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에 어리석은 石手가 있어 無形無骸한 허공 중을 하릴없이 깎고는 했다. 끌을 대고 망치질을 수없이 하였지만 물건이 깎여질리 없고 헛손질 뿐이었다. 뿐만인가. 망치에 얻어 맞은 손에서는 피도 흘렀다. 그 후 30여년 石手의 손은 어느 결에 흠집 투성이가 되었고 그는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졌다. 다만 그의 손때가 낀 허공 언저리만이 지금도 피빛이 환히 돈다고 한다.
지난 84년도의 시집 ≪우리 이웃 사람들≫ 이후 썼던 작품들을 한자리에 묶는다. 그동안 개인적인 사건으로는 落鄕이 있었고 다시 고향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망가져 있었다. 그 몰락이 이제는 내 詩와 삶의 몫이라는 것을 안다. 그 몫은, 광기라고 해야 할 이 시대의 보수와 진보도 아닌, 흔히 '사이'라고 부르는 제 3의 '허공'이다. 어리석은 石手처럼 기록하고 새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