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坡州) 낙수(落水) 남편에 있는 승(僧) 신수(信修)의 암자에는 오늘밤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으로 불빛이 절 밖에까지 비치어 흐르며 흥에 겨운 듯한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드믄드믄 들려온다.
때는 여말(麗末) 홍건적의 난리입네, 김용(金鏞)의 반란입네 하고 온 나라가 물끓듯하건만 이 파주 한 고을만은 세상사를 등진듯이 지극히 평화하게 지내가는 터이다.
『또 이 화상 한잔 하시나보군.』
하고 마침 그 암자 앞을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발을 멈추고 절 속을 기웃거렸다.
『흥 저자의 한잔이란 남의 백잔꼴은 되거든.』
같이 가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받으며 역시 발을 멈춘다.
신수는 이미 육십 가까운 노승으로 몸이 비록 승상(僧相)이나 원체 술을 잘 먹어 얼마든지 있는대로 한자리에서 마셔 버리고 마는고로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모양을 바닷속의 고래가 물먹듯한다고 모두 웃었다.
더욱이 그 음주하는 태도가 유쾌하니 사람들이 실없이 놀리느라고 혹 소(牛) 오줌 같은 것을 가져다주며 먹으라고 졸라도 허허 웃고 단숨에 들이키면서,
『이 술이 심히 쓰다.』
하고 배를 두드렸다.
또 음식을 잘 먹어 쉰 고기나 마른 떡일지라도 가림 없이 다 먹어 없애며 심지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중에서라도 고기, 생선을 가리지 않고 양껏 먹으니 그 상좌가 민망해하며,
『좀 삼가시오.』
하고 주의를 시키나 못들은척 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웃으니 그제야 자기도 허허 대소하면서 하는 말이,
『고기는 원래 물에 있는 것인데 이 고기가 땅에 있으니 내가 죽인 것이 아님은 알겠지요? 그러니 먹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소.』
다른 사람들은 웃고 상좌도 웃고 신수도 또한 가장 웃으운 듯이 박장대소하였다.
이날 밤도 신수는 상당히 먹고 취한 모양으로 그 활달한 웃음소리가 길 가는 두 사람의 귀에까지 들려와 이렇게 발을 멈추게 하였으나 먼저 가던 나이 좀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 오늘 신수의 절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짐작하는 모양으로 공연히 열심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서 있다. 뒤따라가는 친구는 딱해졌다.
그러나 동무가 이처럼 열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라 차마 탓할 수는 없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어서 가세.』
하고 그 소매끝을 잡아다닌다. 그러나 친구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참 세상에 횡재하는 놈도 많으이.』
하며 혼자 탄식하였다.
같이 가던 친구는 더욱 못 마땅한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이 사람 정신이 바뀌었네.』
하고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