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머릿속에 있는 것
컴컴한 극장, 스크린에는 살인자 혹은 괴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헛간을 비춰주고 있다. 금발의 여인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손전등을 들고 헛간으로 다가간다. 현악기로 구성된 단순한 박자의 음악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살펴본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쥐 한 마리가 불빛에 놀라 떨고 있다. 여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문을 닫는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소리가 커지면서 살인자 혹은 괴물이 여인의 뒤에 나타난다. 찢어질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 그리고 살인자 혹은 괴물이 여인을 난자한다. 카메라는 여인의 몸이 해체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관객은 불편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본다.
공포영화의 클리셰들이다. 이런 영화를 보는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놀람과 역겨움이다. 사람이 공포를 느꼈을 때와 비슷하게 우리 몸이 반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을 공포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화면으로 구체화된 형상이나 귀를 찢을 듯한 효과음은 놀라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공포를 줄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글을 봐야 한다. 글을 보고 우리의 상상력이 활발해지는 순간, 공포가 실감되어 오는 것이다. 전건우 작가의 『한밤중에 나 홀로』는 텍스트의 즐거움을 한껏 선사하는 충실한 공포 소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는 공포의 매력을 이 책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을 배경으로 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
병원, 편의점, 가정집, 차 안, 산길, 골목길, 공사장 등 일곱 편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우리가 한 번쯤 가보았을 그런 곳들이다. 어떤 환상의 공간이 아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의 환경으로 바뀐다는 것이 이 소설들의 매력이다. 친절을 베풀며 차에 태워준 히치하이커는 알 수 없는 비린내를 내뿜는다. 등산길에 건네받은 산장 안내도는 이상한 사건으로 몰아간다. 이렇게 평범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비범한 이야기들이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해 공포의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록 소설
히치하이커(들) | 아무도 없는 눈길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한 사내가 차에 올라탄다.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이 비린내는 풍겨오는 것일까?
검은 여자 |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한 남자가 긴 머리의 여인을 폭행하고 있다. 나는 이 여인을 구해줬고, 여인은 새빨간 입술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선물 | 태풍이 몰아치던 날, 엄마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낯설었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가야, 이리 온.”
취객들 |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만 노린다는 살인범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와중에 오늘 따라 이상한 손님이 편의점을 찾는다.
Hard Night | 설마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그저 장부 하나 가지러 들어왔을 뿐인데, 내 발 아래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구멍 | 젠장,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난 왜 공사장에 알몸으로 널브러져 있는 것이지? 그것도 한쪽 팔이 벽에 박힌 채로. 아니 조금 기억이…….
크고 검은 존재 | 희수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이 험한 산에 묻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인간이었던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