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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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도서정보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후,
나는 산꼭대기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딴섬처럼 고독하고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기사단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1Q84』 이후 7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선보인 본격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1권 「현현하는 이데아」, 2권 「전이하는 메타포」) 한국어판이 7월 12일 출간된다. 지난 2월 24일 일본 신초샤에서 출간한 지 138일 만이다. 일본 출간 당시 130만 부 제작 발행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출판계에서도 전례가 없던 초판 부수와 책에서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언술되는 ‘난징학살사건’에 대한 일본 현지의 이슈가 우리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한껏 고조되어 출판사로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는 생각이었다. 대형 도매서점인 송인의 부도로 시작된 올해 도서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6월까지만 해도 한강과 김영하 등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소설판매가 부진한 상황이었다. 섣불리 초기에 힘을 쏟기보다는 출간 이후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판매상승을 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일단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도에 확신이 있으니까 가능한 판단이었다. 그래서 10만 세트(20만 부)를 준비했던 『1Q84』 때와 달리 『기사단장 죽이기』는 5만 세트(10만 부)만 준비하기로 했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이었다.

출간 전 3쇄 돌입, 총 30만 부 제작

그런데 6월 30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예판 2~5일 만에 온라인 4대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순위만이 아니라 서점에서 집계해서 알려주는 실제 판매 속도 역시 『1Q84』보다 빨랐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예판을 시작한 지 4일 만인 7월 4일에 2쇄 5만 세트(10만 부) 증쇄에 들어갔다. 하지만 10만 세트(20만 부)로도 서점들에서 요청하는 초기 배본부수를 맞추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고, 양장본이어서 제작기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여 7월 10일 5만 세트(10만 부) 3쇄 제작에 들어갔다. 총 30만 부 제작이다. 출간도 하기 전에 권당 15만 부를 찍기도 처음이었고, 예약판매 기간중 3쇄에 들어가는 것도 문학동네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초기반응은 어쩌면 예약판매를 동네서점들과 함께 한 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학동네는 지난 6월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과 박준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예약판매하면서 동네서점들과도 함께 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동네서점들과 예약판매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다. 김애란과 박준의 신간 예약판매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을 때 “예약판매는 온라인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반신반의했던 동네서점들이 SNS를 통해 완판소식을 속속 전하면서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예판 이벤트 참여율은 더욱 높아졌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에만 특화되어 있던 예약판매 이벤트를 동네서점들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동네서점들이 어렵사리 확보한 기존 단골고객들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벤트인데 결과적으로 출판사가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다.

『1Q84』에 이어 또 한번의 하루키 열풍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4년 세월호의 비극 이후 한동안 책을 내기를 저어해왔던 국내작가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소설을 출간하는 것과 때를 맞춰 무라카미 하루키의 본격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이로써 다시 소설시장이 열리기를, 그동안 ‘이야기’에 굶주려 있던 우리 소설 독자들을 흠뻑 적시는 단비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곳은 정말로 현실세계일까?
인생의 공백을 메우려는 이들의 미스터리한 여정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도모히코의 미발표작인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 아스카 시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 그림을 가지고 내려온 뒤로, ‘나’의 주위에서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골짜기 맞은편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 와타루가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하고, 한밤중에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를 좇아 집 뒤편의 사당으로 가보니 돌무덤 아래에서 방울이 울리고 있다. 멘시키의 도움으로 돌무덤을 파헤쳐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어놓은 듯한 원형의 석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앞에 ‘기사단장’이 나타난다.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과 똑같은, 수수께끼의 구덩이에서 풀려난 ‘이데아’가.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고독한 여행, 구덩이와 벽 등의 폐쇄공간, 불가사의한 존재와의 만남,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세계 속 독자적인 요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오페라, 클래식, 재즈, 올드 팝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인물의 심상을 대변하고, 주인공 ‘나’와 멘시키, 그리고 멘시키와 13세 소녀 마리에의 관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작품으로 꼽았으며 직접 번역까지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오마주로도 읽힌다. 주인공의 기이한 체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는 에도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쓴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가 직접 인용되는데, 이 역시 하루키가 예전부터 즐겨 읽으며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작품이다. 작가생활 초기에 그가 주로 썼던 일인칭 시점으로 돌아온 것도 ‘하루키 월드’의 매력이 한층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태엽 감는 새』부터 『1Q84』까지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더해 현대사 속 실제 사건을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중이었다가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동생은 난징전투에 투입되어 강압적 명령에 의한 학살을 체험하고 그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 왜 발표하지 않고 천장 위에 숨겨두었는지 수수께끼로 가득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에는 그런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려 한 노화가의 의지가 생생히 드러나 있다. 또한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상실감과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동시에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마다 도모히코의 의지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의 유사 부자관계 역시 전작들에 비해 보다 유기적이고 심층적으로 그려졌다.

또한 ‘나’가 집을 나와 한 달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으로, 하루키는 재작년 가을 직접 이 지역을 차로 여행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 전반에 치유와 재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추상적 개념, 불교적 색채를 지닌 고전소설 등을 주요 모티프로 등장시키면서도 이야기의 골자는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의 경계를 꿰뚫는 이야기의 힘
대범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무라카미 하루키 월드의 집대성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작가 인생 40여 년. 한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은 이제 세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현세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소설 속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렇듯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농축한 결과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이야기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소설가가 안팎의 문제에 맞서 싸워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동안 ‘무국적 작가’로 불려온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놓은 대답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전부 담겨 있다. 당신은 완벽하게 하루키 월드의 장치에 빠져버릴 것이다. 나무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_북 아사히

상실과 회복을 주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모험. 그만의 키워드가 속속 등장해 그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 앨범 같다. _산케이 뉴스

표면적인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있지만, 각 대화와 에피소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매우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_요미우리 신문

장편소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다양한 SNS와 대치중입니다. 단문이 소비되는 요즘,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아사히 신문 인터뷰, 2017.4.17.)


● 인상적인 문장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1권 94~95쪽)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기 때문이다. (1권 27쪽)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1권 340쪽)

이른바 난징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권 88쪽)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뜻밖의 사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생물학적으로(그리고 사회적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누군가가 또박또박 알려주는 것. (2권 190쪽)

커다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바깥에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이 하늘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나는 그 똑바른 선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직선은 어떤 자를 써도 인간의 손으로는 그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선 아래에는 무수한 생명이 약동하고 있을 터였다. 이 세계는 무수한 생명과, 그리고 그것과 같은 수의 죽음으로 가득하다. (2권 333~334쪽)

어떻게 해야 마음을 한곳에 잡아둘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몸속을 순서대로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지?
“마음은 기억 속에 있어. 이미지를 먹으며 살아가는 거야.” (2권 418쪽)

그는 비밀을 지님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균형을 교묘히 컨트롤한다. 그에게 비밀은 서커스의 외줄타기 곡예사가 들고 있는 장대 같은 것이다. (2권 568쪽)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인지도 모른다. (2권 217~218쪽)

구매가격 : 11,500 원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도서정보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여행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 에세이. 때로는 타지 생활의 애환과 향수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때로는 유쾌한 식도락과 모험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의 여행기는 소설 못지않게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젊은 시절부터 해외 체류가 잦았던 작가에게 여행이란 일상의 연장이자 창작활동의 귀중한 토대가 되기도 했다. 여행 에세이로는 근 십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간에서는 신비로운 종교의 도시 라오스 루앙프라방,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탄생한 그리스의 섬, 와인의 성지 토스카나, 미식가들의 새로운 낙원 포틀랜드, 광활한 자연 속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재즈 선율이 가득한 뉴욕의 밤과 근대문학의 흔적을 간직한 일본 구마모토까지, 전 세계의 매혹적인 여행지에 대한 하루키식 리뷰를 만나볼 수 있다.

아이슬란드, 핀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미국……
하루키 씨, 그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이 책의 제목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본문에도 썼듯이, 경유지인 하노이에서 만난 한 베트남 사람이 라오스로 향하는 내게 했던 질문입니다.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 있는 것이 대체 뭐냐고 말이죠. 그 질문에 나도 한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라오스에 뭐가 있다는 걸까? 그런데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죠. 여행이란 그런 겁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_「후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 열 편이 실려 있다. 그중 표제작 격인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를 비롯한 일곱 편이 일본항공(JAL)에서 발행하는 『아고라』에 연재되었는데, 당시 하루키는 단행본으로 묶기 위한 긴 버전의 글을 따로 써두었다고 한다.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이 책에서 그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여행지의 특성과 문화를 꼼꼼하게 기록함은 물론 상당히 친절한 여행 가이드의 역할도 겸한다. 신구가 공존하는 핫 플레이스 포틀랜드와 뉴욕에서는 도시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각각의 여행 목적에 맞는 레스토랑과 클럽을 추천해주고, 장맛비에도 꿋꿋하게 구마모토의 관광 명소를 돌면서 착실한 리뷰를 남기고, “자동차 탱크가 텅텅 빈 채 무인 주유소 펌프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돌발 상황에도 ‘아이슬란드 주유소는 무인 시스템이니 미리 기름 넣는 법을 알아가는 게 좋다’는 팁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아내 무라카미 요코가 직접 찍은 사진을 포함, 모두 스물다섯 장의 사진을 곁들였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프로 여행자 겸 소설가가 이국의 풍경에서 엮어낸 인생의 가이드북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이라면 역시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그의 평소 생활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여행지에서도 일상의 리듬을 잃지 않는 그는 보스턴에서 스타벅스 대신 던킨 도너츠에 가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핀란드 출판사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전 세계적으로 책 판매량이 줄어드는 현실을 걱정하며, 애교 많은 그리스의 길고양이에 푹 빠져 한나절을 보낸다. 하루키 자신을 비롯한 아마추어 러너들의 축제인 보스턴 마라톤,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날 ‘먼 북소리’에 이끌려 떠났던 그리스 미코노스 섬, 재즈 마니아라면 누구나 방문을 꿈꾸는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 등, 예전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장소들이 다시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1980년대부터 여행기, 혹은 해외 체류기로 분류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온 그는 ‘이 여행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언젠가부터 별로 여행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한 권 분량의 글이 모이는 데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린 것도 그 때문이다. “한데 모은 글을 새삼 다시 읽어보자 ‘아, 다른 여행에 대한 글도 써둘 걸 그랬다’ 하고 은근히 후회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소용없습니다. 다른 글도 아니고 여행기는, 여행 직후에 마음먹고 쓰지 않으면 좀처럼 그 생생함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처럼 여행의 기록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책에서는 자유롭고도 느긋한 성향의 소설가가 여행자로, 또한 생활인으로 직접 보고 느낀 풍경과 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행문의 명수’로 불리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면, 적잖은 경력의 프로 여행자인 그가 고른 지구상의 차밍 포인트가 궁금하다면 그만의 감성과 유머가 가득한 이 여정에 동참해보는 것이 어떨까.

구매가격 : 9,800 원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도서정보 :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0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전 세계에 광범위한 독자층을 지닌 스타 작가이면서, 데뷔 당시부터 자국 문단에서는 늘 변방에 속해왔던 무라카미 하루키. 십대 시절부터 그의 작품을 읽어온 오랜 팬이자 아쿠타가와 상과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2015년에서 2017년에 걸쳐 네 차례의 길고도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이데아’와 ‘메타포’란 대체 무엇인가? 소설 속의 비현실적인 등장인물과 눈이 번쩍 뜨이는 비유들은 어디서 나오는가? 노벨문학상 시즌마다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첫 장부터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의 비결은? 『기사단장 죽이기』를 비롯한 장편소설 구상 과정의 에피소드부터 창작의 원천이 된 유소년기의 경험, 일상적인 작업방식, 페미니즘적 비판에 대한 생각 등, 누구나 알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숨김없이 펼쳐놓는다.

이보다 솔직할 수는 없다!
작품만큼 미스터리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모든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한 책으로는 옴진리교 사건을 취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비롯해 평론가 가와이 하야오와의 대담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인터뷰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등이 있지만, 질문을 받는 인터뷰이 입장에서 장시간에 걸친 대화 내용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 공식석상과 대중매체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 신비주의라는 말까지 듣는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원래 단발성으로 끝날 예정이었던 잡지 인터뷰가 총 네 차례로 이어지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인터뷰어 가와카미 미에코의 역할이 컸다. 파격적인 문체로 생생한 여성성을 그려낸 소설 『젖과 알』로 2008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가와카미 미에코는 가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에 더해 배우와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엔터테이너이자 시인으로도 인정받은 작가다.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젠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지난 5월 옥천에서 열린 정지용국제문학포럼에서는 문학작품 속 페미니즘적 관점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맡기도 했다. 십대 시절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즐겨 읽으며 독자로서, 작가로서 큰 영향을 받아왔다는 가와카미 미에코는 때로는 동경 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이 담긴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애정과 존경에 기반한 인터뷰어의 질문에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전에 없이 솔직하고 신선한 대답을 내놓으면서 소소한 일상 속 에피소드부터 소설에 대한 철학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대담집이 완성되었다.

1장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첫 대담은 2015년, 글쓰기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회와 철학이 담긴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출간된 직후 이뤄졌다. 고등학생 시절 고베에서 열린 그의 낭독회에 참석해 사인까지 받았다는 일화를 앞서 밝힌 가와카미 미에코는 최근 작품에서 드러나는 문체적 변화를 중심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훑어나간다. 등장인물을 비현실적 공간으로 이끄는 ‘벽 뚫고 나가기’, 외부에서 접한 소재를 작가의 내면에서 한번 걸러내는 ‘담갔다 건지기’ 등의 글쓰기 기술을 비롯해, 데뷔 당시 일본 문단의 상황과 현재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생각을 전공투 세대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2장 「지하 2층에서 일어나는 일」 2017년 출간된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구상 과정, 화자의 위치와 선악구도 등의 변화에 주목하며 작가 대 작가로 흥미로운 대화를 이어나간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사주는 독자와 일종의 신용관계가 형성한다는 것, 소설을 쓰고 읽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단독주택의 ‘지하 2층’에 비유할 수 있다는 해석이 참신하고도 알기 쉽게 와닿는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했을 법한, ‘이데아’와 ‘메타포’가 대체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대한 뜻밖의 답변도 확인할 수 있다.

3장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꾸준히 존경과 애착을 보여온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배운 문장 쓰기와 인물 조형 방식의 핵심을 밝힌다. 읽는 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재치 있는 비유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개성적인 문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성별에 따라 문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지적과 함께, 소설 속 여성 캐릭터가 너무 성적으로만 소모된다는 비판을 대변하는 가와카미 미에코의 질문이 특히 인상적이다. 나아가 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했던 여러 타입의 여성들을 재조명해본다.

4장 「설령 종이가 없어져도 인간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시간별 작업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며 전업작가로서 매일 꾸준히 글을 써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논한다. 또한 출판업계에서 지니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무라카미 인더스트리즈’라고 표현하며 전 세계에 작품이 번역 출판되는 소감, 현실 문제에 대해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 SNS 시대에 생각하는 이야기의 본질 등에 대해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눈다. “예전에 쓴 글은 다시 읽지 못한다”는 솔직한 발언의 이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십 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오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온 작가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 책 속에서

처음 준비할 때는 ‘수많은 독자를 대변한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묻고 싶은 걸 묻고 싶은 대로 물으면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누구도 신경쓸 것 없이, 십대 중반부터 꾸준히 읽어온 작품의 작가에게 지금의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물어보면 된다. 무라카미 씨의 우물을 위에서 엿보며 이리저리 상상하는 대신 직접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무라카미 씨와 함께. _가와카미 미에코, 「시작하며」에서

“따분하고 재미없는 대답만 해서 미안합니다만, 따분하고 재미없는 질문에는 그런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 법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작가 생활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상황을 몇 번인가 경험했다(물론 예의바른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번에 가와카미 미에코 씨와 총 네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정말이지 솔직하게,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신선하고 날카로운(때로는 묘하게 절실한) 질문이 속속 날아오는 통에 무심결에 식은땀을 흘릴 때가 잦았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끊임없는 공세’를 피부로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_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를 마치고」에서

구매가격 : 9,800 원

계간 문학동네 2020년 봄호 통권 102호

도서정보 : 문학동네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1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문학동네』는 문학의 존엄과 자긍을 다지며,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가는 젊은 문예지입니다. 우리 문학의 드높은 성취를 갈무리하며, 문학의 미답지를 개척, 수호해갈 『문학동네』는 문학의 진정성을 채굴하는 든든한 굴착기로서, 매호 돋보이는 기획과 성실한 편집으로 두고두고 귀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는 고급 문예지입니다.

구매가격 : 7,500 원

세상 끝 동물원

도서정보 : 어피니티 코나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세상 끝 동물원』은 미국 작가 어피니티 코나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강요당한 쌍둥이 소녀의 눈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전쟁이 끝나고도 지속되는 혼란,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강인한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어피니티 코나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나치의 야욕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전 온 가족이 고국을 탈출해 절멸정책을 피했고 조부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배경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그 시기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부터 프리모 레비와 파울 첼란 등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가의 책을 폭넓게 읽던 코나를 유독 사로잡은 것은 우생학 연구에 골몰하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와 그의 실험대상이 된 쌍둥이들이었다.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멩겔레는 나치가 저지른 잔학행위의 상징 같은 인물로 2차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전적으로 특이한 아이들, 특히 일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그의 실험실을 거쳐간 약 1500쌍의 쌍둥이 중 전쟁 후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2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긴 논픽션 『불길의 아이들』을 읽은 코나는 생체실험의 공포에도 살아남기로 굳게 다짐한 쌍둥이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고, 십여 년의 조사와 집필을 거쳐 2016년 『세상 끝 동물원』을 발표했다.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견뎌낸 이들의 강렬한 이야기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출간 즉시 전 세계 24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그리면서도 많은 수감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극도로 처참한 고통에 마주해서도 희망과 친절한 마음을 지키는 의지를 포착한 필력이다”(<뉴욕 타임스>) “연민과 잔인함,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소설”(<가디언>)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책”(<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의 찬사를 받았으며, 그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엘르>, 아마존 ‘올해 최고의 책’, 반스&노블 ‘올해의 발견’에 이름을 올렸다.

죽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우슈비츠의 동물원
악마적 실험의 대상이었던 우리에게 수술대보다 두려운 것은
쌍둥이 자매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1944년 가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열두 살 쌍둥이 펄과 스타샤는 멩겔레의 눈에 띄어 ‘동물원’이라는 막사로 보내진다. 스스로를 ‘의사 삼촌’이라 부르며 다정히 사탕을 나눠주는 그에게 선발되면 가스실에서의 즉각적인 죽음을 면할 뿐 아니라 수용소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실상 그의 눈에 든 아이들은 생체실험의 도구, 소모품일 뿐이다. 고문과 학대로 가득한 그곳에서 쌍둥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간다. 첫날부터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담한 모습을 보인 스타샤는 자기가 멩겔레의 실험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고, 그러니 엄마와 할아버지도 수용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차분하고 신중한 펄은 한 걸음 물러나 모든 상황을 관찰하며 수용소의 위계관계를 파악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억하려 한다. 둘은 어린 시절 함께 한 놀이와 상상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 버텨보려 하지만 역겨운 실험의 고통도 낯설게만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도 견디기 어렵다. 반쪽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더더욱 괴롭다. 그렇게 잔혹한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겨울 멩겔레의 지시로 열린 공연에서 펄이 사라지고, 그날 펄이 영화 관계자의 눈에 띄어 세계적인 스타가 되리라 기대했던 스타샤는 나무통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며 펄에게 편지를 남긴다.

마침내 소련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어도 고통은 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쌍둥이를 잃은 소년 펠릭스와 함께 상처와 허기, 복수심을 안고 폐허가 된 폴란드를 헤매는 스타샤는 유대인을 유인해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나치 동조자, 소금광산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는 독일 패잔병 등을 맞닥뜨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다. 한편 멩겔레의 실험실 깊숙한 철망우리에 갇혀 있던 펄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만큼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만다. 소련군에게 발견된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나서지만 과거에 사랑하던 모든 것은 망가져버렸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펄은 불편한 몸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동시에 헤어진 쌍둥이를 향한 어렴풋한 그리움을 느낀다.

참혹한 시대의 악을 증언하는 섬세하고도 강렬한 목소리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기적

펄과 스타샤의 시점을 오가며 그려지는 소설 속 세계는 완전한 암흑이다. 의료기술과 약물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해치고 죽일 목적으로 이용되는 그곳에서, 멩겔레는 서로 긴밀하게 유대하는 일란성쌍둥이가 분리를 경험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펄을 가둔 채 실험의 강도를 높이고 스타샤는 통제집단이 되어 자매의 통증에 민감하게 공명한다. 매순간 지금이 최악이라 생각하지만 더욱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고, 고통은 죽어서도 떨쳐지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멩겔레라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그의 학대를 견디며 분투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의지에 온전히 집중한다. 펄과 스타샤는 속눈썹과 점의 개수까지 집계되는 물건 취급을 받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버리지 않고 파괴된 세상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동물원을 탈출할 사람은 서로이길 바라고, 그 바람이 좌절되었을 때조차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끈질기게 남긴다. 그 어떤 인간적인 가치도 발 들일 틈이 없는 수용소에서 선의를 베푸는 주변인들 역시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쉼없이 반짝이는 빛처럼 힘이 되어준다. 어디서든 나타나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해주고 수용소의 식량을 훔쳐 허기를 달래는 법을 알려주는 씩씩한 알비노 소녀 브루나, 아이들이 좀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하는 일명 쌍둥이아빠, 반쪽을 잃어버린 펄과 스타샤의 옆을 끝까지 지키는 페테르와 펠릭스, 본인도 학대를 당하고 멩겔레의 조수 역할을 강요받으면서도 남몰래 수감자들을 챙기는 유대인 의사 미리. 해방 후 누구 하나 쉽사리 믿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도 이들은 예기치 못한 호의에 위안을 얻고 같은 처지의 생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아우슈비츠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길 바라는 한편 그 시절에 만난 따스한 선의만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펄과 스타샤는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성장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이제 망가진 곳이 재건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쌓아올리기를, 끔찍한 시간을 끝내 헤쳐나오지 못한 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크나큰 공포에 마주해서도 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 『세상 끝 동물원』은 아무리 커다란 악도 꺾어버릴 수 없는 강인함의 증거로,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악에 노출되고도 살아갈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스스로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누군가를 크게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 대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어떤 식으로 파괴되는지 알고 싶었다. 가족, 사랑, 아름다움, 기억, 공포의 의미를 다시 알고 싶었다.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살해당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 누군가는 부인하거나 망각되길 원할 이야기를 기억할 책임을 남긴 이들에게 내 주인공들을 통해 경의를 표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_어피니티 코나

▶ 『세상 끝 동물원』에 쏟아진 찬사

『세상 끝 동물원』은 하나의 패러독스다.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며,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거쳤으면서도 동화적인 가벼움이 깃든 소설, 성장을 허락받지 못한 아이들의 성장소설이다. 그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다면 참혹한 동시에 강렬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날 것이다. 앤서니 도어(『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그리면서도 많은 수감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극도로 처참한 고통에 마주해서도 희망과 친절한 마음을 지키는 의지를 포착한 필력이다. 뉴욕 타임스

연민과 잔인함, 야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적인 소설. 가디언

경탄스럽다. 복합적이다. 가슴을 울린다. 강렬하다. 충격적이다. 탁월하다…… 이번만은 이 모든 찬사를 아낌없이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엘르

모든 문장이 중요하다. 주인공 소녀들을 단순히 희생자로 그리지 않은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그보다 더 잔혹할 수 없는 세계에서 피어난 희망적인, 심지어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오프라 매거진

구매가격 : 10,900 원

슬픔은 날개 달린 것

도서정보 : 맥스 포터 / 문학동네 / 2020년 04월 06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소설가 한강 추천!

딜런 토머스 상│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 (2016)
〈선데이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Top 100│〈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슬픔 #상실 #위로 #애도 #가족 #사랑 #희망 #초현실 #데뷔작 #문학상수상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의 비통한 나날이 거대한 까마귀의 깃털들을 달고 전진한다. 혹은 길게 우회해 우리 등뒤로 문득 도착해 있다.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이다.” _한강(소설가)

불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픔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영국의 소설가 맥스 포터는 말한다. 그것은 날개 달린 까마귀의 형상으로 온다고.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와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상실의 슬픔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 애도의 과정을 주관하는 것은 현명한 친척 어른이나 살가운 친구처럼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한 마리 말하는 까마귀다. 때로는 짓궂고 때로는 다정한, 거대하고 다재다능하며 사려 깊은 이 새는 극심한 상실의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사람을 다시 삶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지워지지 않는 죽음의 흔적을 절망의 근거가 아닌 굳건한 사랑의 기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작가 맥스 포터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책과 각별하고 끈끈한 관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점 매니저로 근무하며 ‘올해의 젊은 북셀러 상’을 받기도 했고, 그후에는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에서 최근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영국의 그란타 출판사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펴낸 곳으로, 맥스 포터는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을 당시 편집자로서 인연을 맺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원고를 모아 2015년 첫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발표한 그는 딜런 토머스 상(2016)과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2016)을 받았으며,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와 골드스미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2019년 발표한 두번째 소설 『래니Lanny』로 부커상 후보와 고든 번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맥스 포터의 삶에서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문학에 대한 사랑과 어린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상실의 기억이 결합해 탄생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첫 이야기가 슬픔과 그것의 극복에 대한 관습적인 서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겪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정한 심리, 특히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까마귀의 목소리를 비정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되기를 원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이자, 시(詩)이자, 우화이자, 슬픔에 대한 에세이이기도 한 이 책은 분절된 문장과 독특한 텍스트 배열 등 산문과 운문을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문체로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동시에 소설의 세계를 확장한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시인이자 번역가 황유원은 기이하게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문장의 맛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매만졌다. 여백이 많은 텍스트인데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야심과 글자 사이 빈 공간에 스민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죽음의 여파에 허물어진 어느 가족의 둥지 속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한 슬픔의 진원에서
검은 날개를 펼쳐 추락하는 삶을 붙잡기 위해.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아빠’ ‘아이들’ ‘까마귀’, 이렇게 세 화자가 돌아가면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풍경에 대한,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듯, 소설은 남자의 아내가 사망한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말 그대로 ‘부재’로서만 존재한다. 이야기의 막이 오르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내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서 충격에 빠진 채 서성이는 남자가 있다. 하루종일 수많은 조문객의 과장된 위로와 불편한 친절에 시달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녹초가 되어버린 그는 엄마를 잃은 어린 두 아들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자신들이 알던 세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소리 없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리고 연약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가차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포위 공격 속에서 무너져가는 이들 앞에 아주 특별한 구원자가 나타난다. 검고 커다란 날개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무장한 까마귀 한 마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제외하면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칭 “감상적인 새”인 이 까마귀는 남자에게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유모이자 상담사이자 보호자이자 친구로서, 가족들 곁에 끈질기게 머무른다. 남자와 아이들이 아내, 혹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수시로 불러내 그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그것을 형벌삼아 스스로를 고문할 때마다, 까마귀는 절망의 문 앞을 가로막은 채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엄하게 훈계해 돌려보낸다. 아빠와 아이들은 삐걱대고 비틀대면서도 까마귀의 지도를 따라 점차 다시 삶의 궤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까마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문학으로 쓰는 진심어린 러브레터,
에밀리 디킨슨과 테드 휴스에게 바치는 헌사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두 명의 시인에게 바치는 일종의 문학적 오마주이자 헌사이기도 하다. 그중 한 명은 19세기의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고, 다른 한 명은 20세기의 영국 시인 테드 휴스다. 먼저 소설의 제목인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희망은 날개 달린 것(“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으로 시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에서 ‘희망’을 ‘슬픔’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소설의 앞에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 에밀리 디킨슨의 또다른 시가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사랑’을 포함해 몇몇 핵심 시어들이 손으로 그린 듯한 가로선과 함께 ‘까마귀’로 장난스럽게 고쳐 쓰여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런 재치 있는 ‘다시 쓰기’는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을 지향하면서도 과거의 걸작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품은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를 위해 이야기의 입구에 걸어놓은 환영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또한 소설의 중심 캐릭터이자 이 작품에서 가장 혁신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까마귀’는 테드 휴스의 시집 『까마귀』(1970)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맥스 포터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십대 때 그 작품에 굉장히 심취했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따라서 작가가 서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상해온 그의 첫 작품이 휴스의 문학적 영향력 아래 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 까마귀의 보살핌을 받게 된 남자가 하필 『까마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논하는 연구서를 집필중인 테드 휴스 연구가라는 사실 역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 휴스의 『까마귀』 초판을 펴냈던 영국 출판사 ‘Faber & Faber’에서 출간되었다는 것 또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디테일이다.) 테드 휴스의 대표작이자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어둡고 강렬한 시집 속에서 까마귀는 전설과 신화 속의 존재이자 생명력과 혼돈의 상징이며, 신과도 대적하는 ‘트릭스터(trickster)’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뒤,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 비범한 생명체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을 입고 다시 한번 날아오른다.

절망의 그늘이 아닌 삶의 볕 아래에서
슬픔을 끌어안는 법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새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남자 나도 동의해. 그건 늘 변하지.
새 슬픔 말이야?
남자 응.
새 그건 모든 것이야. 그것은 자아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것이고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하지.
_본문 149∼150쪽

기나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한 남자와 두 소년은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삶의 바다를 바라보며, 슬픔은 소중한 것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로소 이들은 과거를 지워버리려 노력하는 대신 과거를 끌어안은 미래를 상상한다. 상실의 고통뿐 아니라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 역시 그 과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제목을 빌려온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슬픔’의 자리에 있던 원래의 시어는 ‘희망’이다. 언뜻 슬픔과 희망은 아주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희망과 슬픔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리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퍼하는 일은 절망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희망을 위한 행위라고, 죽음이 깃들어 있기에 삶이 빛나듯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존엄한 아름다움이라고, 소설은 까마귀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제 희망의 자리에 슬픔을 넣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는다 해도 그것은 더이상 절망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 / 영혼 속에 내려앉아 /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네 / 끝나지 않는 노래를……”


▶ 추천의 말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감정으로 충만하지만 결코 감상적이지 않은 소설. 맥스 포터는 정적인 비애의 감정을 고수하지 않고, 분노와 광기와 비속함과 유머를 오가며, 화자와 목소리의 음량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이것은 제목이 가리키는 ‘날개 달린 것’처럼 살아 숨쉬는 이야기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책과 문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작품.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한 가족의 슬픔과 그들에게 괴로움과 구원을 동시에 선사하는 별난 생명체를 숭고하고 처절하게 그려낸다. 결코 단순하거나 성글지 않은 치밀한 이야기이며, 그 자체로 어떤 모자람도 없다. 이 날개 달린 책은 정말로 탁월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당신이 올해 만날 가장 감동적이고 독창적인 데뷔작. 칠흑처럼 어두운 유머와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상실의 타격을 생생한 절박함을 담아 그려낸다. 슬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극복해낸다. 경이롭고 지극히 문학적이며 종내는 희망적인 작품. NPR

맥스 포터의 이 이상한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영역을 맴돌며 세상이 가하는 고통에 대해, 죽은 이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력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우아하고 독창적이며 글의 리듬 또한 완벽하다. 슬픔을 다루는 문학, 나아가 문학 전체에 기여하는 작품. 커커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기도서. 맥스 포터는 슬픔에 동반되는 모든 감정의 형태를 표현해낸다. 예측할 수 없게 재기발랄하며 풍자와 모순, 검은 날개가 달린 유머로 가득한 소설. 월 스트리트 저널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두 장의 하드커버 사이에 사로잡힌 아주 작고 섬세한 이야기의 새떼 같다. 죽음과 죽음을 위로하는 것들?슬픔에 잠긴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 감동적인 소설은 일견 페이지 위로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연약한 텍스트와 대화와 시(詩)의 파편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작품이 조직된 방식에는 실로 활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도의 압축을 통해 지적이고 예술적인 도전을 감행함으로써, 맥스 포터는 사랑과 상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이야기에 담아냈다. 가디언

언어유희와 추상적 관념들, 분방한 상상력을 관통하는 예리한 세부 묘사가 소설 속 가족의 상실을 보다 생생하게, 그들의 슬픔을 보다 실감나게 만든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라는 공허를 명백한 실체를 가진 생명체로 바꾸어놓았다.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슬픔의 파괴력에 대해 처절하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고찰하는 작품. 인물들은 심오하고 간명한 문장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소설에 담긴 강렬한 감정들은 사랑과 상실과 애도를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포터는 선명하게 시적이고 어둡게 아름다운 데뷔작을 통해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씨름하는 아버지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정말로 뛰어난 작품이다. 독자들은 포터 특유의 문학적 스타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북리스트

기이하고 눈부신 데뷔작. 작품의 구조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상상력 넘치고 우아한 접근 방식과 세밀한 감각이 이야기에 신선함을 부여한다. 직설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이 책은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의문을 동시에 제기한다. 시카고 트리뷴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강렬하고 초현실적인 소설이자 시(詩).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 책 속에서

그녀가 떠남으로써 빚어진 가장 주요한 결과는 아마 내가 영영 이렇게 뒷바라지를 하는 사람, 상투적인 감사의 말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는 상인 같은 사람, 엄마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계처럼 일상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느꼈다. 슬픔이 사차원적으로, 추상적으로, 어렴풋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추웠다. 본문 14쪽

난 정말로 신경이 쓰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빼면 별 재미가 없거든. 건강, 재난, 기근, 악행, 찬란한 것들 또는 정상적인 것들은 별로 내 흥미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순수한 까마귀야. 나처럼 감상적인 새에게 그것은 숙성되고 진하고 그윽해서, 마치 새 둥지처럼 약탈하기에 아주 그만이야. 본문 29∼30쪽

우리집은 말 그대로 ‘더이상 아내의 것이 아닌’ 항목들로 채워진 백과사전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충격의 연속이자, 우리집과 질병이 휩쓸고 지나간 집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 그녀는 죽느라 바쁘지 않았고, 간병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느라 바빴고,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본문 36쪽

케이크 믹스가 부풀고 구워지면서 케이크 틀 가장자리를 꽉 채워가듯,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삶으로 점점 모양을 잡아가던 결혼 초기에, 우리가, 그러니까 아내와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되고 말 거라며 두려워하던 게 생각난다. 본문 61쪽

나의 이 그리움이란 어쩌면 이리도 물리적인 것인지.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그 그리움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왕자, 콘서트홀, 천 그루의 나무, 호수, 구천 대의 버스, 백만 대의 차, 이천만 마리의 새들 그 이상이다. 도시 전체가 아내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다. 본문 77쪽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건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슬픔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길 거부한다. 우리가 떠안은 이 고통은 그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본문 144쪽

아빠는 늘 표류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맥주 같은 금빛 저녁노을 속에서 몸을 돌렸다가 여전히 남아 있는 온기를 느끼고 놀라는 사람처럼. 본문 153쪽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신념. 본문 153∼154쪽

아이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본문 165쪽

구매가격 : 8,800 원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도서정보 : 마르크 로제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1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책 읽는 즐거움, 함께 읽는 기쁨이 전파되는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28호실의 기적!

독서를 두려워한 소년과 문학 애호가 할아버지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만남
책 읽기를 통한 소통과 연대, 노년의 삶에 대한 사색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독자들을 만나온 28년 경력의 프랑스 대중 낭독가
마르크 로제가 들려주는 책과 사람, 문학, 인생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

프랑스 대중 낭독가 마르크 로제의 첫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아가던 소년과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평생 책과 문학을 사랑해온 노인의 우정, 두 사람이 책 읽기를 통해 고독한 노인요양원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소통과 연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계급이나 문화적 배경, 나이나 학력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의 만남과 화합, 그리고 이를 통한 긍정적 변화를 다룬 서사는 이미 낯설지 않다. 하지만 노인요양원 안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책과 책을 둘러싼 세상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묘사하는 현직 낭독가인 작가의 목소리, 사회 초년생의 혼란과 노년의 삶에 대한 사색, 소설 속에 소개되는 다양한 프랑스 문학작품 등이 풍부하게 곁가지를 더하며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작가 마르크 로제는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대중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해온 전문 낭독가이다. 1992년부터 28년 동안 독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며 책 읽는 기쁨을 전파해온 마르크 로제는 책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과 문학, 독서, 낭독, 서점, 도서관 등 그만이 선보일 수 있는 ‘책 세상’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은밀하게 책과 낭독의 세계로 유혹하려는 책방 할아버지와
관심 없는 ‘척하는’ 소년의 밀고 당기는 심리 싸움!

책은 혼자서 읽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 읽어주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일이다. _마르크 로제

학교에서는 유령처럼 지내다 수업 시간에 이름이 불릴까 늘 불안에 떨던 소년 그레구아르. 80퍼센트 이상 통과하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도 떨어지고, 적당한 일자리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막연히 나무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진로상담 선생님은 ‘산림청’에 취업하라며 엉뚱하게 이과형 입학시험을 제안한다. 수학엔 ‘젬병’인 그에게! 몇 차례 방황을 거치던 그레구아르는 마침내 수레국화 노인요양원에 주방 보조로 취직한다. 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으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은 요양원 각 방에 식사 배달 임무를 맡으며 피키에 씨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곁가지 문학’이라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평생토록 문학을 사랑해온 피키에 씨는 파킨슨병이 악화되자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28호실에 입주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책 삼천 권과 함께. 요양원 방안의 사방 벽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수이지만, 그는 미처 챙겨 오지 못한, 더는 읽을 수 없게 된 나머지 이만 칠천 권의 책을 생각하면 아직도 ‘환상통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식사 배달을 위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 매일 드나들며 그레구아르는 조금씩 책과 친숙해진다.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지략가 피키에 할아버지에게 조금씩 물들어가며 책 속으로, 또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책방 할아버지는 나에게 책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마냥 바보만은 아니라서 곧 그의 속셈을 알아차린다. 그가 늘어놓은 책표지. 다른 무엇보다 나를 유혹할 만한 책제목. 그건 우리 사이의 게임이다. 나는 그에게 ‘책 읽기요? 됐거든요’ 하는 태도를 보이는 척하고, 그는 털끝만큼도 나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없는 척하기. 졸업한 지 이 년이 넘었는데도 ‘학교’ 하면 곧바로 내 머릿속에 책이 떠오른다. 단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나를 질리게 만들던 그 책들. 내가 책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학창시절의 불편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책들이 이제 나를 매료시킨다. (23~24쪽)

피키에 할아버지는 책과는 담을 쌓고 살던 그레구아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타인과 나누는 방법,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곁에서 독려하고, 때로는 운동 코치처럼, 낭독하는 기술을 훈련시킨다.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28호실, 파킨슨병과 녹내장 때문에 더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피키에 할아버지를 위해 큰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그레구아르의 낭독회는 점차 옆방의 할머니들에게로, 요양원 전체로 번져간다. “소리 없이, 말썽 없이 죽어가는” 공간에 살아가던 노인들은 낭독을 통해 열광과 기쁨을 되찾으며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하고, 거주자들, 직원들, 방문자들 모두가 동시적인 공감으로 행복해한다. 소설 낭독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인정받아, 그레구아르는 요양원 내에서 주방일을 줄이는 대신 낭독 시간과 장소를 늘려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요양원의 주치의 제레미 박사는 환자들에게 항우울제 대신 그레구아르의 책 낭독을 들으라는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아주 멋진 일이에요, 피키에 씨, 젊은 제자와 함께하는 작업 말이에요. 육 개월만 더 계속한다면 약국이 싹 사라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게, 대신 책방이 생길 테니까.” (112쪽)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의 맞춤 독서 큐레이팅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있는 그대로의 문학’ 산책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 (53쪽)

사람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 피키에 할아버지는 절대로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인물과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큐레이팅을 통해 낭독을 듣는 청자 스스로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지략가다.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그레구아르에게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웃 할머니들에게는 「목걸이」 「투안 영감」 「비곗덩어리」 등 기 드 모파상의 짧은 단편을 추천한다. 고전문학이나 으레 ‘문학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작품들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고요하고 온기 없는 듯했던 요양원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뜨거운’ 소설을 읽어 요양원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으며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부터 휘트먼, 잭 케루악, 잭 런던, 니콜라 부비에, 마르셀 파뇰, 가스통 바슐라르, 알레산드로 바리코, 루이 아라공, 조지 R. R. 마틴, 기욤 아폴리네르, 베르나르 노엘, 마르그리트 오두, 모리스 준부아, 장 주네,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책방 할아버지와 그레구아르가 이 소설 속에 그려놓는 폭넓고 다양한 독서 안내도를 따라 독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문학 산책의 즐거움 또한 만끽할 수 있다.


풍성하게 곁가지를 더하는
사랑과 죽음, 이별에 관한 빛나는 단상들

소설 속에는 그레구아르와 피키에 씨와 그들의 책 이야기 외에도 요양원에 입주한 노인들의 사연, 그레구아르와 간호사 디알리카의 사랑 등 요양원 안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년생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그레구아르의 고군분투, 세네갈인 간호사 디알리카를 통한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의 조건, 몰개성적인 좁은 방에서 무력하고 고독하게 죽음을 향해 가는 노년의 삶, 노화와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곳곳에 빛난다.

특히 그레구아르가 요양원 입주자 셀레스틴 모렐의 임종 직전까지 함께하며 책을 읽어주는 장면, 마들렌 지루 부인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피키에 씨가 평생 자신의 살갗 아래 남몰래 간직해온 사랑을 그레구아르 앞에서 고백하는 장면 등은 유쾌한 일화에 웃음 짓던 독자의 마음을 때때로 뭉클하게 만든다.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책 속을 벗어나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진짜 인생을 맛보고 싶어했던 책방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그레구아르에게 자신을 대신해 도보 여행을 떠나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책과 인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물려주고자 했던 피키에 씨를 통해 차츰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견해가던 그레구아르는 지략가 피키에 씨가 치밀하게 준비해둔 도보 여행을 통해 또하나의 나이테를 새기게 된다. 나무를 좋아했고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그 길 끝에 마침내 우뚝 선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자신의 가지를 더욱 멀리, 풍성하게 뻗어갈 것이다.

구매가격 : 9,700 원

광기와 치유의 책

도서정보 : 레지나 오멜버니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24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르네상스시대 베네치아,
시대를 앞서간 여성 의사의 우아하고 감각적인 여정

NPR 선정 ‘올해의 역사소설’ (2012)
“현실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생기가 가득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설.” 엘르

『광기와 치유의 책』은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의사로 일하며 의학서를 집필하던 여성 가브리엘라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 레지나 오멜버니의 소설 데뷔작이다. 시인으로 먼저 데뷔해 콘플럭스 프레스 시 문학상, 브라이트 힐 프레스 시 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는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짧은 산문들, 특히 질병에 대한 글을 썼고, 어느 날 이 짧은 글들 뒤에 공통된 목소리가 있다는 것, 그 목소리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흔치 않던 시대, 특히나 의술을 펼치는 여성은 마녀로 몰리던 시대에 두려움 없이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의사 가브리엘라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이 탄생한 데는, 이탈리아계 화가였던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가 열여섯 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어머니는 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며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그런 어머니를 견디다못한 아버지는 아내와 두 딸을 두고 떠나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품고 있는 작가가, 역시 아버지가 실종된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베네치아를 처음 방문한 이후 그 아름다운 운하 도시의 풍경을 마음속에 늘 간직해왔다. 공기 중에 소금물의 냄새가 알싸하게 배어 있고, 창문 밑 돌벽에 조수가 요란하게 밀려와 부딪히는 베네치아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오감을 자극하며 실감나게 그려진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가브리엘라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방문한 곳들 또한 직접 찾아다니며 철저하게 자료 조사를 했고, 그 덕분에 르네상스시대 유럽 곳곳의 공간들이 시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재현됐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된, 가브리엘라가 집필한 미스터리한 질병들에 대한 글은 신비로우면서도 기발한 내용으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유럽을 가로질러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흥미진진한 모험과 의미 있는 만남들로 가득하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이야기를 더없이 우아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시적이고 기발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라는 평을 들으며 NPR에 의해 ‘올해의 역사소설’(2012)로 선정됐다.

“상상은 해봤지만 살아보지 못한 삶,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는 삶,
그런 삶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내가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16세기 말 베네치아, 가브리엘라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여성 의사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환자들을 돌본 것은 물론 대학에서 정식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여성의 결혼 적령기인 열여섯 살을 훌쩍 넘어 서른 살이 되었지만, 결혼 생각은 전혀 없고 스스로를 “의사라는 직업과 결혼한 여자”라고 생각하며 환자를 돌보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도와 『질병백과』를 완성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십 년 전, 책을 집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아버지가 미스터리한 편지들만 보내올 뿐 베네치아로 돌아오지 않자, 의사 길드는 멘토가 없는 여성 의사는 인정할 수 없다며 가브리엘라의 진료를 금지한다. 그러자 가브리엘라는 그 상황에 순응하기보다는 직접 자기 삶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차테레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몇 시간이고 앉아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내 삶이 천우의 바람을 돛에 가득 안고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함선처럼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는 않겠다고, 직접 아버지를 찾아 『질병백과』를 완성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동안 아버지가 보낸 편지들을 단서 삼아 아버지의 행로를 추적하며 여행을 시작한 가브리엘라의 곁에는 충직한 하인 올미나와 로렌초 부부가 함께한다. 가브리엘라가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부모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오던 두 사람은 가브리엘라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16세기 말 유럽은 여성이 돌아다니기에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약초를 다룰 줄 알거나 의학적 지식이 있는 여성은 마녀로 몰아 처형하는 곳이 워낙 많아 남장을 한 채 인가를 피해 이동하기도 하고, 홍수 때문에 불어난 호수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가브리엘라는 그렇게 위기를 넘겨가며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스코틀랜드까지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프랑스 남부와 에스파냐, 더 멀리 모로코까지 여정을 이어가지만, 아버지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편지에 등장한 사람들을 모두 만나보아도, 아버지가 정체 모를 병을 앓고 있었고 달의 영향을 받아 미쳐가고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을 뿐이다. 가브리엘라는 아버지를 영영 찾지 못하게 될까봐, 혹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틈틈이 환자를 돌보고 『질병백과』에 실을 원고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또 한 걸음을 성큼 걸어나간다.


▶ 추천의 말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의술을 펼치던,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우아한 초상. 여성이 중심에 있으면서도 로맨스에 치중하지 않는 역사소설에 끌리는 독자라면 마음을 빼앗길 만한 작품이다. 라이브러리 저널

가브리엘라의 여정엔 현실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생기가 가득하다. 작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과거의 시공간을 완벽하게 불러내 시적으로 써내려갔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설. 엘르

아버지와 딸 사이에 오간 서간체 소설이자, 귀족의 일기이며, 모험가의 여행기. 시적이고 기발한 이 소설은 독자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과학과 의학에 대한 디테일이 가득한 아름다운 소설. 잊히지 않을 데뷔소설이다.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아주 흥미로운 소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며 또다른 퍼즐 조각이 등장한다. 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 책 속에서

축축한 달의 영향 아래 그렇게 덧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과거를 추적할 미래를 이미 계획하고 있었음을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내가 들여다보는 유리만큼 투명해졌고, 위험하게도 나 자신에게마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내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고 깨달은 건 바로 그때였다. 14쪽

“사랑과 위안을 주는 사람들을 내친다면 대체 어떤 삶이 살아낼 가치가 있는데요?” 66쪽

“우리가 아는 게 좀 있잖아요. 근데 뭘 아는 여자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121쪽

“어떤 상처는, 어떤 잘못처럼 결코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241쪽

“꽃은 차별하지 않잖아요. 우월한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차별을 하지요.” 337쪽

“여름 한철에 불과한 생도 나비에게는 긴 시간이잖아요. 우리는 수십 년을 살길 바라지만 상실만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수십 년을 산들 무슨 소용이겠어요? 저는 한 해 한 해를 꼽느니 하루하루를 손꼽으며 살겠어요.” 348쪽

구매가격 : 11,100 원

아직 멀었다는 말

도서정보 : 권여선 / 문학동네 / 2020년 03월 2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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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_김애란(소설가)

소설의 품격과 깊이, 권여선 4년 만의 신작 소설집
제19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모르는 영역」 수록

“한국문학의 질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하나”(문학평론가 소영현)라는 평에 걸맞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동료 작가와 평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한국문학의 품격과 깊이를 더하는 작가 권여선의 여섯번째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이 출간되었다. 제4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자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선정되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에는 “권여선 특유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압권”이라는 평과 함께 제19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모르는 영역」을 포함해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안녕 주정뱅이』로 ‘주류문학’의 한 경지를 이룬 권여선 작가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인간다움의 위엄을 보여준 그에게 또하나의 주류문학을 기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 새로운 변화로의 이행을 감행한다. 소설집이 출간되기 전 진행한 한 대담에서 “술을 먹이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고, 술을 안 먹는 인물들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녔고(…). 뭐 하나를 딱 막아놓으니까 딴 쪽으로 퍼져나간 식입니다”(『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라고 언급한 것처럼 권여선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어쩔 수 없이 이끌리게 되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모르는 영역’으로 한 발 한 발 걸어들어간다. 스물한 살의 스포츠용품 판매원인 ‘소희’(「손톱」)에서부터 레즈비언 할머니인 ‘데런’과 ‘디엔’(「희박한 마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익숙한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인물들을 향해 뻗어나가는 이번 소설집은 권여선 소설의 전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생선의 맛처럼 부드러운 놀람”(「전갱이의 맛」)을 선사할 것이다.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앉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찌를 듯 무자비하면서도 따스한 햇빛처럼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손길처럼
끝인 듯 시작을 예고하는, 아직은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

소설집의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손톱」 속의 “문득 소희는 새처럼 목을 빼고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듯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할머니가 아흐 어하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한다. 그건 아직 멀었다 소희야, 하는 말 같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희는 일하는 매장에서 박스를 들어올리다 박스 아래에 튀어나와 있던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기지만, 대출금과 옥탑방 월세 등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친구도 못 만나고 친구도 못 만들”며, 갚아야 할 빚과 모아야 할 돈을 백원 단위까지 끊임없이 계산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 그런 소희에게 유일한 사치는 아침 통근버스를 탈 때 쏟아져들어오는 햇빛이다. ‘찌르는 듯 따스하고 무심하면서도 공평한’ 햇빛처럼 소희의 하루하루는 거칠 것 없이 무자비하지만 그러나 끝내 온기가 전해져온다. 그건 “대화가 안 된다 매가리가 없다 무나아안하다 생각이 없다”는 말 대신 손톱이 다친 소희에게 “조심해야지” 하고 말해주는 할머니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함부로 희망을 말하거나 섣부르게 위로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조심해야 한다고, 아직 멀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만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때문에 ‘아직 멀었다는 말’은 끝을 단정짓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너머」의 N도 소희와 사정이 비슷하다. 기간제교사로 두 달간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N은 “복잡해 보이는 사태도 정규와 비정규를 가르는 경계만 알면 대부분 참으로 간단히도 이해가 되”는 그 세계에서 은근히 비정규를 무시하는 교사들의 속내를 예민하게 간파하고 “치사하고 악질적인 쪼개기 계약과 계약 연장 꼼수”에 넌더리가 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깨끗이 그만둘 생각을 한다. 하지만 N은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손톱」의 소희가 일반 짬뽕보다 오백원 더 비싸다는 이유로 매운 짬뽕을 포기하는 것처럼, 「너머」의 N은 계약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받게 되는 한 달 치 월급과 “그 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하다 끝내 흐느끼면서 생각한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세상천지 N에게는 어머니밖에 없고 어머니에게는 N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처럼 이번 소설집은 촘촘한 묘사와 생생한 캐릭터로 한국사회의 문제 지점을 에두르지 않고 짚어나가는 권여선만의 특기가 여전한 가운데, 한편으로는 『안녕 주정뱅이』 이후 권여선 소설의 새로운 결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할 만하다. 「희박한 마음」의 레즈비언 할머니인 데런은 연인 디엔이 떠난 뒤 혼자 살며 디엔과의 일을 꼼꼼히 짚어나간다. 디엔과 같이 살던 몇 년 전, 한밤중에 어디선가 섬뜩한 의문의 소리가 들려온 적이 있었다. 숨이 막히는 듯한 컥 소리와 끼이이이 하는 비명 같던 그 소리는 실은 옆집 수도계량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디엔이 떠나고 없는 지금도 여전히 소름끼치는 그 소리는 반복된다. 혼자 사는 여자를 두렵게 하는 그 소리는, 대학 시절 데런과 디엔이 함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울 때 갑자기 나타나 담배를 끄라며 소리지르던 한 복학생 남자의 위협과도 닮아 있다. 그러면서도 데런은 복학생 남자가 디엔을 후려쳤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그 순간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이 소설은 그간의 한국문학에서 드물었던 레즈비언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지만, 레즈비언 커플을 향한 외부의 압력을 묘사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들 사이에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감정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니야.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다.”

삼 년 만에 재회한 커플의 하루를 담은 「전갱이의 맛」과 가족묘를 둘러싼 가족들의 왁자지껄한 소동극인 「송추의 가을」 등 이전과 비교해 조금 더 유머러스하고 산뜻한 작품이 소설집의 곳곳에 자리한 가운데, 소설집이 「모르는 영역」으로 시작되어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작가의 말’로 마무리되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모르는 영역」에서 ‘명덕’은 사진에 찍힌 무언가를 보며 유에프오가 아니라 낮달이 맞지 않느냐는 딸의 물음에 이렇게 말한다. “모르지 그건. (…) 그건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다.”

등단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써내고도 권여선은 아직 무언가를 잘 모르겠다고,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것처럼 어떤 것은 영영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모르겠다는 그 말은, 무언가를 딱 잘라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모름의 힘으로 권여선은 인물을 둘러싼 사건을 면밀하게 살피고,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 아주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건을, 인물을,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폭 또한 넓어지는 게 아닐까. 명덕이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하는 순간 사사건건 부딪치는 딸에게서 (엄마가 아빠 같은 사람을 왜 만났는지) “이해가 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때로 어긋나고 싶고 종종 가로지르고 싶고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한 번은 치달리고 싶은데
못 그러니까,
깊은 모름 가파른 모름 두터운 모름까지 못 가고
어설픈 모름 속에서,
잔바람에도 진저리치며 더럽고 질긴 깃털만 떨구는 늙고 병든 새처럼,
다 떨구고 내 앙상한 모름의 뼈가 드러날 때까지
그때까지만 쓸 것인가.

모르겠다.

그래도 독자여 나의 눈물겨운 독자여 내가 더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그날이 오면 부디 우리 다시 만날까 작가의 말도 모르겠다는 말도 아직 멀었다는 말도 하지 말고 나는 식어 차고 당신의 손은 따뜻할 그날에 _‘작가의 말’ 중에서



비정해서 공정한 눈이란 이런 걸까요? 단순한 명암이 아니라 빛을 쪼개서, 어둠을 쪼개서 보여주는 작가를 보며,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이후’를 살피는 장르이지만 ‘너머’를 고민하는 형식이기도 하다는 것 역시요. _김애란(소설가)

우리가 어떤 심원한 고통에 붙들렸다 해도, 어떤 말도 안 되는 악폐에 몸부림치는 중이라 해도, 그조차 살아 있음의 의미로서 여전히 아름다워야 할 생의 몫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 우리의 생이 지금도 죽음으로 다가간다고 하든 죽는 순간까지 예비된 삶의 길을 간다고 하든, ‘아직 멀었다는 말’로밖에는 가리킬 수 없는 것이리라. 그 고단함과 불확실함에 기쁘게 충실하라는 역설이야말로, 살아 있는 내가, 나를 이 세계에 연루시킨 생에게 감사를 표할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_백지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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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도서정보 : A.S.A 해리슨 / 엘릭시르 / 2020년 03월 2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아름다우며 헌신적인 아내.
그녀에게서 살인자의 모습이 튀어나오기까지,
앞으로 단 며칠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화 확정!

아들러 연구자로서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조디. 건축 사업가로서 야망을 하나씩 이뤄가는 토드. 토드가 몇 번이나 외도를 했지만 두 사람은 이십 년간 부부 생활을 이어왔다. 토드는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왔고, 표면적이나마 평온한 생활을 유지했으니까. 조디는 모두 용서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 가정 스릴러 『조용한 아내』가 엘릭시르에서 출간되었다. 캐나다 작가 A.S.A. 해리슨의 데뷔작이자 유고작인 『조용한 아내』는 바람둥이 남편을 둔 심리학자 아내의 이야기다. 저자 A.S.A. 해리슨은 예술과 심리학 공부를 하며 쌓아온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글솜씨를 첫 소설에 전부 쏟아 부었고, 『조용한 아내』는 “결혼과 인간관계의 어두운 면에 대한 소설 중 단연 최고”라는 평과 함께 27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 교차 서술의 묘미
조디는 남편 토드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두 사람이 부부라는 형태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조디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평온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드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조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안정’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제껏 조용히 살아온 조디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함을 깨닫는다.
『조용한 아내』는 조디와 토드의 입장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전개 방식을 통해 두 사람의 생각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드는 불륜 상대와 여행을 가기 위해 조디에게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간다’고 말한다. 토드는 이 거짓말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불화를 피하는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불륜이 주는 짜릿함이 모두 필요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디는 그의 거짓말을 눈치챘을뿐더러, 토드의 사고방식까지도 파악하고 있다. 토드는 스스로를 무척 합리적인 판단력을 지닌 너그러운 남성이라고 여기지만, 심리상담사 조디가 보기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가진 탓에 아직도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 토드의 과장된 자기 인식과 조디의 냉철한 분석에서 오는 시각 차이는 『조용한 아내』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 말하지 않는 아내, 칼을 든 아내. 가정 스릴러의 주인공.
『조용한 아내』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가정과 부부 관계를 소재로 한 가정 스릴러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장르는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강선재 옮김, 푸른숲 펴냄)를 선두로 ‘살인자 아내’를 선보인다. 그들은 기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기대를 배반하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이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가 파격적인 모습으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면, 『조용한 아내』의 조디는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모습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부부와 다름이 없다. 조디가 가정의 평안을 위해 침묵하기로 선택한 것이나, 조디의 노력을 배반하고 애인에게 떠난 토드에게 느끼는 분노는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덕분에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적힌 작품임에도 마치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는 듯 몰입할 수 있다. 조디가 그 분노를 어떤 식으로 해소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독자들은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구매가격 : 10,2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