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李孝石)
1907~1942. 강원도 평창 출생.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적인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의 작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도시와 유형] [마작철학] [깨뜨려지는 홍등] 은 도시 빈민층과 노동자, 그리고 기생의 삶을 통하여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3부작 [노령근해] [상륙] [북국사신]에서는 관능적이며 성적인 인간 본능을 폭로하기도 했다.
저서에 [메밀꽃 필 무렵] [돈] [석류] [화분] 등이 있다.
나도향(羅稻香)
1902~1926. 서울 출생.
1922년 현진건, 홍사용, 이상화, 박종화, 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윤리와 물질적 탐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당대 현실과 사회를 예리하게 묘사하였다.
저서에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이 있다.
김동인(金東仁)
1900~1951.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19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 동인지인 [창조(創造)]를 자비로 출판하여 창간호에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저서에 [붉은 산]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김연실전] [광염 소나타] [운현궁의 봄] [젊은 그들] [목숨] 등 다수의 소설과 평론집 [춘원 연구] 등이 있다.
계용묵(桂鎔默)
1904~1961. 평안남도 선천 출생.
1925년 [조선 문단]에 [상환]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때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일했으며, 1943년에는 천황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광복 직후에 좌우익 문단의 대립 속에서 중간적 입장을 고수하며 정비석과 함께 잡지 [조선]을 창간하였다.
저서에 [병풍에 그린 닭이] [백치 아다다] [별을 헨다] 등이 있다.
이태준(李泰俊)
1904~미상. 강원도 철원 출생.
1925년 시대일보에 [오몽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9년 [개벽사] 기자로 일했고, 이화여자 전문학교 강사, 조선 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3년 이효석, 김기림, 정지용, 유치진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였다.
저서에 [아무 일도 없소] [불우선생] [복덕방] [꽃나무는 심어 놓고] [달밤] [손거부] [가마귀] [문장강화 文章講話] 등이 있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 출생지는 춘천인지 서울인지 명확하지 않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가 당선되었으며,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가작으로 입선되었다. 같은 해 구인회(九人會) 후기 동인으로 가입하면서 [금 따는 콩밭] [산골] [만무방] [봄 봄] [안해] 등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가을] [두꺼비] [이런 음악회] [동백꽃] [정조] [슬픈 이야기] 등을, 1937년에는 [땡볕] [따라지] [연기] [정분]을 발표했다. 고통스러운 삶속에서도 허무주의적 패배감이나 감상적 울분에 빠지지 않고 그 고통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하층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이광수(李光洙)
1892~1950. 평안북도 정주 출생.
11세에 부모를 여의고 이듬해에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의 대령집에 기숙하며 서기일을 보았다. 천도교 지원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에 유학했다.
1919년 [조선 청년 독립단 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 주필로 활동하다가 1921년 귀국하여 언론 활동을 한다.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 등과 함께 투옥된다. 일제 말기에 친일적인 자세를 취해 조선 문인협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10년 [무정] [어린 희생]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계몽주의적,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에 바탕한 작품을 써서 큰 호응을 얻었으나, 1922년 [민족 개조론]을 발표하면서부터는 현실성이 없고 자기 비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만포에서 병사하였다.
저서에 [개척자]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혁명가의 아내] 등이 있다.
최명익(崔明翊)
1902~미상.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36년 [비 오는 길], 1937년 [무성격자]를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평양 예술문화협회 회장, 북조선 문학예술 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사회주의 문학 건설에 적극 참여하였다.
심리소설의 지평을 연 작가로 , 1930년대 지식인의 무기력함과 절망감, 소외의식을 강하게 형상화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저서에 [폐어인] [역설] [심문] [장삼이사] 등이 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개벽사 등의 기자로 활동했고, 1936년 이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1924년 단편 [조선문단]에 [새길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지 치하에서의 궁핍한 농민,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