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의 흙 은 심훈의 상록수 와 함께 우리나라 농촌 계몽 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허숭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춘원의 계몽주의에 기인한다. 허숭이 가정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를 버리고 고향인 살여울로 들어간 것은 살여울을 민족주의 실현의 중간 단계 모델 마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의 이상촌 건설의 구현이기도 하다. 이광수는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농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민족주의 운동의 기초적인 활동으로 생각하였다. 흙 의 주인공 허숭이 살여울을 위하여 농협 야학 등을 세워 헌신한 뒤 살여울보다 더 궁벽한 검불랑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농촌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말을 한 것은 바로 이상촌 건설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춘원은 청년 시절에 신문화 운동의 구호 아래 반봉건 반유교적인 극단주의자의 위치에 서서 철저한 도덕적 개조와 풍속 개량을 주장하였지만 장년에 이르러서 쓴 이 작품에서는 경박한 외래 문화로 도금된 신지식인들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흙 은 이 시대의 분위기였던 조선심(朝鮮心)의 재발견과 조선적인 운동의 복구라는 시각에서 창작된 것이다. 김동인(金東仁)의 지적대로 시혜적인 농촌 계몽 소설이며 한편으로는 체제 순응적인 사이비 민족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카프 계열에서 보면 이상주의적 허위가 주는 환상의 중독을 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흙 이 명작으로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이 작품의 독자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다는 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삼각 관계의 애정 소설이라거나 민족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문학적 방편 이상의 이유가 있다. 바로 허숭이라는 주인공의 숭고한 인품으로 인한 감화력 때문이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허숭과 적대되는 인물들은 허숭의 인격 때문에 새롭게 변한다. 결국 흙 은 방황하는 지식인들이 인과 응보적인 죄값을 치른 후 허숭과 같은 숭고한 인격 즉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인내와 봉사 등에 의하여 구원되는 재생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