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의 호동왕자

윤백남 | 도서출판 책마음 | 2020년 07월 0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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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윤백남의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전5권 중 3권이다. 순정의 호동왕자를 비롯 정열의 낙랑공주 장마가 실어온 발복 투환금은 4편을 실었다. 순정의 호동왕자 돌아와서도 무덤 앞에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가슴에 푹 묻고 서있는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만 비 오듯 하였다. 지금 고구려에서는 낙랑을 정복하였다고 그 전승축하 기분이 온 나라에 넘쳐있다. 그러나 호동왕자의 가슴은 쓰리고 아프고 적적할 뿐이었다. 정열의 낙랑공주 그로부터 수일 후 공주에게서 다시 온 편지를 보고 호동왕자는 눈물을 흘렸다. 소녀가 몰래 그 북과 나팔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이것 모두가 오로지 낭군을 뵙고 싶은 정열에서 나온 바이니 인제는 부왕께 그대로 품하시와 소녀를 데려가도록 차비를 하여 주십시옵소서. - 하는 뜻이었다. 장마가 실어온 발복 아 - 아 - 이 무슨 기적이냐. 박명원의 생각에는 시골구석에서 빈한하게 자란 색시 오죽이나 무무하며 시골태가 오죽하랴 이렇게 생각했더니 급기 대해본즉 눈이 확 티이는 느낌이었다. 그 청수한 용모 단아한 동작 순하면서도 명석한 대답소리 비록 옷은 무명옷일망정 바야흐로 귀인다운 풍도가 풍성하였다. “친정이 빈한한 것이 한 개 험절이오이다.” 하였더니 정조는 “그게 무슨 말씀요. 과인이 처가의 덕을 보잘 사람요. 친정의 빈부가 무슨 상관요.” 투환금은 “광속에 있는 돈 포대 속엔 돈은 한 푼 없고 말끔 해골쪼가리뿐이올시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감사 자신이 밖으로 뛰어나가서 광속을 검사해보니 과연 돈은 한 잎도 없고 전부가 해골쪼가리 등속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어 만든 졸부는 역시 하룻밤에 거지가 되고 말았다. 조 씨는 속으로 녹림객의 짓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지마는 그런 내색도 아니 한 것은 물론이었다.

저자소개

윤백남尹白南(1888~1954 본명 교중敎重) 극작가 소설가 영화감독 충청남도 공주 출생 서울 경성학당 중학부 졸업 일본 후쿠시마현 반조盤城중학교 3학년 편입 와세다早稻대학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 진학 도쿄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해 졸업 1910년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며 문필생활 시작 1912년 조일제와 함께 신파극단 ‘문수성’ 창단해 배우로 활약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거쳐 반도문예사 를 세우고 월간지 ‘예원’ 발간 1916년 이기세와 함께 신파극단 ‘예성좌’ 조직 1917년 백남프로덕션 창립 영화 제작 감독 1918년 김해 합성학교 교장. 동아일보 입사 단편소설 ‘몽금夢金’ 발표 ‘수호지’ 번역 1922년 ‘민중극단’ 조직 ‘등대지기’ ‘기연’ ‘제야의 종소리’ 등 번안 번역극 상연 1923년 한국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 각본 과 감독. 1924년 조선키네마에 입사 ‘운영전’ 감독 1925년 윤백남프로덕션 창립 ‘심청전’ 제작 1930년 박승희 홍해성과 ‘경성소극장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다 곧 유산. 동아일보 에 한국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 연재 1934년 월간야담 발간 ‘보은단의 유래 ‘순정의 호동왕자’ ‘우연의 비극’ 등 발표 1945년 장편소설 ‘벌통’ 발표 1950년 ‘태풍’ 연재하다 한국전쟁 발발로 중단 해군 장교로 복무 서라벌 예대 초대학장 역임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장 역임 ‘흥선대원군’ 집필하다가 지병으로 사망 주요 작품 소설집 대도전1931 봉화1936 흑두건1948 해조곡1949 낙조의 노래1953 희곡집 운명1924 야담집 조선야담전집(전5권)1934

목차소개

판권 페이지
순정의 호동왕자
정열의 낙랑공주
장마가 실어온 발복
투환금은偸換金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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