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최첨단의 미디어를 다루며, 디지털세대를 대표할 듯 보이는 작가 김중혁은 오래전부터 이 아날로그의 문장/이야기들을 써내려왔다. 오랜 시간 긴 파장을 만들며 현재와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떤 것. 세번째 소설집 『일층 지하 일층』에서 역시 김중혁만의 참신한 감수성은, 그 긴 아날로그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 두 권의 소설집 『펭귄뉴스』(2006)와 『악기들의 도서관』(2008)에서 각종 아날로그적 도구들―LP, 라디오, 자전거, 지도, 타자기―로 이루어진 박물관과 김중혁표 특별 리믹스 앨범을 선보였다면, 이번엔 도시다.
소설 속 화자가 만들고 싶다는 도시는, 곧 작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도시일 터. 그 도시는 첨단의 기기들로 이루어진 미래도시가 아니라, 골목과 골목을 돌아, 수많은 갈래길들을 지나면 소금기 어린 바닷비린내가 몰려드는 곳이다. 그곳에서 김중혁은 자신만의 도시를 발견하고, 발명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는 물비린내, 버려진 골목, 사람들이 떠난 빈집 담벼락에 쓰여진 낙서들, 폐허가 되어 사라진 건물의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어떤 환각/환영들. 그리고, 이별 이후 몸에 새겨진 징후에 이르기까지.
김중혁이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고 있는 도시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수놓아진 곳이다. 사물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다시 공간으로, 아날로그의 긴 끈으로 골목 곳곳, 도시 곳곳을 연결하는 김중혁만의 빛나는 도시제작기. 반짝반짝 빛나는 첨단의 감수성으로 그가 새롭게 제작해낸 도시를 구석구석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읽는 이의 마음속 머릿속에도 골목길 하나가 생겨나고, 빈터가 생겨나고, 전깃줄들이 하나둘 엉켜들고, 옛집들이 자리를 잡으며 저마다의 도시가 세워진다. 처음에 깜빡깜빡 불연속적으로 점멸하던 그곳은, 마침내 한 장의 그림으로, 다시 그 속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기억에서 잠시 잊혀진 사람들이 되살아나 살아 있는 도시가 된다. 김중혁이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도시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모든 ‘사이’를 들여다보며, 그 틈들을 자신만의 기억과 경험으로 다시 메우며, 정답이 아닌 새로운 질문들을 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