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겨울
나에게도 온 거야, 멋진 신세계
나는 달리고 너를 바라보고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그야말로, 세계는 이런 식으로 넓어지는 거구나
전혀 모른다는 것의 외로움
세상의 축제
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Hidden Track - 봄눈
작가의 말
“오 년 전 처음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장소에서 짓고 부수고 만들고 찢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게 더 기쁘다.”
은희경 신작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오 년 만이다. 『비밀과 거짓말』(2005, 문학동네)이 나온 직후였다. 작가가 처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몇 년 전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덟 시간을 울었습니다. (……) 한동안 그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나, 그때 왜 그렇게 울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복합적이고 미묘할 뿐 그다지 명쾌해지진 않았어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노래를 듣게 됐지요. 부탁을 받고 외국으로 부치려던 CD였는데, 대체 뭐길래 그렇게 좋아하지, 하는 마음에 한번 들어본 거였습니다. 듣고 있는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한 삼십 분쯤은 내내 가슴이 아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체국 가는 길에, 왜 그때 그렇게 오래 울었는지 다시 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소설로 써보고 싶어졌어요.
무슨 이야기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직 다는 모르겠어요. 열일곱 살 소년을 둘러싼 가족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관계가 좀 비정상적이고, 풋사랑과 우정이 담긴 성장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환상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가 등장하겠지만 모두 소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이 2005년이었습니다. 드디어 ‘소년’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저도 설렙니다. 드디어 출근했으니 이제 곧 퇴근도 할 수 있겠지. 약간의 수사를 사용해도 된다면요, 출근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오 년 동안 한 번도 퇴근한 적이 없었답니다.
_‘연재를 시작하며’(이 소설은 2010년 1월부터 7개월 동안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었다)
꼬박 오 년 동안, 단 하루도 작가를 퇴근시킨 적이 없는 이 소설은 일일연재가 끝나고도 꼬박 4개월을 더 기다려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십 년 가까이 글을 써온 작가가 이토록 붙들려 있던 이야기가 더 궁금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또하나의 방식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은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은희경은 출세작인 『새의 선물』에서부터 최근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서정적인 감수성과 냉철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예리하게 묘파해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냉소와 위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나와는 같을 수 없는, 해서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타인과 세상을 그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다른 몸짓. 그것이 아니었을까. 위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결국은 혼자인 우리는 결국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그래서 결국은 자신까지를 위로하고 오직,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작가로 데뷔한 지 15년 됐는데, 제 자신이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문학은 기본적으로 무거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꾸만 이미 성취한 것들을 깊게 천착하는 단계로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제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썼던 그 서툴고 불안하고 미숙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_경향신문, 2009. 08
첫 소설 『새의 선물』의 주인공이 어른의 눈을 가진 열두 살 진희였다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 새로운 이야기 『소년을 위로해줘』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 연우다. 힙합을 즐기는 이 시대의 평범한 소년, 그러나 개개인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아들이 즐겨듣는 힙합 노래를 듣고 제가 경직돼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정제되지 않은 형식으로 쏟아내는 걸 듣고 진실된 힘과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소설은 굉장히 정제된 스타일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제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요.” _경향신문 2009. 8
“힙합이란 장르가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내포한 것이잖아요. 그런 소년의 정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로 구상하고 있어요. 소설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_매일경제 2009. 5
★
연우는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평범한 소년이다. 이사 후 새학기를 앞두고 새로 전학 갈 학교를 추첨하는 자리에서 마주친 동급생 태수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음악, 어느새 비트에 맞추어 함께 움직이는 심장의 박동. 그것이 시작이었다. 새로운 우정, 이 세상이 낯설고 두렵기만 한 소녀 채영과의 만남, 떨림, 첫사랑, 외부세계와의 갈등, 원치 않는 작별, 그리고 재회까지.
여름부터 겨울까지, 그리고 봄눈이 내리는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까지, 소년들의 이야기, 결국은 영원히 소년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조금쯤은 그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지도.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고독하지만 유쾌하고 불안하긴 해도 냉정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눈에, 우리가 상투적으로 생각해왔던 현실보다 더욱 현실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삶의 모습 같은 게 포착되었으면 했고,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까, 뻔뻔스럽거나 엉뚱하게 비칠지도 모르지만 이 세계의 개인으로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 하나를 보태고 싶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