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TICA3000이라……. 별의 이름치고는 너무나 관능적이라고 나는 느꼈다. 별 이름만 들어도 벌써 내 관능적 상상력은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말에 난 조금 무서워졌다.
“저어…… 저를 당신들의 별로 초대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진 별이 있다면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군요. 하지만 저는 불행히도 내일 강의가 많고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답니다. 게다가 밀린 원고도 많고……. 당신들이 살고 있는 별을 방문하자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오늘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군요.”
내 말이 끝나자 그 우주인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역시 마광수 선생님은 우리가 관찰했던 대로 약속에 대한 어떤 결벽증 같은 것을 갖고 계시군요.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선 선생님 별명을 ‘약속의 마광수’라고 붙였다죠? 하지만 그런 건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께서 저희 별에서 한 달 동안 즐겁게 지내다가 돌아오셔도 지구의 시간으로는 한 시간도 채 안 지나 있을 터이니까요.”
-본문 중에서
현대판 ‘전기소설’의 실험,
현대 판타지의 원조를 만나다
『야한 신들의 나라』는 모두 아홉 편의 이야기가 연작 형태로 연결되어 각 작품의 독립된 내용 사이에 유기적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배열되어 있는『광마잡담』의 아홉 번째 이야기다.
『광마잡담』은 ‘전기소설(傳奇小說)’ 양식의 현대적 적용, ‘사소설’ 기법의 도입, 그리고 ‘가벼움’의 서술미학 실험 등 몇 가지 면에서 작가의 창작 의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우선 이 소설은 우리의 전통소설 양식인 ‘전기소설’을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김성수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우리 소설 전통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서구의 문학과는 달리 주제나 형식면에서 대체로 ‘가벼운 소설’에 그 정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작가가 전기소설적인 형식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시도하려는 의도는 지나치게 이념 일변도의 ‘무거운 주제’만을 ‘무겁게’ 다루고 있는 우리 문학의 한 경향에 대한 비판적 실험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문학이론에 대한 입장, 즉 동양문학론에 기초한 문학의 이해 방식과도 상통한다. 그것은 ‘상징’에 관한 이론서 『상징시학』에서 그가 강조한 바와 같이, ‘재현적 입장’으로서의 문학관보다는 ‘표현적 입장’으로서의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광마잡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전기성’은 ‘가벼움’의 서술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