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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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 1

도서정보 : 진위청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사람의 마음도 살로 되어 있잖아요.
상하이에는 놀랍고 위험한 이야기들이 필요해요.
갖가지 기적이 다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왕가위 감독 영화・드라마화 예정
〈화양연화〉 〈2046〉을 잇는 3부작의 결정판!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 청춘의 삶에 스며든 상하이의 수많은 사람들과 골목, 음식, 무수한 민담과 풍경의 편린들…… 시대와 공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묘사하며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번화』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온 젊은이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진솔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진위청의 대표작이다. 마오둔문학상, 시내암상, 루쉰문화상 연도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왕가위 감독이 영화 및 드라마 판권을 확보해 전작 <화양연화> <2046>을 잇는 작품으로 영상화할 예정이다.

『번화』의 세 주인공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는 모두 상하이 출신이다. 특히 후성의 이름은 의미심장한데, ‘후성’은 상하이를 뜻하는 한자어인 ‘후沪’와 ‘생生’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사람. 소설이 상하이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후성의 형 이름은 ‘후민沪民’이다.) 이들 셋 모두 상하이 출신이긴 하지만 배경은 제각각이다. 후성은 부모님이 모두 공군 간부이며, 영국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바오는 할아버지가 지주계급 출신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샤오마오는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상하이의 전통 골목인 농탕의 주택에 살고 있다. 세 인물이 살고 있는 주거지는 상하이의 공간 지형을 그대로 가져온 결과다. 상하이는 1949년 이전, 조계지가 분할된 상황에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상하이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통일된 계획이 부족하고 각 지역의 경제 조건이 서로 크게 달랐다. 조계지 내에는 외국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들이 많았고, 상업이 번영하였으며 고급 빌라가 위치했다. 반면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은 인구가 밀집되었고 오래된 주택이 많았다. 거리는 좁았으며 각 주택이 촘촘히 붙어 있는 구조였다.

『번화』는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가 살아가는 공간과 마주하는 사건들, 인물들 등 삶의 면면을 날줄로 서술한다. 영화관에 갔던 일, 우표 수집, 권법 수련, 일하는 공장에서 목도한 밀회 현장 등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이 묘사되는 가운데 수많은 거리와 골목, 건물, 음식, 과거로부터 소환된 무수한 민담과 기억의 편린 등이 등장한다. 한편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씨줄이 된다. 결혼했지만 아내가 출국한 뒤 소식이 없는 후성은 메이루이와 인연을 이어가며, 아바오는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베이디에 관한 추억들을 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즈전위안을 운영하는 리리와 가까이 지낸다. 샤오마오는 농탕의 주택 아래층에 살고 있는 유부녀 인펑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어 춘샹을 만난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역사 담론 따위가 아닌 순수한 욕망이다.

각 주인공들의 기억과 생활이 모자이크처럼 편편이 흩어져 서술되는 듯 보여도 이들의 삶에는 상하이의 역사가 큰 줄기로 흐른다. 태평천국의 난에서부터 시작되는 봉건왕조시대의 종언과 외세의 침략, 조계지, 문화대혁명과 그 상흔, 개혁개방 등 방향이 완전히 다른 역사와 시대의 동력들이 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착종한다. 특히 문화대혁명은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대사건이다. 지주나 자본가 가정 출신의 자제들은 봉건 부패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져, 아바오 식구들은 하루아침에 공동 주택지인 양만호로 이사를 가게 되고, 노동자 가정 출신인 샤오마오는 좋은 사람으로 치켜세워진다.

평균 다섯 가구가 부엌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변기통이 설치된 화장실은 두 칸뿐이었다. (중략) 아바오 가족의 새 주소는 아래층 4호실이었다. 15평방미터의 비좁은 단칸방으로 1, 2, 3, 5호실과 복도를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창밖에는 들풀이 가득 자라나 있고 실내에는 도처에 먼지와 거미줄이었다. 가족들이 짐을 담은 바구니를 들여놓는 동안 아바오 아빠는 벽돌을 하나 주워 대문 옆에 못을 박고는 딱딱한 종이에 쓴 인죄서認罪書를 내걸었다. 인죄서에는 모자를 벗고 찍은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_1권 본문 중에서

『번화』에선 문화대혁명이 각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기존의 삶을 운영하던 논리를 뿌리째 뒤흔드는지, 상하이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가는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자유로운 형식과 서술 기법을 통해 복원한 ‘상하이’

형식 면에서 보면 소설은 두 가지 선이 병행되는 구조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소설은 총 31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홀수 장은 과거에 해당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짝수 장은 소설의 현재 시점 1990년대를 서술한다. 이중 28장부터 31장까지는 1990년대를 쭉 이어 그려낸다. 이 같은 구조가 ‘과거 상하이’와‘현재 상하이’라는 두 시대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한편 서술 면에서는 말글이 이어지는 구조를 띤다. 대화를 나타내는 문장부호가 따로 없이 인물의 말이 열거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옛 중국문학의 서술 기법을 따른 것이다.

화본話本 형식이라는 옛날의 발자취를 현재의 바퀴에 집어넣었는데도 여전히 잘 돌아갔다. 참신하고 이채로웠다.
‘심리적 차원의 미묘함’을 포기하고 구어적인 진술과 평담한 의미를 살려 주인공들의 말과 행위를 있는 그대로 적고자 했다. 한 가지 일이 또다른 일을 물고 온다. 장산張三의 이야기가 끝나면 리쓰李四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기 다른 어감과 행위, 복장이 각기 다른 환경을 구분하면서 각기 다른 삶을 전개한다. 문장부호들은 아주 간단하다. ‘작가의 말’에서

화본이란 송ㆍ원나라 때 유행한 구어체 소설을 칭하는 것으로, 통속적인 언어로 당시의 생활상이나 역사적인 고사를 표현해내는 형식을 띤다. 작가는 주인공의 말과 행위를 그대로 묘사하는 서사 기법을 통해 ‘상하이’ 그 자체를 그린다. 작가가 소설의 서두에서“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라고 예고한 바다. 상하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형식ㆍ서술 기법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갈마들게 하고, 인물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이 2015년 제9회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하며 “『번화』의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 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도시 상하이 그 자체다”라는 평을 받은 것과 상통하는 맥락이다.

구매가격 : 12,600 원

번화 2

도서정보 : 진위청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사람의 마음도 살로 되어 있잖아요.
상하이에는 놀랍고 위험한 이야기들이 필요해요.
갖가지 기적이 다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왕가위 감독 영화・드라마화 예정
〈화양연화〉 〈2046〉을 잇는 3부작의 결정판!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 청춘의 삶에 스며든 상하이의 수많은 사람들과 골목, 음식, 무수한 민담과 풍경의 편린들…… 시대와 공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묘사하며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번화』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온 젊은이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진솔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진위청의 대표작이다. 마오둔문학상, 시내암상, 루쉰문화상 연도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왕가위 감독이 영화 및 드라마 판권을 확보해 전작 <화양연화> <2046>을 잇는 작품으로 영상화할 예정이다.

『번화』의 세 주인공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는 모두 상하이 출신이다. 특히 후성의 이름은 의미심장한데, ‘후성’은 상하이를 뜻하는 한자어인 ‘후沪’와 ‘생生’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사람. 소설이 상하이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후성의 형 이름은 ‘후민沪民’이다.) 이들 셋 모두 상하이 출신이긴 하지만 배경은 제각각이다. 후성은 부모님이 모두 공군 간부이며, 영국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바오는 할아버지가 지주계급 출신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샤오마오는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상하이의 전통 골목인 농탕의 주택에 살고 있다. 세 인물이 살고 있는 주거지는 상하이의 공간 지형을 그대로 가져온 결과다. 상하이는 1949년 이전, 조계지가 분할된 상황에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상하이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통일된 계획이 부족하고 각 지역의 경제 조건이 서로 크게 달랐다. 조계지 내에는 외국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들이 많았고, 상업이 번영하였으며 고급 빌라가 위치했다. 반면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은 인구가 밀집되었고 오래된 주택이 많았다. 거리는 좁았으며 각 주택이 촘촘히 붙어 있는 구조였다.

『번화』는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가 살아가는 공간과 마주하는 사건들, 인물들 등 삶의 면면을 날줄로 서술한다. 영화관에 갔던 일, 우표 수집, 권법 수련, 일하는 공장에서 목도한 밀회 현장 등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이 묘사되는 가운데 수많은 거리와 골목, 건물, 음식, 과거로부터 소환된 무수한 민담과 기억의 편린 등이 등장한다. 한편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씨줄이 된다. 결혼했지만 아내가 출국한 뒤 소식이 없는 후성은 메이루이와 인연을 이어가며, 아바오는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베이디에 관한 추억들을 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즈전위안을 운영하는 리리와 가까이 지낸다. 샤오마오는 농탕의 주택 아래층에 살고 있는 유부녀 인펑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어 춘샹을 만난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역사 담론 따위가 아닌 순수한 욕망이다.

각 주인공들의 기억과 생활이 모자이크처럼 편편이 흩어져 서술되는 듯 보여도 이들의 삶에는 상하이의 역사가 큰 줄기로 흐른다. 태평천국의 난에서부터 시작되는 봉건왕조시대의 종언과 외세의 침략, 조계지, 문화대혁명과 그 상흔, 개혁개방 등 방향이 완전히 다른 역사와 시대의 동력들이 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착종한다. 특히 문화대혁명은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대사건이다. 지주나 자본가 가정 출신의 자제들은 봉건 부패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져, 아바오 식구들은 하루아침에 공동 주택지인 양만호로 이사를 가게 되고, 노동자 가정 출신인 샤오마오는 좋은 사람으로 치켜세워진다.

평균 다섯 가구가 부엌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변기통이 설치된 화장실은 두 칸뿐이었다. (중략) 아바오 가족의 새 주소는 아래층 4호실이었다. 15평방미터의 비좁은 단칸방으로 1, 2, 3, 5호실과 복도를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창밖에는 들풀이 가득 자라나 있고 실내에는 도처에 먼지와 거미줄이었다. 가족들이 짐을 담은 바구니를 들여놓는 동안 아바오 아빠는 벽돌을 하나 주워 대문 옆에 못을 박고는 딱딱한 종이에 쓴 인죄서認罪書를 내걸었다. 인죄서에는 모자를 벗고 찍은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_1권 본문 중에서

『번화』에선 문화대혁명이 각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기존의 삶을 운영하던 논리를 뿌리째 뒤흔드는지, 상하이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가는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자유로운 형식과 서술 기법을 통해 복원한 ‘상하이’

형식 면에서 보면 소설은 두 가지 선이 병행되는 구조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소설은 총 31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홀수 장은 과거에 해당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짝수 장은 소설의 현재 시점 1990년대를 서술한다. 이중 28장부터 31장까지는 1990년대를 쭉 이어 그려낸다. 이 같은 구조가 ‘과거 상하이’와‘현재 상하이’라는 두 시대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한편 서술 면에서는 말글이 이어지는 구조를 띤다. 대화를 나타내는 문장부호가 따로 없이 인물의 말이 열거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옛 중국문학의 서술 기법을 따른 것이다.

화본話本 형식이라는 옛날의 발자취를 현재의 바퀴에 집어넣었는데도 여전히 잘 돌아갔다. 참신하고 이채로웠다.
‘심리적 차원의 미묘함’을 포기하고 구어적인 진술과 평담한 의미를 살려 주인공들의 말과 행위를 있는 그대로 적고자 했다. 한 가지 일이 또다른 일을 물고 온다. 장산張三의 이야기가 끝나면 리쓰李四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기 다른 어감과 행위, 복장이 각기 다른 환경을 구분하면서 각기 다른 삶을 전개한다. 문장부호들은 아주 간단하다. ‘작가의 말’에서

화본이란 송ㆍ원나라 때 유행한 구어체 소설을 칭하는 것으로, 통속적인 언어로 당시의 생활상이나 역사적인 고사를 표현해내는 형식을 띤다. 작가는 주인공의 말과 행위를 그대로 묘사하는 서사 기법을 통해 ‘상하이’ 그 자체를 그린다. 작가가 소설의 서두에서“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라고 예고한 바다. 상하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형식ㆍ서술 기법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갈마들게 하고, 인물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이 2015년 제9회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하며 “『번화』의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 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도시 상하이 그 자체다”라는 평을 받은 것과 상통하는 맥락이다.

구매가격 : 12,600 원

염소의 축제 1(세계문학전집 051)

도서정보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역작!

『백년의 고독』을 뛰어넘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위대한 상징이 된 작품. _타임스

『염소의 축제』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그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32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구성한 이 작품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을 하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빌려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을 새롭게 조명했다.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이 바르가스 요사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염소의 축제』와 연결시켜 언급할 만큼, 『염소의 축제』는 바르가스 요사의 특징적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창조적 가치를 구현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작품

1980년대 초부터 거의 30년 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드디어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1963년 페루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은 이래, 『녹색의 집』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고, ‘문학적 유머’의 가능성을 탐구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새엄마 찬양』 등을 발표하며 폭넓은 주제와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 높은 예술성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고, 유머와 에로티시즘까지 아우르는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계는 흔히 ‘마술적 사실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기의 사회 고발적 작품 경향에서 다양한 주제로 눈을 돌렸던 바르가스 요사는 2000년 『염소의 축제』를 발표하며 다시 진지한 주제로 돌아온다. 페루의 독재자 마누엘 오드리아 시절의 사회적, 성적, 정치적 타락을 다룬 1969년 작품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 이은 두번째 독재자 소설인 『염소의 축제』에서 작가는 독재 권력의 폭력성이 희생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독재자 소설은 빈곤과 독재정치로 얼룩진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 장르이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후안 마누엘 로사스의 이야기를 다룬 호세 마르몰의 『아말리아』(1844)를 시작으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194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겨울』 등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수많은 독재자 소설이 출간되어왔다. 『염소의 축제』는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독재자 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역사소설이 흔히 따르는 리얼리즘에 충실하기보다는 내러티브의 혁신을 통해 더욱 풍부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플래시백, 대화, 여러 화자의 등장, 목소리의 중첩 등을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였던 라파엘 트루히요라는 인물을 조명하며, 독재자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재구성한다. 특히 여러 명의 입을 통해 독재자와 관련된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실(史實)을 다룬 소설 작품이 늘 그렇듯, 『염소의 축제』 역시 출간 당시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근거 없는 거짓말로 자신들을 모략하고 있다고 주장한 트루히요주의자들에 대해 바르가스 요사는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의 정교함과 세세한 장치, 불쾌함을 제거하는 훌륭한 언어 구사 등에 감탄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바르가스 요사만의 재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거장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930년부터 이어진 트루히요의 기나긴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다. 『염소의 축제』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후진국을 혼란과 무지와 야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했고,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 ‘수령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무소불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수많은 탄압을 자행했고,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자 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소설의 배경인 1960년은 트루히요 집권기 동안 미국의 지배질서와 반공주의 노선을 지지하며 최우방임을 자처해온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국으로부터 ‘폭력 체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고, 또한 미주기구(OAS)의 제재 조치로 경제적 압박을 받던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트루히요 체제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온 가톨릭교회가 이른바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정권을 위협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혼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한 독재자 트루히요의 마지막 나날을 기술하면서, 통치자로서 그가 벌인 많은 사건을 일별하며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는 독재자의 고뇌를 짜임새 있게 연결시킨다.
작품 안에서 고속도로에서 독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7명의 암살자들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트루히요 정권에 의해 삶 전체가 파멸당한 사람들로, 이들이 독재의 참혹한 폭력을 겪은 후 보냈던 고통의 나날과 암살자가 되기까지의 번민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제목 ‘염소의 축제’의 이중적 의미

제목에 등장하는 ‘염소(el Chivo)’는 도미니카 국민들이 트루히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이다. 염소는 번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한다. 트루히요는 과도한 성욕과 남성적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자신의 정력과 국가의 건강을 동일시한다. 그는 각료의 아내와 딸을 비롯하여 많은 여자들을 성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확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가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벌이는 방탕한 희생제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일단의 암살자들에게 독재자 ‘염소’의 죽음은 곧 축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독재자가 벌이는 ‘염소의 축제’는 실패로 끝나고, 독재자의 피를 요구하는 ‘염소의 축제’만이 성공을 거둔다.


독재자의 마지막 삶을 재구성하는 세 가지 이야기

소설은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며 전개된다. 관점과 시간, 공간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첫번째는 우라니아 카브랄의 이야기다. 열네 살의 소녀였던 우라니아는 트루히요가 암살되기 며칠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가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은 30년간 트루히요 체제에 봉사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총애를 잃어버린 각료였다. 우라니아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해후하지만, 그녀의 깊은 상처와 아버지를 향한 35년간의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라니아의 갑작스러운 도피와 그 후 집안의 몰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고모와 사촌들은 그녀를 추궁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마침내 우라니아는 입을 열고, 35년간 간직해온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트루히요의 이야기다. 독재자는 꿰뚫어보는 시선과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며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을 마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력을 과시하고, 빳빳이 다린 제복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갖춰 입는 그는 뛰어난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민들의 위대한 수령이자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로 군림하면서도, 소변이 새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전립선 문제로 고생하는 일흔 살의 노인네이다. 독자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폭군을 따라 그의 욕망과 분노,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마지막 날을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고 지켜보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는 1961년 5월 30일, 독재자가 살해되던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7명의 암살자들이 트루히요의 차를 기다리며 고속도로에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음모에 가담했지만, 추구하는 바는 단 하나이다. 자유의지를 빼앗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짓밟으며,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독재자를 응징하는 것.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실종과 살인 소식에 분노하는 그들은 모든 개인의 비극과 수치심과 패배의식의 근원은 바로 트루히요라고 결론 내린다. 암살자들의 회상을 통해 고문과 실종, 납치와 살해 등 폭력으로 얼룩진 도미니카의 독재 시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

이 책은 독재를 비판하는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우라니아이다. 우라니아는 추잡한 정치적 거래의 희생자이자,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의 제물이었다. 남성 권력이 극대화된 가부장제에 굳건하게 바탕을 둔 독재 정권은 여성을 남성의(큰 틀에서는 국가의) 소유로 여기고, 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며 권력을 영속시켜나간다.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집권기에 성적 결정권을 빼앗기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탄압받은 모든 여자들을 상징함과 동시에 독재자에게 치욕당하고 타락해야만 했던 도미니카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에서 독재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축제의 희생제물이었던 우라니아는 35년간 혼자 억누르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고 난 후 오히려 허탈감을 느낀다. 이는 전통적인 남녀의 성역할이 전도되었음을 의미하며,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매가격 : 8,400 원

염소의 축제 2(세계문학전집 052)

도서정보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역작!

『백년의 고독』을 뛰어넘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위대한 상징이 된 작품. _타임스

『염소의 축제』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그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32년간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구성한 이 작품에서 바르가스 요사는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을 하면서도,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빌려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을 새롭게 조명했다.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이 바르가스 요사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염소의 축제』와 연결시켜 언급할 만큼, 『염소의 축제』는 바르가스 요사의 특징적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로,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창조적 가치를 구현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
_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작품

1980년대 초부터 거의 30년 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드디어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1963년 페루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은 이래, 『녹색의 집』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고, ‘문학적 유머’의 가능성을 탐구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새엄마 찬양』 등을 발표하며 폭넓은 주제와 다양하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 높은 예술성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고, 유머와 에로티시즘까지 아우르는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세계는 흔히 ‘마술적 사실주의’로 특징지어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기의 사회 고발적 작품 경향에서 다양한 주제로 눈을 돌렸던 바르가스 요사는 2000년 『염소의 축제』를 발표하며 다시 진지한 주제로 돌아온다. 페루의 독재자 마누엘 오드리아 시절의 사회적, 성적, 정치적 타락을 다룬 1969년 작품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 이은 두번째 독재자 소설인 『염소의 축제』에서 작가는 독재 권력의 폭력성이 희생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독재자 소설은 빈곤과 독재정치로 얼룩진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 장르이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후안 마누엘 로사스의 이야기를 다룬 호세 마르몰의 『아말리아』(1844)를 시작으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194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겨울』 등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수많은 독재자 소설이 출간되어왔다. 『염소의 축제』는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독재자 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역사소설이 흔히 따르는 리얼리즘에 충실하기보다는 내러티브의 혁신을 통해 더욱 풍부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플래시백, 대화, 여러 화자의 등장, 목소리의 중첩 등을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였던 라파엘 트루히요라는 인물을 조명하며, 독재자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재구성한다. 특히 여러 명의 입을 통해 독재자와 관련된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구체적인 사실(史實)을 다룬 소설 작품이 늘 그렇듯, 『염소의 축제』 역시 출간 당시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근거 없는 거짓말로 자신들을 모략하고 있다고 주장한 트루히요주의자들에 대해 바르가스 요사는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의 정교함과 세세한 장치, 불쾌함을 제거하는 훌륭한 언어 구사 등에 감탄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바르가스 요사만의 재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거장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

1961년 5월 30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고속도로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930년부터 이어진 트루히요의 기나긴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다. 『염소의 축제』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후진국을 혼란과 무지와 야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32년간 통치했고,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 ‘수령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무소불위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며 수많은 탄압을 자행했고,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고자 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소설의 배경인 1960년은 트루히요 집권기 동안 미국의 지배질서와 반공주의 노선을 지지하며 최우방임을 자처해온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국으로부터 ‘폭력 체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고, 또한 미주기구(OAS)의 제재 조치로 경제적 압박을 받던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트루히요 체제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온 가톨릭교회가 이른바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정권을 위협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혼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한 독재자 트루히요의 마지막 나날을 기술하면서, 통치자로서 그가 벌인 많은 사건을 일별하며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는 독재자의 고뇌를 짜임새 있게 연결시킨다.
작품 안에서 고속도로에서 독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7명의 암살자들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 사연은 다르지만 트루히요 정권에 의해 삶 전체가 파멸당한 사람들로, 이들이 독재의 참혹한 폭력을 겪은 후 보냈던 고통의 나날과 암살자가 되기까지의 번민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제목 ‘염소의 축제’의 이중적 의미

제목에 등장하는 ‘염소(el Chivo)’는 도미니카 국민들이 트루히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던 별명이다. 염소는 번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악마주의의 육욕적 관점을 내포한다. 트루히요는 과도한 성욕과 남성적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자신의 정력과 국가의 건강을 동일시한다. 그는 각료의 아내와 딸을 비롯하여 많은 여자들을 성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이 공고함을 확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가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벌이는 방탕한 희생제의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일단의 암살자들에게 독재자 ‘염소’의 죽음은 곧 축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독재자가 벌이는 ‘염소의 축제’는 실패로 끝나고, 독재자의 피를 요구하는 ‘염소의 축제’만이 성공을 거둔다.


독재자의 마지막 삶을 재구성하는 세 가지 이야기

소설은 세 개의 이야기가 서로 중첩되며 전개된다. 관점과 시간, 공간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첫번째는 우라니아 카브랄의 이야기다. 열네 살의 소녀였던 우라니아는 트루히요가 암살되기 며칠 전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가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은 30년간 트루히요 체제에 봉사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총애를 잃어버린 각료였다. 우라니아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해후하지만, 그녀의 깊은 상처와 아버지를 향한 35년간의 증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라니아의 갑작스러운 도피와 그 후 집안의 몰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고모와 사촌들은 그녀를 추궁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마침내 우라니아는 입을 열고, 35년간 간직해온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트루히요의 이야기다. 독재자는 꿰뚫어보는 시선과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고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며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을 마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정력을 과시하고, 빳빳이 다린 제복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갖춰 입는 그는 뛰어난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국민들의 위대한 수령이자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로 군림하면서도, 소변이 새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전립선 문제로 고생하는 일흔 살의 노인네이다. 독자는 교활하고 비도덕적인 폭군을 따라 그의 욕망과 분노,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마지막 날을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고 지켜보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는 1961년 5월 30일, 독재자가 살해되던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그곳에는 7명의 암살자들이 트루히요의 차를 기다리며 고속도로에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음모에 가담했지만, 추구하는 바는 단 하나이다. 자유의지를 빼앗고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짓밟으며, 개인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독재자를 응징하는 것.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실종과 살인 소식에 분노하는 그들은 모든 개인의 비극과 수치심과 패배의식의 근원은 바로 트루히요라고 결론 내린다. 암살자들의 회상을 통해 고문과 실종, 납치와 살해 등 폭력으로 얼룩진 도미니카의 독재 시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

이 책은 독재를 비판하는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데, 이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 바로 우라니아이다. 우라니아는 추잡한 정치적 거래의 희생자이자,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의 제물이었다. 남성 권력이 극대화된 가부장제에 굳건하게 바탕을 둔 독재 정권은 여성을 남성의(큰 틀에서는 국가의) 소유로 여기고, 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며 권력을 영속시켜나간다. 우라니아는 트루히요 집권기에 성적 결정권을 빼앗기고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탄압받은 모든 여자들을 상징함과 동시에 독재자에게 치욕당하고 타락해야만 했던 도미니카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국가의 아버지와 가정의 아버지가 공모한 ‘축제’에서 독재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지만, 축제의 희생제물이었던 우라니아는 35년간 혼자 억누르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고 난 후 오히려 허탈감을 느낀다. 이는 전통적인 남녀의 성역할이 전도되었음을 의미하며,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매가격 : 9,000 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도서정보 : 은희경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사랑보다 먼저 배신하고,
사람보다 먼저 떠나가라

은희경식 낭만 없는 연애소설의 시작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개정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삶의 이면을 통찰력 있게 포착해내며 오랜 시간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은희경의 두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낭만과 감상을 걷어내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빛나는 통찰로 완성해낸 이 소설은 은희경식 ‘낭만 없는’ 연애소설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1998년에 출간된 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작가는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물과 관습 중에는 이미 사라진 것들도 많다. 이 소설이 처음 실렸던 신문의 연재소설 지면도 이제 없다”(345쪽)고 말한다. 많은 것이 변했음에도 이 소설이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그에 반해 어떤 변화는 너무나 느리다”(같은 쪽)고.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과 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계속 읽혀온 게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 ‘진희’는 지고지순하고 고상한 순정으로서의 사랑을 뒤엎는 ‘순정의 역학’을 노래하며 오랜 시간 끝나지 않는 사랑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삶이라는 긴 노래가 끊어질 때까지
가벼운 걸음을 옮겨가며 추는 사랑의 춤

은희경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진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진희는 바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새의 선물』 속 진희가 성장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삼십대의 진희는 여전히 삶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진희는 어른스럽고 냉철한 태도로 또래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른스럽게 관망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진희도, 진희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진희는 더이상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이 올 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에 대비하는 모습은 애처로운 마음마저 들게 한다. 냉철하고 다소 비관적이었던 어린 진희의 곁에서 그를 보듬어주었던 할머니와 이모도 이제는 없다. 곁에 있는 것은 언제든 떠나버릴 것만 같은 애인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학교 동료들, 그리고 어딘가 조금씩 이기적인 친구들뿐이다. 진희는 이중 어느 곳에도 마음을 깊이 두지 않는다. 그게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진희는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147쪽)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애인을 동시에 사귄다.
진희는 애인이 셋은 되어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환상에서 벗”(7쪽)어날 수 있으며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8쪽)고 말한다. “만날 남자가 둘 더 있기 때문에”(같은 쪽) 다른 한 남자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희는 자신의 주장대로 세 명의 남성과 만난다. 첫번째 남자는 현석이다. 현석은 진희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창생으로, 진희의 동생인 애리가 짝사랑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현석은 미소년의 용모를 가졌지만 자신의 아름답고 나약한 모습을 싫어해 언제나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은 소심하고 자기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진희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와 만나는 걸 아는 그는 관계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진희를 독점할 수 없기에 끝없이 불안함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진희의 두번째 남자는 종태이다. 종태는 진희와 연애를 하던 중 다른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후에도 진희와의 만남을 지속해나간다. 조용하고 소심한 현석과는 반대로 종태는 제멋대로 갑자기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버리는 저돌적이고 변덕스러운 남자다. 하지만 진희는 종태의 이런 가벼움 때문에 오히려 종태와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희의 마지막 남자는 전남편인 상현이다. 상현과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 끝났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진희는 약속 장소에서 상현을 기다린다. 진희가 이미 끝을 낸 상현과의 만남까지도 받아들이려는 듯한 이런 모습은 진희가 사랑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랑은 금방 오고, 또 금방 떠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아닌, 사랑을 계속 하는 것 그 자체이다. 춤의 상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춤이 계속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 진희의 관심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진희는 전남편인 상현과도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춤 역시 계속되어야만 하므로.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춤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춤도 없다. 단지 춤뿐이다.”

애인은 셋 정도 되어야 하고, 누구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랑에도 얽매이지 않고 또다른 사랑으로 나아간다. 진희의 이런 사랑 방식은 사랑의 낭만성과 독점성, 그 안에 깃든 사회적 규범을 모두 거침없이 부수고 있기에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진희는 오히려 자신에게 가해지는 오해들에 “타당한 오해”(237쪽)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쁜 소문에 시달리고 익명의 비난 전화들을 받으면서도 진희가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날카롭게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가볍게 살고 싶”(267쪽)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정착을 꿈꾸지 않기 때문에 진희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다.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 것이나 교수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큰 목표이자 도착점이라고 생각될 법한 일들 역시 진희는 가벼운 걸음으로 유유히 지나쳐버린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으며 “삶은 흘러가는 것”(295쪽)이기 때문이다. 진희에게 이 모든 사건들은 춤을 이어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춤을 멈출 만큼 크게 상처받지도 않는다. 누군가 진희에게 묻는다. “괜찮아요?”(296쪽) 진희는 대답한다. “아직은요.”(같은 쪽) 그렇기에 진희는 계속 춤을 출 수 있다. 삶이라는 긴 노래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구매가격 : 11,800 원

타인에게 말 걸기

도서정보 : 은희경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7년 만에 새롭게 펼쳐보는 은희경 소설세계의 시작점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나의 질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등단 이후 단 한순간도 과거의 이름으로 물러난 적 없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의 오늘을 그려온 소설가 은희경의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를 27년 만에 새롭게 펴낸다. 지난해 100쇄를 돌파한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비롯해 은희경의 초기작이 오랜 시간 끊임없이 읽힐 수 있는 것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더불어 작품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이 소설들을 거쳐서 나의 다음 소설이 쓰”였으며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우리가 타인이라는 존재에게 말을 거는 데 서툴거나 폭력적이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개정판 작가의 말’에서)고 말했듯 등단작 「이중주」를 포함해 총 9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가히 은희경 소설세계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이번 개정판을 준비하며 작가는 그간 바뀐 시대상과 사회의식을 예민하게 반영해 작품을 전체적으로 손보고, 그 아래 있는 여전히 생생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 보이는 데 집중했다. 소통이 요원해 보이는 현대사회 속 사랑과 낭만이라는 꿈에서 깨어난 여성들의 자리를 돌아보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타인에게 말 걸기』는 쓰인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선득하도록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던진다. 그간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지금 우리는 타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있는지. 가장 뜨거운 냉소와 가장 서늘한 농담으로 무장한 그 질문은 책을 읽는 우리 역시 스스로의 자리를 돌아보게끔 만들 것이다.


“남에게 말을 걸 때 우리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녀는 좀 이상하다.
남을 부를 때 모든 사람들이 하듯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번 개정판에서 또하나 주요하게 달라진 점은 작품 순서로,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지닌 「타인에게 말 걸기」와 「빈처」 등을 비롯해 지금의 독자들에게 좀더 긴요하게 느껴질 만한 작품을 앞에 배치하는 등 모든 작품을 새로운 순서로 배치했다.
표제작 「타인에게 말 걸기」는 “등을 보인 자에게 아예 말 걸기를 포기하는” 화자 ‘나’와 타인을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하듯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제멋대로 제가 지어낸 별명이라든지 저만 아는 호칭”(9쪽)을 사용하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의 소통 방식은 극적으로 다르지만, 그것이 그들을 고독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타인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녀’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냉소와 침묵만을 내놓는 ‘나’, 그들의 단절과 소통의 불능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소통의 불능은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빈처」의 화자 ‘나’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보았다가 스스로를 직장에 다니고 있고 애인이 있는 미혼 여성으로 표현한 일기들을 발견한다. ‘나’는 자신이 아는 아내와 딴판인 일기 속 아내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이내 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토대로 아내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 밖에도 소설집에는 “결혼은 아무나하고 하는 거”(86쪽)라 말하던 언니의 옛 편지를 전달받고 처음으로 언니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인 「연미와 유미」, 옛 사랑의 추억이 어린 절에서 머무는 동안 사랑이란 미혹에 불과하며 영원한 합일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치게 되는 ‘그녀’의 이야기인 「그녀의 세번째 남자」, 그리고 한 커플의 뻔할 만큼 보편적인 연애담을 통해 사랑이 어떻게 ‘특별하고도 위대하게’ 포장되어 사람을 현혹게 하는지를 희극적으로 묘파하는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집의 마지막에는 등단작 「이중주」가 놓여 있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병문안을 간 ‘인혜’는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는 엄마 ‘정순’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혜는 어떤 부당함이든 인내하며 기나긴 결혼생활을 지탱해온 정순을 쉬이 이해하지 못하고, 정순 역시 결혼도 이혼도 쉽게 결정하는 듯한 딸 인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둘은 서로의 곁에 머무는 동안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남편/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모녀의 연대를 그려내는 이 작품은 희망적인 온기를 남기며 소설집의 문을 닫는다.
은희경은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에는 세상은 이러저러하다고 반듯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반듯함이 세상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소설을 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소설의 위악은 삶의 그 허상을 걷기 위한 방법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뿌리깊은 가부장제가 자리하고 있던 1990년대, 그는 『타인에게 말 걸기』를 통해 현실을 과감하게 비틀고 이를 향해 경쾌한 냉소를 던짐으로써 사회의 위선과 허상을 폭로하고 나아가 여성들에게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넸다. 2023년에 이르러 새롭게 펼쳐보는 『타인에게 말 걸기』는 우리 사회가 그간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또는 얼마큼 바뀌지 않았는지 가늠해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길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소설가 백수린)이라는 말로 모든 설명이 가능해진 은희경의 소설세계, 그 눈부신 시작점이 우리 앞에 다시 한번 도착했다.

구매가격 : 12,500 원

실종자(세계문학전집 236)

도서정보 : 프란츠 카프카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관계에서 거듭 밀려나 점점 사라져가는 자의 실존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담긴 첫 장편소설


“이 책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영원히 소속감이라는 바위를 헛되이 굴리는 현대의 시시포스다.” _알베르 카뮈

『소송』 『성』과 더불어 ‘고독’ 삼부작으로 불리는 『실종자』는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로, 미완성작으로 남았으나 카프카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브로트가 1927년부터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펴냈으나, 1983년 독일에서 발간된 비평판 이후 카프카가 일기에 쓴 원제대로 ‘실종자’로 바뀌었다. 잘못을 저질러 고향에서 쫓겨나 뉴욕에 오게 된 한 청년이 고도의 기술문명과 자본주의 체제인 미국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상실, 고독의 문제를 첨예하게 짚어낸다. 이 소설의 첫 장 「화부」는 카프카 생전 1913년 단행본으로 발표되어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폰타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담긴 첫 장편소설

『소송』 『성』과 더불어 ‘고독’ 삼부작으로 불리는 『실종자』는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로, 다른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미완성작으로 남았으나 카프카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의 친구이자 유고를 편집해 소개한 막스 브로트가 1927년부터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펴냈으나, 1983년 독일에서 카프카 육필 원고에 기초해 발간된 비평판 이후 카프카가 일기에 쓴 원제대로 ‘실종자’로 바뀌었다. 이 소설의 첫 장 「화부」는 카프카 생전 1913년 단행본으로 발표되어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15년 폰타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카프카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1911년 말에 쓴 초고 200매가량을 폐기하고 싶다고 밝힌 후 본격적으로 이 소설 집필에 매달린 건 1912년 가을부터 1914년 가을까지다. 그사이 첫 단편 「선고」와 대표작 중 하나인 「변신」을 썼으며, 끝 무렵에는 『소송』 집필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카프카는 이 책의 1장 「화부」와 「선고」 「변신」을 함께 엮어 ‘아들들Die Söhne’이라는 제목으로 펴내자는 제안을 출판인 쿠르트 볼프에게 하기도 했다. 세 편 모두를 관통하는 카프카 문학의 핵심 테마(아버지 권력과 길항하는 아들의 서사이자 관계로부터의 고립)를 첫 장편 『실종자』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바, 그가 몇 번이나 좌절과 중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구현해내고자 한 문학세계의 맹아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청년은 아메리카 여정 내내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존재가 실패”(크라카우어)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는 만큼 “희망은 금지되는 게 아니라 금지되지 않기에, 희망에 가장 처절하게 고통을 가하는 작품”(모리스 블랑쇼)이라 할 수 있다.

아메리카 사회에서 표류하는 ‘현대의 시시포스’
점점 관계로부터 밀쳐져 사라져가는 자의 실존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카프카의 작품들 중에서도 아주 정교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목이 붙은 6장, 제목이 없는 2장, 그리고 미완성 장들(3장)로 구성된 이 소설의 첫 장면부터 주목을 요한다. 즉 뉴욕으로 입항하는 배에서 점점 짐꾼들에 의해 ‘난간까지 밀쳐진’ 그의 시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우뚝 솟아난 팔로 횃불이 아닌 ‘칼을 든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와 정의, 희망과 꿈의 신세계로 진입하고 정착하기 위한 도정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곳에서 과연 카를은 새 출발을 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카프카적인 시작’을 알리는 이 첫 장면에서 보다시피, 17세의 카를 로스만은 고향 프라하에서 하녀를 임신시킨 문제로 부모가 그를 미국으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막 뉴욕항에 입성하면서 앞으로의 어두운 아메리카 여정을 노정한다. 거기서 그는 기계화된 문명과 테일러주의로 돌아가는 미국 사회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상류사회에서부터 자본주의 밑바닥에 있는 계급까지 두루 만나고 겪는다. 배에서 처음 만난 해고 위기라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 화부를 돕는 정의감 넘치는 청년에서, 원칙과 효율을 추구하며 미국 사회에서 정재계 고위직 인사로 성공한 외삼촌이 이끄는 기업사회의 경영후계자 자리, 삼촌의 눈 밖에 난 한 번의 실수로 얼토당토않게 내처져 어느 호텔에서 겨우 운좋게 얻어낸 엘리베이터 보이로서의 최말단직, 부랑하는 실업자이자 이민자 무리(로빈슨과 들라마르슈)와 함께 성매매로 자본을 축적한 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을 거쳐, “누구든 환영한다”는 오클라하마 야외극장의 기능직 채용시험에 ‘니그로’라는 이름으로 응하여 알 수 없는 기차에 오르며 끝내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자’로까지, 그의 존재는 여러 변곡점을 거칠수록 차츰 희박해진다. 선실, 별장, 호텔, 극장 채용시험장(경마장)이라는 주요한 서사 공간에서 이뤄지는, 카프카의 특징인 법정 재판을 방불케 하는 ‘심문’ 장면들은 아메리카 사회로의 진입과 정착, 관계와 소속에 대한 카를의 욕망이 철저히, 첩첩으로 적나라한 실패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서사적 긴장과 멜랑콜리를 더한다. 횡단면상으로는 유럽의 고향에서 미국 내 이방 세계로의 추방을, 종단면상으로는 다양한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만나며 번번이 희망 없는 추락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행 배, 외삼촌의 집과 사무실, 그린 씨의 별장 속 미로 같은 공간, 옥시덴털호텔의 주방과 엘리베이터, 브루넬다의 방으로 점점 옥죄듯 폐쇄되어가는 닫힌 구조에서 갑자기 마지막에는 극장의 채용시험장인 경마장에서 오클라하마행 기차로 넘어가 아득히 열린 공간 구조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은 곧 현대인의 불가해한 삶의 터전에 대한 확장된 우화로도 읽힌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마지막 부분을 유토피아적 여정으로 끝맺음하려 했다고 오독했으나, 1915년 9월 30일자 카프카의 일기는 정반대로 구상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로스만과 K,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 결국 둘 다 똑같이 처벌되어 죽임을 당한다. 죄 없는 자는 보다 손쉽게, 때려눕혀지기보다는 옆으로 밀쳐지는 식으로.”
카프카는 미국 땅에 한 번도 발을 붙인 적이 없으나 이 소설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아메리카를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의 여행 책자나 보고서, 사진이나 종종 접했던 영화 등 2차 문헌을 참고하며 대도시의 마천루, 파업과 교통 혼잡, 선거 캠페인 및 사무실 노동 현장, 기계화된 통신 및 운송시설 등을 당대의 유럽인의 시각에서 비교해보고 연구해나가면서 자기만의 형상화에 골몰했다. 발전과 성장에 목매던 현대의 최첨단, 아메리칸드림과 신세계에 대한 그 허상을 깨부수고 있는 『실종자』는, 그로테스크하고도 몽환적인 색채가 가미된 서술로 부조리한 현실과 권력구조의 폭력성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카프카는 이 작품으로 “영원히 소속감이라는 바위를 헛되이 굴리는 현대의 시시포스”(카뮈)를 창조해냈다.

해석의 여러 단서를 제공하는 해제와 원전에 충실한 번역

2024년 6월 3일은 카프카 타계 100주기다. 카프카는 서구 문명의 몰락이자 인간 정신의 붕괴를 목도하게 한 제일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미국 사회를 모델로 이 작품을 썼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뒤섞인 현대의 최첨단 도시에서 그 전모는 알 수 없이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위로부터 아래로”(카프카) 겹겹이 위계화된 권력과 자본시장에 종속되어 기계 부품처럼 소외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실존에 대한 카프카식의 문제 제기는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 이민자이자 표류자로서 한 젊은이가 어떻게 관계로부터 얼토당토않게 거듭 밀쳐져 점점 소속의 고리를 잃고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로 전락해갈 수밖에 없는지, 불가해하고도 부당한 폭력과 계속 마주하면서 어째서 말미에 희망 없는 사지로, 끝이 나지 않을 무의 세계로 사라져가고 마는지, 그 종적을 아주 정치하게 묘파해낸다.
이 책을 옮긴 이재황 번역가는 새로 정립된 비평판을 기준으로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의 원형을 비추어 짐작해볼 수 있도록 충실히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옮긴이 해설에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브로트 판과 달리 카프카가 오클라호마를 ‘오클라하마’로 일부러 표기한 것에서도, 주인공 카를 로스만의 이름이 갖는 상징성(‘말’을 뜻하는 ‘로스Roß’와 ‘남자, 사람’을 뜻하는 ‘만Mann’의 결합이 보여주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와의 비교)에서도 이 작품을 새롭게 들여다보도록 한다. 옮긴이는 카프카 문학의 핵심을 ‘부정성의 미학’으로 짚어내면서 이 작품을 두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서구 문명의 진보적 역사관과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20세기의 패러다임에 대해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갈무리한다.

구매가격 : 13,000 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도서정보 : 다카세 준코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제16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 소설가 장류진 추천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에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나요?
밥이라도 맛있게 먹고 싶은 낡고 지친 직장인 대공감 소설!

실제 직장생활을 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다카세 준코
현대인의 일상과 사회생활의 표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작가

다카세 준코는 실제로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2019년 소설가로 데뷔한 후, 5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단편과 산문 등을 꾸준히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젊은 작가다. 『개의 모양을 한 것』으로 제43회 스바루문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연달아 아쿠타가와상 후보 및 수상자로 호명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국내에는 제167회 아쿠타가와 수상작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로 처음 소개된다.
다카세 준코의 작품에는 직장이나 가정, 친구관계, 일상적 에피소드처럼 주로 보편적인 재료들이 쓰이지만 그 맛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매일 같은 일상이나 자주 겪어봄 직한 사건들 아래에 웅크린 진실 혹은 모순, 그 위를 소리 없이 흐르는 인물의 관계성을 포착해 담백하게 담아내는데, 그 오묘한 한 그릇을 마주한 이는 익숙한 감칠맛 뒤에 날카롭게 톡 쏘는 끝맛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집에서 한 발짝만 내디뎌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왜 짜증이 나는지, 무엇이 왜 싫은 건지 생각해보는 걸 좋아한다는 다카세 준코. 그 감각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현대인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작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에서 만나볼 수 있다.


“끼니를 잘 챙겨야 해” vs. “먹는 일에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아”
매일 먹는 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을 대하는 세 인물의 오묘한 온도차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은 평범한 한 회사의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직장소설이다. 매일 가야 하는 회사와 매일 먹어야 하는 밥, 그리고 나아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 세 인물 사이의 오묘한 관계와 온도차가 깃든 일상적 순간들을 예리하고 서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니타니(남, 입사 7년 차)
그럭저럭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무난하지만 유독 먹는 것에 열의가 없다. 요리는 고사하고 하루 세 번 끼니를 챙기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유일하게 즐기는 건 컵라면과 맥주. “배를 채우기에는 그저 컵라면이면 된다. 다만, 계속 이것만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들 하니 문제인 거다. 하루 세 끼 컵라면만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식이 조건이 갖춰지면 좋을 텐데. 하루 한 알로 필요한 모든 영양과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알약이 생기는 것도 좋겠다.”

아시카와(여, 입사 6년 차)
상냥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다만 업무에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성향을 보인다. 퇴근 후 집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를 가져와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일과다. “잘 챙기면서 사는 걸 좋아하는 거 같긴 해요. 먹고 자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시오(여, 입사 5년 차)
독립심과 책임감이 강하고 회사생활에 나름의 야심이 있다. 일을 못하는 사수 아시카와를 사방에서 챙겨주는 사무실 분위기가 불만이다. 가끔 니타니와 단둘이 저녁을 먹는다. “신년회에서 먹은 전골은 맛없더라고요. 전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냥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먹는 음식은 대체로 맛없게 느껴져요. 오리고기 좋아하는데도 이상하게 너무 싫어서. 다시 먹고 싶었어요.”

세 인물의 식성 차이는 곧 삶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연결된다. 음식을 오로지 연명의 수단으로 여기는 니타니는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일종의 편의나 목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두에게 상냥하며 먹는 일에 공을 들이는 아시카와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회피적 성향을 감추려 한다. 오시오의 식성은 이 두 인물의 중간에 위치하는 듯한데, 사회적 가면과 진짜 본심을 사용하는 데 조금 서툴지만 자신의 마음과 욕망에 집중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인물들이 회사라는 곳에서 그럭저럭 공존하는 듯 보이던 어느 날, 결국 기묘하게 섞여들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저랑 같이 그 선배한테 못된 짓 하지 않을래요?”
히어로와 빌런이 한데 부대끼는 회사라는 무대 위 복잡미묘한 관계들

꼰대, 내로남불, 무책임, 무능력한 사람을 회사에서 빌런이라 부른다면, 그 반대는 히어로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일터에 나가 빌런과 히어로 사이의 스펙트럼 위에서 실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밥은 다 같이 먹어야 제 맛이지”라며 팀원들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점심 참여를 강요하는 팀장, 일은 잘하지만 툭하면 남의 뒷담화를 하는 동료, 무능력하고 자꾸 일을 떠넘기는 상사, 일도 인간관계도 그럭저럭 무난한 사람들……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게 짜증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부러운 걸까요? 부러운 거랑은 좀 다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되고 싶진 않거든요. 짜증은 나는데, 싫은 거랑은 좀 다르고.”
“좀전에 아시카와 씨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직장 동료가 아니었다면 안 싫어했을걸요? 아시카와 선배, 그냥 보면 좋은 사람이잖아요. 제가 그런 타입이랑 개인적으로 친해진 적은 없으니, 직장에서 안 만났으면 어울릴 일도 없었겠지만요.”
“그럼, 직장 동료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다는 소리잖아.”
“그렇네요. 싫어하게 될 운명인 걸까요?” (본문 18p)

작중 아시카와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자주 조퇴를 하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해 동료들에게 부담을 안기지만, 그럴 때마다 밤새 손수 만들었다는 디저트를 가져와 이를 만회하고자 한다. 쿠키, 레몬마들렌, 트러플초콜릿, 사과머핀, 요거트치즈케이크, 라즈베리젤리, 도넛…… 갈수록 잦은 조퇴와 다양해지는 디저트들. 오시오는 몸이 아프다고 조퇴한 사람이 어떻게 밤새 디저트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유독 아시카와에게 너그러운 사무실 분위기를 납득하기 어렵다. 니타니는 호의라는 이유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며 매번 감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오시오가 니타니에게 제안한다. “저랑 같이 아시카와 선배한테 못된 짓 하지 않을래요?” 피로가 몰려오는 사무실 오후 세시의 수제 디저트 시간, 이 두 사람의 은밀한 동조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구매가격 : 11,000 원

매직 워드

도서정보 : 조나 버거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힘있는 단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법 같은 한 끗!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설득자가 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놀라운 책.”
_다니엘 핑크(미래학자, 비즈니스사상가)

언어는 마법이다. 『매직 워드』는 일과 삶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마법 같은 여섯 가지 말하기 기술을 마케팅 대가의 관점에서 알려주는 책이다. 전작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에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던 소셜마케팅 전문가 조나 버거의 신작이다.
‘마케팅 전문가’의 ‘전략적 말하기’라니, 자칫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상대를 조종하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삶은 평생에 걸친 마케팅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판다. 판다는 것은 다르게 번역하면 논리적 설득이자 감성적 유혹이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서로 팔고 사지 않나? 일터에서 아이디어를 팔고, 내 관점을 설득시키려 애쓰고, 마음을 얻고 싶은 상대에게도 나의 흥미로운 면을 보여주며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끌어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공감한다면, 그것 역시 언어를 통해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소위 ‘말발’로 원하는 바를 얻지만 상당수는 언어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하루 평균 1만 6천 개 정도의 단어를 사용하며 언어와 뗄 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말하는 ‘내용’을 신경쓰지, 원하는 바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심하다. 하지만 ‘표현’만 바꿔도 상대방이 제안을 승낙할 확률이 50%나 높아지고, 채용 여부뿐 아니라 기업의 주가까지 마법처럼 달라진다면 어떨까?
『매직 워드』에서 조나 버거는 실증적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영향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만 편의 TV 프로그램 대본 및 수천 편의 영화 대본, 25만 곡 이상의 노래가사, 고객 서비스 상담 녹취, 언론 기사 등 엄청난 양의 문자 데이터 분석은 물론이고 수만 개의 학술 논문을 연구하고 수백만 개의 온라인 리뷰를 분석한다. 지난 몇십 년간 이 분야에서 진행된 놀라운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 다니엘 핑크, 애덤 그랜트 등이 큐레이팅하는 북클럽 넥스트빅아이디어에서 필독서로 선정됐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조리 있게 말하려면, 즉 명확한 의도와 배려를 담아서 소통하려면 올바른 단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며 무언가를 행동에 옮기도록 설득하기는 무척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북돋우며 사회적 유대감을 쌓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올바른 단어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뛰어난 글쓰기 실력이나 화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다. 단어는 놀라운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단어가 언제, 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면 누구나 단어를 활용하여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단어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독자든, 단순히 단어의 작동 기제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든, 이 책이 그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_26쪽

평범한 화자를 일상 속 달변가로 만드는 6가지 설득 전략
유창한 화술이나 설득력 있는 글쓰기 실력은 타고난다고 생각하는가? 조나 버거는 이를 누구나 습득 가능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1) 정체성과 능동성을 북돋우는 단어 (2) 자신감을 전달하는 단어 (3)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 효과적인 단어 (4) 구체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단어 (5) 감정을 자극하는 단어 (6) 유사성과 차별성을 활용하는 단어. 여섯 가지 유형의 ‘매직 워드’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면 된다.
매직 워드는 “아브라카다브라” “열려라, 참깨!” 같은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인간 행동과 심리에 기반을 둔 강력한 영향력의 말이다. ‘할 수 없다’ 대신 ‘하지 않는다’라고 상황의 주도권을 나에게 가져오는 말하기, ‘돕는다’ 대신 ‘돕는 사람’처럼 행동을 가리키지 않고 ‘그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변환시켜 화자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기는 누구나 일상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기법이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 청중을 대상으로 한 말하기, 비즈니스 협상 및 프레젠테이션에서 성공하기, 까다로운 상황에서 설득하기, 낯선 사람과 빠르게 친밀감 형성하기 등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야 하는 한 단계 높은 응용 기술까지 아울러 소개한다.
조나 버거의 통찰력이 담긴 『매직 워드』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더욱 적절하게 골라 쓰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매직 워드’를 통해, 우리는 인생을 바꿀 눈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무기 한 가지를 얻는다.

◎ ‘매직 워드’의 힘을 보여준 사례
√ “투표합시다(vote)”라고 권하는 대신 “투표자(voter)가 되자”는 문구로 투표 참여를 유도하자 투표율이 무려 15% 이상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장난감 정리 좀 도와줄래?”보다 “‘남을 도와주는 아이’가 되어서 장난감 정리를 해주겠니?”라고 요청할 때 아이들은 움직였다. 윤리적인 행동이나 옳은 일을 하도록 독려할 때 행동하는 사람에게 능동적 지위를 부여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나는 어떻게 성공했나> <성공한 사람들의 지혜> 등 매달 2천만 명 이상이 청취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끄는 가이 라즈의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드러내기 꺼리는 실패담이나 실수를 성공과 대조시켜 보여줌으로써 팟캐스트 왕국을 세웠다.
√ 한 가수 지망생이 집에서 혼자 음원을 만들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다. 하루에도 수십 만 곡이 올라오는 이 사이트에서 무명 가수인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는 수십억 회나 스트리밍되고 빌보드 차트 19주 연속 1위까지 차지한다. 이 곡은 도대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 <이중 거짓말>이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이 맞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왔다. 그런데 2015년 몇몇 행동과학자가 셰익스피어 연구자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심지어 작품도 읽지 않고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임을 밝혀냈다. 몇 세기에 걸친 이 수수께끼는 어떻게 풀린 걸까?

돈, 커리어, 계약… 원하는 것이 있는가? 말로 장악하라
때로는 구체적으로, 때로는 거시적으로
비즈니스에서 말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중요하다. 줌렌즈를 당겼다 늘였다 조절하듯 언어가 내다보는 시점과 거리를 조정하며 상대를 설득해보자.
클라이언트가 ‘개인적’인 일라고 느낄 만한 업무, 감정을 다루는 응대라면 상대의 입장에 한껏 밀착해 구체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의 불만을 상대하는 고객센터 상담사가 환불 요청을 받았을 때 ‘처리’해드리겠다 대신 ‘돈을 돌려드리겠다’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자 고객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 반대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창업자라면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차량 호출 앱으로 유명한 기업 우버는 실질적으로 정의하면 “승객과 운전사를 연결해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스마트폰 앱”이다. 하지만 우버의 공동 창업자는 우버를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교통 솔루션”이라고 포지셔닝했다.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이런 표현은 멀리 내다보고 가치에 투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우버가 겨냥하는 시장이 훨씬 폭넓어 보이고, 성장 잠재력도 그만큼 큰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돼 많은 투자자가 모여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은 세일즈의 꽃이다. 발표중에 할 말이 생각 안 난다면 일단 침묵하라. 당황해서 “음…” “어…” 같은 말로 시간을 채우기보다 잠시 말을 멈추고 공백을 만들면 오히려 청중은 집중한다. 발표할 때나 콘텐츠를 구성할 때 때때로 감정을 자극하는 단어를 사용하자. 그러면 끝까지 읽게 된다.

◎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매직 워드’
√ “당신이 돈을 절약하는 다섯 가지 팁” vs. “당신이 프린터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다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당신’이란 단어는 일종의 정지 신호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라 훨씬 개인적으로 연관성 높은 내용처럼 다가가 주의를 끈다. 그러나 고객 기술지원 문서에서 “당신이 프린터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다면”이라고 서술하면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과 비교할 때 사용자 잘못이라고 추궁하는 것처럼 보여 역효과를 낸다.

유사성의 법칙과 친밀감 형성하기
빠르게 스며들고 싶은가? 같은 언어 스타일을 장착하라
언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부드럽게 진입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유사성의 법칙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비법도 알려준다.
성격이 다른 조직은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어떤 조직은 짤막하고 간략한 문장을, 어떤 조직은 긴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조직도, 비교적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조직도 있다. 연구 결과, 유사성에 주목하고 조직의 언어에 나를 맞춘 사람이 오래,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했다. 동료와 언어 사용 스타일이 비슷한 직원이 승진할 확률이 세 배나 높았다. 이들은 업무 평가도 좋고 상여금도 많이 받았다. 동료들과 언어 스타일이 다른 직원은 해고될 확률이 네 배나 높았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서 빠르게 적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조직의 구성원이 사용하는 언어부터 파악하자.
단순히 직장생활에서만 유사성이 중요한 건 아니다. 첫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면 두번째 데이트가 성사될 확률이 높아지고, 비슷한 스타일로 글을 쓰는 학생들은 친구가 될 확률이 높으며, 언어 사용 방식이 비슷한 연인은 계속 연인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면 대화가 활기를 띠고 유대감이 더욱 깊어지며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인식도 강해진다.
유대관계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낯선 상대끼리 빠르게 친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36개의 특정한 질문을 순차적으로 주고받는 ‘빨리 친해지기’ 기술을 사용해보자. 안면도 없는 낯선 사람과 딱 한 번 45분간 대화했을 뿐인데도 친구만큼이나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이처럼 언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대화의 방향을 우리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일단 말문을 여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뀐다. “이 책은 당신이 말하는 방식, 듣는 방식, 쓰는 방식. 심지어 당신이 누구인지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라는 다니엘 핑크의 말처럼 여섯 가지 ‘매직 워드’를 제대로 익히면 누구든, 어디서든, 변화를 현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

구매가격 : 14,300 원

야만적인 앨리스씨(개정판)

도서정보 : 황정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너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내가 오로지 너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으니까.”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못할 이름이 된 소년, 앨리시어
『야만적인 앨리스씨』 출간 10주년 개정판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매혹을 불러일으키며 그 자체 좋은 소설의 새로운 기준이 된 황정은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상투성으로부터 멀어지는 힘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히 쌓여 완성되는 그의 작품은 여러 번 읽을수록 풍성해지는 의미의 겹을 즐거이 헤매는 기쁨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직관적으로 귀에 달라붙는 노래처럼 특유의 감각과 리듬으로 우리를 휘감아왔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십 년 전, 이 작품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선보일 당시 황정은은 이제 막 두 권의 소설집과 첫 장편소설을 출간한 젊은 작가였다. 「오뚝이와 지빠귀」(『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2007)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대니 드비토」(『파씨의 입문』, 2012)처럼 작품에 흐르는 아름답고 쓸쓸한 서정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百의 그림자』(2010) 속 인물들이 자아내는 아슬아슬하면서 단단한 온기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듯 촘촘한 폭력에 속절없이 노출된 ‘앨리시어 형제’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2014)와 소설집『아무도 아닌』(2016) 『디디의 우산』(2019) 등을 읽고 난 지금의 우리에게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그후 펼쳐질 황정은 소설세계의 또다른 방향을 선명히 예고하는 작품으로도 다가온다. 그러니까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부서져가고 있다는 또렷한 실감 속에서 그 세계와 어떤 식으로든 긴밀히 연루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작품으로.


“앨리시어가 이야기를 해줄까.
여기 이 모퉁이에서.”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한 채널을 통해 “훌륭한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야만적인 앨리스씨』 역시 그렇게 길게 메아리쳐 울리는 필사적인 질문 하나를 던지고 끝난다”라고 언급하며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고, 2018년 일본 출판사 가와데쇼보신샤에서 출간된 번역본은 “독자의 일상을 흔드는 무서운 소설이다”라는 호평을 얻기도 했다. 일상의 흔들림, 그것은 아마 세계가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감각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內’와 ‘外’, 그리고 ‘再, 外’ 총 3부로 구성된 소설은 “내 이름은 앨리시어,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고모리’에 살던 10대 소년의 앨리시어는 소중하고 결정적인 무언가를 잃은 뒤 여장 부랑자가 되어 사거리에 서 있다. 그는 무엇을 잃었고 왜 잃게 된 걸까. 앨리시어가 나고 자란 고모리는 지명의 유래가 무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환한 낮의 공간보다는 축축하고 어두운 밤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빠져나가기 위해 두 발로 오르고 네 발로 올라보아도 사방이 꽉 막혀 있는 탓에 다시 안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 공간 안에서 앨리시어 형제는 어머니가 가하는 폭력을 고스란히 당하며 살고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속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어하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49쪽)

아버지와 이웃의 방관 속에서 어머니의 ‘씨발됨’, 그러니깐 “때리니까 때리고 싶고 때리고 싶으니까 가속적으로 때”(50쪽)리는 일상적이고 무심한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앨리시어 형제는 아버지의 전처가 낳은 형과 누나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도 하고 상담센터를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무응답에 가까운 반응만이 되돌아오는 그 과정 속에서 앨리시어 형제가 품고 있던 자그마한 희망은 서서히 깎여나간다.
그럴 때 그들에게 한줌 위안이 되는 것이 ‘이야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씨발, 이라고 자꾸 들으면 씨발, 이 된다는 거. (…) 말하면서 자기 말 듣게 되잖아, 씨발 씨발, 하고”(43쪽)라는 앨리시어의 말에 귀기울여본다면, “형. 나 얘기 하나만 해주라”라는 동생의 말에 앨리시어가 ‘네꼬’ ‘여우’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건 동생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씨발’ 이외의 다른 말을 들려주려는 노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거리에 서 있는 여장 부랑자 앨리시어를 본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말았을 때 느끼는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 그리고 슬픔 속에서 앨리시어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이것이 도저히 끝낼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500매 남짓한 이 길지 않은 소설을 읽는 일에 전심을 다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어떤 꿈을 반복해 꾼다. 캄캄한 방에 불을 켜려고 애쓰는 꿈이다. 어두운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르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불을 켜려고 애쓰면서 나는 이게 꿈이고 죽음이고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기보다는 그걸 그냥 안다. 이 방은 이대로 어두울 것이고 나는 여기 남을 것이다. 그렇게 겁에 질려 부질없이 불을 켜려고 애쓰는 꿈을 나는 오래전부터 반복해 꾸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꿈을 말하고 다녔다. 꿈이라고 말하면 덜 두려울 것이고 그래야 거기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앨리스씨 이야기도 그래서 썼다.
너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내가 오로지 너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으니까.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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