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식물원 : 이선호 유고 시집

이선호 | 디오네 | 2017년 05월 24일 | EPUB

이용가능환경 : Windows/Android/iOS 구매 후, PC, 스마트폰, 태블릿PC에서 파일 용량 제한없이 다운로드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구매

전자책 정가 7,000원

판매가 7,000원

도서소개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떠나다

한 시인이 있었다. 짙은 눈망울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노래 한 구절로 청중의 심금을 울리던 사람. 그러나 마음 깊숙이 들어앉은 쓸쓸함을 어쩌지 못해 술과 친구가 되었던 사람. 45세를 일기로 100여 편의 시를 남긴 채 그는 떠났고, 그의 시들은 한 권의 유고 시집으로 남았다.


이 세상은 ‘이상한 식물원’

이 시집에서 그는 이 세상을 ‘이상한 식물원’에 비유한다. ‘유리온실 밖에서 바라보면 항상 안이 갇혀 있’고, ‘유리온실 안에서 바라보면 항상 밖이 갇혀 있’는 이 세상은 참 이상한 곳이다. ‘딱딱한 태양이 허공에 갇혀 있고 / 산과 강이 갇혀 있고 / 젊은 연인들의 저녁과 나팔소리까지 갇혀 있’는 곳. 그래서 시인은 이 이상한 세상을 위해 시를 쓴다.

달도 뜨지 않는 그믐밤
여우가 굴 밖으로 나와 시를 쓴다
백년 묵고 천년 묵고도 완성하지 못한 시
단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여우는 서럽게 곡을 한다

-「시인에게」부분

그러나 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특히 도시는 비정한 곳이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버스 정거장의 주인은 ‘먼지’이고, ‘사람들은 모두 먼지를 내다’ 팔고, ‘먼지 두부’가 특산물이 되는 곳. 어느 인부가 죽은 채로 발견되어도 사람들은 모두 침묵한다. 시인의 눈은 곧 이 모든 비정함의 원인이 무관심으로 귀결됨을 밝혀낸다.

이곳의 주인은 먼지다
반쯤 부러져 나간 플라스틱 의자에
햇볕이 앉아 조을 무렵
굉음이 버스를 끌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정거장은 깨끗이 비워진다
사람들은 모두 먼지를 내다 판다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검은 비닐봉지 가득 먼지를 담아 나른다
먼지에 절은 배추와
먼지를 먹고 자란 콩나물
심지어 먼지 두부는 이곳의 특산물이다
날마다 덤프트럭들이 먼지를 실어 나르고
아이들은 먼지를 마시며 학교에 간다

먼지를 팔러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저녁
82번 버스 안에서 조는 것은 위험하다
정거장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점 못 미친 곳 82번 정거장
늦은 밤마다 먼지의 길을 따라
사람들이 먼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언젠가 한 인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너무 많은 삼겹살과 소주가
그를 먹어 삼켰던 것이다

비 온 뒤
빵처럼 굳어 버린 정거장이
인부의 온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정거장은 무덤처럼 침묵했다
이곳의 주인은 무관심이다

-「82번 정거장」 전문

헛된 먼지만 부려 놓는 현실이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고, 재개발 때문에 광분하는 중에 이웃들과 나누던 골목의 공동체 문화가 다 사라졌고, 경쟁의 눈빛들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도시의 한 모퉁이에는 소유 감각만 발달해 있었을 뿐, 이웃들에 대한 관심은 차지할 자리가 없다. 기계적인 삶이 되풀이되는 정거장은 도시 변두리 삶의 비극적인 상황을 표상하며 현실에 옭매인 처지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비극적인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별들은 아이들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다 심장 박동소리 커질수록 별빛 더욱 빛나고 별빛 빛날수록 아이들 눈망울이 커진다 가가호호 글 읽는 소리가 담장 밖으로 흘러넘칠 때 북극성은 호박꽃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다 간다 날이 밝으면 북극성을 닮은 아이가 책가방을 들고 학교엘 갈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별 하나씩을 눈 속에 담고 산다

-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듣는 별 이야기」 부분

아이와 별이 마주 바라보고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 세계, 산과 어둠이 깊을수록 별들이 뚜렷하고 가까운 세계, 별을 오래 바라보아서 맑아진 눈빛과 심성이 살아 있는 세계야말로 시인이 그리던 것. 시인은 생계를 위해 도시에 살면서도 가슴에는 고향의 다정다감한 세계를 그렸던 것이다.

시인이 남긴 흔적

그러나 시인은 떠났다. 별이 지어 준 이름을 두고, 유고 시집 한 권을 남겨 두고 어딘가로 가 버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당부를 떠올리며 암흑의 도시 생활을 힘겹게 헤쳐 나온 그의 삶에 대한 의지는 다음의 시 한 편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식탁 위에 놓여진 밥 한 공기
힘내라 힘
어머니 말씀이다
그 말씀이 나를 살게 했다

밥 먹기를 포기하는 놈은
내 아들이 아니다
배 터지게 먹고 힘내서
살아서 싸워라
싸움도 힘이 있어야 싸운다
그 말씀이 나를 울린다

먹어도 뜨거울 때 먹어라
뜨거운 밥알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
용기는 뜨겁게 온몸을 달구어 낸다
밥이 힘이다

밥 먹기 싫은 놈은
차라리 죽어 버려라
죽지 못해 사는 놈은
진정한 밥을 먹어 보지 못한 것이다
식은 밥도 꼭꼭 씹어 삼키다 보면
달디 단 눈물의 밥이 된다
밥이 사랑이다
밥이 희망이다

- 「밥이 힘이다」 전문

저자소개

이선호

1966년 전북 장수에서 출생하여 전주 완산고를 졸업하고, 1986년 충남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문학동아리 「시목」에서 줄곧 활동하면서 1990년에 충대문학상 시 부문, 1991년에 충대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큰시문학동인회」「풍향계문학동인회」「화요문학동인회」「통시문학동인회」 등 여러 문학동인회에서 활동하였다. 시와 소설이 여러 신문사의 신춘문예 최종심에 여러 번 올랐으나 최종 선에 들지는 못하였다.
1995년 이후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에너지 저널』 편집장으로 근무하였다. 2007년 8월 23일, 후배를 만나 술을 마신 후 집으로 돌아와 쓰러졌고, 다음 날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 그 후 3년여의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10년 12월 23일에 영면하였다.

목차소개

1부 이상한 식물원

저녁나라의 책읽기
이 말랑말랑한 공기
누렁개

밥이 힘이다
용접공 일기
이상한 식물원
재미난 놀이
두더지 오락 게임
아름다운 발성發聲을 위하여
자정의 바다
산동네에서 꿈꾸는 모닥불
그날 아침
별이 뜨지 않았다
도배
나무 시장
연금 생활자
고기가 있는 아침 식사
조용히 사라져 버릴 수 있어
폭풍

2부 춤추는 정원사

저녁 고행苦行
배꼽
옛집
춤추는 정원사
이상한 집착
10월의 붉은 저녁
바람을 노래함
흘러가는 불빛
우산을 접다
희망 여인숙
늙은 추억 - 조화造花
추억이 없는 집 1
추억이 없는 집 2
거대한 산
겨울 들판에서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듣는 별 이야기
남대문 당나귀
춘설春雪
꽁치
패스트푸드 2


3부 사무원, 몽상가처럼 중얼거리다

숫돌은 푸르다
갈대
사무원, 몽상가처럼 중얼거리다
82번 정거장
시인에게
뻔뻔한 낯짝
석 달 열흘
정육점
지금은 통화 중
사육飼育 21
옻칠
우울한 돼지들의 소풍
날아라, 물잠자리
회계원
물론
사망 통지서
조산早産

별밤지기 소년
왕왕거리는 하루


4부 겨울 사냥 이야기

확대경
저녁에 하는 충고
짧은 연애 사건의 기록
언제나 객지
사월엔 목련이 피었다 진다

양파껍질 속에 숨어 사는 여자
솔잎들은 눈을 찌른다
밤 시 1 - 1982년 12월 밤
밤 시 2 - 비제秘祭
밤 시 3 - 장미원
밤 시 4 - 초상집
밤 시 5 - 묘지墓地
휴화산休火山
보리차
겨울 사냥 이야기 1
겨울 사냥 이야기 2
눈 오는 황산벌
손톱 2
손톱 3
나의 부활


5부 정오의 삽화

우리들의 천국이
할아버지 괘종시계
정오正午의 삽화揷話
삼천리호 자전거
압록강
합리주의자처럼 말하다
시간이 보이는 곳에서
몽상가처럼 말하다
적산가옥敵産家屋 아이
완산주完山州 처녀의 얼굴 없는 사랑
가을
고랭지高冷地에서 부르는 노래
혜순이 고모
영산홍
두려운 밤
겨울 철새의 노래
농업 정책론 시간에
어떤 예감
이별 곡

후기

해설_ 시詩가 쓴 처용處容, 붉은 얼굴 | 권덕하(시인·문학평론가)

발문_ 고독에 젖어 있었던 내면 | 정용기(시인)

회원리뷰 (0)

현재 회원리뷰가 없습니다.

첫 번째 리뷰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