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1933년 4월『삼천리 三千里』 제37호에 발표되었다. 부제는 ‘어떤 의사의 수기’로 되어 있으며,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吉林省)지역에서 한중 양국 농민 사이에 일어난 분쟁인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이 이 작품의 제작 동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의 민족의식이 드러난 몇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품의 서술자인 ‘나’가 의학 연구차 만주를 순회하던 중 가난한 한국 소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를 만나게 된다. 그는 투전과 싸움으로 이름난 마을의 골칫덩이요 망나니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꺼려했으며, 사람이 죽으면 “삵이나 죽지.” 할 정도로 그를 미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송 첨지라는 노인이 소작료를 적게 냈다 하여 만주인 지주에게 얻어맞아 죽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흥분만 할 뿐 감히 그에게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동구 밖에 ‘삵’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혼자서 그 만주인 지주를 찾아가 항의와 싸움 끝에 그를 해치웠고, 이로 인하여 자신 또한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삵’은 임종 직전에 ‘나’에게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말하였고, 이 말과 함께 ‘삵’은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운명한다.
이 작품에는 고향(조국) 상실에 대한 의식이 밑바닥에 짙게 깔리면서 그로 비롯되는 한국인의 뼈저린 비애와 분노가 담겨져 있다. 그 점에서 ‘삵’의 행동은 억눌렸던 민족의 복수 감정을 어느 만큼은 해소시켜주기까지 한다.
‘삵’이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은 송 첨지의 비명을 듣자 지금까지 ‘밥버러지 기생충’ 생활만을 해온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뉘우치고 남을 위하여 무엇인가 헌신해야겠다는 속죄 의식과 함께 같은 민족으로서 울분이 동시에 작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삵’의 행동은 민족 감정에 부딪침으로써 민족애를 고취시켜준 비극미가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작가가 조국과 민족의식을 나름대로 극대화시켜 보여준 인생희화(人生戱?)라 할 수 있다. 또 이를 소설화함에 주인공 ‘삵’을 일인칭관찰자인 ‘나’의 눈을 통하여 묘사함으로써 소설로서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적인 기교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평가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