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새의 선물
도서정보 : 은희경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2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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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도약으로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은희경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100쇄 출간을 기념해 장정을 새롭게 하고 문장과 표현을 다듬은 개정판으로 선보인다. 『새의 선물』은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60년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한국어의 묘미를 일깨우는 풍부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그 자체 장편소설의 교본으로 손색없을 뿐 아니라 한국소설을 그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결정적인 한 걸음이었다.
은희경 작가는 개정판 작업을 위해 초판을 출간한 후 처음으로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한다. 1995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한동안 청탁이 없자 멀리 지방에 있는 절에 들어가 몇 달간 작업한 끝에 완성한 자신의 첫 책을 말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가 작품에 쏟아부은 에너지와 열기는 27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
구매가격 : 11,200 원
저만치 혼자서
도서정보 : 김훈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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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운명과 대면하는 인간의 자리에서 글을 써온 김훈의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가 출간되었다. 2006년 첫 소설집 『강산무진』을 펴낸 후 집필해온 7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두번째 소설집이다. 이처럼 김훈의 단편은 귀하다. 그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한국문학의 대체 불가능한 명작 장편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후로 계속해서 성실한 글쓰기와 자기 갱신을 보여왔음에도 그렇다.
그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일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주로 다루는바, 그렇다면 김훈은 자신과 가까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때 유독 고심한다는 뜻일까. 인간 개개인의 역사에서 일상은 결코 사소한 사건이 아님을 김훈의 단편은 먹먹할 정도로 드러내 보이고 있으므로.
판타지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근작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펴내며, 작가는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저만치 혼자서』는 김훈이 이러한 마음으로, 독자 곁의 묵묵하고 다정한 이웃으로서 세상에 내보내는 단편집이다.
작가는 세속과 일상을 유심히 관찰한 끝에 특유의 강직한 문장으로 연약한 존재들의 인생사를 펼쳐낸다. 그 무엇보다 김훈 자신의 견문과 취재로부터 출발했을 이 단편들은 작가의 일상이 소설의 바탕이 되고, 소설쓰기가 곧 작가의 일상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문학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구매가격 : 10,500 원
아름다운 사람 하나 (문학동네포에지049)
도서정보 : 고정희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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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포에지 49권. 고정희 시인의 마지막 시집. 시인은 1990년 말 들꽃세상에서 이 시집을 펴낸 후 이듬해 취재차 나선 산행에서 실족하여 자신의 정신적 고향이자 시혼의 본거였던 지리산의 품에 안겼다. 32년 만의 복간임에 그의 31주기에 맞추어 펴낸다.
시인은 이 시집을 두고 ‘연시집’이라 일렀다. 사랑을 향한 부름, 사랑이라는 연습, 사랑을 위한 조문... 사랑으로 써내었거나 ‘사랑’ 그 자체인 시편들이 시집 속에 빼곡하다. 그가 떠난 후 출간된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비, 1992)를 제외하면 이 책이 그의 생전 마지막 시집이니, 그가 우리 곁에 마지막으로 남긴 이 여백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구매가격 : 7,000 원
알제리전쟁 1954-1962
도서정보 : 노서경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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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민중과 그에 동조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투쟁
부정의不正義에 항거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알제리전쟁사!
전쟁이 아닌 치안교란?
1954년 10월 31일 심야에 알제리 각지에서 FLN이라는 낯선 단체의 동시다발 테러로 시작된 전쟁, 법적으로 1840년부터 식민지였기에 많은 이가 당연시했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알제리는 프랑스다’라는 등식을 과감히 거부한 전쟁, 영국에 버금가는 광대한 해외영토를 경영해온 제국 프랑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반식민주의 투쟁, 점점 격렬한 전투로 비화되고 7년여를 끌면서 수많은 청년들을 전쟁터에 투입하고 숱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끝내 이길 수 없었던 전쟁, 그렇기 때문에 알제리 독립 이후로는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않았던 전쟁, 심지어 20세기가 다 저물 때(1999년)까지 정당하게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적떼의 반란’ ‘치안교란 사태’로 치부했던 전쟁, 이것이 알제리전쟁이다.
무엇이 이적행위인가?
군사적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었고 승리는 당연히 프랑스의 차지여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제국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던 프랑스에 저항한 것은 알제리인들만이 아니었다. 양심 있고 양식 있는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 언론인들이 이미 제국주의의 폭압과 부정의, 그로부터 신음하는 식민지인의 고통을 고발했고, 여기에 사르트르와 아롱 같은 참여적인 지식인들이 가세해 알제리 독립을 공개 지지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깊어지면서 특히 프랑스 군인과 경찰에 의한 알제리 전투원과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학살과 고문이 출판사들에 의해 여론화되자 많은 이가 이 전쟁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기에 이른다.
식민지 보존에 위해 전쟁에 강제 징집된 수많은 청년들의 희생은 프랑스 본국을 뒤흔들었고, 이것이 알제리가 독립을 이루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한다. 알제리의 투쟁을 도운 사람들 중에는 철학자이자 편집자였던 장송처럼 FLN을 직접 지원한 지하조직 사람들도 있었고, 마르티니크 섬 출신의 파농처럼 아예 그 일원으로 활약한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크다 해도 어떻게 국가를 배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이 날선 질문 앞에 이들은 자신의 행동은 ‘배신’이 아니며 ‘정의’를 위한 것이라 했다. 부정의에 맞서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탈식민주의의 다양한 입장
반식민주의 논자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이 사상적 흐름을 살찌웠으며 그로써 다음 세대의 지적 성장을 보장해주었다. 이 책은 그런 반식민주의의 역사적 사건으로 1956년 1월 27일 파리에서 열렸던 ‘바그람 대회’를 꼽는다. 알제리와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이 대회에는 파리의 프랑스 지식인은 물론 식민지의 지식인들까지 다양한 인사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식민주의는 체계다’라는 간명한 명제가 나왔다. 이와 같이 식민주의와 식민지전쟁에 반대한 것은 좌파만이 아니었다. 소르본느의 사회학 교수 레몽 아롱도 결국 이 싸움에서 알제리는 독립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알제리 출신의 카뮈는 이들과 입장과 달랐다. 그는 식민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알제리의 독립은 프랑스와 알제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립이 아닌 공존으로 문제를 풀려 했던 그의 주장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결국 침묵으로 일관한 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알제리전쟁 기간에 알제리 현지에는 많은 프랑스인이 머물고 있었다. 그중 정부의 지원을 많아 알제리 현지를 조사한 인류학자 제르멘 틸리옹의 입장은 카뮈의 것과 다소 유사하다. 그녀는 프랑스-알제리의 동맹을 중심으로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면 알제리가 북아프리카의 중요 국가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견해를 지닌 인류학자(사회학자)도 있었다. 그가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이다. 현대 사회학에 큰 영향을 준 부르디외 사회학은 알제리 연구가 그 시작이었음을 이 책은 강조한다. 알제리전쟁 초기였던 1955년 알제리 땅을 밟고 종전 무렵은 1961년까지 부르디외에게 알제리는 가장 큰 학문적 연구대상이었다.
『알제리 사회학』이나 압델말렉 사야드와의 공저 『뿌리 뽑힘』은 알제리의 식민지 현실, 그리고 프랑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살아가는 하층프롤레타리아의 처지를 누구보다 깊이 있게 탐구한 명저로 꼽힌다. 이렇게 식민지의 현실과 알제리 독립의 정당성을 지지한 학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선구적 입장들은 출판을 통해 대중으로 퍼져나갔다.
출판사들의 저항, 장송망 사건, 그리고 법적 투쟁
피식민지인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투쟁에 나선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가?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저항정신에서 유래한다고 밝힌다. 이 책 역시 그런 입장에 동조한다. 특히 출판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알리고 제국주의의 사멸을 주장했던 일군의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가톨릭 계열의 출판사 쇠유, 레지스탕스 지하출판사의 전통을 갖고 있던 미뉘, 판매 금지된 미뉘의 책들을 펴냈던 스위스의 시테 출판사, 세3세계라는 거시적 주제 안에서 알제리 문제에 집중했던 마스페로 출판사 등이다.
이들은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고발했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렇듯 반대의 여론을 형성해가던 알제리전쟁에서 특히 충격적인 사건은 ‘장송망 검거사건’이었다. 프랑스인이 알제리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었다. 심정적인 동조에서 언론이나 출판을 통한 참여까지.
그러나 프랑스의 적에 해당하는 알제리 무장단체를 직접 돕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이 지하조직의 구성원들은 배우에서 일반 시민까지 출신도 매우 다양했다. 국가에 대한 저항권은 그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를 질문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 지하조직의 중심적 인물은 사르트르의 제자이자 철학도로, 유명한 시사지 『레탕모데른』과 쇠유 출판사의 편집자이기도 한 프랑시스 장송이었다. 장송망 조직원들의 행동이 저항의 극한을 보여준다면, 프랑스 변호사들의 식민지인 변호는 프랑스 법적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알제리전쟁 전부터 식민지인들에 대한 공동변호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7년 알제 도심에서 폭탄테러를 가한 혐의로 법정에 선 자밀라 부히레드를 변호한 자크 베르제스의 경우이다.
알제리인들의 투쟁과 분열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반식민주의 투쟁, 식민지 독립, 냉전과 제3세계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빨려드는 두 나라의 정치사회적, 역사적 측면을 조망하면서도 그 안에서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인물 군상 하나하나의 존재를 세밀하게 부각시켜 질문하고 성찰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이 제2부로,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알제리인 자신의 투쟁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포괄적인 북아프리카 지역사 연구가 아닌 심화된 알제리 역사, 그중에서도 현대의 분기점이 된 알제리전쟁사에 대한 본격 연구로는 국내 최초의 연구서일 것이다. 독립투쟁에 헌신한 알제리 여러 정파 간의 이견과 충돌, 내적 분열은 독립 이후 세계의 모든 신생국가가 처해야 했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 알제리 내전의 재연, 최근의 파리 테러 등은 알제리전쟁을 모르고선 이야기할 수 없다.
민중당 - 민족해방전선 - 학생운동 - 임시정부
FLN은 단순한 테러 무장조직이 아니었다. 이들의 정체 파악이 어려웠던 것은 이들이 민중당에서 파생된 비밀 지하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민중당은 메살리 하즈라는 민족지도자가 주축이 된 정통성 있는 정치조직이었다.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수형의 상징인 메살리 하즈는 알제리인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또 ‘북아프리카의별’이라는 정치조직의 역할도 대단히 컸다. 이런 단체들과 또다른 지도자 페르하트 압바스에 공명해, 알제리 민중은 세계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이미 알제리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세티프 진압사건 같은 무자비한 프랑스의 탄압은 민중을 산악으로 내몰았다. 마키로 불리는 산악무장대의 출현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1954년 11월의 공식적인 전쟁선언이 있기 전까지 투쟁정신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곧 FLN의 출현으로 대프랑스 투쟁은 더 조직적이고 치열해졌다. 그러나 이 알제리인들은 무장투쟁만으로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지 않았다. 숨맘 계곡에서 개최된 범민족 대회, 이른바 숨맘 대회에서 몇몇 중요한 강령들을 채택한다. 강령의 핵심 중 핵심은 “정치가 군사에 앞선다”라는 선언이었다.
이 숨맘의 강령에 따라 알제리의 독립은 이제 국제 여론전의 양상을 띤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 모두 익명으로 기사를 썼던 『엘무자히드』가 한몫을 하며, 프랑스와 알제리의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나서고, 페르하트 압바스를 수반으로 추대한 임시정부가 서방을 상대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분투한 끝에, 유엔총회에서 알제리 문제가 공식 의제로 상정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많은 고난을 겪고 마침내 1962년 프랑스 에비앙에서 휴전협정이 이뤄진다.
참다운 지성이란 무엇인가?
메살리 하즈의 민중당, 무장투쟁의 FLN, 이들을 계승하여 군사활동이 아닌 정치활동, 즉 외교로써 유엔의 승인을 얻으려 분투했던 국제 감각의 임시정부 수반 페르하트 압바스 외에도 또 이 책은 총파업으로 민중저항을 주도하다 감옥에서 생을 마친 매력적인 정치범 라르비 벤 미히디, 도심의 여성 전투원들, 카빌리의 산악무장대, 대학생 단체에 집중하여, 많이 아는 것이 지성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의 성장이 지성이라는 성찰을 주며 무엇이 참된 지성(지식인)인가를 되묻게 한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어렵게 독립했던 우리에게 알제리전쟁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강자에 맞선 약자의 싸움, 그 저항과 분열의 역사는 우리의 과거를 냉정히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구매가격 : 26,300 원
빛을 걷으면 빛
도서정보 : 성해나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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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누군가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그토록 매정할 수밖에 없을까
소설집의 문을 여는 수록작 「언두」에서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묵인하는 엄마를 보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화면을 가볍게 밀어 거절할 수 있는 관계”만을 찾던 ‘나’는 데이팅 앱에서 만난 ‘도호’와 내밀한 가정사까지 공유하게 된다. 도호는 농인인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동안 많은 것을 희생하며 지내왔다고 말하고, ‘나’는 그런 도호를 “함부로 동정하지 않으려”, “‘난 다 이해해’ ‘괜찮아’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뱉지 않으려” ‘쿨’하게 굴지만 내심으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도호네의 생활이었고 사정”일 뿐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도호네의 생활은 ‘나’가 도호와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나’의 생활이 되어간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들은 이제 이해하고 감내해야만 하는 것들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나’는 “너무 무거”워진 그 무게를 끝내 외면할 수밖에 없다.
「OK, Boomer」에서 전교조 소속의 진보적 교사이자 젊은이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고 자부하는 ‘나’는 대학원에 다니다 음악을 시작한 아들이 밴드 멤버와 집을 방문해오면서 그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게 된다. ‘베이비 부머’, 586 세대인 ‘나’의 눈에 ‘MZ 세대’인 그들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점투성이이나 ‘나’는 그런 그들을 너그러이 이해해보려 한다. 하지만 베지테리언이라며 고기에 치즈까지 뺀 피자를 먹는 것이나 웃어른 앞에서 통성명조차 않고 제 할일만 하는 모습은 그렇다 쳐도,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대표하는 전교조 상패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만은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그들에게 집을 나가라고 완고히 말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떠나간 뒤 ‘나’가 냉장고에 있던 고기를 몽땅 꺼내서 구워먹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한편 일말의 서늘함을 남겨놓는다.
「OK, Boomer」가 세대의 경계를 그려냈다면 「괸당」은 소속, 즉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주에 사는 ‘나’는 북카자흐스탄에서 관광 온 고려인 재종숙 부부를 반나절 동안 가이드하기로 한다. 촌수로 따지자면 남이나 다름없지만 아버지는 그들 또한 ‘괸당’이니 잘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집성촌이 발달한 제주 특유의 문화인 괸당은 끈끈하고 촘촘하게 결속된 친인척 관계를 뜻하는데, 실제로 ‘나’의 괸당들은 고려인 강제이주와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아픔을 매개로 재종숙 부부와 정을 나누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재종숙 부부가 제 부친의 뼈를 고향땅인 제주에 묻고자 노동 비자를 얻으러 왔다고 고백함과 동시에 괸당들은 그들을 괸당의 테두리 너머로 배척한다. ‘나’는 자신이 그러한 괸당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재종숙 부부를 향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괸당들의 태도에 덩달아 죄책감을 느낀다. 여기에 제주 토박이가 아닌 외지인이자 여성으로서 과거 당숙모가 받아야 했던 핍박이 겹쳐 그려지며, 마주보기의 실패는 차이와 경계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수많은 오해와 외면의 시간을 건너
마침내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앞선 작품들이 오해와 외면을 낳는 경계 자체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당춘」 「오즈」 「화양극장」은 인물들이 경계를 넘어서서 마침내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을 조명한다. 「당춘」에서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십대 청년 ‘나’와 ‘헌진’은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유튜브 영상 편집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영식 삼촌’의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진천으로 향한다. 처음에 이들은 청년과 노인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꿈꾸는 삼촌의 이상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기지만, 죽은 줄 알았던 땅속에서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있던 생명을 찾아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실패할 용기를 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며 어쩌면 자신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동생의 사고사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는 「오즈」의 ‘나’는 독거노인 하우스 셰어링 사업을 통해 무뚝뚝한 할머니 ‘오즈’와 함께 살게 되는데, 서로 데면데면하게만 지내던 어느 날 ‘나’의 몸에서 타투를 발견한 할머니가 자신도 타투를 받고 싶다고 말해온다. 그렇게 보게 된 할머니의 몸에는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시사하는 치욕스러운 일본어들이 자리해 있다. 몸 여기저기에 남은 주저흔을 덮기 위해 셀프 타투를 시작했던 ‘나’는 이제 할머니의 흉터 위로 꽃을 새겨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두 사람은 ‘노인’과 ‘요즘 애’가 아닌 ‘오즈’와 ‘하라’로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화양극장」 역시 「오즈」처럼 노년 여성과 청년 여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임용 고사에 수차례 낙방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경’은 자신의 숨소리를 거슬려하는 아버지를 피해 찾은 도피처 ‘화양극장’에서 어딘지 독특해 보이는 할머니 ‘이목’을 알게 된다.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줄거리로 요약되는 인생을 이어가느니 이대로 몇 롤의 필름들과 연소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경은 다른 노인들처럼 설교를 늘어놓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이목과 오래된 영화들을 함께 보면서 조금씩 삶의 온기를 되찾아가지만, 이목에게 이미 결혼해 자식까지 둔, 오래된 동성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세계를 쉬이 이해할 수 없어 머뭇거린다. 그러나 머지않아 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목의 곁에 있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이목씨가 기꺼이 그래주었듯, 자신도 그의 편이 되고 싶다고.” 이처럼 지역과 세대, 성지향성을 가르는 겹겹의 경계 앞에서 망설이면서도 끝내 연대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차별과 배제의 언어가 팽배하는 오늘날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자전소설로도 읽히는 「김일성이 죽던 해」에서 소설가 ‘나’는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묻는 한 수강생의 질문에 이렇게 생각한다.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는 소설.” 타인을 향해 걸어가는 성해나의 인물들이 때로 비틀거려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타인을 손쉽게 단정하지 않고 이해가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타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진중하고 올곧은 성해나의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마음에 자그마한 빛이 생겨나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 해도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그 빛. 그러니 ‘빛을 걷으면 빛’이란 이렇게 건네오는 말이 아닐까. 눈앞의 빛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안에는 분명 또다른 빛이 있다고, 그러니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자고(「화양극장」). 충분히 다정하고 품이 넓은 목소리로.
구매가격 : 10,500 원
사악한 것이 온다
도서정보 : 레이 브래드버리 / 문학동네 / 2022년 05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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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지가 뜨끔한 걸 보니, 무언가 사악한 것이 오는구나.”
유년기의 향수와 공포가 공존하는 매혹적인 다크 판타지
미국 중서부의 소도시 그린타운. 나란한 이웃집에 사는 동갑내기 소년 윌 핼러웨이와 짐 나이트셰이드는 태어날 때부터 형제처럼 함께해온 단짝 친구다. 핼러윈과 열네 살 생일을 앞둔 10월의 어느 밤, 기묘한 기적소리에 이끌려 마을 외곽의 초원으로 뛰어나간 둘은 폭풍우의 전조와 함께 마을에 흘러들어온 수상한 카니발단 ‘다크와 쿠거의 그림자 쇼’를 맞닥뜨린다. 돌아가는 방향에 따라 시간을 빨리, 또 거꾸로 감는 회전목마, 사람을 공포스러운 환영에 빠뜨리는 거울 미로, 그리고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정체불명의 카니발 단장 다크. 화려한 퍼레이드와 볼거리로 구경꾼들을 현혹하는 카니발에서 사악하고 비밀스러운 이면을 발견한 두 소년은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과 욕구에 이끌려 갈수록 깊이 발을 들이고,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는 윌의 아버지 찰스 핼러웨이는 몇십 년을 주기로 마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카니발단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이윽고 찾아온 모험과 악몽이 가득한 하룻밤 사이, 두 소년은 훌쩍 자라 소년 시절에 영원한 안녕을 고하게 되는데……
우주의 먼지 속에 노스탤지어를 심고 떠난 서정시인
20세기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 문학의 또다른 정수
레이 브래드버리는 SF계의 ‘빅 스리’로 불리는 동시대 작가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는 또다른 방면에서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작가다. 개척지로서의 우주와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무대로 과학기술 진보의 이면과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성의 가치를 비추어내는 한편,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아스라한 정조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공포를 함께 담아낸 서정성 짙은 작품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사악한 것이 온다』는 그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워키건을 모델로 한 가상의 소도시 ‘그린타운’을 배경으로 삼은 장편소설로, 마찬가지로 유년기의 경험을 모티프로 한 『민들레 와인』(1957년), 후속작 『여름이여 안녕』(2006년)과 함께 ‘그린타운 3부작’으로 불린다. 목가적인 여름날 풍경을 그린 전작과 달리 핼러윈을 앞둔 늦가을의 들뜨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에서, 브래드버리는 앞날에 대한 동경과 순수를 간직한 두 소년의 기묘한 모험담에 ‘아메리칸 고딕’ 특유의 전통적인 호러 요소와 초자연적 설정을 더해 개성적인 색채의 성장소설을 완성했다.
시적 문장으로 담아낸 선악의 알레고리
세대와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지닌 걸작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의 예언에서 따온 제목처럼, 소설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나타난 불길한 전조로 시작해 선과 악, 젊음과 늙음, 여름과 가을이 대비되는 구조로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을 꿰뚫어보고 유혹하는 어둠의 카니발 무리는 명백히 악의 상징이며, 불안한 사춘기의 경계에 서 있는 윌과 짐,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에 회의를 느끼고 남몰래 젊음을 갈망하는 쉰네 살의 찰스 핼러웨이는 그 대척점에 있다. 그리고 끝내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믿음과 환희의 힘을 통해 이뤄지는 이들의 승리는 어른이 되기 위한 소년들의 눈부신 통과의례이자, 노화와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뒤집는 해답이 된다.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 진 켈리의 제안으로 처음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구상된 이 작품은 1983년 디즈니에서 잭 클레이튼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2003년에는 연극으로, 2007년에는 라디오드라마로 각색되며 몇십 년째 꾸준한 생명력을 입증했다. 또한 작중에 등장하는 미스터리한 유랑극단과 기인 쇼의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이미지는 후대 작가에게 다양한 영감을 제공했는데, 소설가 스티븐 킹은 ‘사악하고 초자연적인 힘에 맞서는 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그것』 『욕망을 파는 집』 등의 대표작에 담아내며 이 작품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수수께끼의 회전목마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장르의 고전을 탐독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 SF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로도 적격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
살의의 대담
도서정보 : 후지사키 쇼 / 엘릭시르 / 2022년 06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내가 사람을 한두 명 죽였다고?
얘…… 제법 감이 좋잖아.”
대담자와 대담자의 마음속 목소리로만 이루어지는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일본소설 #대담 #미스터리 #잡지 #인터뷰 #살의 #연기자 #축구선수 #록밴드 #음모 #계획살인 #가식 #진실
여섯 개의 대담에서 펼쳐지는 가식과 신랄한 진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살인 계획까지!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신경지 대담 미스터리!
대담과 대담자의 속마음으로만 이루어진 미스터리 『살의의 대담』이 출간되었다. 『살의의 대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대담 속에 숨겨진 대담자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전개되는 미스터리로, 잡지 속 대담과 등장인물의 속마음만으로 구성해 흔하지 않은 설정으로 복선과 반전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전대미문의 대담 소설
인기 작가의 소설을 영상화한 영화에 출연한 인기 배우, 이를 계기로 가진 두 사람의 대담은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월간 엔터테인먼트 붐》 9월 호」) 국가대표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두 축구 선수,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는 최고의 파트너, 인 줄로만 알았다.(「《SPORTY》 황금연휴 특대호」) 데뷔 5주년 만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폭넓은 세대에게 지지를 받는 밴드로 성장한 록 밴드 SML, 멤버들끼리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만 저마다의 속마음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는데.(「《월간 히트 메이커》 10월 호」) 곧 크랭크업하는 홈 드라마의 주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인기 남배우와 떠오르는 신예 여배우, 베테랑 중년 배우의 홈 드라마는 촬영장 분위기부터 훈훈했지만 속마음 역시 그럴까?(「《텔레비전 마니아》9월 10일~9월 23일 호」) 특정 기자가 취재한 유명인은 모두 대형 스캔들에 휘말린다. 이게 단지 우연일까? (「《주간 특종 저널》 11월 23일 호 게재 예정 원고」)
각종 매체에서 진행되는 대담을 보고 있으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어떤 대담이든 서로에 대한 틀에 박힌 덕담과 칭찬 일색이라는 점. 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대부분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가끔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저 사람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철저하게 대담과 대담자들의 속마음으로만 이루어진 『살의의 대담』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네 개의 장과 이들을 아우르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대담은 어느새 대담자들의 질척하고 악의에 찬 폭로의 장으로 변질된다. 이는 물론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독자의 시선 안에서다. 표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덕담을 주고받는 잡지 대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담이 진행될수록 더욱더 휘몰아치는 살의 넘치는 속마음은 독자로 하여금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오싹함을 자아낸다.
●최고의 페이지터너,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
후지사키 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요양사 자격을 취득하는가 하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써서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여 작가 데뷔를 이루어냈다. 일본에서 연예인 출신으로 작가로서 성공한 이들은 많지만 후지사키 쇼처럼 미스터리 문학상을 수상해 데뷔하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도 후지사키 쇼는 주목받는 젊은 미스터리 작가이다.
배우와 원작 소설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축구 선수들, 록 밴드 멤버들, 종방을 앞둔 홈 드라마 출연진 등 유명인들의 대담과 그 뒤에 숨겨진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살의의 대담』의 생생한 묘사는 연예계 경험이 풍부한 작가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생생한 연예계에 대한 묘사는 몰입도를 한껏 높여준다. 이어 이중 삼중으로 뒤집어지는 반전에 놀라고 있자면 촘촘하게 뿌려져 있는 복선과 커다란 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살의의 대담』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지라 베일에 싸여 있지만, 후지사키 쇼는 복선을 깔고 여러 차례 반전을 꾀하는 데에 능한 작가이다. 거기에 매운맛이 돋보이는 스토리라인은 덤이다.
아침 드라마보다 수위가 세고 반전에 반전, 그리고 또 반전…… 대체 몇 번인지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되풀이되는 반전의 연속에 어쩌면 나가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렇게 작정하고 써내려간 듯한 작품은 오랜만이라는 사실이다. 『살의의 대담』은 이번 여름 최고의 페이지터너로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구매가격 : 10,900 원
차녀 힙합
도서정보 : 이진송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차녀들이여, 이제 우리가 MIC를 쥘 차례다. 소외된 차녀들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김겨울 작가,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 추천!
가정이라는 정치적 장소에서
처음 사랑하고 최초로 상처받으며 만들어지는 차녀의 세계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인 사소하고 미묘한 서러움과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근원에 대하여
내 성격이 이상한 걸까? 우리집이 유별난 걸까? 너무 사소하고 미묘해서, 치사하고 유치해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모든 서러움의 뿌리를 찾아 과거를 되짚어보는 『차녀 힙합』은 둘째 딸의 입장에서 가족 역학 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는 작업이다. ‘둘째’라는 존재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온전한 애정을 향한 갈망과 우선순위에서 끊임없이 밀리는 주변부의 경험을 한데 합쳐 ‘차녀성’이라 이름 붙인 전국둘째연합 회장 이진송이 썼다.
사람들은 모두 개별적이고 고유하지만,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 놀라울 만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 체계에 따라 개인은 저마다의 역할과 권한을 부여받는다. 자신의 역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또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가에 따라서 그 권한은 크거나 작으며, 짊어져야 하는 부담의 모양도 비슷비슷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내가 겪은 일이랑 똑같네!’ 공감하게 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공고한 만큼, 태어나자마자 ‘또 딸’이자 아들이 아닌 ‘꽝’으로 집안에서 소외당했던 둘째 딸의 이야기는 어느 한 개인만의 특수한 삶이 아니다. 딸은 출가외인으로 여겨지던 전통이 아직 유효하던 때부터 현재의 ‘딸 바보’ 열풍까지, 그사이에 태어나고 자란 무수한 딸들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은 쓰였다.
강한 인정욕구와 애정결핍, 어디를 가든 빠르게 눈치를 살피는 버릇, 소외된 사람들을 세심히 챙기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일 앞에서는 머뭇거리는 것, 갈등 상황이 생기면 중간에서 조율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도맡는 것…… 이 모든 게 바로 보통의 차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들이다. 작가는 흔히 ‘장녀라서’ ‘장남이라서’ 등으로 이야기되는 기질처럼, ‘차녀라서’ 지니게 되는 성격적 특성을 자신의 삶의 궤적을 토대로 면밀히 살핀다. 성별과 출생 순서가 개인의 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경험과 감정과 기억이 어떤 경로로 왔는지 탐색한다. 기억을 거슬러올라가 유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정이라는 “치열한 정치적 장소”를 다시금 들여다보며 발견한 진실이란, “내가 피해의식에 찌든 이상한 애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에겐 돌 사진이 있습니까?”
둘째의 조금 특별하고 치열한 세계
둘째 딸인 차녀는 가족 구성에 따라 다시 세 갈래로 나뉜다. 딸이 둘인 집의 막내, 밑에 여동생이 있는 둘째, 그리고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 낀 딸. 이진송은 3녀 1남 중 둘째다. 연년생 언니를 둔 둘째 딸이자 막내로 살다가 열다섯 살 때 동생이 태어나며 세 자매 중 둘째가 되었고, 뒤이어 막내이자 장남인 동생까지 태어나면서 사 남매 중 둘째로 가족 내 위치가 재조정되었다. 언니는 첫아이라 특별하고 셋째는 늦둥이라 온 집안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막내는 무려 장남의 월계관을 쓰고 태어났다. 순서로도 성별로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둘째는 자신의 욕구와 의사가 그다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거듭하며 자라게 된다. 그렇다보니 자신만을 향한 온전한 애정과 관심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1부 ‘차녀의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신에겐 돌 사진이 있습니까?” 형제자매 중 가운데 순서인 아이(middle child)는 집에서 사진도 가장 적고 양육자가 그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둘째에게는 첫 생일이지만, 양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첫아이의 첫돌만큼 감동적인 날은 아니다. 둘째는 서서히 자신의 모든 ‘처음’이 부모에게는 앙코르 공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관심과 애정, 하물며 새 옷과 같은 물건마저도 첫째처럼 당연하게 제 몫이 보장되지 않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인정받고 싶어한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언니에게 지지 않으려고 말로 몸으로 거칠게 싸워대다 혼나곤 했던 시트콤 같은 어린 시절 에피소드에서 아들이 아니라서 엄마에게 더 나은 지위와 인정을 가져다주지 못해 느껴야 했던 죄책감,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할머니에게 받은 차별과 편애의 기억까지, 가족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사랑과 가족 내부의 정치 역학에 대해 펼쳐 놓는다.
우리는 집이라는 작은 공간, 가족이라는 좁은 인간관계에 최초로 뿌리내린다. 가정과 가족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지극히 사회적이다. 그 공간 안에서 관계 맺은 경험과 기억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때로는 족쇄 같고 때로는 산소통 같다. 그 안에서 인간은 처음 사랑하고 최초로 상처 받는다.
크고 나서 되돌아본 지금의 ‘나'를 이룬 조각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경험과 감정들은 그 시절 보통의 둘째 딸, 나아가 세상 모든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는 삶이다. 2부 ‘살아남은 차녀들’에서는 딸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살핀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짊어져야 했던 부담과 부당함을 개인적 경험을 넘어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보다 넓고 깊게 파헤친다. ‘호랑이, 용, 말띠 여자는 기가 세다’는 민속학적 신앙이 퍼져 있던 때,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듯한 정부의 인구 조절 정책이 시행되던 때, 초음파 기계가 도입되며 자녀의 성별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등 새로운 국면에 맞닥뜨릴 때마다 펼쳐진 씁쓸한 현상들과 그 아래에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여러 갈래의 문제들을 톺아본다. 3부 ‘차녀들에게 MIC를’에서는 이제껏 듣지 못했던 다양한 차녀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둘째 딸로 살아온 시간을 복기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서글픈 웃음과 함께 다른 딸들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진솔한 한마디는 또다른 상처 입은 딸들에게 진심어린 위로가 되어 가닿는다.
나는 ‘차녀’를 가족 중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덜 중요한 취급을 받았던 존재를 부르는 보통명사로 쓰고자 한다. 그러니 장녀라도 ‘소외되는’ 경험을 했다면, 차녀 힙합의 비트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 _168쪽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누구의 인정도 갈구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기
4부 ‘집밖의 세계를 일굴 거야’는 내면의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보듬으면서 어른이 된 나의 삶을 잘 꾸려가는 한편, 가족들의 입장을 다층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냥 ‘나’인 채로는 인정받고 사랑받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가 서서히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되는 과정은 뭉클하다. 둘째는 뛰어난 공감 능력과 세심한 배려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해나간다. 무엇도 증명하지 않고 누구의 인정도 갈구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첫번째가 아닌 사랑도 사랑이다.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과 소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다채롭게 인정받고 입체적으로 사랑한다.”
“각자의 최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섭섭함을 안기기 쉽고 오래 잊히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 일쑤다. 하물며 가족이란, 떼려야 뗄 수도 없게 끈끈하게 엮여 있는 만큼 서로에게 괴로운 존재가 되곤 한다. 성격도 가치관도 저마다 달라 수시로 갈등이 불거진다.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말 한 번 섞지 않을 스타일이라고 서로에게 눈을 흘기곤 하지만, 사실 타인이 내 마음에 꼭 들기만을 바랄 수는 없고 “상대도 나를 어느 정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면 관용의 눈금이 조금 더 올라갈 것 같다.” 어떤 관계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그 성격이나 밀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일방적인 폭력처럼 새로고침이 불가능한 관계 속에 있다면 얼른 도망치고, 존중과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서로의 불완전한 모습까지 너그럽게 감싸주면서 함께 천천히 걸어가보는 게 어떨까. 그러다보면 마침내는 “나를 괴롭게 하는 존재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구매가격 : 11,200 원
폐허의 형상
도서정보 :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 문학동네 / 2022년 06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유산으로 물려받은 과거의 비극,
그 그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
“『폐허의 형상』은 내가 지금까지 직면한 것 중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다.”
21세기 콜롬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폐허의 형상』이 출간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다름 아닌 작가 본인,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카를로스 카르바요라는 남자를 만난다. 카르바요는 정치가 가이탄이 암살된 사건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며, 바스케스에게 이 음모에 대한 책을 쓰라고 요구한다. 바스케스는 단호하게 거절하나, 팔 년 뒤 한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카르바요를 찾아가 책을 쓰겠다고 얘기한다. 콜롬비아의 역사를 바꾼 두 암살 사건을 소재로 콜롬비아 현대사의 비극과 그 비극에 먹힌 개인의 삶을 그린 『폐허의 형상』은 바스케스 최고의 작품이 될 소설이라 평가받는다. 카지누 다 포보아 상을 수상했으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비엔날레 소설상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구매가격 : 13,000 원
봄에 나는 없었다 (개정판)
도서정보 : 애거사 크리스티 / 포레 / 2022년 06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간의 자기기만을 거침없이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
애거사 크리스티의 진가를 증명하는 심리서스펜스 걸작
“내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소설이자,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수년 동안 구상했지만 삼일 만에 완성했고,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출간했다.” _애거사 크리스티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Mary Westmacott)’이라는 필명으로 1944년에 발표한 심리서스펜스 장편이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출간 직후 애거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믿었던 남편의 외도에 큰 충격을 받고 스스로 실종사건을 일으키는 등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만, 이때의 사유를 바탕으로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인간’, 특히 ‘여성’의 삶을 주제로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쓴다. 추리작가로서 이미 명망이 높았던 그녀는 독자들의 혼동을 우려해 필명으로 출판했고, 본인의 뜻에 따라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쳐졌다.
영국의 작은 타운에서 안락한 삶을 살아가던 여인이 황량하고 낯선 여행지에서 지금까지의 삶이 자기기만으로 쌓은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린 『봄에 나는 없었다』는 “고전으로 받아들여야 할 역작” “인간 내면의 초상을 그린 보석 같은 작품”이란 극찬을 받았고, 애거사 크리스티가 누구보다 인간의 관계와 심리를 꿰뚫어보는 작가임을 재삼 각인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봄에 나는 없었다』 개정판은 새로운 표지에 양장본으로 제작되었고, 깊이 있는 분석으로 소설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심화 해설이 추가되었다.
구매가격 : 10,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