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염(紅焰)은 제목 그대로 ‘붉은 불’, ‘붉은 불꽃’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살아보겠다고 조선을 떠나 서간도에 정착하지만, 못된 중국인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고, 아내가 죽는다. 그러자 드디어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착취 관계에 눈을 뜨게 된 문 서방은 지주의 집에 불을 지르고 드디어는 딸을 되찾는다. 소중한 딸을.
탈출기(脫出記) 역시 홍염과 같은 방향이다. 박군이라고 지칭되는 이의 편지글이다. 김군에게 자신이 왜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면서 열심히 사노라고 살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없는 생활이었으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집을 나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죽을지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한다.
박돌(朴乭)의 죽음에서, 아들인 박돌이 죽게 되자,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이 돈밖에 모르는 의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의원집으로 가서 의원을 물어뜯는다. 붉은 피가 그녀의 얼굴에 가득하고, 눈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광기로 번득인다. 자본의 구조에 대한, 자본의 힘에 대한 처절한 항거다. 온몸의 저항이다.
토혈(吐血)에서 가난한 나는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다들 굶길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하노라고 하지만, 일자리도 별로 없고, 아내는 쓰러지고, 의원은 돈만 밝히는 세상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있다. 그런데 아내가 조금 살아나는 듯하자, 어머니는 머리를 가리던 가발을 팔아 약간의 조를 구해오는데, 밤길에 개들에게 물려도 그 보따리를 놓지 않았다. 앓다가 죽을 뻔했던 며느리에게 먹이려고. 나는 속에서 눈물보다 진한 피를 울컥 토해낸다. 붉은 피를.
무엇일까? 이들에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가난이다. 힘 없는 자의 슬픔이다. 호소할 데 없는 이들의 억울함이다. 변혁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처절한 폭력이다. 그 한가운데에 최서해, 최학송이 있다. 이 모두가 최서해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