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46년에 발간한 《조선상식문답》 속편으로 1947년 저자가 운영하던 ‘동명사’에서 발간하였다.
이전에 1937년 ‘매일신보’에 게재하였던 것을 묶어 ‘국호(國號)’를 비롯하여 10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이후 속편에서는 학술과 문학, 조각, 건축, 일반 공예 등 8개 분야별로 하여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1965년 일본에서 《조선상식문답(조선문화의 연구)(宗高書房)》이라는 제목으로 또한 출간하였다. 상장청(相場清) 번역으로 일한친화회(日韓親和會)에서 발간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통역관과 외무이사관, 문부성 교과용 도서검정조사위원, 전국 경찰 외국어 기능검정시험위원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서문 집필자는 일한친화회 스즈키 하지메(鈴木一) 일본 육사 출신으로 구한말 한일군사관계사 연구가로 활약했던 인물이 적고 있다.
이 책은 분야별로 모두 8권으로 구성하였으며, 본문은 원전에 따라 충실하도록 했고 관련 삽화와 주해, 한자를 병기하였다.
<서평>
-본문 중에서
국내성의 광개토왕릉비인 서체는 육조(六祖) 초기 예서나 해서의 호걸영웅 혼탁하고 순박한 서체입니다. 다음은 진흥왕의 사비(四碑)인데 그 서체는 육조 말기를 대표하는 예리하며 예스럽고 아담한 멋이 있는 해서의 한 몸으로 해서 가운데 행서, 초서(艸書)의 글씨와 그림을 섞어 쓴 것이 매우 흥미 있는 점입니다.
고려 이래 약 1세기 반 동안은 솔경체가 독단적으로 내려오다가 문종 임금을 끝으로 하고 숙종(1096) 때에 들어와 점차 전환의 국면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김생으로의 성찰이 되어 왕희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니 그 선구를 이룬 사람이 홍권(弘權)(~1126)이었습니다.
촉체(蜀體)는 원나라 조맹부(자 子昂)(1264~1332)의 글씨를 이르는 것으로 맹부는 호주(湖州)사람이요 출수(出守) 봉작 모든 것이 촉(蜀)과 함께 간섭 없는데 어째 조서(趙書)를 촉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며,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촉(蜀)은 초(肖)의 오(誤)니 초(肖)는 조(趙)의 반자(半字)’라고 하였습니다.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명종 때 죽당(竹堂) 유진동(柳辰仝)의 글씨이고 동대문의 흥인지문(興仁之門) 현판은 역시 명종 때 이황의 글씨입니다.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은 성종 때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글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