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시인선 73권.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 이토록 애매한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이 세 권의 시집을 펴냈던 시인 고영민이 신작을 선보인다. ´구구´라는 제목으로 ´구구´라는 이름으로.
구구, 마치 비둘기가 모이를 쪼듯 구구, 뒤로 풀어야 할 절절한 사연이 있음에도 그 뒷말을 지운 듯한 말 줄임의 구구… 또 한편 달달한 아이스크림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 이 구구가 이토록 씁쓸하게, 더불어 슬프게 들리는 이 느낌은 아마도 입이 있어도 할 말을 다 못 하고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의 이름표로도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총 4부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 고영민의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총 83편이다. 시인은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을 두 손으로 공손히 넙죽 받아든 채 그다음에 행할 첫 발걸음을 고민한다. 조심한다.
부모는 늙어버렸고, 부모는 죽어버렸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 생은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이야기가 아닌, 살아도 모를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방 안에 제 욕심을 꾸역꾸역 챙기는 이가 아니라 가방 안에서 제 욕심이랄 것이 있다면 죄다 털어버리고 헐렁한 빈 가방을 짊어진 우리의 아버지이자 시대의 성자로 분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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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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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식물
구구
개가 사라진 쪽
어깨에 기대왔다
중년(中年)
공
나비
버찌의 저녁
라일락 그녀
정물
화전민
사과
문어
지난겨울 죽은 새를 묻어준 곳에 어린 딸과
함께 가보았다
앵두 일식
명랑
거울의 뒷면
봉지 쌀
출산
2부 씨앗이 흙과 어울릴 무렵이었다
무지개
가장 오래된 기억
생일
모과나무는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구더기
봉천동엔 비가 내리는데 장승배기엔 눈이 온다
벚꽃 활짝 핀 어느 봄날에
풀도 나무도 아닌 넝쿨
필라멘트
침투
구호
지네
누수
수컷
비단잉어
철책선
아버지를 기다린다
첫사랑
고영민
새조개
기념탑 근처
혼자 사는 개
3부 울면서 옛날의 얼굴로
새
노을
남향집
밤 벚꽃
개 줄
과거
반쪽 몸
종이 등
오디
반가사유
꽃나무를 나설 때
아가미 호흡
학수
피꼬막
여름 빛깔
화분
백숙
사랑
9월
입병
4부 가슴에 매미 브로치를 달고
전류가 흐르는 모기채
눈의 사원
돼지고기일 뿐이다
하모니카 음악학원
연기의 시선
햇빛야구
연두
빈 박카스 병에 대한 명상
옛일
어떤 글자
된장
모면
꽃과 집 사이
시클라멘
뱀
밤의 주차장
우는 집
꽃다발
얼음옷
소태나무
물 없는 계곡의 돌들
서우(暑雨)
해설 | 그냥 한참 울다 가야 할 것들 | 유성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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