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늦은 시간에 간병의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노래방으로 둘이는 들어갔고, 나는, 그녀가, 내가 사준 브래지어를 차고, 팬티를 입고, 란제리를 걸치고, 내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기회를 마음속으로 유혹을 느끼면서도, 노래방 화면의 영상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자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노래방의 영상은 영상대로 제 홀로 움직였고 우리는 키스로 끝냈다. 그녀가 술을 마셔서 발그스레한 얼굴로 내 가슴팍으로 다가올 때, 나는 순간 긴장하고 있었다. 시인들은 키스의 순간을 날카롭다거나, 달콤하다거나 멋지게 표현도 잘하는데 나는 그저 아무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신문의 사회면에 일단기사로 실린 여류소설가의 간통사건의 기사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 루비콘 강을 건너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는지... - 흔들리다 본문 중 -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소설가 권유의 작품을 모아놓은 소설집. 누항사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글은 우리 전 세대가 지나온 길을 더럽고 지저분한 길이라 대변한다. 소외받은 계층인 그 길 위의 사람들만이 아닌, 우리 아버지 세대의 군상을 여과 없이 투영해낸 것이 이 책의 맛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