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 밝을 임시에 어수선 산란한 꿈을 꾸고 이내 깨어 자리 속에서 뒤치적거리다가 일어나면서부터 머리가 들 수 없이 무거워 무엇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심기가 슷치 못한 나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서재(즉 침방)에 꾹 들어앉은 채로 멀거니 서안(書案)을 대하고 앉았다. 이즘 애독하던 『虐[학]げられし人[인]?(학대받는 사람들)』이라는 소설도 그 앞에 놓여 있건마는 아주 볼 생각도 없어 돌연히 연속하여 오륙본이나 아사히(朝日[조일])를 피웠다. 하자 어느덧 그 푸른 연기가 용트림을 하여 몽몽하게 방중에 자욱하여 점점 더 머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다. 잠깐 일어서서 창틈으로 밖에를 내어다보니 청랑(晴朗)한 하늘이 보인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서편 벽에 걸려 있는 초상함 ── 노동복을 입은 노국(露國) 문호 막심 고르끼의 반신상이 눈에 번뜻 뜨인다. 나는 별안간 정신이 아뜩하여 푹 주저앉았다.
그리하자 오포(午砲)가 텅 하며 점심상 보아놓았다고 어머니께서 미닫이를 여시고 얼굴을 내어놓으신다.
“벌써 점심이에요? 아직 밥 생각 없에요.”
하고 나는 무뚝하게 대답을 하고 방 안을 다만 무의식하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즉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는 듯이
“아이구그 얘야, 오늘은 아침밥을 다른 날보다도 일께스리 뜨는 둥 마는 둥 하구두 그리네.”
하시며 훌쭉하게 살이 빠지신 자안(慈顔) 에 미소를 띠시고 계시다.
나는 그저 뚱하고 성낸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래 아니 먹으려느냐? 아주 한술 더 뜨려무나.”
...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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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소설가, 번역가
경성 탑동 출생
중국 북경평민대학에서 유학
불교진흥회월보, 조선불교총보 근무
대표 저서 〈석사자상(石獅子像)(1915)〉, 〈슬픈 모순(矛盾)(1918)〉 등 번역서 〈홍루몽〉, 〈비파기(琵琶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