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한 삽화배치와 독특한 장기로 갖고 있는 작가 김재순은 가족사를 즐겨 다루고 있다. 가족 간의 상처를 다루는 솜씨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인사동 블루스」와「도쿄, 까마귀」는 다소 낭만적인 터치로 접근하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맹수처럼 주제를 저작한다. '까마귀' '무도증'과 같은 상징적 매개물을 활용해 주제구체화에 천착해 가는 점이다. 또,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읽어보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가진 우리 모두는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무언가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한 몸부림을 대신하여 문자 부호를 허공에 던지고 받는 언어의 저글링을 거듭하는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과 허위와 가식, 배금주의적 인간에 대한 냉철한 고발을 양날의 칼처럼 지니고 나타난 일상의 범속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섬뜩케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애처로운 몸짓을 통해 소설가의 가혹한 운명과 순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