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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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퍼플 (세계문학전집 187)

도서정보 : 앨리스 워커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1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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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퓰리처상
★ 1983년 미국도서상
★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 100’
★ 미국대학위원회 SAT 추천도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이자
열정적인 사회운동가 앨리스 워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과 문화, 역사를 조명해온 앨리스 워커는 1944년 미국 조지아주 이턴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소작농이었으며 워커는 여덟 남매 중 막내였다. 여덟 살 때 오빠가 쏜 비비탄 총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눈가의 흉터와 시각장애로 또래에게 놀림받으며 점점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게 되었고, 자신이 “속한 세상이 너무나도 힘들어 책을 자신의 세상으로” 삼았다. 몇 년 뒤 흉터를 제거하면서 차츰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다. 1961년 장애인 장학금을 받아 애틀랜타의 스펠먼대학교에 입학했고, 당시 교수였던 역사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과 스토턴 린드의 영향으로 흑인민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년 뒤 뉴욕의 세라로런스대학교로 편입했고, 졸업 후 인권운동을 위해 남부로 귀향해 조지아주와 미시시피주에서 흑인 유권자 등록 운동을 펼쳤으며 이때 만난 유대인 변호사 멜빈 로즌먼 레벤탈과 1967년 결혼했다. 1968년 원치 않는 임신과 중절로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담은 첫 시집 『한때』를 발표했고, 1970년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미국 남부의 흑인 소작농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삶을 그린 첫 장편소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번째 인생』을 출간했다. 이후 단편집 『사랑과 고통』, 시집 『혁명하는 피튜니아』, 장편소설 『머리디언』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웰즐리대학교와 매사추세츠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고, 1980년대에는 여성주의 저널 『미즈』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82년 『컬러 퍼플』을 출간해 이듬해 미국도서상과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잡았다. 1983년 첫 산문집 『어머니들의 정원을 찾아서』를 발표했고, 이 책에서 처음으로 ‘우머니스트’라는 말을 쓰며 새로운 사상인 ‘우머니즘Womanism’을 주창했다. 우머니즘은 ‘흑인 또는 유색인 페미니즘’을 뜻하며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 운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또한 반핵·반전·환경보호에 관한 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여성에게 행해지는 할례 등의 폭력적인 관습에 반대하며 열정적인 사회운동가로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컬러 퍼플』은 출간되자마자 문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은 작품으로, 그의 세계관이 집약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워커는 이 소설을 통해 가정 내 강간과 폭력 등 그간 쉬쉬대던 사회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고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제목인 ‘컬러 퍼플(보라색)’은 “자신과 공동체를 사랑하고 음악과 춤, 달과 영혼을 사랑하는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찬” 여성, 우머니스트를 표현하는 색이자 상처 입은 영혼에게 고통과 억압, 차별적인 현실 속에도 해방과 구원의 메시지가 자연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신비로운 빛깔이다.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걸.” _본문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음으로써 새로운 주체로 다시 태어나는
여성들의 뜨거운 결속에서 발화하는 희망의 불꽃

『컬러 퍼플』은 1900년대 초 미국 조지아주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가부장제, 인종차별, 성차별의 다층적인 억압 상황에 놓인 흑인 여성 ‘셀리’의 삼십여 년에 걸친 인생 역정을 다룬다.

셀리는 아빠에게 여러 차례 강간당하고 두 아이를 낳기까지 하나 둘 모두 아빠가 어디론가 보내버려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이후 아빠의 강요로 학교를 그만둔 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아이들을 키워줄 여자를 찾는 ○○ 씨와 결혼한다. 동생 네티와의 연락도 끊긴 채 ○○ 씨의 아이들을 돌보며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 씨가 사랑했던 여자 슈그가 집에 와 머물게 되고, 셀리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자신이 귀중한 존재, 충만한 신성神性의 일부임을 깨달아간다.

『컬러 퍼플』의 주인공 셀리는 남편에게 강간과 학대를 당하고, 그의 연인에게 사랑을 느꼈던 워커의 할머니를 모델로 고안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영적 포로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자신의 용기와 타인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는 사람,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자연과 마찬가지로 지금껏 멀게만 느꼈던 신성의 아름다운 표현임을 깨닫는 사람의 힘겨운 여정을 탐구”하고 있는데, 남편의 연인인 슈그는 셀리로 하여금 고유한 종교적 경험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인물이다. 그는 셀리가 스스로를 가치 있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자각하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에서도 섹슈얼리티에 따른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해, 워커는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느질에 ○○ 씨를 참여시키고, 아들 부부인 하포와 소피아 역시 집안일을 나누는 데 있어 성역할의 전형성을 따르지 않는다. 또 슈그와 소피아는 남성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컬러 퍼플』은 출간 당시 많은 찬사를 받는 한편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법적 평등은 이루었지만 현실의 인종차별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상황에서, 인종문제보다 남녀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제시하고 흑인 남자는 ‘미개하고 폭력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워커는 성차별적 현실 속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고난을 전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가부장제와 인종차별의 고통을 함께 겪는 남성들 또한 사랑으로 이해하고 포용하고자 했다. 소설 속 ○○ 씨는 홀로 남겨진 뒤 삶의 의욕을 잃고 방에 틀어박히는데, 이때 쇠약해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집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 역시 주위 사람들의 이해와 사랑, 그리고 위로다. 워커는 흑인 남자들이 “끔찍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종내에는 “사랑 많고 너그럽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워커는 흑인들이 겪는 이 같은 고통이 개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임을 깨달았고, 그들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상처 입은 영혼들 사이의 사랑과 연대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혹사당하고 박탈당하는 삶 한가운데서도 각자가 지닌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용기를 내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돕는다. 워커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온전한 공동체를 꿈꾸며, 이러한 참혹한 현실과 그로부터 얻은 자신의 통찰을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을 완성해냈다. 그의 작품은 “타격을 줄이려 하지 않으면서 가능성에 대한 믿음, 용서와 친절과 희망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붙들 수 있도록 확신을” 안겨준다.

아름다운 상상력과 공동체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쓰인 이 소설은 사랑이 지닌 구원에의 가능성을 증언한다. 인종·성·종교에 따른 편견과 억압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세상,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온전한 사회, 모두의 자유와 해방을 꿈꾼 앨리스 워커. 그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구매가격 : 9,800 원

실낙원 2

도서정보 : 존 밀턴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0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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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종교 서사시로 평가되는 『실낙원』은 구약 성서의 ´낙원상실 모티프´를 토대로 한 대서사시로 10,565행에 달한다. 밀턴은 서사시라는 일정한 형식에 격조 높은 문장과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17세기 정신세계와 인문적 교양을 작품 속에 훌륭히 담아냈다. 이 작품으로 밀턴은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대시인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실낙원』은 종교적 통찰을 보여주는 최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논문 「실락원에 나타난 밀턴의 인간관」으로 국내 제1호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생 동안 밀턴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해온 조신권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구매가격 : 10,500 원

그리운 동방 (김소진 전집 6)

도서정보 : 김소진 / 문학동네 / 2011년 05월 0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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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전집』을 펴내며 작가 김소진이 우리의 곁을 떠난 지 다섯 해째가 되는 시점에서 그의 전집을 펴낸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그의 흔적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그새 풀이 자라고 관목들이 우거진, 그에게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함이다. 생전에 김소진은 네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 각각 한 권의 창작동화와 산문집, 두 권의 짧은 소설집, 그리고 책으로 묶이지 못한 미완성 장편 한 편(『동물원』 - - 96년 겨울호부터 이듬해 봄호까지, 『실천문학』에 2회분 연재)을 남겼다.

김소진의 소설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절실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러므로 우리 문학사의 귀중한 자산 목록에 올려져 있다. 습작기부터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쓴 글들을 모은 이 전집이 김소진 문학의 전체적 면모를 조망하는 지도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작가가 다양한 축도와 시선으로 작성한 삶의 지형도를 통해 이 책의 독자들이 인생과 사회를 보다 넓고 깊게 응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 전집은 모두 여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작가의 중단편을 시기별로 재구성하여 세 권으로 묶었다. 새로운 지식인 소설의 탄생으로 평가받았던 그의 초기작으로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고통스럽게 확인하는 기억의 서사를 거쳐 새로운 소설적 가능성을 시도했던 후기작들에 이르는 김소진 소설세계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연작의 형식임을 고려하여 따로 독립시켜 한 권으로 묶었고, 짧은 소설들을 한 권에 담았다. 그리고 작가의 산문, 그 외의 자료들을 또 한 권에 담았다. 매권 끝에는 새로 해설을 달아 김소진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전집과는 별도로 김소진의 삶과 문학에 바쳐진 글들을 엮어 가까운 기일 내에 출간할 예정이다.

전집을 펴내는 과정에서 발견된 명백한 오자와 탈자는 바로잡았으나 애매하거나 작가의 고유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이지만 그를 이곳으로 불러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 붙인 해설은 각각 진정석(1권), 류보선(2권), 김만수(3권), 손정수(4권), 성석제(6권-발문)가 맡았다. 김소진의 육성을 기억하는 이들이기에 그의 작품을 말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웠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런 그들의 한마디를 더한다.

김소진 소설의 일관된 관심사는 전혀 인공낙원과 무관한 자리에서 삶을 일구어가는, 문명의 주변부를 그야말로 인간적 본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한마디로 김소진은 언제부턴가 어느 누구에게서도 호명받지 못하던 스러져가는 주변부의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충실한 서기관이자 대변인이었다. 김소진은 문명과 개념의 개입을 받고 주변부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통일성(권태와 일탈, 부정과 긍정, 금기와 허용의 변증법적 조화)에 주목하고 이 아름다운 통일성을 거울로 어설픈 개념화와 자연의 수탈로 점철된 문명의 악마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비춰낸 작가였으며, 동시에 최첨단의 문화적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문학사의 일면적인 성격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비판한 한국문학사의 반성적 거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류보선(문학평론가)

김소진은 정결한 사람이다. 그의 산문은 그의 심성처럼 정결하고 허튼 군더더기가 없으며 경기도 사투리처럼 아름답다. 짧은 소설은 허욕이 없고 속임이 없다. 환한 대낮 토방 앞에 놓여 있는 항아리처럼 무뚝뚝히 명백하다. 사람은 가고 복숭아꽃은 피었다 지고 또 글은 열매와 마른 씨앗처럼 남는다. 나도 남아 있다. 아, 슬프다. 성석제(소설가)

구매가격 : 7,700 원

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시인선 131)

도서정보 : 주민현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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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채로 걸어가는 이 길은 흔들리고
나는 이렇게 이마에 멍이 드는 시간이 좋아”
-그리고 하나의 말을 던질 수 있다면 ‘미래의 여자들은 강하다’라고 할 거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친다”는 평을 받으며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한 주민현 시인의 첫 시집을 선보인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역사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강한 자의 것이므로, 이제 문학의 역사는 지금 말하는 당신들의 것이 될 것”(문학평론가 강지희, 「이 밤이 영원히 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이라 여기며 새로운 목소리를 기다려온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것이 분명한 시집. 오래 겪고 오래 응시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로 정치하게 꾹꾹 눌러쓴 55편의 시를 4부-1부 우리는 계속 사람인 척한다, 2부 이곳의 이웃들은 밤잠이 없는 것 같아, 3부 코를 고는 사람을 코만 남은 것처럼, 4부 사랑은 있겠지, 쥐들이 사는 창문에도-로 나눠 담았다. 생명이라고 다 같은 생명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며, 여성이라고 다 같은 여성이 아님을, 부러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목소리 하나 내지 않고 치열하고 올곧게 쓰는 그다. 이소연?이서하 시인, 전영규 평론가와 함께 창작동인 ‘켬’을 꾸렸으며 ‘켬’에서는 에코페미니즘을 기조 삼아 입장료 대신 쓰레기를 받아 진행한 ‘쓰레기 낭독회’ 등을 통해 독자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시 쓰기, 시 읽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표제 ‘킬트, 그리고 퀼트’는 수록작 「킬트의 시대」의 시구에서 따왔다. 비슷한 듯 다른 2음절 단어 둘과 그 연결이 주민현 시인의 시세계를 잘 드러낸다. ‘킬트’는 스코틀랜드의 남성이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치마이며, ‘퀼트’는 천과 천 사이에 심이나 솜을 넣고 기워 무늬를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 혹은 그렇게 박음질한 천을 일컫는다. 「킬트의 시대」의 화자는 치마를 입고 스코틀랜드 어느 광장에서 킬트 차림의 남자들과 춤을 춘다. 치마가 넓게 퍼지며 돌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무늬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돌면서’ 화자는 자신에게 ‘돌았니’ 하고 묻던 사람, 조용히 하라고 하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치마를 입고 상스럽게 앉은 어느 날의 일이었”다.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 광장에서 그와 ‘나’는 “모호하게 기워져 있”다. “깁다, 라는 것은 깊다는 것과 별 관계”는 없지만, “허리나 엉덩이 주변을 감싸는 천/ 또는 그런 손에 대하여” 복고풍 치마를 입은 ‘나’는 타탄무늬 킬트 차림의 그와 함께 춤을 추며 생각에 잠긴다.

「킬트의 시대」가 치마를 입고 함께 춤추는 다른 두 성(性)을 보여준다면, 「철새와 엽총」은 같은 음식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는 두 여성을 내세운다.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

그녀는 히잡을 두르고 있고
나는 반바지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우리는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

오늘 친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우리는 가슴이 있어서 여자라 불린다

마치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고

철새를 사냥하듯이 총을 들고 숲을 뒤졌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

그녀의 히잡은 검고
내 치마는 희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 세계에 허락된 음식을 먹는다
_「철새와 엽총」에서


‘나’와 나의 ‘이란인 친구’는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가슴이 있어서 여자라 불린다”. ‘우리’는 둘 다 여성이지만, 남편 아닌 남자와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수도 있는 건 친구이지 ‘나’가 아니다. 친구 역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상황에 ‘나’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친구와 친구의 다른 친구들 역시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없으리라.

김상혁 시인이 발문에서 지적한 바, 주민현 시인은 주체와 타자를 한 프레임 안에 ‘더블’로 놓으며 두 존재의 연대의식을 그리는 동시에 둘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까지 골몰해 나아간다. “그렇게 다르면서도 그들은 같다. 아니, 둘이 그토록 다르기에 그들은 오히려 같음을 주장할 수 있다. 서로 그토록 다름에도 불구하고 (…) 둘은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위태롭다. (…) 주민현의 주체는 남성이 여성에게 심어둔 찢긴 자아와 ‘운집/분열’ ‘동등/위계’ ‘갱신/왜곡’ 등의 요소로 대응하면서,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둘’, 권력 차이 없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둘’이 가능함을 보여준다.”(김상혁, 발문 「우리는 하지, 돌이켜 하지」에서)

주민현 시인의 시 속 여성들은 능동적으로 대처하거나 분노하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광기 어린 시어들로 억압해왔던 것들을 낱낱이 표출하거나 칼을 들고 맞서지 않는다. 그는 이란인 친구와 함께 할랄푸드를 먹고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이다. 감시와 위계가 없는 교감을 통해서만이 회복될 수 있는 관계를 응시하는 쪽이다.


눈을 감고 걸어도 암흑과 지팡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울어진 채로 걸어가는 이 길은 흔들리고
나는 이렇게 이마에 멍이 드는 시간이 좋아
_「이미 시작된 영화」에서

네가 신이라면 새들에겐 그림자
인간에겐 견딜 만한 추위와 허기를 주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겠지

나는 구멍난 공깃돌에서 흐르는
작은 슬픔을 엿보네
_「네가 신이라면」에서


이렇듯 기울어진 채 걷고, 작은 슬픔을 엿보는 시인. 그의 이마에 얼마간 더 멍이 들지라도, 쉬이 규정할 수 없는 자기만의 윤리로 기워갈 존재와 세계가, 그로부터 끊임없이 갱신되고 또한 확장될 그 존재와 세계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시인의 말
문을 열고 나오면 언제나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교외의 해변으로 통하는 길, 하나는 작은 성당과 식료품점을 지나
도시로 가는 길;
놀러온 꼬마들은 신발을 벗어둔 채 해변으로 가고
동네 사람들은 반대의 길을 간다

2020년 3월
주민현

구매가격 : 7,000 원

모월모일

도서정보 : 박연준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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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1퍼센트의 찬란과 99퍼센트의 평범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99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했다.”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날들
박연준 시인이 발견한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일상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타인과의 접촉은 물론이고, 가급적 말도 섞지 않는 것이 예의인 요즘, 마스크와 에탄올 소독제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외출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잠깐 집앞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마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때에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모월모일』을 펴낸다. 끔찍한 날도 좋은 날도, 찬란한 날도 울적한 날도,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모두 ‘모월모일’이 아닐지.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가 시인 특유의 깊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으로 탄탄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박연준 시인. 그의 네번째 산문집 『모월모일』은 지금껏 그가 써온 작품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친근한 일상을 소재 삼았다.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계절감이 도드라지는 글이 많으며, 그 계절에만 포착되는 풍경과 소리, 맛과 감정들이 읽는 이의 감각을 활짝 열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이 소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가만한 통찰과 그것을 감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절묘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은 작고 가볍고 공평하다. 해와 달이 하나씩 있고, 내가 나로 오롯이 서 있는 하루”가 있다. 거기서 모든 특별함이 시작된다. “매일 뜨는 달이 밤의 특별함이듯.”(‘서문’에서)

서문을 지나 만나는 첫번째 글에서 우리는 겨울밤, 얼려놓은 곶감을 종지에 담아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나’를 만난다. 가만히 앉아 고요한 그 시간을 그대로 누리며 낮에 ‘당신’과 나눈 짧은 대화를 떠올린다. 겨울에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회초리처럼 서 있는 게 나무들로선 겨울을 지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라던 당신의 말. 나무의 태만이라 섣불리 여기고 말았던 것이 최대한 고요해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일일 수 있다니, 곰곰 생각에 잠기는 겨울밤. 가만히 그 옆에 앉아 함께 골몰하고 싶어진다.

겨울밤은 야박하지 않다. 길고 길다.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아침은 아직 소식이 없을 것 같으니, 느릿느릿 딴생각을 불러오기에 알맞다. 곶감이 녹으려면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감을 말릴 생각을 했을까? 말린 감은 웅크린 감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웅크릴 시간이 필요하다. 병든 자의 병도 잠든 자의 잠도 자라는 자의 성장도 비밀이 많은 자의 비밀도 겨울밤을 빌어 웅크리다가, 더 깊어질 것이다._14쪽, 「밤이 하도 깊어」에서

어느 날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일곱 살의 나’를 내 앞에 앉혀두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일곱 살의 나는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것이 아직도 붉고 싱싱하다고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페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우는 것. “잠잠해지도록,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기에.(「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불시에 습격하는 건 음악도 못지않다. 대학 시절 친구와 반지하방에 앉아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창작시를 비평하며 자주 다투고 치열했던 기억을 불러온 건 조용필의 노래 이다.

그 작은 방에서, 우리는 스물셋이었다. 벽에 기대앉아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가 다. (…) 그때 우리는 우리가 청춘의 한복판에 있음을 몰랐다. 우리는 얼마나 뾰족하고 빛났던가. 청춘은 별안간 끝난다. (…) 그게 누구의 봄이든 봄날은 간다. 그리고 이따금 노래에 실려, 돌아온다._95~97쪽, 「조용필과 위대한 청춘」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특히 충만하게 하는 것은 ‘난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어!’ 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아끼는 대목들일 것이다. 남편과 다툰 뒤 감정에 휘말려 일상을 내팽개치지 않고 할 일을 잘 마친 뒤 짐을 싸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 낯선 도시를 혼자 걷고 현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줄 알게 된 나에 대한 긍정. 그 여유가 나와 타인의 관계 또한 건강하게 하리라.

둘이 되지 못해 안달인 시간이 있는가 하면 혼자이지 못해 누추해지는 시간도 있다. 인간에겐 햇빛, 음식, 타인의 사랑만큼이나 ‘혼자인 시간’ 역시 필요한 법. 지금 당신도 멀리서, 나처럼 혼자일 거라 생각하니 그조차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좋아도 오래 붙어 있다보면 종종 상대의 빛을 보지 못한다. 혼자일 때 빛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둘이 될 때, 내 빛남으로 당신을 돌볼 수 있도록. 그 반대가 되어선 곤란하다._73쪽,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에서

‘안마기’를 ‘당나귀’로 알아듣고, 생선가게에서 ‘얼지 않은 동태’를 찾기도 하고, 벚꽃 흩날리는 풍경 앞에서 ‘장관’ 대신 ‘가관’을 외치기도 하지만 그런 스스로가 재미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그는 “이제 겨우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이걸 깨닫는 데 사십 년이나 걸리다니! 당신이 나보다는 좀더 빨리, 자신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 딴청을 피우는 시간,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을 멀리 내다버렸으면 좋겠다”(‘서문’에서)며 자신의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산문집을 엮는 동안 내내 ‘모과’를 생각했다고 한다. 딱히 예쁘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울퉁불퉁한 과일. 향을 맡고, 손에 쥐어보고, 무게도 가늠해보고, 모과 한 알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도 있을 테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고 보기만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 모과 한 알이 평범한 하루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모월모일의 모과’ 같은 오십 편의 글이 쉽지 않은 매일을 보내고 있을 독자들에게 기분좋은 위로가 되리라 기대한다.

표지에 쓴 사진은 구본창 사진작가의 ‘비누’ 연작 가운데 하나, (2004)이다. 작가가 매일 세수하고 손 씻으며 쓰다 남은 비누를 수집, 촬영한 작품으로 마치 어여쁜 자갈 혹은 근사한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가고 손길이 닿은 만큼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닳고 작아진 비누를, 박연준 시인이 고른 모과 한 알과 함께 독자에게 보내고 싶다.

구매가격 : 9,100 원

고양이 학교 (1부 5권)

도서정보 : 김진경 글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01월 0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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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학교 전5권 완간!

고양이 학교 제5권『영혼의 산』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로써 고양이 학교는 제1권『수정동굴의 비밀』 제2권『마법의 선물』 제3권『시작된 예언』 제4권『나는 그대 눈동자 속에 있으리』 등 전5권으로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고양이 학교 시리즈는 국내 창작동화계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분야로 간주되는 판타지 동화 장르에, 그것도 연작으로 도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우리 창작동화의 지평을 넓힌 한 성취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해리포터 류의 외국 판타지 동화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 어린이들에게, 우리의 정서에 바탕한 재미있는 판타지 동화를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각별히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만한 동화를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

고양이 학교는 재미있습니다. 그 재미는 15년 넘게 고양이를 기른 작가의 체험으로 묘사한 흥미로운 고양이 생태, 결말에 이를수록 빛을 발하는 튼튼한 서사구조, 절묘한 복선과 기막힌 반전, 그리고 치밀한 필치로 그려낸 스펙터클한 삽화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독자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미는 단순히 흥미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집트 신화와 북구 신화, 인도 신화와 중국 신화 등 동서양 신화가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어, 스토리에 빠져 재미있게 읽다 보면, 신화와 상징이라는 거대한 그물망이 가슴속에 심어집니다. 그것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밭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가 자라 세상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수많은 책에서 고양이 학교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심어진 거대한 그물망을 펼쳐들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을 부러워하는 이유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넓고 풍성한 마법의 세계!

고양이 학교의 바탕이 되는 주요 모티브는 고대 예언과 수정동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정 고양이들과 그림자 고양이들의 대립입니다.

고대 예언은 아포피스의 때에 태양의 고양이(버들이, 러브레터)가 나타나서 마법의 칼로 어둠의 신 아포피스를 베고 고양이의 혼(민준, 세나)의 도움으로 모든 생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황금시대를 다시 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수정동굴은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이집트, 앙코르와트가 하나로 연결된 신비의 공간입니다. 황금시대에는 태양의 길이었고, 지금은 멸종한 생물 종들의 기억이 묻힌 곳입니다.

이 고대 예언과 수정동굴의 비밀을 간직한 고양이 학교에 수정 고양이들이 입학하면서 고양이 학교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의협심 강한 버들이, 앙숙이지만 위험할 땐 가장 먼저 메산이를 챙기는 러브레터, 심술궂지만 듬직한 메산이, 노르웨이 숲 고양이의 용감한 후예 바이킹, 쓰레기 산에서 고아로 자란 스라소니, 이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더불어 전생에 고양이였다가 사람으로 환생한 민준이와 세나가 힘을 합쳐 인류의 멸망을 기도하는 그림자 고양이들에 맞서 싸웁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닙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멸종되어버린, 그리고 지금도 매 순간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무수한 생물 종의 눈에는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근심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멸종시킴으로써만이, 인간 외의 모든 생물 종이 평화롭게 살아갈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그림자 고양이들의 절규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수정 고양이의 바람은 인간과 더불어 모든 생물 종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양이 학교는 인간이 다른 생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루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생태 동화로도 읽힙니다.

구매가격 : 7,700 원

손톱이 자라날 때

도서정보 : 방미진 / 문학동네 / 2016년 07월 0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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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방미진이 펼쳐 내는 강렬하고 음습한 이미지
2006년 출간되자마자 국내 창작동화로는 최초로 ‘호러 동화’라는 평을 받으며 어린이문학계에 큰 자극을 주었던 『금이 간 거울』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이의 내밀한 속마음과 두려움을 쩌릿한 긴장과 공포로 풀어냄으로써 뚜렷한 색깔을 드러낸 작가 방미진이 이번에는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이 두렵기만 한 청소년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손톱이 자라날 때』는 자신에 대한 질문과 의심 또는 과도한 자존감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쉬이 상처를 내고 마는 청소년을 작가 특유의 ‘강렬하고 음습한 이미지’의 언어로 그려낸 독특한 작품집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이 두렵기만 한 청소년기는 그 자체로 호러다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십대들은 자기가 왜 힘든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작은 일에도 쉽게 깔깔거리는 그들이지만 혼자 있을 때면 지금의 이 시간들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길고 어두운 터널로만 느끼곤 하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특히 십대에게 교실이란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면서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한 공간이다. 수업 시간 문득 고개를 들어 교실을 한번 둘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 듯해도 모두가 각각 다른 악몽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경한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작가는 청소년 시절, 교실이 ‘거대한 호러 상황’이었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는 수많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벽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 무엇보다 ‘내가 나’인 것에 대한 공포…….
물론 교실 밖에서도 일상의 공포는 이들을 기다린다. 어른들이 쉽게 “그때가 좋은 때다, 두고 보면 알게 돼.”라고 말하는 것은 청소년에게는 생활을 끌어갈 책임이 없고 따라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도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삶은 무겁다. 가난만을 놓고 보자면, 청소년들은 자신의 등을 찍어 누르는 가난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가난함과 부유함은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드는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십대의 불안한 자의식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날카롭게 그려낸 다섯 편의 이야기
「하얀 벽」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완벽히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다. 함께 공부하고 수다도 떨었건만 선생님도, 아이들도 애초에 그런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잊혀진 아이는 교실의 하얀 벽으로 스민다. 벽으로 스며들어 벽이 되고 만 아이는 한때는 친하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자신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자꾸만 말을 건넨다.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하얀 벽이 누구였는지 떠올린 순간, 친구는 물렁하고 축축한 벽이 등 뒤로 바짝 다가와 어깨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 네가 되고」의 지영이는 매사에 자신을 능가하던 쌍둥이 언니 주영이가 사고로 죽자, 주영이가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사고로 부모님까지 함께 잃었지만 지영이는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주영이가 되기 위한 가련한 연극에 빠져든다. 주영이의 교실에 걸어 들어가 주영이처럼 공부하고, 주영이의 친구들과 주영이처럼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늘 주영이가 갖고 있던 것만을 눈여겨보던 지영이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영이는 여전히 참견하고 비웃고 무시하는 주영이의 존재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기가 완벽하게 펼쳐질수록 죽은 것은 주영이가 아니라 결국 자신임을 깨닫는다.

표제작 「손톱이 자라날 때」는 이제 막 청소년 시기에 접어든 여중생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폭발하는 장면을 그린다. 이들의 교실에선 누군가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서, 누군가는 집안이 부자라서, 누군가는 부모님이 극성스러워서 존재감을 얻는다. 이런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자 손톱을 기르는 아이가 있다. 누군가 자기 말을 자르면 주눅이 들고, 큰 소리로 이름이 불리기만 해도 더럭 겁이 나곤 했던 아이는 길게 자란 손톱을 드러내 보이면서 ‘나 여기 있다’라는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손톱을 길러 존재감을 획득한 아이는 ‘잘 나가는’ 패거리 틈에 끼어 괴롭히고 짓밟을 아이를 물색한다. 착할 뿐만 아니라 친하게 지낸 적까지 있는 아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열이 오르고 아려 와도 자르지 못하던 손톱을 치켜들던 아이가 문득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는다. 당황한 아이의 눈에 온통 일그러진 교실이 들어온다. 기울어진 바닥, 내려앉은 천장, 휘어진 벽, 그리고 아이들.

나는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쿡.”
누군가 웃었다. 눈이 다섯 개나 달린 아이였다. 원래는 누구였지? 뒤에 앉은 아이가 연체동물처럼 길 팔을 뻗어 그 애에게 주의를 줬다. 마치, 연극 중간에 웃음이 터져 버린 친구를 쿡 찌르며 ‘야, 웃으면 어떡해.’ 하는 것처럼. 잠깐 동안 큭큭대던 그 애들이 다시 심각한 얼굴로 표정을 바꿨다.
나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긴장한 것 같아 보이는, 두려운 것 같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두려운 걸까? 속으론 반쯤 드러누워 드라마를 감상하듯 나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p166)

작가는 아이도, 아이가 낀 패거리도, 그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다른 아이들도 모두 한 편의 역할극을 하고 있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여자 중학교 교실의 살벌한 일면을 희화하고 있다.

「붉은 곰팡이」는 더럽고 누추한 살림살이를 극단적으로 대변하는 ‘쥐’와 빠져나갈 수도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가난이라는 ‘덫’, 그리고 가난과 이별하려 할 때 비로소 그 가난조차도 ‘꽃’처럼 아름답게 기억하려 하는 빈곤층의 모습을 치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생활고에 몰려 지하방으로 찾아든 식구들은 지하방에서 거대한 생명체를 만난다. 살아 꿈틀거리면서 시시각각 식구들을 옥죄어 오는 붉은 곰팡이가 그것이다. 아빠는 올가미 같은 가난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고 엄마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굶주린 동물처럼 눈빛만이 형형해진다. 그런 식구들을 바라보는 ‘나’는 닦아도 닦아도 붉게 피어나는 곰팡이 같은 가난 앞에서 “그래. 곰팡이처럼 살아.” 하고 읊조린다.

「고누다」는 영리한 이야기다. 손가락을 겨누면 목표물이 세포 분열을 하듯 두 개가 되는 이상한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고누다. 순식간에 같은 자리에서 진짜와 가짜가 생겨나고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먹혀 사라진다. 반드시 입을 가진 살아 있는 생명체에만 적용되는 이 능력을 고누다는 거침없이 사용한다. 예쁜 고양이를 봤을 때, 인기가 많지만 가식적인 녀석들을 볼 때, 또는 그냥 재미로, 고누다는 거침없이 겨누고 “빵!” 하고 외친다. 그러나 가짜 보라2를 만들어 낸 것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보라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였다. 고누다는 친구가 되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고누다는 보라2를 집 안에 들인 후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커다란 비밀을 맞닥뜨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겨누고 “빵” 하고 외친 고누다는 결국 ‘나는 진짜일까. 가짜일까.’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어떤 공간도 영원히 ‘나’를 가둘 수는 없다
방미진은 ‘작가의 말’에서 세상에는 이상한 공간들이 있다면서 그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집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직장일 수도, 학교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은 학교에 있는 꿈을 종종 꾼다고 고백한다.
“그 교실에서 나는 지영이가 아닌 주영이로만 남는 꿈을 꾸었고, 내 손톱이 길게 자라나는 환영을 보았으며, 하얀 벽이 되어 귀신처럼 존재했다. 이따금 위험한 감정에 휘말릴 때면 고누다가 되어 모두를 겨누고 있기도 했다. 다행히 어떤 공간도 영원히 나를 가두지는 못했다. 나는 교실을 나왔고, 지하방을 나왔다. 하지만 아마 이상한 공간들은 계속해서 형태를 바꿔 가며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미진은 청소년 시기를 하나의 공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낯설고 힘겹고 공포스러워도 언젠가는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나게 될,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는 한 공간 말이다. 그렇기에 「손톱이 자라날 때」의 기괴한 교실 안 풍경은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연극으로 느껴지고, 진저리치게 지겨웠던 붉은 곰팡이는 지하방을 떠나는 순간에는 꽃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사실 이상한 공간이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저 존재할 뿐, 어떤 악의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공간도 누군가를 영원히 가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순간순간 소름이 돋게 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힘겨워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래, 나만 힘들고 무서운 건 아니야’라는 적잖은 위무를 주는 것이다.

구매가격 : 7,700 원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서정보 : 박상영,김희선,백수린,이주란,정영수,김봉곤,이미상 / 문학동네 / 2019년 04월 2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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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의 한국소설과 만나는
가장 확실한 패스트 트랙!”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일곱 편을 선정해 수여하는 젊은작가상. 2010년에 제정된 이래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글쓰기를 조명하며 ‘지금-여기’의 한국소설과 만나는 가장 확실한 패스트 트랙의 역할을 해온 젊은작가상의 2019년 제10회 수상 작가는 박상영 김희선 백수린 이주란 정영수 김봉곤 이미상이다. 작년에 이어 연속해서 수상자가 된 박상영과 정영수, 올해로 세번째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백수린, 그리고 한국소설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하는 작품들을 활발히 써내고 있는 김희선, 이주란, 김봉곤, 여기에 힘있는 데뷔작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신인 작가 이미상까지, 10주년을 맞아 더 뜻깊은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어느 해보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아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엄마와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그들을 떠나지는 못하는 ‘나’를 통해, 사랑의 ‘어쩔 수 없음’과 관습화된 세계에 내재한 속물성 등을 ‘웃음’과 ‘눈물’과 ‘단맛’과 ‘짠맛’을 모두 동원해 속도감 있게 그려 보인다. “개인사적 범주를 보편의 세계로 확장한 수작”(소설가 은희경), “대범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힘이 있는”(소설가 김성중)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김희선의 「공의 기원」은 개화기 조선의 소년이 우연히 얻은 축구공의 기원을 뛰어난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면서, 거대한 역사적 흐름 이면에 방기된 개인의 삶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나’와 프랑스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언니, 그리고 ‘나’의 프랑스인 연인 사이에 긴 시간을 두고 그어지는 관계의 궤적을 설득력 있는 문장과 인상적인 장면으로 펼쳐 보인다.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화자의 일상을 담담한 목소리로 그려냄으로써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작품이다. 정영수의 「우리들」은 불륜 커플 사이에 놓인 주인공이 그들의 관계 속으로 스며들고 자신의 옛 연인에 대한 기억을 재정립해나가는 과정을 더없이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묘사하며 사랑의 진실과 글쓰기의 지난함에 대해 사유한다. 김봉곤의 「데이 포 나이트」는 소설가가 되어 모교로 돌아간 화자가 위험한 폭력 앞에서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고, 그것마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한 걸음 더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이미상의 「하긴」은 딸의 대입에 투신한 민주화운동 세대 아버지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 입시제도의 모순, 중산층 가정의 도덕적 허위 등을 개성 있는 문체로 드러낸다.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심사를 위해 젊은 문학평론가 김녕, 안지영, 이지은, 한설 씨가 장시간의 노고 끝에 삼십 편 남짓의 중단편소설을 골라 1차 선고를 마쳤다. 이 선고 작업은 거의 일 년에 걸쳐 이루어진 셈인데, 네 분이 신작 중단편소설을 모두 검토하고 그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선별하는 일을 매 계절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학평론가 김건형, 선우은실, 이은지 씨가 합류해 총 스물한 편을 추려 2차 선고를 마치고, 이 작품들을 대상으로 일곱 편의 수상작과 그 가운데 한 편의 대상작을 선정하는 본심을 진행했다.

본심은 권희철, 김성중, 윤대녕, 은희경, 황종연 제씨가 맡아주었다. 본심에서 길고 격렬한 토론은 없었다. 그만큼 대상을 비롯한 수상작들의 성취가 손쉽게 합의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것이었다는 뜻이겠다. 첫 책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김봉곤, 박상영, 이주란, 정영수의 약진이 흥미롭고 이제는 신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는 백수린의 변화와 『무한의 책』이라는 압도적인 장편을 써낸 김희선이 단편에서 발휘하는 역량도 눈에 띄는 가운데 김봉곤, 김희선, 이주란의 첫 젊은작가상 수상이 반갑다. 무엇보다 웹진 ‘비유’에 「하긴」을 발표한 것 외에 다른 경력이 없는 낯선 작가 이미상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고 기쁘다. _‘심사 경위’ 중에서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박상영의 소설은 소수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규정하는 관습화된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해체해버린다. 당연히 급진적이고 에너지가 실리지만 그 무거움은 솜씨 좋은 내러티브를 통해 가볍고 때로 귀엽게까지 조형된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그런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개인사적 범주를 보편의 세계로 확장한 수작이다. _은희경(소설가)

어쩌면. 한때 내가 그를 향해 가졌던 마음. 그 사로잡힘.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에너지도 종교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까만 영역에 온몸을 던져버리는 종류의 사랑. 그것을 수십 년간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어떤 형태의 삶인가.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것인가.(『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 1988년생.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있다. 2018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희선, 「공의 기원」 공 하나로 이만큼 사실적인 뻥을 늘어놓는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축구공이 작품 안에서 문자 그대로 굴러다니는데 장소만 해도 제물포-런던-펀자브를 넘나들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 아동 노동착취, 마르크시즘, ‘멋진 신세계’로 대표되는 미래 담론까지 건드린다. 문장으로 드리블을 한다고 할까. _김성중(소설가)

그가 쓰고자 하는 것,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그러면서 동시에 진짜를 가짜처럼 보이게도 하는-스토리를 만들려면 사진이 필요했으니까. 만약 사진만 있다면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일지라도 진실이 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문학의오늘』 2018년 봄호)

■ 1972년생.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교육의 탄생」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라면의 황제』 『골든 에이지』, 장편소설 『무한의 책』이 있다.

백수린, 「시간의 궤적」 한국 단편소설 애독자라면 본문에 저자 이름이 없더라도 「시간의 궤적」이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간 한국인 여자들의 열정과 회한, 동경과 비애를 다루면서 이만큼 인상적인 장면과 잔향 많은 일화를 남길 수 있는 작가는 백수린 외에 달리 없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저들은 불행한 거야. 불행한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나는 그후로 더이상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자음과모음』 2018년 겨울호)

■ 1982년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이 있다.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공감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성립될 수 있다는 묘한 깨달음의 지점이 있다. 평행을 이루지만 조금씩 비틀려 있는 관계들, 무사하고 여일해 보이지만 무형의 폭력과 결핍에 눌려 있는 일상들. 신선한 내러티브라고 느꼈다. _은희경(소설가)

제 몫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몸의 소리, 자유로운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들리는 염소 울음소리, 동물의 젖을 짜는 소리,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남자아이의 휘파람 소리, 그리고 공기 소리, 그러니까…… 침묵이 아닌 공기의 소리를 오래 듣는다.(『21세기문학』 2018년 가을호)

■ 1984년생.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가 있다.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영수, 「우리들」 이 소설의 서술은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의 애매함에 족히 걸맞은 공백, 단락, 착종을 포함하고 있다. “여름은 지나갔다. 그해의 모든 태풍이 소멸했고, 모든 매미는 울음을 그쳤고, 아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그게 다였다.” 사랑의 역사를 두고 이렇게 쿨하게 말할 수 있는 한국 작가는 드물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21세기문학』 2018년 가을호)

■ 1983년생.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소설 「레바논의 밤」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애호가들』이 있다. 2018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나는 한 인물의 성장담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작품이 갖는 특유의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는 작가가 바야흐로 자신만의 화법으로 성(城)을 구축하는 방식을 발견했다는 의미로 파악이 가능하다. _윤대녕(소설가)

첫이 아닌 것들의 의미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에서 애걸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조금은 덜 실패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음과모음』 2018년 여름호)

■ 1985년생.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Auto」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이미상, 「하긴」 이 소설의 주인공-화자가 말과 사고의 장악력을 통해 자신의 삶을 파악하고 수정하려고 애쓰다가 여지없이 패배하고 그 패배를 다시 파악하고 수정하려 애쓰는 과정만큼은 특별하다. 데뷔작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는 작가가 이런 정도로 힘있는 소설을 써낸 것이 놀랍다. _권희철(문학평론가)

아내는 말을 하다 말고 짧고 긴 숨을 쉬었다. 때론 쉼표, 때론 줄임표. 하긴, 하지. 하긴, 하는 남자지. 형은 적어도 남의 말을 듣다가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하며 나갔다 올 줄은 알지. 천천히 홀로 걸으며 하긴…… 할 줄 아는 인간. 딱 그만큼 달라질 수 있는 거야. 하긴, 하는 만큼.(웹진 비유 2018년 4월호)

■ 1982년생. 2018년 웹진 비유에 「하긴」을 발표하며 등단.



젊은작가상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각 700만원과 트로피가 수여되며, 수상작품집의 인세(10%)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한 인세를 수상자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지급한다. 수상작품집은,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지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은 특별보급가로 판매한다."

구매가격 : 9,100 원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문학동네시인선 130)

도서정보 : 박시하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3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들어버린 식물의 재 안에서 부서지는 흰 빛”
슬픔의 문을 열고 가닿을 빛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1.

2008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박시하 시인이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이후 4년 만에 찾아왔다. 60편의 시가 담긴, 그의 세번째 시집이다. “세계는 우리에 대한 사실이 아니야/ 어떤 확신일 뿐”(「아포리아」, 『눈사람의 사회』, 문예중앙, 2012)이라 외치던 첫 시집, “언젠가 삶은 사라지게 될 거야/ 아무것도 슬프지 않을 거야”((「구체적으로 살고 싶어」,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문학동네, 2016)라고 읊조리던 두번째 시집을 지나, “세계의 각도를 비틀 수는 있지만/ 마음은 비틀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은 사랑은/ 짐작하지 않는// 나의 도덕”(「나의 도덕」)이라 담담히 적어내려가는 이번 시집까지, 박시하 시인은 투명하고 단단한 슬픔의 언어로 시간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사라져가는 소중한 존재들을 애도해왔다.

2.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먼 시간 너머
시간이 공간인 우주의 공허 너머
어딘가에 장밋빛 집이 있고
거기에서 헤세와 당신, 불쌍한 로캉탱, 보부아르와 내가
지워지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먹먹한 사랑을 각자 가슴에 품고
알리지 못한 비밀을 읊조리며
들리지 않는 노래를 토해내겠지요
-「디어 장폴 사르트르」 부분

우리가 아는 한정된 시공간 너머를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로 들여다본다. 밝힐 수 없는 것으로 남을 ‘알리지 못한 비밀’과 ‘들리지 않는 노래’가 내밀한 대화로 오간다. “생존한다는 건 얼마만큼 토 나오는 것입니까/ 친애하는 사르트르”. ‘사르트르―『구토』―박시하―시적 화자―독자’로 이어지는, 유한성을 넘어선 소통. 그 사이사이 우리는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을 갖으리라.

이렇듯 실체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은 이 시집에 수록된 열네 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두 인물 ‘롤로’와 ‘메이’ 사이에도 일어난다. 한쪽이 부재하거나 응답할 수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 “메이는 롤로를 떠났다.// 롤로가 아프기 때문이었다”로 시작하는 시 「이사 1」과 “롤로는 영혼의 집을 옮겼다.// 메이가 아팠기 때문이었다”로 시작하는 시 「이사 2」. 이들의 이사는 주거 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닌, 서로가 함께 있던 삶에서 그렇지 않은 삶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불행할 정도로 행복했던” 둘의 병증은 “무수한 잎을 돋우”는 것. 메이는 보랏빛 잎사귀를 피운 롤로의 나무 하나에 ‘슬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다로 왔다. “이제는 아프지 마”라고 기도하며 잎사귀를 하나씩 해변에 떨구는 애도의 형식. 이것은 메이의 잎사귀를 뜯어 금간 벽에 붙이며 손바닥이 타버리도록 기도하는 롤로의 창밖 바다 풍경과 아름답고 슬프게 포개진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고, ‘증류된 아픔’이 이어졌고, 마침내 ‘슬픔의 문’이 열리기까지, 그들이 주고받은 무언가들로 인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만 같”다.

3.

박시하의 이번 시집에는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이미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가 내리고 폭설이 쏟아지는 것부터, 부서지고 쇠락하고 가라앉고 산산조각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가 스러지고 사라지고 지워지며 어둠에 덮이는 것으로 이어지는 바, 시인이 이러한 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한 단어 쓸 때마다/ 손가락 한 마디씩 부서지는// 오랜 형벌”(「그을린 방」)을 불사하며 존재의 그림자를 향해 다가간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평론가 김태선이 해설에서 포착한 것과 같이 “시인이 스스로 어두워지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까닭은, 그 그림자 안에 있을 빛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그림자와 타인의 그림자가 뒤섞여 “무엇이 무엇의 그림자인지”(「롤로와 메이의 책」) 알 수 없는, 소통과 불꽃의 움직임처럼 사라지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밝힐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노래하기 위해서.”

폐허를 바라보는 허무의 시선에서 그치지 않고, 침묵과 부재의 허허로움에 지지 않고, 그 모든 하강의 이미지를 끌어안은 채 가닿을 빛을 어디일까. 시인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며 시인과 독자가 음미할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을 기대해본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말할 수 없는 혀가 입안에서 우주만큼 커진다
사랑이에요
이 말할 수 없는 증폭이
나보다 큰 나를 안고 있는 당신이

하늘의 틈이 벌어지고
끝없는 눈이 내린다
-「일요일의 눈 1」 부분


■ 시인의 말

어제를 팔아서 오늘을 산다.
그러면 내일이 남는다.
이상한 장사지만 밑천이 떨어진 적은 아직 없었다.

결국 장사치로서 시를 쓴다는 사실이 가끔 당혹스럽다.

롤로와 메이, 죽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0년 2월
박시하

구매가격 : 7,000 원

해피 데이스

도서정보 : 사뮈엘 베케트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3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오 오늘도 행복한 날이 될 거예요!”

당신이 거기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가능한 한 적당히 내 말에
귀기울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어… 천국이나 다름없죠.
거기서 내 말 들려요? 제발 대답해줘요……

『고도를 기다리며』보다 더욱 처절하고 치밀한 필독 걸작
언덕에 허리까지 파묻힌 여자, 사지로 기어다니는 남자, 그 충격과 압축의 이미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준 사뮈엘 베케트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2)를 성공시키며 부조리극의 기수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후 희곡·소설·비평·방송극을 막론하고 작품을 쏟아내듯 집필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했다. 그중 놓쳐서는 안 될 희곡 작품이 베케트가 집필·수정·연출에 지대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 『해피 데이스』(1961)다. 네 명의 등장인물로 구성된 『고도를 기다리며』와 달리 단 두 명의 인물과 황폐한 광야만을 내세운 압축성, 주인공이 언덕에 파묻힌 충격적인 무대 광경, 치밀하게 설계된 대사·지문·호흡이 완벽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인간에게 주어진 육체와 시간이라는 조건의 끔찍함, 인간이 갈구하는 실존과 소통의 허구성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베케트가 쌓아온 부조리극의 세계에서 그 정점을 보여주는 『해피 데이스』는 “베케트=고도”라는 굳건한 공식을 깨트리는 동시에, 문자로 읽는 텍스트이자 배우를 통해 발화되는 육신의 텍스트인 희곡 읽기의 매력을 경험하게 하는 걸작이다.

언덕 한복판에 허리 위까지 파묻혀 있는, 위니. 오십 세가량, 젊어 보이는 외모, 가급적 금발, 통통한 체형, 맨팔과 맨어깨, 깊게 파인 보디스, 풍만한 가슴, 진주 목걸이. 위니가 팔은 언덕 앞에, 머리는 팔 위에 내려놓은 채, 잠들어 있다. 위니의 언덕 왼쪽에 장바구니 같은, 큼직한 검정색 가방이, 오른쪽에는 접이식 양산이 접힌 채 놓여 있고, 양산 손잡이 끝은 양산집 밖으로 나와 있다. 위니의 오른쪽 뒤에서, 언덕에 가려진 채, 땅에 누워 자고 있는, 윌리.

희곡 『해피 데이스』는 총 2막 구성이고, 등장인물은 50대 여자 ‘위니’와 60대 남자 ‘윌리’다. 태양이 작열하는 황폐한 광야의 언덕 꼭대기에 부인 위니가 허리까지 파묻혀 있고, 남편 윌리는 언덕 뒤에서 사지로 기어다닌다. 아무런 설명 없이 내던져진 이 포스트아포칼립스적 이미지는 “또 천국 같은 날이야”라는 위니의 첫 대사와 함께 시작부터 충격과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해피 데이스』는 베케트의 작품 속에서 남성의 욕망과 공포가 깃든 시선으로 묘사되곤 했던 여성이 처음으로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인간 실존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베케트의 주제가 치밀하게 설계된 대사·지문·호흡을 통해 빈틈없이 발현됨으로써, 그의 부조리극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압축된 정수를 보여준다.


베케트는 인간의 삶이 덫이 될 수 있다는 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을 그려냈다. 현대의 리스트에서 가장 불안하고 잊지 못할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

침묵과 고립의 공포를 물리치고자 몸부림치는 인류에 대한 베케트의 예지력의 정수를 완벽히 뽑아냈다. 가디언

삶의 잔혹한 측면에 깃든 순수한 낙관주의라는 베케트의 주제를 우리는 좀더 파헤치고 갖고 놀아야 한다. 데일리 뉴스

몸의 절반이 파묻힌 주인공 역할은 〈햄릿〉에 비견할 버거운 도전이다. 아무런 설명 없는 그들의 포스트아포칼립스는 〈워킹 데드〉나 오늘날의 디스토피아 드라마보다 더욱 황폐한 인간의 삶과 이성을 보여준다. 위니를 연기하는 게 배우들의 에베레스트로 여겨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구매가격 : 9,1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