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안적 어려 고개의 참맛을 모르는구나. 너른 벌판길이든 험한 고갯길이든 사람 지나댕기는 그저 길일 뿐이니라. 고개가 될수록 잰걸음으로 숨차게 걷지 말고 몸이 고되더라도 고생길이라 여기지 말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시적시적 걷거라. 자고로 고개란 오른 만큼 내리막도 있는 것이고 오른 만큼 평지길도 나타나게 마련인 것이다. 느덜은 우리 집이 산골짜구니 구석빼기에 백혀 있어 같잖게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시내보다 첩첩산골 우리 마을이 좋고 고래 등 같은 기와집보다 비록 외주물집일망정 우리 집이 더 좋더구나. 이담에 크거든 도시 사람들이 으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느껴 봐라. 이 애비 눈엔 너 나 없이 가진 사람들헌테 매여 사는 종살이 처지더라. 태산만 한 고개 열 개가 아니라 백 개가 가로막고 있다 해도 내 집 내 땅이 있으면 넘어야지. 아무리 고갯길 넘어댕기기가 심에 겹기로서니 남의 집 종살이만 못허겄냐. 가는 고갯길이 실타래처럼 제아무리 꾸불꾸불 질어터져도, 오르는 마루턱이 어질어질한 바위너설투배기 안돌잇길이라 해도 머릿속에 펜안히 누울 내 집 방구들 떠올리면 구름 위를 걷듯 걸음걸이가 가뿐할 것이다.
- 「고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