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염상섭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6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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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의사가 없으면 약이라두 지어 올 일이지. 사람이 성의가 없어.]
침대 위에 간신히 부축을 하여 일어나 앉은 병인은, 만경에 빠진 사람 같지도 않게 의식이 분명하고, 숨결은 차지마는 말소리도 또랑또랑하다. 병인은 어제부터 새판으로, 입원하기 전에 대었다가 맞지 않는다고 물린 한의(漢醫)를 병원 속으로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은 다 제쳐놓고 자기의 병 중세를 잘 이해하고 의사와 수작이라도 할 만한 아우 명호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 오늘, 두 번을 갔다 오면서 의사가 시골에 출장을 가서 못 만났다고 약도 못 지어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툭 건드리기만 하여도 끊어질 듯한 신경만 날카로운 병인은, 자기를 속이는 것만 같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판이라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서 퇴원부터 하시고, 의사는 있다 저녁 때 불러오기로 하죠.]
오늘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전차를 타기도 어중된 거리라, 걸어서 왕복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실에 들어선 명호는, 웃통을 벗어 놓고 땀을 들이며 찬찬히 병인을 달랬다. 오늘 해를 넘길지 모르는 병자에게, 성의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몹시 섭섭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으나, 어쨌든 한약첩쯤 급한 것이 아니라, 예정대로 퇴원을 어서 시켜야 하겠는데, 또 딴 소리가 나올까 보아 어린 아이 달래듯 달래려는 것이었다.
[퇴원은 무슨 퇴원. 약이라도 지어 가지구 나가야지 이대루 나갔다간 당장 숨이 맥혀 죽어!……]
남의 고통은 조금도 몰라주고, 성한 사람들이 저의 대중만 치고 저의 형편 좋을 대로만 하겠다는 것이 화가 나서 역정을 와락 내어 보았으나, 숨결이 또다시 되어지며 말은 입 속에서 어룸하여져 버렸다. 병자는 성한 사람들의 자기에게 대한 동정과 성의가 부족하다고 늘 불만으로 넘기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동정이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나, 한편에 있어서는 비굴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육체의 고통이 극도에 오를수록 모든 사람이 부족하게 구는 것만 같고, 자기를 돌려내고 민주를 대는 듯싶어 고까운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퇴원은 놀라는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는 아마 길게 끌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벌써부터 나온 문제인데, 병자의 반대로 미루미루하여 오던 것을 어제 한약을 먹겠다는 말끝에 거기 따라 명호가 부쩍 우겨서, 당자도 찬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신이 말짱할 때는 옆의 사람이 송구스러울 만치 입원료가 더껌더껌 많아지는 걱정도 하고, 죽은 뒤의 장비 마련까지 하던 사람이 병세가 차차 침중하여지고, 육체적 고통이 시시각각으로 볶아져 대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잊어버리고, 덮어놓고 병원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것이었다. 그것은 병원에 누웠댔자 별수가 없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다만 하나 주사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뇌일혈(腦溢血)로 인사 불성에 빠질 뻔한 것을 백지장 한겹지간에 요행히 붙들어서 한약으로 머리와 피를 내려앉게 하여는 놓았었지마는, 한달 전에 입원할 때, 이백 얼마라는 혈압(血壓)을 오륙십 그램씩 두 번이나 쥐어짜듯이 하여 피를 빼고, 무슨 주사인지 미국치를 비밀 가격으로 사들여다가 연거푸 놓고 한 덕에, 간신히 부지를 하여 온 머릿속이요, 심장이다. 거기다가 신장염이 곁들여서 부증이 들쭉날쭉하다가 어쩐 둥 하여 부기가 내리고 구미가 붙기 시작을 하여 한동안 수미(愁眉)를 폈던 것이나, 지금 와서는 완전히 마취제와 강심제의 농락으로 꺼져 가는 등잔의 심을 돋우고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약이 없어 죽다니! 하기야 돈이 없지, 약이 없겠나!]

저자소개

국적 대한민국
출생-사망 1897년 8월 30일 - 1963년 3월 14일
학력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학교
경력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1953년 예술원 종신회원
1946년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1936년 만선일보 편집국 주필, 국장
시대일보 사회부 부장
1920년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
데뷔 1921년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수상 1971년 은관문화훈장
1962년 3.1 문화상
195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목차소개

작가 소개
임종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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