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장혜령 | 문학동네 | 2020년 01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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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허구가 아니다. 후일담 문학이 아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_김혜순(시인)
―이들의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

저자소개

어린 시절, 책 그리고 영화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십 년간, 발표가 기약되지 않은 글을 썼다. 2011년 팟캐스트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만들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가치 있는 책과 작가를 소개해왔다. 그러다가 소설 리뷰 웹진 ‘소설리스트’에서 소설을 리뷰하고, EBS <지식채널 e>에서 대본을 쓰게 되었다. 작가와 독자를 잇는 낭독회, ‘개와 고양이의 라디오 워크숍’ ‘지금 이곳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와 같은 창작워크숍을 지속해왔다.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사랑, 기억, 이미지를 테마로 홀로 써온 글들을 묶어 『사랑의 잔상들』을 펴냈다. 앞으로도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목차소개

1장 딸은 공집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장 우리가 아닌 삶
3장 혼자 행진하는 사람
4장 비밀은 당신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5장 당신 뒤에 딸도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6장 지상의 꿈은 혼들의 거처입니다
7장 부서지는 나는, 있습니다
8장 기다림이라는 신앙
9장 파도는 묻습니다
10장 한 남자는 얼마나 많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에필로그 당신은 뒷모습이고 풍경은 흐릅니다

작가의 말
참고 문헌
도판 목록

출판사 서평

“허구가 아니다. 후일담 문학이 아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_김혜순(시인)
―이들의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

2017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자 EBS <지식채널e>의 작가,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8년째 만들고 있는 제작자, 글쓰기와 라디오 제작을 골자로 하는 창작 워크숍 기획자 및 운영자. 작가 장혜령을 소개할 때 필요한 말들이다.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라는 작가 본인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는 행보.

그에 새로운 한 걸음을 더할 이번 책은 이름 없는 민주화운동가였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딸의 이야기다. 보이지도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사람들과 그런 역사의 이야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1970~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다종다양한 자료, 사진 기록물, 일기, 악보, 뉴스 보도 등이 낯선 방식으로 결합, 재구성, 직조되어 있는 책. 언뜻 르포르타주 혹은 에세이로 부를 법한 이 책을 그러나 ‘소설’로 이름 붙인 데에는 소설가 한강 작가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대학 시절 선생과 제자로 만난 인연으로, 장혜령 작가는 이 원고를 한강 작가에게 먼저 보였던 것. “이 책은 에세이보다 소설로 이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에세이를 초과하는 것들이 들어 있어서요. 그래서 전화했어요”(「작가의 말」에서)라는 선생의 조언을 작가는 따르기로 하였다. 자신이 걷는 길을 앞서 걸은 선생이었다. 추천의 글을 쓴 김혜순 시인 역시 “딸의 글은 몽타주와 신택스(syntax), 삽입텍스트, 서사의 탈영토화로 혁명한다. (…)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의 특별한 형식에 지지를 표했다. 이렇듯 이상하고 아름다운 에너지로 우리에게 도착한 장혜령 첫 소설, 제목은 ‘진주’다.

더이상 피는 흐르지 않습니다.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것은 있습니다.

진주는 화자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보았던 도시의 이름이다. 한때 아버지가 수감되었던 도시, 어린 화자는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해 진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경찰 아저씨가 아빠를 갑자기 뒤에서 붙잡을 때가 있지.
그때 수첩을 한꺼번에 삼켜버려야 하거든.
친구가 있으니까.
잡아가버리면 안 되니까.
_93쪽

수첩을 즐겨 쓰는 아버지 생신에 스누피가 그려진 스프링 수첩을 선물한 딸. 아버지가 그 수첩을 어째서 쓸 수 없는지 어머니는 딸에게 설명하고, 수첩을 돌려받은 딸은 그것을 자신의 비밀을 적는 용도로 쓴다. 시간이 흘러 가정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이제 “투쟁, 착취, 노동, 여성, 차별, 자유, 해방, 민중, 세월, 진혼, 통일./ 넋, 한, 쑥물, 주춧돌, 참세상, 신새벽./ 그립다, 빛바래다, 사무치다”(195쪽) 같은 단어와 무관한 ‘개인적인 삶’을 꾸려야 한다. 전기 배선 기술을 배우고 영어 시험 급수를 취득해야 한다. 엑셀과 한글 프로그램을 배우고 트럭 운전을 익혀야 한다. 신념이 있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마주한 세상살이의 어려움, 고독감, 무력감이 딸의 삶에 구석구석 새겨져 있다.


마음을 담아 써보세요.
거짓 없이 쓰는 겁니다.

당신들은 쓰고, 당신들은 다시 매를 맞는다.

거짓 없이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짓 없이 쓰는 겁니다.
거짓 없이.

그들은 그들의 교훈이 당신 내면에 자리잡아, 당신 자신이 했던 것과 그들이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당신이 더는 구분할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불법적인 연행 불법적인 감금 불법적인 시간의 탈취 이런 낮 이런 밤이 열흘 스무 날 삼십 일 넘게 이어지는 동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낮으로부터 밤이, 밤으로부터 낮이 나뉘지 않고, 그들로부터 당신들이, 그들의 말로부터 당신들 말이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 고통은 당신들이 이 방을 나간 뒤에도 계속되어, 그 고통이 당신들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쓰러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당신들 모두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이 방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밤 당신들의 악몽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_129쪽


“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나는 불법조직에 가담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128쪽) 울면서 받아쓴 당신들, 아버지-남편-아들들. 그 ‘당신들’을 받아쓰는 나-딸-여자. “민주화운동은 ‘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학적 사건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이전의 ‘운동’ 소재 소설에서 보였던 작가 자신의 알리바이 찾기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응시와 해체가 있을 뿐. (…) 아버지는 감옥의 빛 아래서 그들의 조서를 받아써야만 했고, 딸은 여자의 말을 다시 받아써야만 해서 스스로 말하는 여자가 되었다.”(김혜순 시인) ‘스스로 말하는 여자’로 자란 화자는 폭압적이었던 그 사회의 풍경과 그때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후’의 삶, 정권이 몇 차례 바뀌며 그때마다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반복된 부조리한 삶의 풍경들을 차근차근, 때로는 기도하듯 때로는 호소하듯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목소리로 기록을 이어간다.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쓰인다

눈을 뜹니다.
감옥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특별할 것 없는 전쟁이 끝나고,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이 생겨나고, 특별할 것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또 특별할 것 없는 많은 일들, 그런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또 잊힌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이곳에서. _213쪽

문학 작품은 삶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비단 읽는 사람의 삶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삶에도 그러하리라. 장혜령 작가는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특정한 형식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또 고치며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 기록되지 않는다면 사라질지 모를 기억이 머물 자리를 그 속에 마련하고자 했다. 그 세계가 고립된 방이 아닌, 누군가 들어올 수 있고 머물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기억이, 삶이, 이야기가 애초 타인과 더불어 시작되었듯이.”(「작가의 말」에서) 잘 복원된 것이 아니면 아닌 채로, 파손되었다면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거기에 이야기의 힘을 빌려 반드시 담고자 했던 누군가(들)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세월. 교도소 면회소 테이블에 아버지와 마주앉은 어린 여자아이를 기억 속 깊은 곳에서 소환해내야 했던 이유, 개인적이면서도 결코 개인의 일로만 한정되지 않는 그 이유, 작가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읽는 이에게 가닿기 위해 진주를 다시 찾은 이유를 찬찬히 들여다볼 때이다.

■ 추천사

운동가 아버지의 딸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말하는 여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어떤 항쟁들과 텍스트들과 인물들이 얽혀서 상호텍스트성을 얻어야, 그것들이 말하는 여자의 배아가 되는가? 그 여자가 되어버린 텍스트들은 어떻게 다중 주체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치는가?’를 증거한다.

민주화운동은 ‘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학적 사건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이전의 ‘운동’ 소재 소설에서 보였던 작가 자신의 알리바이 찾기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응시와 해체가 있을 뿐. 『진주』는 차학경의 『딕테』처럼 받아쓰기다. 아버지는 감옥의 빛 아래서 그들의 조서를 받아써야만 했고, 딸은 여자의 말을 다시 받아써야만 해서 스스로 말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 소설은 혁명이 문학에 도착하려면, ‘딸’이라는 여성적 존재의 글쓰기가 필수적으로 요청되었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증거한다. 딸의 글은 몽타주와 신택스syntax, 삽입텍스트, 서사의 탈영토화로 혁명한다.

아름답고, 담백하며, 다층적인 서사다. 허구가 아니다. 후일담 문학이 아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이들의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 이 소설은 작고, 개인적인 나와 엄마의 바느질 이야기가 제일 크고 광대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나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질곡의 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천진하게, 여성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응전의 방식이 되도록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_김혜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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