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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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도서정보 : 장강명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1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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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유토피아, 혹은 오색찬란한 디스토피아
누구나 꿈꾸었던 기술의 발명,
그로부터 시작된 예측 불허한 일상
근미래 기술의 빛과 어둠을 그린 흥미진진한 ‘STS SF’

『표백』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재수사』 등의 소설과 르포집 『당선, 합격, 계급』 등을 펴내며 우리 사회에 날카로운 화두를 던지고 동시대 독자들과 부지런히 호흡해온 작가 장강명의 신작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 출간되었다. “이 시대에 어떻게 질문하는지, 왜 질문하는지, 무엇을 염려하는지 확인하게” 해준다는 심사평을 받은 심훈문학대상 수상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일본의 권위 있는 SF 문학상인 성운상 해외 단편부문 후보작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등 총 7편이 수록되었다. 1990년대에 일찍이 『과학동아』 『베스트셀러』 등의 잡지에 SF 단편과 칼럼을 실어왔고 월간SF웹진을 창간해 2001년까지 운영해온 작가는 SF에 대한 애정과 소양을 이번 소설집에서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번 소설집의 장르를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라고 명명한다. STS란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과학기술이 “여러 영역에서 우리 사회에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특별 소책자 ‘코멘터리 북’에 수록된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이자 STS의 권위자 홍성욱과의 대담에서 SF를 “사회에 대한 사고실험”이라고도 설명한바, 작가의 그러한 사유가 편편이 녹아 있는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급변하는 우리 사회를 한층 깊어진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이 열띤 사고실험에 동참시킨다.
『지극히 사소한 초능력』(2019)에 수록되었던 네 편의 중단편을 STS의 시선에서 다시 다듬은 뒤 세 편의 신작과 함께 선보이는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새롭게 읽히고 더욱 뜨겁게 논의될 만한 하나의 ‘화두’이다. 작가의 전매특허인 흥미진진한 설정과 몰입도 높은 플롯, 생생한 장면 묘사 또한 이야기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타인의 기억을 체험하는 기계, 증강현실 기술, 엽록체 이식 수술,
육체 부활 장치, 인간관계 예측 분석 앱…
삶의 풍경이 뒤바뀐 시대의 면면

표제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STS SF’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단편이다. 눈앞의 풍경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증강현실 기술 ‘옵터’가 상용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증강현실 규제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바다 위의 크루즈선에서 생활하며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통솔하는 가상현실에 안주하려는 “옵터 중독자”(9쪽)들의 모습을 그린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가 진짜인지, 진짜보다 진짜 같은 거짓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는 문제작으로,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편집되는 기이한 모습과 가상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인물들의 서늘한 대화 장면을 통해 근미래의 황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 가상현실로 도피한 이들의 심리를 다룬다면, 「당신은 뜨거운 별에」는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척박한 섭씨 400도의 행성 금성에서 고군분투하는 과학자 ‘수정’의 몸에 초점을 맞춘다. 거대 자본을 거느린 어느 탄산음료 회사가 우주로 파견한 과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람의 몸과 머리를 분리하는 생체 기술을 개발하고, 수정은 몸을 지구의 냉동 시설에 맡긴 채 머리만 금성으로 보내진다. 금성을 탐사하던 수정은 어느 날 과학자들의 몸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회사의 비윤리적인 비밀을 알게 되고 탈주를 계획한다. 소설은 효율성이 극대화된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펼치면서 몸의 소유권을 침탈당한 여성의 울분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한편,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등장하는 대체 역사소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타인의 기억을 주입받을 수 있는 ‘체험 기계’가 발명됨에 따라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그린다. 유대인위원회는 아이히만을 체험 기계에 넣어 그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겪고 반성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그 자리에 기자단을 초청한다. 소설은 유대인 공동체와 과학계, 그리고 각국의 기자들의 반응을 다각도로 묘사하면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본다’라는 도덕적 황금률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연쇄살인마, 성폭력범, 아동 학대범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을 굳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야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인가? 단순히 그들이 우리와 닮은 존재여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한계가 안 좋은 방향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가?
(...)
“종종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앞선 세 편의 소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공동체 전방위에 가해지는 충격파를 보여주고 있다면, 「나무가 됩시다」와 「사이보그의 글쓰기」는 새로운 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인 채 생활하는 개인의 내면 속 파문을 그려낸다. 「나무가 됩시다」는 피부에 엽록체를 이식하는 ‘그린 라이프’ 수술을 받은 사람이 쓴 수기 형태의 단편이다. 빛을 받아 양분을 흡수하는 식물처럼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게 된 트랜스휴먼의 모습을 통해, 먹고살기 위해서는 생명을 살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죄와 그 죄에 대한 완전한 해방의 가능성을 질문하는 흥미로운 단편이다.
「사이보그의 글쓰기」는 소설 속 화자 ‘장강명’이 슬럼프를 겪으며 얻은 우울증을 떨치기 위해 플라스마 헤어밴드를 착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플라스마 헤어밴드는 집중력을 극대화해 지루한 일에도 강렬하게 몰입하게 해주는 특수 발명품인데, 소설 속 장강명은 이 물건을 쓰며 점차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진다. 소설 속 헤어밴드와 같은 발명품을 한 번쯤 꿈꿔보았을 작금의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오답을 쌓아가며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구성하게 하는 소설

「아스타틴」은 한 편의 장대한 우주 활극으로, 목성과 토성권에서 우주 사회를 이룩한 천재 과학자 ‘아스타틴’을 그린다. 그는 육신을 무한히 재생할 수 있는 부활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대대로 다시 태어나면서 신적인 존재인 초지능통합체로 거듭난다. 자기 자신을 열다섯 명으로 복제한 그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과 지능을 지닌 한 명의 개체를 최종 아스타틴으로 선정하는 부활식을 고안해낸다. 세상의 근본적인 생태를 송두리째 바꿀 만한, 길들일 수 없는 야수 같은 기술에 잠식된 포스트휴먼 시대의 이 생존 게임은 읽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침내 커다란 갈등이 해소되면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결말부는 두말할 것 없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작품집의 말미에 수록된 「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관계 지속 가능성을 예측하는 앱이 상용화된 사회를 그린다. 성격도 살아온 배경도 판이하게 다른 ‘이유진’과 ‘송유진’은 우연한 계기로 사랑에 빠지지만, 데이터 예측 앱이 전망하는 두 사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두 사람은 그 예측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끝내 앱의 예측대로 이별하고 만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묘미이다. 아무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은유된 삶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은 제거하기도 제어하기도 어렵다고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또한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오답”을 선택함으로써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가는”(본문 중에서) 것. 급변하는 기술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데 필요한 모험적인 용기와 주체적인 시선은 그렇게 함양되는 것 아닐까.

구매가격 : 11,900 원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문학동네시인선 196)

도서정보 : 정영효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1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나는 맞추고 나는 쌓는다
이것은 벽이 될 수 있고”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해체하고
그 낱낱을 들여다보는 골똘한 시선

문학동네시인선 196번으로 정영효 시인의 두번째 시집을 펴낸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과 함께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계속 열리는 믿음』(문학동네, 2015)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그들이 속한 현실의 공간을 자신만의 구조로 재구성하며 “현재적 일상의 시공간에 스며든 시원적인 것의 흔적을 돋을새김의 필치로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무심하면서도 첨예하게 절제된 하드보일드 문체와 더불어 철학적 알레고리의 풍모가 스며”(문학평론가 이찬)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 이후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더욱 집요하고 골똘해진 시선으로 일상을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데 천착해온 그의 신작 시 50편을 엮어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타난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해도 약속이 있고 설명이 있어서
(…)
거기는 다른 곳임을 알았는데 나타난다 어디로든 이어지기 위해 드러났고 정확하게 믿을 때 가까워진다
찾으려고 하면 언제든 앞에 있다
_「일층」에서

이번 시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에 비해 더욱 간명해진 각 시편의 제목들이다. 시집의 문을 여는 「일층」을 비롯해 「기숙사」 「블록」 「외국인」 등 수록 시 대부분이 단순한 제목을 통해 그 내용을 먼저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시집의 제목인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아직은 모른다」)를 경유하며 전복되는데, 제목이 말하는바 날씨가 됨으로써 안개가 자유를 빼앗겼듯 일층 역시 그 정의에 따라 ‘여러 층으로 된 것의 맨 첫째 층’을 뜻하는 ‘일층’이 되는 순간 자유를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정의함으로써 그 대상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고 구속되는 것이다. 때문에 정영효는 ‘자유를 박탈당하기’ 전의 상태를 골똘히 응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타난다”는 시의 첫 문장을 통해 우리는 시가 지시하는 것이 이미 존재하는 보통명사로서의 일층이 아니라 이를 의심하고 질문하여 되짚을 때 나타나는 대상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시집의 제목을 담고 있는 시 「아직은 모른다」를 눈여겨볼 수 있다.

울타리를 넘기 전까지 염소는 온순했다 의심하기 전까지 거짓은 단순했다 무서워지기 전까지 표정은 희박했으며 선택하기 전까지 분명히 기회가 있었다 말하지 못해서, 말보다 자신이 더 확실해서 드러나기 전까지 증거는 숨어 있었다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외국인으로 불리기 전까지 그는 어느 도시의 시민이었다
_「아직은 모른다」에서

시는 “울타리를 넘기 전” “선택하기 전” “날씨가 되기 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일이 일어난 뒤 그전을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 시의 제목이 ‘아직은 모른다’라는 사실이다. 1부의 명사형 제목들 틈에 놓여 있는 이 문장형 제목은 정영효의 시를 읽는 힌트가 되어주는데, 그것은 시인이 지어놓은 시의 구조와 관계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간명한 제목을 내걸고 있는 많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아니었는데 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몰랐는데 남이 알아볼 수 있다”(「외국인」), “줄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줄을 벗어나면 안 된다 앞을 바라봐야 하지만 앞을 넘어서면 안 된다”(「투어」), “갑자기 건물 안을 뒤지기도 하고 건물 밖을 서성이기도 한다 건물과 상관없는 곳에 있으면// 건물 때문에 달려오기도 한다”(「건물주」). “제목에서 끝나는”(「제목에서 끝나는」, 『계속 열리는 믿음』)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시편들은 그러나 제목의 자리를 ‘아직은 모른다’고 비워두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이 짚어 보였듯 정영효의 시에서는 “진술의 내용이 아니라 진술의 방식이,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대면하는 시인의 자세가 그 자체로 중요”(해설에서)하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시들은 한 편의 의미심장한 수수께끼, 곧 질문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제목들은 시에 대한 대답이 아닌 시를 향한 질문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누군가 가르쳐주는 길을 겨우 알아”듣고 “계속 두리번거리는”(「외국인」) 이는 누구일까? “이것은 벽이 될 수 있고// 이것은 집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계획할 수 있으며 이것은 무너질 수 있다”(「블록」)의 ‘이것’은 무엇일까? 정영효의 시는 ‘이것’이 무엇인지 단정하기보다는 그저 “끝을 열어”(「명분」)둘 뿐이다. 그럼으로써 고정되지 않은 풍부한 의미들이 새롭게 싹틀 수 있도록.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라는 진술에 등장하는 ‘안개’에 대해 시인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시인은 “여전히 설명을 미루고 있다”. 여기에서 설명은 종결, 즉 결론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사태에 직면하여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잠재성을 부정하는 것, 그리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의미이다. (…) “확실함을 믿지 않는 곳에서는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질문이라고 부른다”는 시인의 진술을 신뢰한다면 정영효의 시는 ‘질문’의 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질문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일을 생각이라고 부른다”(「언덕을 넘는 사람들」)라는 시인의 말에 동의한다면 정영효의 시는 생각을 위해 ‘설명/결론’을 유보하는 ‘사유’의 시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그에게 있어서 시적 윤리는 대상에 대해 속단하지 않는 것, 빠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잠재성을 봉합하지 않는 것이다.

_고봉준(문학평론가), 해설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가장 평화로운 광경”임을 알면서도 끝끝내 뾰족한 질문을 던지고야 마는 정영효 시의 화자는 “비슷한 모습들이 비슷한 일들을 감추는 평화”로운 상태를 떠나 “나를 드러낸 채 뜨겁게 달리고 싶”(「종착지」)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느새 답하기 어려운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되어 있는 이 시집 앞에서 우리는 그저 시인을 따라 “내용이 가리키는 것을 기억”하며 “제목이 감추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으로 들어서면 문밖의 질문으로 가득차버리는 곳”(「자료실」)에서, 간명하게 놓여 있는 제목은 지워버리고 그 내용만을 맞추고 쌓으면서. 그렇게 쌓아올린 것을 다시 또 부수고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그 마음은 또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른다. 다만 그 “이름이 저무는 쪽에”(「도달할 미래」) 선 우리가 비로소 “조금 더 먼 곳에 도착”(「종착지」)할 것임은 알 수 있다.

구매가격 : 8,400 원

더 게임

도서정보 : 김인숙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0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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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른 자와 죽은 자와 죽인 자,
사건에 연루된 모두가 단단한 침묵으로 결속된 가운데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가는 범죄 피해자와 퇴직 형사 콤비의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심리 추리극!

데뷔 40년 차,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섭렵하며 작품성을 공인받은 “소설 장인”(문학평론가 신형철) 김인숙. 그가 신작 장편소설 『더 게임』으로 인간 존재의 심연을 골똘히 파고들던 그간의 김인숙 소설세계를 잊게 할 정도로 속도감 넘치고 짜릿한 미스터리를 선보인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간파해온 작가의 시선이 ‘장르적 서술’이라는 도구를 만나 더없이 완성도 높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독서에 이완과 긴장을 부여하는 숙련된 리듬, 철저하게 계산된 서술 속에 숨겨진 단서들, 그 단서를 조합해나가며 수수께끼의 정답으로 수렴하는 깔끔한 전개를 두루 갖춘 이 작품이 작가가 본격적으로 시도한 첫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소설은 기록적인 폭염이 들끓고 유독 대형 사건 사고가 많았던 1994년, 한 개인의 삶을 뒤흔든 습격사건 속으로 독자를 이끌고 간다. 그 습격으로 인한 상처를 딛고 일찍이 자수성가했으나 폭력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은 주인공 ‘황이만’, 황이만의 사건을 담당했던 인연으로 장기 미제사건을 다시금 파헤치게 된 까칠한 베테랑 퇴직 형사 ‘안찬기’, 황이만이 습격당한 바로 그날 실종된 남동생을 20여 년간 찾아 헤매며 고통으로 단련된 미스터리한 인물 ‘김주희’의 움직임이 얽히고설켜 비극적이고 장엄한 복수의 서사를 완성한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살인마의 등장으로 눈길을 끄는 이 소설은 앞으로 한국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품격 높고 신선한 미스터리의 선례가 되어줄 것이다.


1994년 7월 24일 밤 9시 54분 2초, 나는 칼에 찔렸고
22년 후 같은 장소에서 누군가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

성공한 게임 회사 대표 황이만은 청년 시절에 데이트 도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칼부림에 휘말렸다. 그 직후 여자친구 이연희는 종적을 감춰버렸고, 황이만은 한동안 그녀의 행적을 좇았다. 처음에는 칼에 찔린 자신보다 이연희의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황이만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억울함과 울분이었다. 자신이 왜 그런 끔찍한 폭력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그후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이연희는 자신과의 관계를 그토록 사소하게 여겼던 것인지 황이만은 자학하듯 되뇐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과 감정이 점점 희미해지기는 했으나 그날의 사건은 황이만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22년 후, 황이만은 ‘dufma0724’라는 낯선 아이디로부터 의문의 메일을 받는다. 황이만이 피습된 날짜가 적힌 그 아이디를 황이만은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메일에는 한 소년이 피웅덩이 위에 쓰러져 있는, 섬뜩한 화풍의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다. 그리고 그 직후, 황이만은 TV에서 칼부림이 발생한 골목에 묻혀 있던 누군가의 백골 사체가 발굴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황이만과 무관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 백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죽음은 황이만이 겪은 폭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dufma0724의 메일은 백골의 등장과 동시에 새롭게 시작된 어떤 게임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초대장일까.
황이만은 22년 전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퇴직 형사 안찬기에게 사설 탐정 역할을 의뢰한다. 안찬기는 노련한 수사를 통해 관련 인물을 조사하던 중 사건에 연루된 여성들에게 묘한 의구심을 느낀다. 오직 황이만을 피하기 위해 잠적한 듯한 이연희, 백골로 발견된 이의 친누나로서 황이만과 마찬가지로 그날의 폭력에 휘말렸음에도 텅 빈 인형처럼 고요해 보이는 김주희. 그들에게는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감춰둔 비밀이 있는 듯한데……

『더 게임』은 김인숙이 2019년 발표한 중편소설 『벚꽃의 우주』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작품이다. 각각의 완결성을 지니고 서로의 스핀오프가 되어주는 두 소설을 함께 읽을 때 발견하게 되는 뜻밖의 비밀은 작가가 부가적으로 마련해둔 참신한 재미 요소이다.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던 제각각의 살인사건이 아주 작은 단서를 발견함으로써 연쇄살인으로 꿰어지듯이, 김인숙은 세심한 설정을 통해 『더 게임』의 안팎에 부려놓은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만들어낸다. 한 기묘한 살인마의 시작과 끝을 담아낸 김인숙의 미스터리가 지닌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이 책은 작가의 다음 변신을 숨죽여 기다리게 만든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구매가격 : 11,900 원

바캉스 소설

도서정보 : 김사과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0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압도적인 환상미, 거침없는 전개
환락의 섬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판단을 내릴 틈도 없이 이야기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을 자랑하며 굳건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소설가 김사과의 신작 장편소설 『바캉스 소설』이 출간되었다. 인간성을 통제하는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특유의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여온 김사과에게는 지금껏 한국소설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리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바캉스 소설』은 회사에서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 ‘K-직장인’들이 제주로 바캉스를 떠나 펼치는 코믹하고도 잔혹하며 극도로 환상적인 모험을 그려 보이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한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게 100억원을 쥐여주고, 직장인들이 그들의 바람대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지 관찰한다. 소설 속에서 걸핏하면 술과 약물에 취하며, 명품 잡화를 몸에 걸치고 슈퍼 카의 핸들을 쥔 채 절규하는 캐릭터들은 부에 대한 현대인의 판타지를 냉소적으로 꼬집는다.
『바캉스 소설』은 눈앞에 그려지는 듯 생생한 장면 묘사와 미적으로 긴장된 미장센을 통해 소설에서도 ‘영상미’를 논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독특하고 전위적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 재탄생한 대도시의 사무 공간과 제주의 풍경에서 광기 서린 아름다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김사과 소설이 이루어낸 또 한번의 성취이다. 이 매력적인 무대 위에서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 피해자의 유령이 곳곳에 출몰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면이 뒤집히고, 사건의 전말은 예기치 못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며 스릴을 자극한다. 무엇보다도 유희로서의 읽기를 염두에 두고 쓰인 이 소설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우리는 이 질주하는 서사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회사에서 버림받은 두 직장인 남녀가 유배된 곳은
매끈하던 풍경이 핏빛으로 물드는 영원한 여름의 세계
지금, 코믹하고 선정적이며 잔혹한 바캉스가 시작된다

기후 위기로 인해 제주도가 열대 지역으로 변해버린 근미래, 세계적인 규모의 금융 컨설팅 기업 FWIS에서 일하던 이로아는 회사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주식을 통한 경제적 자유를 꿈꾼 대가로 회사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다. FWIS 한국 지사장 뤼카스 휘스먼은 백인 사업가로서 자본주의의 현신과도 같은 인물이면서, 프랑스문학을 향유하고 사자성어를 구사하며 이로아가 지닌 체제 전복에 대한 로망에 공감하는 것으로 자신의 오픈 마인드를 과시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는 이로아가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이후로 회사생활에 여유롭게 임하며 기업의 질서를 동요시키자 냉정하게 이로아를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아가며 헌신적으로 일해왔음에도, 이로아는 더이상 회사에 삶을 완전히 내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진을 가장한 인사이동을 겪는다. 곧이어 감당하기 버거운 프로젝트를 할당받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 이로아의 본능적인 투자 감각은 그녀에게 1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안겨주고, 이로아는 퇴사 후 제주로 부유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효용가치를 잃고 방출되어 온 신해남과 얽히게 된 이로아는 점차 그와 진한 관계를 맺는다. 제주에서 사업을 한다는 신해남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이로아는 자신이 도망쳐온 제주 또한 개발의 광풍에 휘말려 자본에 잠식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주에 도착한 후 초호화 리조트의 최첨단 객실에 머물면서도 밤마다 잠을 설치던 이로아는 어느 날 한밤중에 나타난 여자아이의 환영을 본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기억을 되살려 이로아는 신해남과 함께 여자아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지난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여자아이가 싸늘한 주검이 된 것을 발견한다. 여자아이의 죽음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 이로아는 신해남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이 세계에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면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메워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러나 신해남의 친구들을 비롯해 섬에 도사린 위험을 감추려는 세력이 이로아에게 접근하며 점차 그녀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투자자 자격으로 제주에 내려온 뤼카스 휘스먼과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이로아는 자신이 거대한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는데……
성공적인 투자에 따른 인생 역전,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 자유로운 쾌락 추구에 대한 판타지 등, 『바캉스 소설』은 현대인이 어느 때보다 열광할 다양한 설정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최적의 지점들을 자극한다. 현대사회의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포착,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그럼에도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통탄을 기발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한데 녹여낸 이 소설은 김사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각적인 스타일을 한껏 드러내 보인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구매가격 : 11,200 원

달의 바다(개정판)

도서정보 : 정한아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0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픔을 부드럽게 감싸는 긍정
가볍게 뒤통수를 치는 듯한 반전의 경쾌함
과학적 사실조차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이야기

기자가 되기 위해 5년을 준비했지만 실패하고 백수로 남은 은미는 할머니로부터 특명을 받는다. 임무의 내용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 간 후 16년간 소식이 없던 고모를 찾아 만나고 오라는 것. 그동안 고모는 할머니에게만 몰래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그 편지에는 고모가 미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가 되었으며 멋진 활약 끝에 달로 완전히 이주해 살 예정이라는 거짓말 같은 소식이 실려 있다. 편지에 묘사된 우주의 풍경과 우주선 안에서의 생활, 고모가 성공시켜야만 하는 업무의 디테일은 고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세세하다.
하지만 은미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로 일하며 우주를 유영한다는 꿈같은 일을 고모는 정말로 하게 된 것일까. 사실 거짓말 예찬론자였던 고모는 어린 은미가 거짓말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은미를 따끔하게 가르친 뒤, 거짓말이 인생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든다며 너그럽게 용서해준 적도 있었다. 고모는 심지어 아들 찬이를 임신한 것조차 감쪽같이 속여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던 고모는 그후 결혼해 미국으로 갔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찬이만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채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딸이 낭만적인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 굳게 믿는 할머니는 고모가 달로 가서 더이상 연락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은미는 트랜스젠더가 되려는 잘생긴 남사친 민이와 함께 고모를 찾으러 낯선 세계로 떠난다. 고모의 활약상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도착한 미국에서, 은미와 민이는 인생의 비의를 깨닫고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넌 포기한 게 아니야, 잠깐 쉬는 거지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밤에도 반드시 끝은 오고
환해진 아침은 어제와는 다른 풍경으로 감각되니까

소설은 고모가 우주비행사로 일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흔적들과, 우주비행사라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고모의 삶의 모습을 긴장감 있게 오가며 독자를 고모가 감춘 비밀로 이끈다. 진실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고모가 지닌 경험의 깊이와 그로부터 비롯된 구김살 없는 낙천성은 은미를 통과해 읽는 이에게 전해져오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준다. 살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거대한 좌절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 그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주어진 상황은 물론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언젠가 변화를 맞으며, 삶은 영영 지옥으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메시지가 적실한 희망을 안겨준다.
고모를 통해 삶이 언제나 꿈과 낭만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가끔씩은 낭만을 가장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은미는 자신이 진짜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현실적인 일을 찾아 나서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청춘의 완결’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표현해낸 2007년, 정작 작가 자신은 스물여섯의 나이로 청춘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한아가 일찍이 획득한 인생에 대한 깊고 정확한 통찰력이 청년기의 생생한 고민과 맞닿아 일어난 폭발적인 시너지가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이끌어간다.
개정판 『달의 바다』는 어느덧 원숙한 중견작가가 된 정한아가 첫 장편을 낸 젊은 작가였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펴낸 책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원고를 다시 다듬으며 젊은 패기로 반짝이는 작품의 매력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더욱 원활한 독서를 뒷받침할 서술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조금의 부족함이나 넘침이 없는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어냈다. 책의 말미에는 『달의 바다』를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당시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와 정한아 작가의 그리움 가득한 대담이 수록되었다. 소설 속 은미가 고모와 재회하기까지 걸린 16년의 세월, 꼭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 소설가 정한아도 새로운 모습의 『달의 바다』를 통해 자신의 소설세계를 되돌아본다. 한 작가의 소설적 기원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조명하는 이 책은 소설을 독해하는 재미를 다각도로 모색하게 해준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

집으로 가는 길

도서정보 : 로즈 트러메인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28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소외되고 외로운 삶들의 기록자, 로즈 트러메인의 대표작
가족을 떠나 낯선 땅에서 홀로 서야 하는 ‘레브’의 여정

“마음속에 슬픔이 있어요.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고,
그러다가 슬픔이 불쑥 찾아와요.”
“알지. 슬픔이 그렇다는 걸.”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 슬픔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요?”

무분별한 벌목으로 더는 자를 나무가 없어진 마을. 제재소에서 일하던 레브는 실직자가 되어 방황하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고향에 두고 온 노모와 어린 딸, 병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며 마음속에는 늘 뭉근한 슬픔이 고여 있다. 마침내 어느 레스토랑의 설거지 담당이 된 레브. 착실히 돈을 모아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굳은 결심도 매일이 낯선 타지에서는 매번 길을 잃고 마는데…… 그럼에도 소중한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려는 레브는 과연 꿈꾸던 행복을 만날 수 있을까.

뉴요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이 소설은 한 나라에 마음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수백만 명의 삶을 탐구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거칠고 생기 없는 상황에서 본질적인 선함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소외된 이들의 삶에서 소중하고 진실된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 로즈 트러메인

로즈 트러메인은 1976년 장편소설 『새들러의 생일Sadler’s Birthday』로 데뷔한 이래 오십 년 가까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영국의 중견 작가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2013년 동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2020년에는 글쓰기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수훈했다. 국내에는 또다른 대표작 『구스타프 소나타』로 알려진 작가다.
로즈 트러메인은 ‘절망과 외로움의 기록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소외된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해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가적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스무 종 넘는 작품을 발표하며 부커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 페미나상, 휫브레드상, 오렌지상 등의 후보자 및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2008년 『집으로 가는 길』로 매년 우수한 영국 여성작가에게 주어지는 오렌지상을 수상했다.


더이상 자를 나무가 없어 문을 닫은 제재소와 쇠락해가는 마을,
상실과 변화라는 물결 앞에 내던져진 인물들의 외로운 여정

동유럽의 한 작은 마을, 주인공 ‘레브’는 자신이 일하던 제재소가 문을 닫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다 대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여전히 마을에 남아 방법을 찾아보려는 이들과 달리 새 도시에 가서 빨리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한다. 다만 고향에 두고 온 노모와 어린 딸,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며 그는 늘 마음속에 뭉근한 슬픔을 품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한 레스토랑의 설거지 담당이 된 레브는 타고난 성실함과 눈썰미로 셰프에게 인정받으며 자신도 이 타국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한편으론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알지 못했던 행복과 함께 쓰라린 슬픔과 혼란도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 세상은,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가 등골이 휘도록 일할 곳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구석지고 그늘진 곳을 찾아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자신의 가슴은 고국에 두고 왔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것이다. (12p)

십 파운드짜리 지폐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니, 오랜 시간 설거지물에 담근 바람에 익히지 않은 순무처럼 살갗이 벌겋게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게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다. 지성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순무 같은 모습. (191p)

고된 레스토랑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제법 현지의 생활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레브는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고향 마을이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평생 세상에 저항 한번 해본 적 없이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노모, 아직 세상의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하는 어린 딸, 갈수록 어려워지는 생업과 마을 사정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진 친구…… 예정된 비극 속에 소중한 이들을 두고 레브는 자기 혼자 이 화려한 도시에서 무얼 쫓고 있는 건지 깊은 혼란에 빠진다. 과연 레브는 자신이 꿈꾸던 일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 인간의 내면에 고여 결코 녹아 없어지지 않을 근원적 슬픔,
그럼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호출하고 위로하는 관계와 세계

『집으로 가는 길』은 무언가를 꿈꾸고 시도할 수 없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화려한 대도시 런던에서 홀로 서고자 분투하는 주인공 레브의 여정을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는 한편, 인물들 저마다가 내면에 품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고독과 우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 필연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법, 비록 그 어둠이 길고 길지라도 결국 끝이 있다고 믿을 수 힘이란 내 주변의 작은 세계와 소중한 관계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레브의 외롭지만 착실한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을 이 소설은 한 나라에 마음을 두고 다른 나라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수백만 명의 삶을 탐구한다”라는 <뉴요커>의 평처럼, 이 소설은 ‘이방인으로서 홀로 서기’라는 경험의 테두리에 속했거나 혹은 그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준다.

구매가격 : 12,300 원

나의 문학 답사 일지

도서정보 : 정병설 / 문학동네 / 2023년 08월 01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구매가격 : 11,300 원

루의 실패

도서정보 : 강산 / 이야기장수 / 2023년 07월 19일 / PDF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환상적이지 않은 삶에 사무쳐본 작가만이
이런 이야기를 그릴 것이다.
너무 웃기고 너무 슬픈, 이 애석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_이슬아(작가)

이슬아 작가가 강력추천하는 벼랑 끝에 선 젊음에 대한 이야기

여기 좀 이상한 젊은이들이 있다. 눈앞을 늘 빨간 머리 커튼으로 가린 채 세상과 자신 사이에 벽을 치는 청년은 말하는 법을 잊은 듯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반면 네 발에 운동화를 야무지게 신은 개는 어쩐 일인지 따박따박 말을 하며 주위의 한심한 인간들에 대해 탄식하고 일침을 놓는다. 머리가 박스형으로 된 네모 청년은 네 개의 눈에서 폭포처럼 눈물을 쏟는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세상에 끊임없이 발신하는 청년이 있고, 온갖 쌍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세상에서 제일 마음 약한 젊은이도 있다. 이 젊은이들은 좀, 애석하다. 웃기고 심플하게 살고 싶지만 인생은 한정 없이 복잡하고 아득하게 꼬여간다.
지금까지 MZ세대에 대한 편견과 비아냥으로 규정당해온 청년들의 모습이 아닌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한 만화 『루의 실패』가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SNS나 웹툰을 통해 인지도를 모으고 다음 수순으로 종이책을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인 요즘의 만화 시장에서 신예 만화가 강산은 어디에도 연재하지 않은 이 괴상하고도 친근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출판만화로 처음 선보이며 데뷔한다.
미디어를 통해 비쳐진 ‘MZ세대’는 이기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재수 없는 미친놈처럼 그려질 때가 많다. 그러나 현실의 MZ세대들은 고민하고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끊임없이 현실의 늪에서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청년의 패기와 꿈이 공상이나 망상, 내지는 한때의 회상으로 시들어가는 일이 더 많은 요즘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성공과 ‘갓생’을 향해 달려가는 매스미디어 속 건실한 청년들의 모습 뒤로 평범하고 흔한 젊은이들의 실패와 절망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주목해야 할 신예 만화가 강산은 ‘욕하기 좋게 빚어진 미친놈들’ 같은 요즘 세대가 아닌 애석하고도 애틋한 우리 곁의 젊은이들의 서사를 그려나간다.


추락하고 있는데 붙들 손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 루다

『루의 실패』는 ‘반복’ ‘발작’ ‘지각’ ‘구토’ 등 예외 없이 두 글자로 된 제목이 달린 에피소드 22편으로 이루어진 만화다. 각 에피소드에서는 루, 블래키, 솜차이, 슬기, 네모, 최정원 이 여섯 캐릭터들이 각각 주연이 되었다가 조연이 되기도 하며 서사를 쌓아간다. 이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에피소드와 인물로부터 기시감을 느꼈다가 때론 괴리감을 느끼는 것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루의 실패』 속 캐릭터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언젠가 바닥에 굴러떨어졌을 때, 최악의 시절이었을 때의 우리, 그럼에도 그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애쓰던 어느 한 시절의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만화가 웃기지 않고 걱정스럽기만 하다면,
당신은 루보다 더 심각하게 고장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루는 매일 그렇듯 누군가로부터 또다시 실패를, 쓰라린 상처를 당하고 혼잣말을 한다.
“하~ 새끼 유머를 모르네~”
많이 웃고 싶고 남을 웃기길 좋아하는 루가 ‘유머를 모르는 새끼들’의 세계를 혼자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러다 눈 쌓인 더러운 골목에 벌러덩 넘어진다. 창백한 하늘에는 별도 구름도 없다. 루의 눈앞엔 전깃줄만이 거미줄처럼 드리워져 있다. 루는 죽은듯이 누워 그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찰칵’. 루는 그 카메라로 자신을 찍었을까? 칠흑 같은 하늘을 찍었을까?
강산 만화 『루의 실패』는 마치 이 장면처럼 대수롭지 않은 실패들을 매일 거듭 당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당사자가 휴대폰카메라로 툭툭 찍어낸 듯한 순간들이 담겨 있는 만화다. 이슬아 작가는 “이 만화가 웃기지 않고 걱정스럽기만 하다면,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아마 당신은 루보다 더 심각하게 고장난 사람일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실패한 사람을 가만 두고 바라볼 수 없는 마음, 실패한 젊은이에게 그냥 손을 내밀어주거나 나도 사실 별다르지 않다며 웃어주지 못하고, 자꾸 훈계하고 고함 치는 사회는 어딘가 망가져도 크게 망가진 것이 아닐까?
이제 당신의 눈으로, 삶으로 『루의 실패』를 마주할 차례다. 아직 딱딱해지지 않은 마음의 소유자라면, 이 애석한 젊은이들의 실패에 너그러이 미소를 띄우거나 혹은 나랑 똑같다며 폭소를 터뜨리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2,800 원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도서정보 : 이반지하 / 이야기장수 / 2023년 07월 0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독보적 유머리스트 이반지하 신작 에세이
차별과 억압을 뚫고 나온 천재적 광대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위험하고 놀라운 농담

사람들은 이반지하를 보고 웃는다.
이반지하는 사람들을 보고 더 크게 웃는다.

2023년 5월 17일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앞두고 독보적 퀴어 아티스트이자 유머리스트인 이반지하의 신작 에세이가 출간된다. 이반지하의 작가명은 퀴어의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위태로운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상징하는 ‘반지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첫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서 제목에 ‘퀴어’를 내걸고, 퀴어이자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삶의 이력을 써내려갔던 이반지하는 데뷔작으로 ‘알라딘 올해의 책’,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등에 잇달아 꼽히며, 현대미술가, 뮤지션, 애니메이션 감독에 이어 에세이스트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깊게 각인시켰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는 이반지하의 두번째 에세이이자 세상을 향한 농담집이다. 성적 지향이라 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두고 ‘차별씩이나’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반지하가 옆구리 쿡 찌르며 건네는 웃음보따리이자, 서늘한 질문이다. 이토록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의 세계에서 종횡무진 그리고 쓰고 농담하고 노래하는 광대, 이반지하. 2004년부터 퀴어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이반지하가 메인스트림에 등장했을 때 놀란 헤테로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재밌는 걸 그동안 퀴어들만 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사람들은 이반지하를 보고 웃는다. 이반지하는 사람들을 보고 더 크게 웃는다.
이것은 독보적 유머리스트 이반지하가 열어젖힌 새로운 유머의 세계이다.


메인스트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 소수자성이 메인스트림에서 유통되고 소화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버텨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번듯함, 경력, 이름값을 얻는다는 것, 그것이 허락하는 달콤함, 하지만 여전히 너무 같거나 달라서는 안 되는 위태로운 생존 방식, 따뜻하고 상냥한 혐오에 계속해서 찔리게 되는 나의 맨살 같은 것.
앞으로도 계속 웃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이다.
_에필로그에서


“인생은 개망신과 수치심의 연속이다”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제목에서부터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라는 오직 이반지하만이 당당하게 간판으로 내걸 수 있을 듯한 파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반지하는 책장을 넘기면, 이내 서두에서부터 자신이 웃긴 이유에 대한 힌트를 짐짓 알려준다.
그가 웃긴 이유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삶과 예술이 너무 웃기다고 박수치지만, 아무도 이반지하처럼 살고 말하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닮고 싶어하거나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웃기는 삶. 멀리서 호기심으로 힐끗 바라보고 웃고 응원하다가 슬쩍 지나치고 재빨리 묻어두는 삶. 그의 퀴어 친구들은 늙기도 전에 ‘흔하게’ 죽어가고, 그는 장례식장에 앉아 수시로 찾아오는 ‘퀴어 죽음’을 바라본다.

“아 제발 쫌 죽지 말고 늙기만 하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오늘만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이들을 모조리 찾아내 되도 않는 애교와 어리광을 권력처럼 부려대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죽음은 영원히 이르다며, 해준 것도 없는 주제 특유의 뻔뻔한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건넛상에서 울음소리로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피자가 살려낸 이들을 본다. 피자가 있어 피자의 장례에 올 만큼 늙어낸 사람들을 본다.
촘촘히 벽에 붙어가는 검은 리본의 행렬, 그리고 거기에 적힌 정의로운 이름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이들과 절대로 위대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나누고 난 후, 나는 이 모든 사람들 틈에서 언제쯤 죽어도 될지 눈치 게임을 시작해본다. (「피자」, 46~47쪽)

1부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이반지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가는 친구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시청에서, 광장에서 ‘여기 우리가 있다! 차별하지 말고 혐오하지 말라’고 외쳐왔지만, 자꾸만 과거로 역행하는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소수자로서,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다녔지만, 세상과 이반지하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일생에서 몇 번 정도 세상과 닿아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횟수가 아니라 면적이라면 어느 만큼일까 생각도 해본다. 다른 삶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고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나의 예술이 그들과 정말로 만나고 있나 생각해본다. 접촉면은 사실 기대보다 넓지 않을 수도, 양쪽 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아주 잠깐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삶의 시간 대부분을, 연결되지 못한 채 열렬히 닿고 싶어하는 그 애매하고 서투른, 벤자민 버튼식의 부적절한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반지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30쪽)


못다 뱉은 말, 퀴어! 꿈엔들 잊힐 리야, 성소수!

2부 「이반지하의 섭섭 세상」은 자꾸만 퀴어들에게 섭섭하게 구는 세상을 향해 이반지하가 날리는 돌직구이다. 이중 「부치의 자궁」이라는 글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남자 역할을 하는 부치들이 달고 태어난 자궁의 안녕과 건강을 묻는 이반지하의 탐사르포다. 살면서 딱히 ‘아들 낳는’ 자궁을 쓸 일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자궁이란 것을 달고 태어난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몸에 달린 자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자궁절제술’을 받은 부치와 자신의 자궁과도 제법 친하게 지내는 부치 등 이반지하가 취재한 다종다양한 ‘퀴어와 몸’에 대한 이야기가 반전의 웃음과 함께 펼쳐진다.
또한 선거 정국이나 방송사들에서 퀴어를 언급하긴 해야 하지만, 대놓고 말하긴 ‘쫌 그럴 때’, 이성애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을 놀려주는 유머도 호쾌하다.

‘성소수’ ‘퀴어’ ‘젠더’ 이런 사회적 합의가 안 된 애들 얘기를 대놓고 쓰기는 좀 그러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 싹 들어내자니 또 좀 그렇고 정말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그 거시기’를 추상적으로 버무려줄 어휘를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별종. 초겨울 기상이변 속 모기물림 같은 이 말이 방송 자막에 등장했을 때, 나는 위기에 내몰린 제작진들이 발휘해낸 번뜩이는 재치와 어휘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성애 사회는 얼마나 기발해질 수 있는가. 역시 방송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무릎이 절로 탁 쳐졌다.
맞네, 저런 말이 있었지.
나는 김빠진 탄식을 했다. ‘별종’, 정말로 잘 찾아낸 말이었다. 웬만한 젠더 부산물들을 퉁칠 수 있을 만한 제법 영리한 이성애적 돌파구로 보였다. 오늘날 매스미디어에서 심사숙고하여 내린 다양성에 대한 합의점은 ‘별종’까지인가보다 싶었다. 못다 뱉은 말, 퀴어. 꿈엔들 잊힐 리야, 성소수. 그래, 이 말을 하기가 많이 어려우셨겠다. (「섭섭 세상」, 155~156쪽)


어디에 부딪치든 딱 그만큼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작고 꽉 찬 싸구려 형광색 공,
나는 이반지하다!

3부 「이반지하의 바깥세상」은 이반지하가 뉴욕과 토론토의 전시 협업에 초청받아 출국했을 때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가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간 이반지하는 뉴욕과 토론토에서 다양한 퀴어 예술가들을 만나고 예술적인 자극을 받으며 바깥세상을 날아다닌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동양에서 온 퀴어 이방인’으로서 겪지 말아야 할 은근한 차별과 혐오의 순간들을 겪고 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고 찌그러지지 않는다. ‘어디에 부딪치든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형광색 공’처럼 그는 다시 세상 속으로 날아오른다.

구매가격 : 12,500 원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도서정보 : 황선우, 김혼비 / 문학동네 / 2023년 07월 13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황선우×김혼비―과로와 번아웃,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그만 일하고 더는 아프지 말고
이젠 나가서 놀자고
내 등을 힘껏 밀어준 어떤 우정에 대하여

황선우×김혼비, 최근 여성 독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두 에세이스트가 심상치 않은 제목으로 함께 책을 썼다. 제목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화두와 용기를 전해주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며 똑부러지게 일하고 말하는 ‘멋언니’로 각광받는 황선우 작가, 그리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와 『아무튼, 술』 등의 독보적인 에세이로 축구와 술 등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 여겨졌던 것들의 경계를 호쾌하게 걷어차버린 김혼비 작가―이 두 작가는 어떻게 편지를 주고받게 됐을까? 또 소위 ‘갓생’을 살아가면서 ‘열일’하는 서로를 응원하고 북돋울 것만 같은 이 두 사람이 결코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진 말자’고 결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선우, 김혼비 작가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번아웃과 과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일 피로와 무례에 시달렸음에도 너무 고단해서 오히려 잠들 수조차 없던 어느 힘겨운 밤에 대한 기록이며, 일상의 단어들을 자꾸만 잃어버려 건망증을 의심하면서 막막하게내 머릿속을 뒤적여보던 어떤 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느닷없이 장염을 겪으며 내 육신이 내장기관의 부속 껍데기처럼 느껴지던 어느 ‘한풀 꺾인’ 날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젖은 물미역’이 되어 샤워기 아래 유령처럼 서서 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던 어떤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누구나 겪곤 하는 이런 답답하고 막막한 시절을 지나는 동안 서로를 웃겨주고 일으켜주는 여자들의 유머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에게 시달리고 무너진 마음이 사람의 다정과 우정으로 회복되어 번아웃으로부터 끝내 회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례한 세상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꽤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핑퐁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두 작가의 목소리에는 말랑하고 산뜻한 웃음이 배어 있다.
“서로를 웃긴다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중 하나일 거예요.”
황선우×김혼비 두 유머 사냥꾼이 채집한 유머와 다정은 바쁘게 스쳐가고 스러지는 하루 속에서 팍팍해진 마음과 무표정한 얼굴에 끝내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

구매가격 : 10,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