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송영호 군이 마악 하숙집 문앞을 나서는데, 마침 그의 단짝 강선필 군이 딸딸거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에구, 저 망나니를 또 만났으니!’
사람 좋은 송영호 군은, 속으로 이렇게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송영호 군은 친구 강선필 군이 싫거나 미운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반가왔을지언정─.
“비금속 외출야?”
강선필 군이 빙긋 웃으면서 건네는 인사다. 비금속(非金屬)이란, 돈이 없단 뜻이다.
“응…… 날씨가 하두우 좋아서…….”
송영호 군은 그의 호인으로 넓주욱한 얼굴을 벌쭉 헤트리면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강선필 군도 같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첫 오월, 하늘은 새파랗게 맑고,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린다. 바람은 있는 듯 마는 듯 거볍고, 혼혼하고. 정히 좋은 날씨다.
둘이는 이내 천천한 걸음으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러면서 강선필 군은 의미 있이 송영호 군의 얼굴을 말긋말긋 보아쌓는다. 송영호 군의 얼굴에는 아까의 그 화기로운 미소가 지워질 줄을 모른다.
“영호야?”
마침내 강선필 군이 이렇게 불러놓는다.
송영호 군은 앞을 보고 걷는 채 무심히
“응?”
“대체, 너란 도령은 말이다!”
그러다가 강선필 군은 다시금 송영호 군의, 이번에는 옷맵시를 위아래로 씩 한번 훑어보면서
“으응! 누차 전당국허구 세탁집허구 신센 졌어두, 말쑥한 제철 양복은 제철 양복일다!”
“겸해서 순모가 아닌가!”
“모잔 외려 과분할 지경이구!”
“강선필 씨란 특지가가 있어, 칠칠 금지령 즉전 찰나에, 일금 삼십이원을 주구 사서 선살 하지 않었나! 그분 참, 천당 갈 양반야!”
“도오적녀석!……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시방두 짜다! 내 돈 내구 사믄서, 난 십구 원짜릴 사굴랑. 개평꾼한테 삼십이 원짜릴 멕혔으니!”
“허허허허!”
강선필 군도 같이서 허허 웃고는 몇 걸음 잠자코 걸어가다가
“그런데 말이다, 응? 영호야…….”
“응?”
“내, 너에게 지성으로 묻노니, 말이다…….”
“응!”
“대체 너란 도령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응? 삼백예순다섯 날을 두구 보아야 근심기라군 하나투 없구, 육장 저렇게 맘속 편안한 얼굴이니! 대체 무엇이 그리두 질거우냐?”
“무엇이 질거우냐구? ……으음, 글쎄…….”
송영호 군은 고개를 깨웃깨웃 참스럽게 생각을 하면서, 연해
“글쎄에…… 으음…….”
“나 같으면, 무어 세상 한 오래기두 질걸 것 없겠드라?”
“그럼? 자넨?”
“나야 충분히 질거울 내력이 있지!…… 자아 돈이 있어, 젊어…… 건강해…… 가정이 있어…… 마누라가 정다워…… 일이 처억척 잘 돼 가…… 어때?”
“오옳아! …… 나두 젊구 건강하지 않나?”
“그 젊운 게 무슨 소용야? 삼십이 넘두룩…… 올에 셋이지?”
“응!”
“그래, 설흔셋이 되두룩 여편네 천신두 못하는 거 젊으면 무슨 소용야?”
“인제 장갈 자알 갈 자격을 보유한 거 아닌가?”
“!…… 여보게?”
강선필 군은 어이가 없다고, 지성으로 송영호 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꼬옥 그렇게 믿나?”
“혹시 뉘 아나?”
“손주가 늦어가두룩 장갈 못간 주제에…… 불원 사십 소리가 나게 된 노총각 녀석이, 좋은 장갈 그래두 갈 상부루냐?”
“으음…… 허허!”
“희망과 현실능력을 혼동하는 거 아냐?”
“내, 좀, 슬프이!”
“슬픈 얼굴은 아닌데?”
“내겐, 보다두 더 중대한 일이 있질 않나? 일!”
“영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