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부터 가장 멀어짐으로써 "시"에 가장 가까워지는 "시"
반복으로 새롭게 그려지는 기이한 시의 문법
생각하고, 말로 적시하고, 적기 전에 잠시 머뭇거리고, 다시 적고, 적는 것을 잠시 지연시키고, 다시 생각하고, 말로 또 그걸 적어보고, 적어놓은 글과 그 행동을 다시 말로 되받아내면서, 이준규는 자신이 써놓은 모든 것을 결국 시로 만들어버리는 기이한 문법을 선보인다. _조재룡(문학평론가)
기존 "시"의 모습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의 문법을 보여주는 시인 이준규의 다섯번째 시집 『반복』이 출간되었다. 네번째 시집 『네모』와 한 주 상간으로 연이어 출간된 이번 시집은, 정직하고 그래서 강렬한 제목 아래 55편의 시를 담고 있다. 각 시편의 제목만 훑어보아도, 이번 시집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동일하거나 조금 변주된 비슷한 제목의 시들이 번호의 구분 없이 놓여 있는데, 하나의 단어가 어떤 실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이준규의 시를 줄곧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구성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이번 시집에서 역시, 하나의 제목 아래 한 편의 시만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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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자폐」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흑백』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삼척』 『네모』가 있다. 제6회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제12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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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끼고 있던 반지를 벗었다
목단
사과
목련
반지
밤의 그늘
독백
웃음
새끼손가락
라일락 꽃잎 술렁이는
기념일
의자
흔적
한사람
슬픔은 잠시 벗어둔 모자쯤으로 알았는데
두통
소
극장 화장실
시
2부
흰 붕대를 다 풀 수는 없어
붉은 소문
식육점
비늘
무덤
모과
입술
그곳
이웃집 남자
산수유
사막에서
노파
경계
슬픔에도 허기가 있다
비눗방울이 앉았던 자리
젊은 남자
소리 아는 여자
가야산─예리사람들
개들은 여섯시를 기다린다
일출
3부
세상의 모든 소리는 강으로 갔다
한순간
노인들
식탁
패밀리
금방 터지고 말 실밥처럼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해요
장례식
무슨 사연이기에
끈
새벽미사
이력서
낮잠
그래요, 강이 너무 크군요
우체국 가는 길
감포
둘째
44호
노을
저녁
침대는 한 번도 누운 적이 없다
욕조
희다
해설│그녀 몸에 가려진 그늘의 바림에 나는 쓰네
│양경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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