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TM 1450 지구의 잊혀진 역사
2.난징대 곤충자살 사건
3.푸쉬카르 낙타
4.황사, 그 모래바람의 끝
5.팔공산의 거인
6.파란색의 배신
한용운 스님 옆 벤치에 앉아 가쁜 숨과 함께 ‘임의 침묵’을 침묵으로 낭송해 보기도 했다. 구슬땀을 손바닥으로 잠깐 밀어내며 석조관 강의실로 뛰어들어 가야 한다. 그때 또 이마를 딱 때리는 청동(靑銅)이 서 있다. “야, 임마! 너는 맨날 머리를 숙이지 말고 좀 들고 다녀!”
동국대 주인이자 수문장 같이 서 있는 그 고오타마 싯달타는 하루종일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특강시간에 침 흘리며 자거나, 강의실에서 몰래 도망치거나 하면 어김없이 내 달려와 내 등허리를 죽비로 내려치곤 해서 깜짝 깨어 일어나곤 했다.
중앙도서관 후미진 구석에서 영어원서를 펼쳐놓고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 하는 다급한 시간에도 나는 엉뚱하게 런던대학을 떠올리거나 하는 등 좀 황당한 방황을 했다. 골드스미스의 역사사회학과에서 만난 러시아 유학생은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즐거운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1998년 IMF 때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영국에서 쫓겨와 동국대 ‘굶는학과(국문학과)’에 편입하였다. 런던대 장학생이었지만 하숙비 등 각종 생활비가 알바 등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되었다. 매일 아침이면 하늘같이 치솟는 한화 환율에 결국 귀국해야만 했다.
덕분에 헷세의 싯달타와 한용운 선배와의 인연으로 나는 운명 같은 글쓰기에 발목이 잡혔다. 검은 동굴의 박쥐같이 거꾸로 발목이 잡혀서 즐겁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오늘도 샌프란시스코 자유의 여신상 같은 청동의 부처 앞에 두 손을 모아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상이 바라보는 수평선 끝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글이 막히면 떠오르는 동해 바다, 부처의 눈 끝이기도 하다. - 청동의 싯달타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