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가 ○○사(社)에서 일을 볼 때의 일이니까, 벌써 반 10년이 지난 옛날 일이외다.
그때 ○○사에 탐방 기자로 있던 나는, 봄도 다 가고 여름이라 하여도 좋을 어떤 더운 날 사의 임무를 띠고 어떤 여자를 한 사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기차로 동북쪽으로 서너 정거장 더 가서 내려서도 한 30리나 걸어가야 할 이름도 없는 땅으로서 본래는 사에서도 그런 곳은 가볼 필요도 없다고 거절한 것이지만, 그 전달에 내가 어떤 귀족 집안의 분규를(아직 신문사에서도 모르는 것을) 얻어내어 잡지에 게재하여 그 때문에 잡지의 흥정이 괜찮았으므로 내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허락하였습니다.
사건은 그때 신문에도 다치키리로 한 비극으로 몇 회를 연하여 발표된 주지의 사실인지라, 특별히 방문까지 안 하더라도 넉넉한 일이지만 그때는 마침 다만 하루라도 교외의 시원한 공기를 마셔보고 싶던 때에 겸하여 함흥까지 가는 친구를 전송도 할 겸 거기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사실을 자백하자면 신문을 참조해가면서 벌써 방문도 하기 전에 기사까지 모두 써 두었던 것으로서 말하자면 이 ‘방문’이란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함흥 가는 벗을 기차에서 작별하고 고요한 촌길에 나선 때는 아직 아침 서늘한 바람이 오전 10시쯤이었습니다.
30리라는 길이 이렇게도 먼지, 사실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킨 전차망 가운데 서 길러난‘도회 사람’이란 것은 길 걷는 데 나서면 무능자였습니다. 발이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눈이 저절로 감기고……. 극단으로 말하자면, 나는 구두를 발명한 사람을 몇 백 번 저주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오후 2시쯤에야 겨우 그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이라 하는 것은 〉모양으로 산이 둘러막힌 구석에 홀로 서 있는 집으로서 앞에는 밤나무와 수양버들과 샘 개울이 흐르고, 뒤로는 산을 끼고 역시 밤나무와 포도넝쿨이 무성히 얽혀 있는 외딴 조그마한 기와집이었습니다. 초라하나마 대문도 달리고 흙담도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썩어지고 무너져가는 일견 빈집같이 보이는 쓸쓸한 집이었습니다.
쓸쓸히 닫겨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매, 이 집에 조화되지 않는 화려한 화단이 뜰을 장식하였고 그 화단에서 꽃을 가꾸고 있던 허연 노인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댁이 최봉선 씨 댁이오니까?”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