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백남의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전5권 중 2권이다. 홍윤성과 절부 사각전기 상방기현 소설정획점고인 4편을 실었다. 홍윤성과 절부 “이번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으로는 홍계관洪繼寬의 집 대문을 두드리지 않는 이가 없으니깐.” “공은 인신人臣에 극귀할 몸이시라 군주에 다음가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실 줄 믿으오.” “황송하오나 과연 공이 장차 인간으로서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꼭 한 가지 너무 표한하심이 험이오니 남에게 덕행을 베푸시지 않으면 무자無子할 것이오.” “몇 해 전 아비는 죽삽고 집안도 퇴폐하였사오나 아비 임종 시에 후일 옥사를 만날 터이니 홍계관의 이름을 대라고 거듭 당부하더이다.” “우리 아버지가 죽을 때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는 평생 무자하리라 하더이다.” “옛날 공이 뜻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내 집 솥에서 십여 년을 같은 밥을 얻어먹었더니 이제 처신출세處身出世함에 내 자식 하나를 벼슬자리에 앉혀주지 않겠다니 그런 고약한 심사가 어디 있을까.” “당신이 무죄한 것은 아오마는 살려두면 장차 이 일을 세상에 알릴까 무서워.” 한마디와 함께 그는 홍계관의 아들을 죽이듯 전은前恩을 불구하고 그 목을 잘라버렸으니 어찌 이 배행의 보복을 받지 않을 수 있으랴. 노인은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벌써 한 달이 넘었지. 그 삼촌 되는 사람이 홍 대감 칼에 맞아 돌아가셨다우.” “이놈 홍윤성이 두고 보아라. 네가 이미 홍계관의 공을 잊고 그 자식을 죽인 것이며 홍산사람(鴻山人) 나계문羅季文을 죽여 그 아내 윤 씨로 하여금 철천지 원한을 품게 한 것이며 남의 논을 빼앗고 재물을 약탈한 것이며 그 외의 모든 죄과에 대한 보복을 내 비록 미천한 일개의 아녀자이지만 하늘에 대신하여 그 보복을 받게 하리라.” “경은 전은을 잊어버리고 계관의 아들을 죽였지만 짐은 그렇지 아니하노라.” 어떻게든지 그 죄과를 풀어보고자 홍계관과 그 아들을 위하여 큰 재를 올리며 지금은 초야의 한구석에 흩어져 있던 삼촌의 뼈를 모아 다시 후히 장례를 행하고 옛날 홍계관이 살던 동네를 홍계관리洪繼寬理라 이름까지 주었다. “한 사람의 숙부에게 베풀은 적악의 보복이 이만할진댄 참으로 세상에 죄과 같이 무서운 것이 없을 것이요 또한 절부같이 귀한 것이 없으리로다.” 사각전기 “참 수가 나셨습니다. 인제 구문을 주셔야 할게 아니요.” “드리다 뿐이오. 이 어음을 찾으러 함께 가서 거기서 구문 천량을 드리리다. 그런데 대관절 그 물건이 무슨 보배요?”하고 물었다. “아니 무엇인지도 모르고 파셨습니다그려.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싸게 사서 팔아먹을 것을 그랬습니다그려.” 하고는 “그게 사각蛇角이라는 것인데 수백 년 묵은 뱀의 뿔이올시다.” “그게 그렇게 값이 나간단 말이오.” “천하의 보배이죠. 지금 우리나라 황후께서 태자가 없으셔서 사각 하나를 구하셨는데 원래 사각을 한 쌍만 얻어먹으면 반드시 아들을 얻는 것이외다. 그런데 지금 황궁에 있기는 단 하나뿐이어서 각방으로 짝 하나를 구하지마는 백만 냥의 상을 걸어도 없는 것이외다.” “아니 그럼 지금 그것을 사간 상고는 백만 냥을 받겠소그려.” “놀랄 것이요. 지금 녹림국 대왕이 되었으니까.” 대감 의동은 수천 금을 업산에게 내주어 기울어진 옛 주가主家를 부흥하는데 쓰게 하였다. 상방기현 “이 자식들아 그까짓 소리하면 외눈이나 깜짝이니.” 하고 땅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집어 개천의 똥물을 묻혀가지고 사붓사붓 걸어가서 소경의 입에다가 그 지푸라기를 쓱 문지르고는 화닥닥하고 뛰어 달아났다. 점을 친 소경은 “흥 요놈 내가 모를 줄 알고 요놈 남의집살이하는 상가란 놈이로구나. 요놈 찾아서 다리뼈를 분질러놔야지.” “이 자식아 나이 진득한 자식이 장난을 해두 이따위 장난이야.” “네 그저 죽을 때라 잘못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속죄 겸 선생님의 제자가 돼서 점 공부를 하고 싶으니 절 데리고 가십시오.” “인제 때가 돌아왔다. 너 이 길로 수구문 밖에 나가서 성을 끼고 남산 쪽으로 올라가서 큰 나무 밑에 숨어 앉아있으면 누가 송장을 메고 와서 나무 가지에다가 덕을 매고 갈 터이니 그 덕에서 송장을 꺼내서 업고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가져오너라.” “이 자식 너 같이 팔자 좋은 자식도 드물다. 불은 내가 때줄 것이니 너는 옷을 벗고 그 시체를 품고서 체온으로 녹여주어야 한다. 불은 때긴 하지만 그것은 냉기를 가시게 하자는 게고 불로 녹여서는 살 사람도 죽어.” “인제 숨을 쉽니다.” 시체는 픽픽하고 목에서 무엇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하더니 길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약간 움직인다. “댁 아가씨가 살아계시니 뫼셔 가십시오.” “어머니 미가처녀로 이런 말을 여쭈오면 큰 변으로 여기시겠지마는 저는 출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고 소녀는 이미 낭군이 있지 아니 하오니까.” 판서의 문벌로서 맹인의 집 상노 아이와 결혼하였다면 체면상 참을 수 없는 일이라 그날부터 상동을 자기 집 사랑 - 작은 사랑에 데려다두고 독선생을 앉혀서 공부를 시키었다. 상동은 초사를 하게 된 후에 장인이 집을 사준다는 것도 ‘남자 어찌 처가의 재물을 받겠소.’ 하고 고사 불수하고는 회동 큰길 가까이 흉갓집이라고 해서 텅 비어 있는 큰 기와집 한 채를 빌려서 들었다. “이 궤 속에 들은 보배는 이 방을 여는 사람에게 선물 드린다.” 소설정획점고인 평안감사로 아들 세창이를 데리고 서경에 오래 유하고 있던 성판서가 내직으로 승차가 되어 올라온 이후로 아들 세창은 나날이 초췌하여 갔다. 세창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평양 감영으로 내려가서 책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탈도 없었다. 그런 것이 어느덧 감영에 출입하는 옥소선玉簫仙이를 알게 된 후부터는 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옥소선도 이제 한 개의 성세창이라는 인간과 정이 들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오기를 햇수로 삼년이나 하여 오던 끝에 청천에 벼락이 내리고 말았으니 그것은 감사의 내직 승차였다. “시하에 계신 몸으로 외첩을 데리고 봉행한다는 것이 외모 조시에 체통이 사나웁고 아드님 되신 도리에 어그러지오니 다음날 잊지 마시고 불러주시면 설혹 분골이 될지라도 기어이 승순하오리다.” “에라 내 불효 망측하다 할지라도 소선이 한 번만 더 보고.”하는 생각으로 세창이는 몰래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넣어둔 돈을 꺼내어 몸에 지니고 그 밤으로 망월암을 탈출하였다. “잘 있기는 하죠마는 만나보실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됐으니 그간 눈이 오면 감영에서는 눈 쓰는 막벌이꾼이 돼서 감영내하에 들어가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이시우. 그래서도 아무 동정이 없으면 그년은 줄일 년이지.” 안색이 싹 변한 소선이는 매정스럽게 미닫이를 탁 닫쳐버리었다. “서방님 어쩌면 그렇게 무정하게 서신 한 장 없으셨소. 죽을 듯이 기다리고 있는 내 속을 모르고…. 반가와요. 서방님을 이렇게 뜻밖에 만날 줄을 뒤 알았겠에요.” “이것만 가졌으면 우리 둘이 평생은 못 살망정 몇 해 살기에야 부족하리까 자아 이걸 가지고 어디든지 남모르는 곳으로 가서 둘이서 살아가십시다. 나는 남의 집 길쌈을 하더라도 서방님 한 분 굶기지 않을 터이니.” “아직도 조선에 인재가 남아있어.” 하시며 시문 끝에 쓰인 응시자의 이름을 보시고 깜짝 놀라신다. “성세창 성세창.” 과연 옥소선은 절부이었다. 그는 사랑을 끝까지 살리었다. 깊은 산중으로 애인을 데리고 들어간 옥소선은 주야로 남편을 동독하였다. 어느 때에 글 읽기를 하더라도 태만하면 나아가 우물물로 목욕을 하고 하늘에 애소하였다. 이 정성의 정열에 감격한 세창이 일심으로 글 읽기에 정력을 다하였을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