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46년에 발간한 《조선상식문답》 속편으로 1947년 저자가 운영하던 ‘동명사’에서 발간하였다.
이전에 1937년 ‘매일신보’에 게재하였던 것을 묶어 ‘국호(國號)’를 비롯하여 10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이후 속편에서는 학술과 문학, 조각, 건축, 일반 공예 등 8개 분야별로 하여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1965년 일본에서 《조선상식문답(조선문화의 연구)(宗高書房)》이라는 제목으로 또한 출간하였다. 상장청(相場清) 번역으로 일한친화회(日韓親和會)에서 발간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통역관과 외무이사관, 문부성 교과용 도서검정조사위원, 전국 경찰 외국어 기능검정시험위원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서문 집필자는 일한친화회 스즈키 하지메(鈴木一) 일본 육사 출신으로 구한말 한일군사관계사 연구가로 활약했던 인물이 적고 있다.
이 책은 분야별로 모두 8권으로 구성하였으며, 본문은 원전에 따라 충실하도록 했고 관련 삽화와 주해, 한자를 병기하였다.
<서평>
‘해동금석원’은 청나라 8대 도광제(道光帝) 때 유희해(劉喜海)(1793~1852)가 우리나라 조인영(趙寅永)과 이상적(李尙迪) 등의 도움으로 삼국 시대부터 고려까지 금석문을 수집하여 고증하고 연구하였다. 이어 민국(民國) 11년 임술(1922)에 아들 유승간(劉承幹)이 빠진 것을 보충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정연하게 하나의 걸작품을 이루었습니다.
지안현 성에서 약 7리쯤 떨어져 있는 동강자(東崗子) 비석거리에 높이 솟아있는 하나의 거대한 돌이 하늘을 쥐어 찌르듯 팔뚝처럼 높다랗게 솟아 있는데, 이것이 비문으로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391~413)의 능 앞에 비석으로 판단되고, 그의 아들인 장수왕(長壽王) 2년(414)에 건립된 것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평제비문은 하수량(質遂亮)이 글을 짓고 권희소(權懷素)가 글을 썼습니다.
세조 9년(1464) 초기에 임금이 ‘원각경(圓覺經)’의 구결(口訣)을 다스려 정하고, 그해 4월에 효령대군(孝寧大君)인 보(補)에게 법회를 회암사(檜巖寺)에서 엄수하게 하였는데, 석가여래 사리(舍利)가 분신(分身)한 좋은 조짐이 있었다 하여 그 기념으로 흥복사를 중건하여 원각사를 만들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