금 정체성을 강탈하려 들자 살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얼어붙은 여름」에는 외도를 하던 아내가 살해당한 후 시체 안치소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쐬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남자에게 한 사람이 교환 살인을 제안한다. 아내의 외도 상대를 대신 죽여줄 테니, 자신에게 빚을 지운 사채업자를 죽여달라는 내용이다. 남자는 교환 살인을 제안한 상대방과 함께 완전 범죄를 완성할 수 있을지 치밀하게 따져보기 시작한다.
표제작 「범죄의 붉은 실」은 제5회 런랑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당나라 소설 「정혼점(定婚店)」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독자의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간단하면서도 알아차리기 힘든 트릭을 선보인다. 거짓말쟁이 유부남 애인의 기만에 분노한 주인공은 그의 아이를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기에 이른다. 복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범죄를 설계하는 면모와 아이에게 이 이상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살인 교차점」의 주인공은 평범하다 못해 지극히 수수한 인물이다. 외모와 성격은 물론이고, 업무 실적까지 수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기에 수행할 수 있는 비밀 임무도 있는 법이다. 미스터 펫은 이 작품에서 재치 있는 후더닛과 함께 블랙 유머를 보여준다.
「키다리 아저씨 ONLINE」은 온라인 게임 속 가상현실을 무대로 한다. 이 배경을 만들어낸 것은 작가 해설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안락의자 탐정이 현장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갈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갈 수 없는’ 이유가 강력해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작품 속 안락의자 탐정은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기 수법을 밝혀내는데, 그 과정에서 게임의 인공 지능과 협업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정까지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꽁꽁 숨겨진 트릭을 파훼하는 본격 미스터리적인 재미만큼이나 일상의 수수께끼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일상 미스터리적인 재미도 가지고 있다. 「살인 교차점」에서 블랙 유머를 시도했듯, 여러 장르에 도전하며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 미스터 펫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작품마다 실린 작가 해설은 낯선 작가, 낯선 작품과의 거리감을 줄여주는 일종의 소통 창구다. 「살의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집필할 2006년경은 타이완에 일본소설이 대량으로 유입되던 시기였다면서 그 덕에 견문을 넓히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든지, 「키다리 아저씨 ONLINE」에 깜짝 출연한 『버추얼 스트리트 표류기』(한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의 등장인물과 그 뒷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훨씬 풍부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본격 추리 작가로서의 첫 작품부터 일상 미스터리와 블랙 유머로의 도전, 그리고 출세작까지의 연결 고리를 담은 『범죄의 붉은 실』은 국내 독자들에게 타이완 추리 작가 미스터 펫을 소개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 엘릭시르 오리지널 단편집
국내 미스터리 시장에서 중국어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진 2015년 이후, 엘릭시르 역시 중국어권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다. 역자의 제안으로 「범죄의 붉은 실」을 검토한 후,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와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는 재기(才氣), 그리고 흥미로운 줄거리를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견하고, 엘릭시르가 찾던 중국어권 미스터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곧장 작가에게 지금까지 냈던 작품들 중, 재미있는 몇 편을 모아 단편집으로 엮어 한국에서 출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미스터 펫의 단편집으로 중국어권, 특히 타이완에서 맥동하기 시작한 추리 미스터리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이다. 작가는 흔쾌히 수락하면서도 어떻게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알고, 이런 제안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새로운 미스터리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미스터 펫과 엘릭시르를 연결해준 것이 아닐까?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들은 단편집에 대한 기획을 들은 작가가 직접 골라 제안한 것으로, 스스로도 재미있다고 자평한 작품들이다. 그렇게 『범죄의 붉은 실』이 태어났다. 미스터 펫 단편집『범죄의 붉은 실』은 오직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엘릭시르 오리지널 단편집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
야경
도서정보 : 요네자와 호노부 / 엘릭시르 / 2020년 05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15년, 새로운 미스터리 제왕의 탄생
요네자와 호노부는 현재 일본 미스터리계의 젊은 작가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빙과』로 데뷔한 그는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번갈아 오르며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다가 2012년 『빙과』가 애니메이션화되고 『부러진 용골』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대형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인생을 건 염원이 빚어낸 수수께끼를 그린 단편집 『야경』으로 그간 아무도 차지하지 못했던 미스터리 3관왕을 거머쥐면서 제왕의 자리에 등극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미스터리 장르의 새로운 제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초기에는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 등 주로 일상의 사건들을 다룬 청춘 미스터리를 발표한 요네자와 호노부는 주로 일상 미스터리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종잡을 수 없는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다. 국내에서도 주로 ‘고전부’ 시리즈인 『빙과』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일상 청춘 미스터리 외에도 트릭에 초점을 맞춘 본격 미스터리(『인사이트 밀』)를 비롯하여, 블랙 유머(『개는 어디에』), SF 성장물(『보틀넥』), 리들 스토리(『추상오단장』) 등 장르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개성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작가의 특색은 『야경』에 실린 여섯 개의 단편에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여섯 개의 평범한 삶에 숨겨진 평범하지 않은 수수께끼
『야경』은 각기 다른 여섯 명의 삶에 얽힌 여섯 가지 수수께끼를 담은 작품집이다. 작은 동네의 파출소를 중심으로 한 경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야경」), 옛 연인을 만나러 자살의 명소가 된 온천 여관으로 찾아갔다가 맞닥뜨린 수수께끼(「사인숙」), 아름다운 어머니와 두 자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남모를 애정과 갈등의 선율(「석류」), 험악한 환경의 해외로 파견된 비즈니스맨에게 닥친 혹독한 시련(「만등」), 손님이 뜸한 고갯길의 휴게소에서 벌어지는 괴담 같은 사연(「문지기」), 신세를 졌던 집안의 여주인이 얽힌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진실(「만원」) 등 처음에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감춰진 수수께끼를 풀어놓는 순간 각기 다른 색깔을 띠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각각의 단편은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첫 번째 단편인「야경」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처음 시도한 경찰 소설로 처음에 구상한 시대 소설의 플롯을 경찰 소설의 형태로 만든 작품이다. 귀자모신의 축제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제목을 붙인 「석류」는 작가의 지난 단편집 『덧없는 양들의 축연』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작품으로 그로테스크한 심리드라마가 돋보이는 한 편이다. 미싱링크와 후더닛에 초점을 맞추어 집필한 「문지기」는 오싹한 휴게소의 이미지에서 풍겨오는 호러 색으로 단편집 『야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마지막 단편인 「만원」은 작가 렌조 미키히코의 ‘화장’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스터리를 「만원」을 통해 글로 풀어냈다고 한다. 이처럼 단편집 『야경』은 미스터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내공이 듬뿍 담긴 다채로운 미스터리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미스터리를 맘껏 글로 풀어낸 소설’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야경』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라 하겠다.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정점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는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평가한다.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 매번 생각지 못한 곳에서 깜짝 놀란다.” 단순히 미스터리적인 반전만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욕심 많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미스터리’로서도 ‘단편’으로서도 ‘소설(이야기)’로서도 어느 면으로 놓고 평가해도 “수준 높은 단편의 연타”(미야베 미유키)다. 때로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경찰 소설 같은 풍미를, 때로는 렌조 미키히코의 탐미적인 심리를, 때로는 트릭에 초점을 맞춘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때로는 이야기 자체의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채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굉장히 고른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단편집이라면 흔히 대표가 되는 작품과 상대적으로 밀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함께 공존하게 마련이지만 『야경』은 그렇지 않다. 하나하나가 모두 4번 타자, 또는 에이스 투수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정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처음 게재된 간행물 목록
「야경」 《소설 신초》 2012년 5월호 (「연속음」 개정)
「사인숙」 《소설 스바루》 2011년 1월호
「석류」 《소설 신초》 2010년 9월호
「만등」 《소설 신초》 2011년 5월호
「문지기」 《소설 신초》 2013년 5월호
「만원」 《Story Seller Vol.3》 2010 Spring (《소설 신초》 2010년 5월호 별책)
구매가격 : 10,500 원
리커시블
도서정보 : 요네자와 호노부 / 엘릭시르 / 2020년 05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10대가 먹기에는 조금 진한 다크 초콜릿 맛 미스터리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처럼 경쾌한 소년 소녀의 성장 미스터리를 달콤하고 부드러운 밀크 초콜릿 맛에 비유한다면 『보틀넥』과 『리커시블』은 진한 다크 초콜릿 맛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모두 10대의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그 시절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미묘한 감정과 생각 들을 절묘하게 낚아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전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분투하는 이야기를, 후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떠나 강제로 다른 환경으로 옮겨가면서 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전자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후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벌이는 주인공의 고투가 훨씬 강하게 전달되는 편이다.
『리커시블』은 『보틀넥』만큼 어두운 작품은 아니다. 다만 SF 요소가 가미되어 ‘허구’라는 설정이 강조된 『보틀넥』에 비해 현실적인 지점이 부각되어 보이는 탓에 주인공에게 좀더 가혹해 보이는 성장 조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마을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초반의 전개는 호러물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모든 마을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리커시브(recursive) [형] 재귀적인.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프로그래밍 언어로는 처리중 자신을 호출하는 처리를 말한다.
『리커시블』에 등장하는 마을의 ‘전승’은 작품 전체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 가운데 하나다. 제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작품의 구조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승’ 또는 ‘신화’란 아득한 옛날 그때(in illo tempore)를 되풀이하는 과정으로, 주기적으로 창조의 행위를 되풀이한다는 뜻을 품는다. 그러니까 주인공인 하루카가 자신이 이사 온 마을의 전승의 뒤를 쫓는 것은 자신이 살게 될 장소의 근원을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영웅은 자신이 속한 동아리가 손실한 것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그런 의미에서 『리커시블』의 스토리 구조는 영웅 신화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동생의 예언(?)을 계기로 ‘소명’을 받은 하루카는 이 마을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사건을 파헤친다. 재밌는 것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특별히 신화나 전승이 갖고 있는 의미 자체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루카가 이사 온 마을에 전해지는 전승의 핵심인 ‘다마나 아가씨’ 이야기는 그저 미스터리의 구조를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편입되었을 뿐이다. 작품을 전부 읽고 나서야 전체를 이해하는 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이 대단하다.
서스펜스에서 본격 미스터리로, 본격 미스터리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식 결말로
고립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으스스한 서스펜스 호러처럼 읽히던 소설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인 하루카가 수수께끼의 진상에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모험물의 성격을 살짝 띠었다가, 이윽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전의 속살을 내보이며 숨겨왔던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하게 된다. 그리고 씁쓸하지만 따뜻한(또는 따뜻하지만 씁쓸한) 결말. 이런 게 요네자와 호노부식 미스터리구나, 싶은 순간이다.
요네자와의 소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한 가지 장르나 한 가지 성격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이 작품만 하더라도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품에 안고 있다. 그런데도 읽기 어렵다거나 복잡한 구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쉽게 편하게 읽히면서도 작가가 구석구석 섬세하게 이어놓은 실타래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리커시블』은 이러한 작가의 특기가 여전히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편이다.
구매가격 : 11,100 원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문학동네시인선 132)
도서정보 : 최현우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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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정직한 슬픔과 깨끗한 애정을 담은 비망록
순정하게 아름다운, 최현우 첫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32번째 시집으로 최현우 시인의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를 펴낸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데뷔 6년 만의 첫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는 2010년대를 이십대로 살아온 한 시인의 진솔한 마음의 보고서이자, 청춘을 가로지른 어제의 세계를 담은 시대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던 나와 나날을 기록한 63편의 시편. 피의 진함보다 물의 빛남을, 몸피보다 뼈를 남기려는 시인 최현우. 이 예외적으로 순정하게 아름다운 시인의 첫 시집은, 슬픔은 절제하되 그 무게를 견디고자 하는 책임은 무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이 젊은 시인을 ‘초과-신뢰’하게 될 것이다.
시집의 제목을 눈에 담았다면, 먼저 각 부의 제목에 한번 눈길을 주시길 부탁드린다. 1부 ‘나는 모르고 모두가 보는’, 2부 ‘조금은 더 너랑 살 수 있겠지만’, 3부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4부 ‘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모두 최현우 시인의 특장을 한 문장에 담은 것으로, 그의 시는 첫째, 작정하지 않는 정직함을 가졌고, 둘째, 수줍은 연애시이며, 셋째,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에 흩뿌려진 아름다움을 그러모으며, 넷째, 때로는 진심을 쏟아놓는 진솔함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시편에서 ‘소년’과 ‘아이’로 자주 분하는 최현우의 페르소나는 비정한 세계를 가감 없이 바라보는 눈이 되고, 또 무구한 마음을 발견하는 렌즈가 되며, 다른 세계-미래를 예비하는 책임감을 두 손에 쥔 화자가 된다.
잠든 연인의 입속으로 과자 부스러기를 모아 넣으며 우는 사람들
마지막 빵의 썩지 않은 부분을 아이에게 물리고 곰팡이를 집어먹는
참다못해 타고 있는 장작을 그대로 끌어안는 사람들
입김으로 가족의 언 발을 씻기는 사람들
(…)
다시는 아름답지 말자
아름다워지지 말자
이 계절은 다 지났고
사람들은 구출되어
각자의 여름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과 나는 남아서
쇄빙선처럼
얼음의 방향으로 간다
_「한겨울의 조타수」 부분
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했어
내게 가장 밝은 것은
두들겨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렸으므로
그걸 담아 팔려고 했어
_「와디 럼」부분
“반짝거리는 모든 세상에는 좋은 슬픔”이 있으므로
“날씨는 태어난 곳의 기억을 버리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남겨진 것에 뚜껑을 덮으면/ 담겨진다”(「남다, 담다」)는 시구는 이 시집을, 최현우의 시 세계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시인은 슬픔으로 가득찬 2010년대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것―그것이 슬픔이든, 분노든, 절망이든, 무력감이든―을 그저 남은 채로 두지 않고, 그 생생한 감정과 장면을 고스란히 감각하고, 그 슬픔의 순간에도 떠오르는 반짝임에 감광하여 시를 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가만히 웃거나 우는” “절반은 알고 절반은 모르”는, 그리하여 “아주 가끔씩만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가만히 웃거나 우는」)던 나날들을 빛으로 타전하는 그의 시는, 조난자를 밝은 곳으로 이끌기 위한 모스부호이자, 미래에 건네는 청사진에 다름 아니리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견딤’을 견디는 것이 어려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을 단번에 돌파할 방법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몇 번씩 꺾이고 난 뒤에 비록 울음으로 엉망이 된 모습을 하고서라도 다치고 깨진 여남은 것을 주워 다시 기대를 걸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분명 지금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최대의 용기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만 앞으로의 삶이 지속될 것임을 이십여 년 동안 알게 되었으나 그걸 알고서도 버텨나가겠다, 이 시집이 이런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면 나 역시 조금 더 버텨보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분을 내어주는 것에 대해 비록 삶은 그 어떤 것도 되돌려주리라 보장하지 않겠지만. 낙관적인 조건도 없이 깨지고 좌절하고 망가진 뒤에도 다시.
_선우은실(문학평론가), 해설 「정강이를 부러뜨린 아이는 난파된 배의 조타수가 되어 조난자를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부분
시인은 망가지고 부서진 것을 보았고, 또 물려받았지만 “마음을 망치는 것들은 피냄새가 나니까”(「회색이 될까」), “먼저 일어나서 일으켜주고 싶”(「오후 네시」)기에, “젖은 햇빛을 닦아주고 싶은”(「아베마리아」) 마음을 담아 “턱뼈에 힘을 주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아홉」)고서 시를 써내려간다. 그렇기에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발레리나」) 감행하는 우직함, “믿음도 연습이야/ 그 단 한 마디에 구원을 버”(「오후 네시」)리는 염결, “네가/ 아침마다 무게를 재며 울어서/ 체중계를 버”(「가족의 방식」)리는 헤아림, “다쳐서 흘러나온 사람에게서는/ 유유 냄새가 난다는 걸”(「아베마리아」) 아는 사려 깊음, 이는 모두 시인 최현우의 다른 얼굴일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는 이유는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만질 수 있다면 쉽게 잊히고 말 그 날씨를, 시인은 그것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기미의 기미조차 기록으로 남겨 전하는 것이 아닐까? “날씨는 태어난 곳의 기억을 버리지 않는다”(「면도하는 밤」)는 시인의 말처럼 시인은 날씨처럼 기억을 버리지 않기 위해, 햇빛 아래 고요히 마르는 빨래를, 꽃이 죽는 밤을, 옆 사람의 손의 온기를, 달빛에 묻어나는 연인의 등을 기록하는지도 모르겠다. “반짝거리는 모든 세상에는 좋은 슬픔이 있”(「깨끗한 애정」) 기에, “두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한 몸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빨랫대를 보고 말했지」) 믿고 있기에, 아직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낙원」)기에.
“발롱!”(「발레리나」) 하고 더 높은 곳을 꿈꾸던 시인은 어느덧 믿음직한 ‘조타수’가 되어 이제는 더 먼 곳으로, 적소(適所)로, 독자의 마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의연한 시인의 잊지 않으려는[備忘] 기록은 “망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 싶”(「시인의 말」)은 미래의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 청춘의 비망록이 미래의 청사진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맞이하고 싶다.
구매가격 : 7,000 원
제법 안온한 날들
도서정보 : 남궁인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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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사라져도 마지막 순간 우리가 기억할 일,
살아 있는 동안 온 힘을 다해 끌어안지 않으면 후회할 단 한 가지
그건, 사랑
의사가 왜 하필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을까, 하는 생각은 다음 질문을 마주했을 때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후회할 일은 뭘까?” 갖지 못한 돈? 누리지 못한 권력? 명예와 인기? 아니,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끝내 못다 한 사랑,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망설이고 미루다 놓쳐버린 마음. 그런 것들이 후회로 남지 않을까. 그러니 늘 생사의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일하는 그가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사랑일 뿐이므로.
그가 일터에서 목격한 사랑은 때로 강철 같은 의사들의 눈시울마저 젖게 할 만큼 감동적이다. 평생을 해로한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아내를 떠나보낸 후 마지막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하는 고백,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지내던 환경미화원이 동료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대목,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버틴 아버지의 이야기 등은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동안 잊고 있던 사랑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여리고 유한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의사의 각별한 시선
“인간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이번 책은 전작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와 결을 조금 달리한다. 이전 산문집에서 응급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근거리의 생생한 모습을 주로 전했다면, 이번 책에서 그는 종종 안온한 일상으로 물러나 고통 이후 찾아오는 인간의 회복을 멀리서 응시하기도 한다. 가장이 쓰러져 휠체어에 앉게 됐지만 남은 가족은 그를 돌보며 슬픔을 딛고 건강하게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희망」)는 타인이 함부로 재단하지 못할 인간의 불행과 행복, 생명력에 관한 일화다.
가족이 돌이키지 못할 불행을 겪거나 가장이 쓰러져 휠체어에 앉아 있을지라도, 사람들은 현실을 비관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끌어안고 돌보며 각자 저마다의 위치에서 앞길을 찾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성장한다. 내가 세상만사를 슬픔에 찬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 휠체어에 앉은 그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세상을 견디고 있었으며, 가족들은 그를 돌보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일을 했다. (…) 그 시절 나는, 가족들이 전부 건강하고 이렇다 할 좌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응급실에서 절규하는 사람을 본다는 이유로 불행을 재단하는 습관을 이어왔다. 그러나 싹은 어디에서든 피어난다. 그리고 척박한 곳에서 움튼 싹은, 오히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한다. 우리는 주저앉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병원을 나간 사람들은 시련을 극복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한참 고된 생활에 취한 나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194~195쪽)
아픈 건 잘못인가요? 죽음에도 돈을 지불해야 하나요?
의학만으로는 풀 수 없던 세상이란 수수께끼
「가난」 「세균」 「열사병」 같은 글에서는 의사의 시선으로 예민하게 간파한 세상의 부조리를 말하는 그의 음성이 느껴진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을 잠식하면 때때로 비이성적인 분노와 손가락질이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세균」은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로, 반평생을 섬에 고립돼 살아야 했던 ‘장티푸스 메리’의 비극을 일깨운다. 그는 “현대 의학이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1900년대에도 의학은 ‘현대 의학’이었다. 지금의 우리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여전히 비합리적 공포감과 손가락질과 편견의 프레임이 남아 있고 누군가를 지탄하는 일이 더욱 손쉬워진 세계에서, 악의 없이 불행했던 장티푸스 메리의 비극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은 돈이 없어 어떤 치료도 받지 않고 죽겠다던 어느 버스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열사병」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유난히 열사병 환자로 많이 실려 왔던 2018년 여름의 기억을 담고 있다.
의사가 아플 때는 어떤 기분일까?
의사의 통증, 그리고 내밀한 사랑 이야기까지
한편, 이 책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의사 자신의 이야기도 있다. “의사도 병원에 가는 게 두려울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해봤을 법한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사도 병원에 가는 게 두렵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을 찾는 환자들보다 더 두려울 수도 있다.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근엄하게 환자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지만, 사실 진료가 무섭고 아프면 힘든 건 똑같다. 인간 보편의 고통 앞에서 그가 보이는 모습은 의사의 인간미를 보여준다. 그는 무릎을 크게 다치고 끙끙거리며 혹시 수술을 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무릎」), 어렸을 적 유난히 아프던 발가락 마취의 기억을 떠올리며 유독 발가락 마취 주사를 맞으러 온 환자에게 “이거 진짜 완전히 너무 아픈 겁니다. 아휴, 꼭 잘 참아주세요. 이거 정말 진짜 아파요”라고 거창한 예비 선언을 하기도 한다(「발가락은 특별히 더 아프다」).
하지만 사뭇 유머러스하게 묘사되던 ‘개인적인 통증’이 때로는 묵직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밀한 그의 이야기들이 꼭 개인적인 것만으로 읽히지 않는 대목이다.
타인의 고통을 많이 경험하고 지식을 쌓은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지만, 더불어 자신의 삶을 오래 경험하고 예민하게 지켜본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나이 지긋한 의사에게 더욱 신뢰감을 느끼는 것은, 의학은 반복으로 공고해지는 경험의 학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 개인이 인생 굴곡을 통과할수록 그의 삶도 많은 고통으로 풍성해지기에 의사가 환자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일 테다. (…) 삶이 흘러갈수록 나는 더욱 실재하는 고통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점차 내 환자들 전부가 아닌 일부에게라도 더 깊이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고통을 내가 겪은 일처럼 조금 더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다양한 고통의 편린을 마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122~123쪽)
■ 추천의 글
살림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옥상 화분에 키운 쪽파로 김치를 담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애도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기 전부터, 약속 시간을 확인하거나 사망선고를 해야 할 때 응시했을 그의 낡은 손목시계를 보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는 작가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는 이 책에 담긴 살림과 사랑과 사람만은 일방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림은 늘 제자리라서 아름답고, 사랑은 사랑이었으므로 아름답고, 사람은 그냥 사람이어서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작가의 이름은 ‘인’입니다.
_박준(시인)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간다고 그는 썼다. 내 눈에 그는 매일같이 놀라며 살아온 사람으로 보인다. 온갖 아픔과 슬픔에. 그 와중에 계속되는 사랑과 회복에. 수천 번 놀라면서도 얼른 마음을 추스른 뒤 빠르게 치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지독한 단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떤 퇴근길에 자신도 모르게 무너지듯 울어버릴 그를 생각한다. 아무리 반복해도 그는 내일의 새로운 고통 앞에서 다시 놀랄 것 같다. 이것은 끝내 단련되지 않을 마음에 관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절망에 익숙해지지 않는 우리의 새살 같은 마음 말이다. 응급실에서 쏘아올린 기도 같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안온한 날들을 수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고통으로 풍성한 그의 삶은 나에게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동시에 준다. 내 마음은 그를 따라 약해지고 강해진다.
_이슬아(작가, ‘일간 이슬아’ 발행인)
구매가격 : 10,500 원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도서정보 : 장은진 / 문학동네 / 2011년 01월 01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장은진 작가의 장편소설로,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소설은 눈먼 개와 모텔을 전전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고독한 삶에 대한 묘한 아픔과 추억 속 한 켠의 슬픔을 따뜻하고 정감어린 작가만의 문체로 어루만지고 있다.
소설 속 '나'는 여행자다. 발길 닿는 곳으로 혹은 버스나 기차가 멈추는 대로 정처 없이 '나'는 어디든 여행한다. 삼 년 동안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만난 사람을 일련번호로 호칭한다. 숫자는 무한하기 때문에. 친구를 밀어서 식물인간으로 만든 아이 239, 바닥에 버려진 껌딱지로 예술을 하는 사람 99, 첫사랑을 잊지 못해 기차에 머무는 사람 109….
'나'는 길 위에서 그들을 만나 다양한 슬픔의 무늬를 바라본다. 그리고 모텔로 돌아와 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며 아프고 고독한 그들의 삶을 위로한다. '나' 또한 외롭기 때문에 외로운 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답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나'와 자기 책을 팔러 다니는 여자소설가 751과의 여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구매가격 : 9,500 원
고양이 학교 1부 1권 - 수정동굴의 비밀
도서정보 : 김진경 글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09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고양이들이 펼치는 짜릿한 모험과 신비한 마법의 세계,
고양이 학교 시리즈가 출간됩니다!
전체 5권으로 기획된 이 판타지 동화에,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생태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날것으로 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빨려들어 가게 합니다. 판타지 동화가 지닌 환상성과 신비로움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는 이 작품의 강점은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을 놀랄 만큼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가 아닌 상생과 조화라는 동양철학이 은은하게 밑바탕에 흐르고 그 위에 북구 신화와 이집트 신화에서 길어 올린 지혜와 철학적 사유를 농익은 솜씨로 풀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스릴 넘치는 모험과 신비의 세계에 빠져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 상상력과 창의력의 거대한 그물망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작품의 삽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인간과 환경>을 주제로 작업을 해 온 젊은 화가 김재홍 씨가 자신이 직접 그림으로 추구하고 싶은 세계를 만났다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버마 고양이와 샴 고양이, 아비시니안 고양이와 리비아 들고양이, 노르웨이 숲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각 고양이들이 가진 특징을 잘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털끝과 수염 하나하나에까지 섬세한 묘사가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수정동굴이 짙은 달 그림자에 휩싸이면 아찔한 환상과 모험의 문이 열린다!
수정동굴은 이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고양이의 눈에만 보이는 수정동굴은,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인도, 이집트, 앙코르 와트가 하나로 연결된 신비의 공간입니다.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종들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고, 멸종된 생물 종들의 기억과 무덤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녁에 서쪽으로 진 태양이 밤새 동쪽을 향해 지나가는 태양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수정동굴을 지키며 지구의 모든 생물이 평화와 조화 속에 공존할 황금시대를 열고자 하는 수정 고양이들과, 자연 파괴와 다른 생물 종을 파멸로 이끄는 인류를 멸종시키고자 하는 그림자 고양이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림자 고양이들의 왕인 블랙캣은 수정동굴에 묻힌 멸종된 생물 종들의 슬픈 기억을 보여주며 절규합니다.
"이곳에 인간 종의 무덤이 생기기 전에는, 결코 이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엄청난 싸움에 인간의 아이들이 개입하면서 고양이 학교는 더욱 박진감 넘치게 전개됩니다. 인간의 아이들도 고양이 세계와 관련이 있는 아이들입니다. 전생에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으로 숭배 받던 암코양이의 현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두 아이들이 바로 예언에서 말하는 고양이의 혼입니다. 태양의 고양이가 출현해서 황금시대를 열어갈 때, 고양이의 혼이 태양의 고양이를 돕는다는 예언은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입니다. 이 예언을 두고 수정 고양이들과 그림자 고양이들의 대결 구도가 펼쳐집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우리의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가 안내하는 특별한 세계!
고양이 학교는 엄격한 학교, 공부하는 학교를 떠나 자유로운 학교, 놀이하는 학교를 보여줍니다. 그 속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배우는 교실이 열립니다.
첫째 우리 감각, 우리 정서에 맞는 독특한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금발에 파란 눈, 드래곤과 마법 빗자루에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에게 또래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동양철학이 밑바탕에 깔린 고양이 학교는 가슴 뭉클한 판타지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둘째 전설과 신화 속의 고양이 세계로 안내합니다!
각 지역의 신화와 전설에서 발견되는 고양이의 모습을 흥미롭게 구성했습니다. 이집트 신화와 북구 신화, 불교의 윤회사상 그리고 인류의 역사적인 사실들에 근거해서 고양이에 관한 생각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카이로와 서울, 벵가지와 후지, 태산과 푸나, 앙코르 와트 등 세계 각 지역에서 동서고금을 거침없이 활보하는 상상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셋째 고양이 백과사전이 필요 없는 유익한 동화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버마 고양이, 샴 고양이, 아비시니안 고양이, 리비아 들고양이, 노르웨이 숲 고양이까지 선생님도 모르는 고양이의 종류와 역사, 습성과 생김새 등 고양이의 신기한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오천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해 온 고양이가 인간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고양이의 입장에서 되짚었습니다. 한때는 신성시 된 동물로 또 한때는 마녀의 심부름꾼으로 오늘날은 가장 사랑 받는 애완동물로 변신을 거듭해 온 고양이의 위상이 엿볼 수 있습니다.
넷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동물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과 이기심으로 잃어버린 이름들, 휘아새, 도도, 주머니 이리, 바다오리, 쾌거…… 하루에도 100여종이 넘는 생물 종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포유류의 4분의 1을 포함하여 약 1만1046종이나 되는 생물이 멸종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고양이 학교는 살아있는 3,000만종의 생물 종을 보호하고 인간과 다른 생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상새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다섯째 단번에 눈길을 붙드는 강렬한 삽화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장난스런 고양이의 몸짓과 표정, 각지에 분포하는 고양이의 특징이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어린이책 삽화는 곱고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삽화의 세계로 아이들의 숨겨진 감성을 이끌고 들어갑니다.
소중한 아이에게 주는 아빠의 선물!
고양이 학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동화보다 흥미롭습니다.
글쓴이는 15년 이상을 고양이와 함께 지냈습니다. 한 번은 잠을 자고 있는데 고양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와 새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 학교를 읽다보면 오랫동안 고양이와 지내 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표현들이 살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 털기에 대한 묘사는 글쓴이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관찰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고양이와 어울렸습니다. 고양이 학교의 탄생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외출했다가 돌아온 작가는, 우편함에 적힌 식구들 이름 옆에서 모리라는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모리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이름입니다. 죽을 때가 돼서 집을 나간 버들이와 같이 자란 고양이입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13년 넘게 함께 뒹굴며 자란 버들이의 가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리마저 사라져 버릴까 봐 얼른 가족 명단에 모리를 올린 것입니다.
작가는 버들이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을 위해 버들이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씁니다. 이렇게 해서 버들이는 죽지 않고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학교에서 재탄생한 것입니다.
글쓴이는 말합니다.
"고양이 학교는 고양이를 잃은 아이들에게 아빠가 준비한 사랑의 선물입니다."
구매가격 : 7,700 원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서정보 : 강화길,김봉곤,김초엽,이현석,장류진,장희원,최은영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2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20년, 내일을 상상케 하는 눈부신 터닝 포인트!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중 가장 눈부신 성취를 보여준 일곱 편의 작품에 수여하는 젊은작가상. 지난 10년간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굳건한 신뢰를 쌓아온 이 상이 2020년대로 진입한 첫해 새로이 호명한 수상자는 강화길 최은영 김봉곤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이다. 다시 한번 젊은작가상을 거머쥔 작가들의 탄탄한 행보와 낯선 기대를 품게 하는 신예 작가들의 신선한 기운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이 각자의 문학세계를 부단히 갱신한 끝에 탄생시킨 일곱 편의 수상작에는 현재를 박차고 새로운 내일로 뻗어나가려는 전복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한 시절의 전환점에 서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겨누며 쓰인 각각의 단편들에서 한국문학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함께 다가올 미래를 고대하는 작가들의 고요한 열망 또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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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음복(飮福)」은 가부장제하에서 모든 갈등을 간파해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아내의 삶을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 권력을 지닌 남편과 날렵하게 대비하며 전 세대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거대한 구조를 들춰낸다. 새댁으로서 처음 참석한 시가 제사에서 낯설고 비호의적인 상황에 놓여 난처해하는 와중에도 한 가족의 갈등의 내력을 꿰뚫어보는 화자의 기민한 감각은 모든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공통감각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이 작품은 “한 번 읽었을 때보다 두 번 읽었을 때 가부장제 구조의 둔중한 배음(背音)이 서늘하게 들려오는 큰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방황 끝에 꿈을 좇아 대학으로 돌아온 화자가 단단한 관점과 다정한 배려를 보여준 선배 여성 강사와 만나고 헤어졌던 애틋한 시절을 복원해내면서 때로 연한 빛처럼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는 여성 간의 유대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외도한 애인을 향한 배신감과 증오까지 끌어안는 사랑의 힘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김봉곤식 자전소설을 받치고 있던 일상과 글쓰기라는 두 개의 축이 완전히 합일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둘러싸고 뜨겁게 요청되어온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고찰을 여러 여성들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풀어내며 복합적인 사안을 둘러싼 어떤 사소한 갈등도 놓치지 않고 건져올린다.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오직 상상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는 가공의 공간을 설득력 있게 설정하고, 그 공간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동일성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도출한다. 장류진의 「연수」는 앞 세대 여성들에게서 독립하려고 애써왔음에도 문득 그들에게 기대고 싶어지기도 하는 순간 청년 여성이 경험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과, 그 감정들을 소화해낸 끝에 다시 홀로 나아갈 동력으로 삼는 강단을 경쾌한 문체로 그려나간다.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촘촘히 짜놓은 구도 안에서 아들의 성 지향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가 아들의 찬란한 일상에 초대받았을 때 겪는 혼란감을 점차 고조시킨다. 우리의 안과 밖을 나누는 한, 어떤 존재든 혐오의 주체에서 그 대상으로 뒤집힐 수 있음을 소설은 차분한 어조로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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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형, 김녕, 이지은, 한설 평론가가 2019년 한 해 동안 발표된 대상 작품 이백오십여 편을 꼼꼼히 읽고 토론해 선별해주었고, 선우은실, 오은교, 조대한 평론가가 합류해 최종 선고 작업을 도왔다. 그렇게 열여덟 명의 작가가 쓴 스무 편의 작품이 본심 심사위원(강지희, 권여선, 서영채, 오정희, 전성태)에게 전달되었다.
일곱 편을 뽑아놓고 보니 기수상자는 강화길, 김봉곤, 최은영 세 분이었고 김초엽, 이현석, 장류진, 장희원 네 분이 첫 수상자들이었다. 믿고 읽어온 작가들의 안정적인 약진과 더불어 이미 눈 밝은 독자들에게 발견되고 있는 신예 작가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결과였다. 일곱 편을 뽑은 이후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은 수월한 편이었다. 강화길 작가의 「음복(飮福)」은 한 번 읽었을 때보다 두 번 읽었을 때 가부장제 구조의 둔중한 배음(背音)이 서늘하게 들려오는 큰 작품이라는 의견에 다수가 동의를 표했다. 이 작가가 그간 치열하게 쌓아온 소설세계 속에서도 특별한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지금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거라 확신한다. 강화길 작가의 대상작을 비롯해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좋은 일곱 편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충만하고 기쁘다. _‘심사 경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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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음복(飮福)」 강화길이 여기까지 왔다. 더 아프고 시린, 생채기가 덧나고 아물고 다시 그렇게 되기를 반복한, 생의 표면에 새겨진 유구한 주저흔을 이토록 태연한 저주파의 배음으로 재생하고 있다. 강화길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나는 조마조마한데, 이보다 더 두근거리는 기다림은 드물다는 걸 알고 있다. _권여선(소설가)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너를 위해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날 대답했던 거야. 이것이 너의 드라마, 복(福)이 되길 바라며.(『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
■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2017년 젊은작가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힘겹게 통과한 청춘의 시간은 곧 욕망과 상처와 죄의식과 분노, 고통의 연대의식, 수치심 들이 온 힘을 다해 살아낸 시간이며 그 아픔과 슬픔과 부끄러움들이 바로 빛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혼탁하고 무기력한 현실을 강한 환기력으로 흔들어 다시금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을,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품격을 지켜나가게 한다는 것을 단정하고 예민하고 뜨거운 글쓰기로 보여주고 있다. _오정희(소설가)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릿터』 2019년 2/3월호)
■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2014년, 2017년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김봉곤, 「그런 생활」 나는 김봉곤의 어떤 소설보다 이 소설이 좋았다. 정말 우리의 삶이 쇠사슬에 매인 것 같고 곳곳에서 쇠사슬 소리 사무치고 허공에 쇳내 가득한 난장판이라 해도, 이 소설은 그 사슬 마디마디에 하나하나 기름을 치고 빛을 비추고 그 비루한 반짝임에서 어떤 의연함을 길러낸다. _권여선(소설가)
꿈인지 생각인지 혼미한 문장-풍경 사이로 여름을 예비하는 작은 잎들이 내 눈앞에서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여름의 춤,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어쩌면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그런 생활이 될 것이며, 그건 내가 바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문학과사회』 2019년 여름호)
■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Auto」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전후의 뜨거운 논쟁들을 섬세하고 엄정한 시선과 감수성으로 갈무리해낸 소설이다.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이 모성에 얽매여 고통스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 있다. 삶의 층위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간단히 처리하지 않은 균형감도 돋보였다. _전성태(소설가)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당신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동생 해수가 나와 함께 정동길을 걸으며 서로가 꿈꾸었던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때와 다름없이, 우리가 나란히 각자의 두 발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 2017년 단편소설 「참(站)」으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김초엽, 「인지 공간」 한 개인을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무신경함이 곧 우주의 무한함을 감각하지 못하는 무지함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기이한 전율에 잠기게 한다. 세계가 깜박할 만큼 작고 사소한 존재에게 온 우주의 무게를 실어 그 존재 증명을 해내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걸 김초엽은 이번에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알려준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공동체의 미덕은 잊고 보내주는 것이었다. 한정된 인지 공간에 세계의 모든 기억을 남길 수는 없었다. 기록되는 것은 짧은 생을 살다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변하는 것, 자연적인 것, 법칙과 이치들이어야 했다. 이브를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인지 공간을 떠나야 했다.(『오늘의 SF』 2019년 1호)
■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장류진, 「연수」 장류진씨의 서사는 어떤 장식도 우회도 없습니다. 너절한 것은 너절한 대로 고급진 것은 또 그대로, 삶이 날것 그대로 살아 있어서 신통하게 느껴집니다. 장차 장인이 될 작가의 풋풋한 젊은 시절을 미리 보는 것 같아 신기함은 놀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_서영채(문학평론가)
그전에도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
■ 2018년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장희원, 「우리〔畜舍〕의 환대」 어떤 묘사 하나도 넘치거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는 축조술이 놀라운 소설이다. 어떤 주체라도 타인에게 경멸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몸뚱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보여준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마당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건너편에서 집집마다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저런 곳 중 한 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너무나도 저쪽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 난 분명히 용기를 냈어.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Axt』 2019년 3/4월호)
■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폐차」가 당선되어 등단.
구매가격 : 3,900 원
내 휴식과 이완의 해
도서정보 : 오테사 모시페그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22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김하나(작가)_좋아할 만한 주인공은 누구나 좋아한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독보적인 재능은 도저히 좋아하기 힘든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 어둡고 뒤틀린 면을 다 알고 나서도 그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만드는 데 있다. 읽는 이의 세계를 더 넓히는 건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반쯤 몽롱한 상태로, 자주 큭큭대며 읽었다. 깨어 있거나 잠든 채로 우리는 낙하하곤 한다. 벨벳 같은 암흑을 향해, 또는 가차없는 땅바닥을 향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삶이라는 고통에 내동댕이쳐질 때 눈을 감느냐 뜨느냐의 문제다. 나는 이 책이 삶에 대한 애착을 말한다고 믿는다. 잠이 아니라.
마거릿 애트우드_비호감 여자 주인공 가문에 탄생한 신랄하고 웃기고 어두운 새 식구.
조이스 캐럴 오츠_소름 돋게 냉정한 문장으로 숙성시킨 세련된 블랙코미디와 예리한 풍자,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영화 <레퀴엠>의 삐딱한 만남이 극강의 강렬함을 선사한다.
뉴욕 타임스_지독히도 염세적인 냉담함으로 글을 쓰지만 모시페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늘 진정으로 즐겁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의 배경은 이십 년 전이지만 현재의 일처럼 다가온다. 동면이라는 발상이 매력적이다.
뉴요커_모시페그는 살아 있는 게 끔찍할 때 살아 있다는 문제를 다루는 가장 흥미로운 현대 미국 작가다. 존재의 소외라는 주제에 이상하고도 순수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가디언_모시페그의 지칠 줄 모르는 무자비함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코믹의 외피를 입고 있으며 실제로도 코믹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기다고만은 할 수 없고, 그럼에도 웃음이 터진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_모시페그의 글은 은연중에 두려움에 들게 하는 힘이 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드러내는 솔직함, 부드럽게 가슴을 찌르는 문장들이 그렇다. 따라서 이 작품을 그 어떤 것과 비교하는 게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보스턴 글로브_가슴 찡하고, 섬세하고, 성숙하다. 감히 말하건대, 이 재능 넘치는 작가가 지금까지 써온 작품 중 가장 진솔하다.
NPR_기이하게 매력적인 작품이다. 모시페그는 심술과 도발을 매력으로, 음침함을 뜻밖의 따뜻함으로 만들 줄 안다.
뉴욕 포스트_그저 약동하며 광적으로 재미있기만 한 작품이 아니다. 발칙하고도 속 깊은 걸작이다.
인간의 ‘동면’이라는 환상의 소재를 현실화한 자비 없는 블랙코미디
오테사 모시페그, 『아일린』에 이은 두번째 장편소설
독보적인 개성을 발산하며 영미 문학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오테사 모시페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일 년간 동면에 들기로 계획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차갑고 신랄한 블랙코미디로 그려내 십여 개 이상의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에 호명되었고, 마거릿 애트우드와 조이스 캐럴 오츠의 호평을 받았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도저히 좋아하기 힘든 인물의 이야기를 집요하고 거침없이 써 보이며 절묘하게도 공감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작가 모시페그. 소년원에서 비서로 일하며 자기혐오로 똘똘 뭉친 24세 여성의 젊은 날을 그린 첫 장편소설 『아일린』에 이어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서는 사망한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아 말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을 버는 26세 뉴요커 여성의 염세와 절망어린 나날이 펼쳐진다.
동면에 들겠다는 내 결심이 어느 한 사건의 결과라고 특정할 순 없다. 처음에는 생각과 판단을 막아줄 진정제를 원했을 뿐인데, 왜냐하면 그 끊임없는 공세가 모든 사람과 사건을 싫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뇌가 주변 세상을 비난하는 짓을 조금 덜 하면 삶이 더 참을 만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31p)
“가끔 내면이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싫어요.” (33p)
주어진 부를 그대로 누리고 살아간다면 세상살이의 허들이 꽤나 낮아질 테지만 주인공 ‘나’의 정신은 극복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 끊임없이 떠오르는 온갖 기억, 모든 사람에 대한 혐오와 모든 일에 대한 허무로 매일같이 고통의 정점을 찍는다. “풍자적 냉소를 구사하는 모시페그가 부럽다”고 한 로런 그로프(『운명과 분노』 저자)의 말처럼,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직설적이고 냉담한 유머를 쏟아내며 삶에 따르는 환멸과 허무에 대해 태연하게 정곡을 찌른다.
구매가격 : 10,500 원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
도서정보 : 피터 케리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2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지금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피터 케리
그에게 두번째 부커상을 안긴 기념비적 작품?
<가디언> 선정 ‘최고의 영문소설 100’ ‘21세기 최고의 책 100’
러셀 크로, 조지 매케이 주연 영화 원작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는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 피터 케리에게 두번째 부커상을 안긴 기념비적 작품으로, 영국의 식민지배에 항거한 전설적인 민중 영웅 네드 켈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현해낸 역작이다. 경찰의 추격을 피해 구두점을 생략한 채 거칠게 써내려간 열세 통의 편지를 통해 경찰과 사법조직이 부패한 19세기 오스트레일리아의 현실과 폭압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하층민의 삶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부커상을 두 번 수상한 네 명의 작가 중 하나인 피터 케리는 국제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로, 대부분의 작품이 영미권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후보에 올랐다. 첫 장편소설 『더없는 기쁨』부터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기꾼』, 부커상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일스 프랭클린 상을 동시에 수상한 『오스카와 루신다』 등 주요 작품에서 그가 천착한 주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와 정체성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분투한 초기 정착민의 삶, 광활한 대지의 신화적 세계에서 유리된 현대 도시인의 공허함을 두루 그려온 그는 국가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을 수훈했다. 이런 그가 국가적 아이콘 같은 인물인 네드 켈리에 주목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네드 켈리의 짧고도 격렬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고,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개막식 때는 경찰에 맞서 스스로 만든 철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그의 상징적인 모습이 무대 중앙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남긴 편지 ‘제릴데리 레터’를 접한 피터 케리는 어법이 부정확한 편지 속 날것의 목소리로 그 삶을 재구성하기로 결심하고 2000년 일곱번째 장편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발표했다.
철저한 조사와 작가적 상상력의 결합으로 복원된 전설적 영웅의 일대기는 “거부할 수 없는 문학적 복화술의 역작”(<가디언>) “피터 케리가 네드에게 부여한 바로 그 목소리에서 마법이 시작된다”(<옵저버>) “잘 알려진 대상을 다룬다는 대담한 시도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의 찬사와 함께 영연방작가상을 수상하고 그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했다. 무엇보다 큰 영예는 이 작품으로 두번째 부커상을 거머쥔 것이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 데이비드 미첼의 『넘버 나인 드림』과 나란히 후보에 올라 마지막까지 경쟁했으며 특히 판매고가 세 배에 달하던 『속죄』를 제쳤다는 점에서도 큰 화제가 된 수상이었다. 명실공히 피터 케리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은 이 작품은 <가디언>에서 2015년 선정한 ‘최고의 영문소설 100’, 2019년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에 이름을 올리며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호명되는 작품성을 입증했고, 러셀 크로, 니컬러스 홀트, 조지 매케이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개봉을 앞두고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는 그저 시민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개××들이 내 혀를 훔쳐갔다
나는 정의를 요구했지만 놈들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딸아, 지금부터 읽게 될 이 글이 진짜 내 이야기다
아일랜드 태생 전과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멸시와 협박에 시달린 네드 켈리. 무허가 술집을 운영하는 홀어머니를 도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그는 뜻하지 않게 악명 높은 무법자 해리 파워의 조수로 들어간다. 산악지대의 지형과 쓸 만한 은신처, 도피에 유용한 요령을 배우던 그는 불안정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와 성실하게 땅을 일구며 가축을 키우는 농부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식민지의 현실은 소박한 희망을 허락하지 않고, 열다섯 살 나이로 얼결에 노상강도 혐의를 받아 경찰에 끌려간 이후 부당한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는 사이 그는 식민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다. 가까이 지내던 경찰 피츠패트릭의 배신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동생 댄과 산속에 숨어들고, 평소 이들을 따르던 친구 스티브 하트와 조 번이 합류한다.
?당국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을 파견하지만 접전 끝에 경찰 셋이 사망하자 ‘캘리 갱’이라는 이름으로 현상금을 내건다. 그때부터 이들 넷은 식민정부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영국 출신 목장주의 재산을 약탈하고 정부 소유 은행을 털어 도피자금을 챙기는 한편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식민지 농부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폭압의 역사가 피에 새겨진 하층민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낸다. 그사이 네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메리 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권유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도피생활이 길어지자 메리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몸을 피하고, 네드는 자기 때문에 체포된 어머니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 남아 의회 의원과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마침내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치고 수백 명의 병력에 포위당한 켈리 갱은 직접 제작한 철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채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를 온몸으로 살아낸 전설적 영웅
날것으로 쏟아내는 분노와 저항감
살아 숨쉬는 이야기의 압도적 힘!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의 정치범이나 반체제 인사, 특히 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 추방되는 유형지였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전과자 4분의 1은 아일랜드 출신이었고, 영국인의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조차 없던 이들은 토지를 불하받아도 대대로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일부는 울창한 숲에서 노상강도를 일삼으며 경찰과 치안판사의 적이자 가난한 자의 친구, 자유의 상징이 되었으며 해리 파워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작품의 주인공 네드 켈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소설은 극빈한 어린 시절부터 경찰과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기까지의 짧고도 격정적인 삶을 네드 켈리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딸에게 편지를 통해 전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 자신이 조 번에게 남긴 실제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문체는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이자 공권력에 쫓기며 정의를 호소하는 도망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쉼표와 마침표를 생략하고 줄임말과 기호를 과감히 사용하며 내달리는 언어는 부당한 폭압의 역사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분노를 맹렬하게 전하고, 아일랜드 출신 농민이 많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경험은 한층 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네드가 몸담고 있던 공동체에서 극히 자연스러웠을 비속어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인물 메리 헌과 둘 사이의 딸을 위해 검열되어 있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소탈하고 때때로 시적이기까지 한 입말은 지식과 어휘에 한계가 있지만 영리하고 재치 있는 청년, 식민의 폭압에 마주한 가족을 위해 어둠의 길을 걸어야 했던 헌신적인 아들, 의리 있는 친구, 사랑이 넘치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다채로운 내면을 굴곡진 삶의 여정과 함께 펼쳐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미 여러 편의 전기가 나와 있고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일대기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저 먼 곳의 신화적 존재가 아닌 살과 뼈가 있고 온기가 도는 인간으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대에서 스물여섯 해의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한 그는 최소한의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었던 한 사람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 본문에서
내 나이 12살에 아버지를 잃었으니 거짓과 침묵 속에 자라는 게 어떤 건지 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너는 지금 너무 어려서 내가 쓰는 글을 조금도 이해 못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너를 위한 것이고 거짓은 하나도 없다 내가 거짓을 말한다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네가 이 글을 읽을 때까지 목숨을 부지해서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불쌍한 아일랜드인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살았는지 네가 알고 놀라서 검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19쪽)
나는 비치워스 감옥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교도관들이 나를 홀딱 벗기고는 베이고 피 나는 머리를 박박 밀면서 협박과 모욕을 해댔다. 하지만 불이 너무 뜨거우면 생나무도 타는 법이다 나는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가에 앉아 숱한 밤을 보냈다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새파란 생나무들이 비도 끌 수 없는 분노의 불길 속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활활 타올랐다. (261쪽)
어머니가 말했다 넌 내 인생이 얼마나 한심한지 몰라 여기서 사는 게 어떤지 잊었다 염×할 이웃들은 틈만 나면 닭이나 송아지를 훔쳐다 가두지 경찰은 날마다 찾아와 내 새끼들 잡아가려고 문을 두드리지. (273쪽)
나는 평생 어머니를 곁에서 지켰다 10살 때 어머니에게 고기를 주기 위해 머리 씨의 암소를 죽였다 우리 불쌍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를 도와 일했다 나는 맏아들이라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12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 어머니가 금을 가질 수 있도록 해리 파워를 따라나섰다 먹을 게 없을 때는 열심히 일했다 돈이 없을 때는 훔쳤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프로스트&킹이 사슬에 묶인 암캐에게 접근하는 비겁한 들개처럼 주위를 맴돌 때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애썼다. (365~366쪽)
내 딸아 어떤 이야기를 더 듣게 될지 기다려보렴 결국 가난하고 못 배운 우리 같은 사람들도 불속에서 고귀해질 테니까. (406쪽)
어머니는 갓난아기까지 빼앗겼소 내가 말했고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인 그들은 무자비한 법의 공포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들의 피에는 부당함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은행원이나 목장 감독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체포된 적이 없다고 해도 강제로 감옥에서 흰 두건을 쓰는 게 어떤 건지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간수 눈을 똑바로 봤다고 채찍질을 당하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상류층 말을 쓰는 나방도 그런 공기를 마시며 살았기에 부당함이라면 골수에 사무치도록 잘 알았다. (476쪽)
대영제국이 지원자를 부족함 없이 대줬다 단지 우리 친구라는 죄로 땅을 임대받지 못한 사람 정부의 강요로 밀을 심었다가 녹병으로 농사를 망친 사람 밴 디멘스 랜드 감옥의 삼각 형틀에서 몸이 망가진 사람 아들을 감옥에 보낸 사람 힘들게 얻은 땅을 목장주에게 빼앗긴 사람 위증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사람 허구한 날 가축을 몰수당하는 데 진저리난 사람. (518쪽)
나는 그저 시민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개××들이 내 혀를 훔쳐갔다 나는 정의를 요구했지만 놈들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519쪽)
?
?▶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에 쏟아진 찬사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누구나 네드 켈리의 전설을 듣고 자란다. 극빈한 어린 시절부터 교수형을 당한 스물여섯 살 때까지, 피터 케리가 탁월하게 복원해낸 그의 생애는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순수하다. 딸을 위해 비속어를 검열하고 쉼표와 마침표를 생략한 채 이어지는 문장이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실존하는 기록으로까지 읽히는 이 작품은 진지한 소설이자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다. 찰스 디킨스와 코맥 매카시,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랑콜리한 정조가 결합된 크고 꽉 찬 소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작가는 세피아톤의 전설을 눈부시고 강렬하게 채색했고, 저 먼 곳의 신화에 온기가 도는 살과 뼈를 붙여주었다. 코미디와 파토스가 생동하는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는 당신이 소설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뉴욕 타임스
스스로 네드 켈리가 된 작가의 독창성과 공감능력, 시인의 귀는 아무리 상찬해도 부족하다. 교육받지 못한 무법자의 문체가 모든 페이지에서 독자를 기쁘게 한다. 존 업다이크(소설가)
피터 케리는 노련하고 영리한 작가다. 액션과 사건으로 가득차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미개척지의 모든 현란한 빛깔이 담긴 작품.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피터 케리가 네드에게 부여한 바로 그 목소리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실감나고 충격과 신선한 기쁨이 이어진다.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생생한 구어체는 유머러스하고도 품격 있으며, 무엇보다 시적이다. 숨기는 것 없이 정직한 목소리와 투명한 언어가 진정 위대한 영웅의 마음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옵저버
거부할 수 없는 문학적 복화술의 역작. 구두점을 생략한 육성이 통쾌하게 쏟아진다. 때로는 신화적이고 때로는 섬세한, 잃어버린 미개척지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 가디언
피터 케리는 지금까지도 탁월한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 소설은 단언컨대 그의 최고작이다. 잘 알려진 대상을 다룬다는 대담한 시도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제대로 빚어진 강렬한 소설. 데일리 텔레그래프
피터 케리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보다 깊이 있고 풍성한 이야기를 전할 수단과 방법을 찾아냈다. 워싱턴 포스트
주목할 만한 성취. 강렬한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속도감. 오스트레일리아 미개척지의 모험 서사로서, 심리·역사 드라마로서 전적으로 설득력 있는 작품이다. 상상력의 스펙터클한 묘기. 보스턴 글로브
전설적인 민중 영웅의 황홀한 연대기. 덴버 포스트
구두점을 생략하고 때때로 어법에 맞지 않는 켈리의 글은 이해가 어렵기는커녕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낸 모더니스트의 살아 숨쉬는 독백으로 느껴진다. 피터 케리의 손에서 되살아난 그의 목소리는 최면을 거는 듯하고, 이제껏 보지 못한 시적인 간결함 속에 연민과 신랄함, 분노와 저항감이 모두 담겨 있다. 선 헤럴드
구매가격 : 11,6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