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소개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다락방 작업실에서 써내려간
재즈에 관한 10년의 기록
KBS 클래식FM 「재즈수첩」을 진행해온 지 20년, 재즈 칼럼을 써온 지 25년, 재즈 음반 매장을 운영한 것이 10여 년, 다섯 권의 저서와 네 권의 번역서 출간. 재즈 평론가이자 자칭 ‘재즈 덕후’ 황덕호의 이력이다. 최근에는 영상 매체 중심의 시류에 따라 ‘황덕호의 Jazz Loft’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재즈 음악을 처음 들었던 10대 때부터 국내 손꼽히는 재즈 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 ‘재즈’라는 한 가지 분야에만 몰두해온 그가 자신의 다락방 작업실에서 써내려간 재즈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다락방 재즈』를 펴낸다.
이 책의 제목인 ‘다락방 재즈’를 영어로 옮기자면 ‘Loft Jazz’이다. 실제로 재즈에는 ‘로프트 재즈’라는 용어가 존재하는데 1970년대 뉴욕 맨해튼에서 탄생한 실험적인 재즈가 다락방 작업실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생긴 용어다. 그래서 책의 제목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지만 ‘다락방’이라는 아늑한 공간이 주는 울림은 비슷하다.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고 저자가 글을 쓰는 창작의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번듯한 환경과는 거리가 먼, 어느 곳에서든 들꽃처럼 피어나는 모든 재즈는 본질적으로 다락방 재즈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단상, 리뷰, 라이너 노트, 추모를 통해
재즈에 보내는 지지와 응원
저자는 자신도 25년 경력의 베테랑 칼럼니스트이면서, 이런 글 모음집을 내는 것은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영역인데 나이와 비례하여 느는 것은 체중과 뻔뻔함뿐이라 책을 내게 되었다는 멋쩍은 말로 서두를 연다. 스스로를 취향이 편벽하다 말하며 재즈 관련 일을 할 때만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때는 어색해진다는 사람. 그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분야에서 즐겁게 써내려간 글들은 지난 10년간 『엠엠재즈』, 『재즈피플』, 『씨네 21』, 『객석』 등 다양한 매체에 실렸다. 『다락방 재즈』에는 이들을 선별해 다듬은 글과 새로운 글들을 더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산만 신경계: 잡다한 글>은 재즈를 소재로 쓴 다양한 글 모음이다. 저자가 재즈를 사랑하게 된 계기부터, ECM 레코드가 한국 재즈 팬들 사이에서 점하는 특별한 위상, 그리고 재즈 음반 디자인에 대한 단상 등 저자의 머릿속을 맴돌던 재즈에 관한 잡다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우리는 이 음악을 왜 편애할까?: ECM 레코드를 위하여>에서는 재즈가 없는 한국에서 ECM에 대한 편애가 온당한 것인지 의문한다. 해적판을 통해 대중은 일찍이 팻 메시니와 키스 재럿으로 대표되는 ECM 레이블을 접했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정말로 재즈 장르를 수용한 것인지, 우리의 취향이 진짜 우리 자신의 것인지, ECM의 진정한 미학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 “그 아름다운 커버 아트 없이도 당신은 이 레이블의 완벽주의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2장 <따지기: 리뷰>는 여러 잡지에 게재한 리뷰들을 다듬어 구성했다. 리뷰 대상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위플래쉬」 등의 영화부터 책, 앨범과 재즈 페스티벌까지 다양하다. 저자가 현재 국내 재즈계의 거의 ‘유일한 상품’이라 지칭한 재즈 페스티벌에 대한 글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로만 보이는 이 행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소비되는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3장 <내부의 시선으로: 라이너 노트>는 저자가 작성한 라이너 노트를 모은 것이다. 빌 에번스,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앨범들 사이로 한국의 재즈 음반들이 눈에 띈다. 저자는 이들의 라이너 노트를 통해 한국에서 재즈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어떤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지 발자취를 더듬는다. 재즈가 늘 마이너로 인식되는 이 척박한 토양에서 활동하는 재즈 평론가로서의 역할과 일종의 책임이 묻어나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전설적인 레코딩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의 녹음 기술을 통한 앨범들의 모음인 《루디 반 겔더의 소리The Sound of Rudy Van Gelder》에 부친 라이노 노트 <재즈 녹음에 생명을 불어 넣다> 역시 필독 파트다. 여기에는 ‘루디 반 겔더=재즈의 사운드’라는 공식을 낳은 이 엔지니어가 재즈의 역사 속에 기록한 기술의 진보가 선명히 담겨 있다.
재즈 음악인들의 삶은 곧 재즈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가급적 추모 글들을 쓰려 노력했고, 그 결과물이 4장 <재즈 레퀴엠: 추모의 글>로 묶였다. 비단 재즈 연주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반사 리버사이드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 무엇보다도 뛰어난 글솜씨로 유명했던 오린 키프뉴스, 평론가로서 미국 국립예술기금이 선정한 ‘재즈 마스터’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냇 헨토프와 같은 인물도 재즈를 만들어온 역사의 일부분으로 함께 추모된다.
마지막으로 책의 말미에는 흔하디흔한 ‘재즈 명반 20선’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한 ‘불운의 걸작 20선’이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등 거장들의 이름이 눈에 띄는데, 언뜻 ‘불운’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면이지만 이러한 선정에는 그들의 음악을 신전에만 고이 모셔둔 채 들을 필요 없는 고물로 취급하는 작금의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의지도 담겨 있다.
재즈가 만들어낸 음악적 성취에 비해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인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재즈가 클래식처럼 인류의 보편적인 교양이 될 때까지 더욱더 지지하고 응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재즈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바람과 함께.
“재미를 좇는 이상 나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독자와 재즈 사이의 다리가 되다
“평론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역할은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지어 훌륭한 작품의 길을 제시하는 것(그래서 예술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평론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으로, 창작자가 겉으로 명백히 드러낼 수 없는 의미를 감상자에게 언어로 전달해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걸어온 길은 이렇듯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자 역할이었다. 창작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그가 소개하는 앨범과 곡들은 모두 우리말 제목을 달고 있다. ‘My Foolish Heart’가 ‘바보 같은 내 마음’이 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창작자의 음악과 의도에 집중하게 된다.
그가 『다락방 재즈』를 출간하며 재즈 평론가로서의 이력의 한 단락을 정리하고 유튜버로 변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펜을 놓은 것은 아니다. 노력한 만큼의 경제적 보상이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불쑥불쑥 회의감이 몰려오긴 하지만, 그에게 글쓰기는 ‘재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재즈 덕후가 무엇보다 재미로 써내려간 이 책은 독자와 재즈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또 다른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