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백남의 단편소설 모음집으로 전5권 중 5권이다. 후백제비화 이식과 도승 종침교명명유래기 집념 4편을 실었다. 후백제비화 “이봐라. 우리가 지금 아무리 일개 이름 없는 농군의 집안이라고 하나 우리 조상은 대대로 백제의 녹을 먹은 백제 명족의 줄기로다. 백제 망한지 이백 년 발하자면 우리가 신라 백성노릇을 한지도 오륙 대가 넘고 백제 왕국의 자취는 지금 찾아보려야 볼 수도 없는 지성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백제의 후손이고 백제의 피를 받은 사람이로다.” “백제왕국을 재건하겠습니다.” 십 수 년 후 한창 북원 도독 양길이 성하고 그의 부하 궁예의 작패가 나날이 심하여 갈 때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견훤은 군사 되기를 지원하였다. 한창 신라에서는 군사를 모집하던 중이라 곧 군사에 뽑혔다. 여왕은 견훤에게 일천의 군사를 맡겨서 궁예 토벌의 길을 떠나기를 명하였다. 이튿날 왕이 준 일천 정예를 인솔하고 토벌의 길을 떠났다. 이러한 삼사 일이 지나서 서울서 거리가 좀 멀어진 때쯤 하여 저녁 때 어떤 성에 들어갔던 이 궁예 토벌군은 갑자기 창끝을 들어서 그 성을 빼앗았다. 그의 손 안에는 일천오백 명의 군사가 있었다. 견훤이 치면 반드시 함락이 되고 함락이 되면 반드시 몇 백 명의 군사를 얻게 되고 - 이리하여 십여 일간을 좌충우돌한 뒤에는 그의 막하에는 오천 명이라는 적지 않은 군사가 달리게 되었다. 이 오천이라는 대군으로서 그가 들이친 것은 신라의 웅성雄性 무진주武珍州였다. 무진주도 삽시간에 함락이 되었다. 이 무진주까지 함락이 된 뒤에는 견훤은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효공왕 삼 년 - 즉 견훤이 스스로 칭왕한지 구 년 드디어 견훤의 세력은 완산주에까지 폈다. 백제의 옛 터도 인제는 자기의 손아래로 들어왔다. 완산주가 함락되던 날 부하 장졸들은 모두 전승의 축하연을 열고 정신없이 좋다고 날뛸 때에 그들의 왕인 견훤은 홀로 사람들을 물리치고 외따른 곳으로 가서 하염없이 울었다. 국호는 후백제後百濟라 하였다. 그새 구 년간을 왕이라 자칭하면서도 벼슬을 베풀지 않고 조朝를 열지 않던 견훤은 국토를 세운 뒤에 비로소 관제를 세우고 국가로서의 의식을 차렸다. 이식과 도승 “저 같은 외모 저 같은 총명을 가진 아이가 어찌하여 그렇게 몸이 약할꼬.” “참 신명도 야속하시지. 그것을 슬하에서 기르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 우리 두 늙은이가 앙상하게 남겠구려.” 이렇게 하여 이식은 소망하였던바 용문산에 기식하여 몸을 조양하는 한편 학문을 닦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부탁하는 것은 세상 어떤 사람에게든지 배울 생각을 하고 남을 업수이여기지 말라.” “연소한 서생書生이 끊임없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애쓰나 깨닫는 바가 지극히 적은 모양이니 참 가엾다. 저 젊은 심력을 헛되이 허비하는 것이 보기 딱하지만 바로 일러주지 못하니 더욱 딱하구나.” “스승으로 모시게 해주소서.”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네마는 내년 정월에는 경사로 자네를 찾아갈 터이니 그때 이야기하지.” 그 해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영광이 미칠 데 없었다. 곧 시골의 부모를 모셔 올리고 다시 경사의 귀족과 통혼하여 일가일문이 융흥하였으나 항상 잊지 못하는 것은 용문사의 스승이던 부목승이다. “병자년丙子年에는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니 공은 필시 일가를 이끌고 영춘永春 땅에 피하여 있으면 가히 면할 것이오.” 하며 그곳의 지리와 형태를 일러주었다. 이식은 고맙게 받들어 들고 “그럼 또 언제나 뵈올 수 있사옵니까?” 하니 노승은 태연히 “○○년 ○○○○날 ○시時에 관서關西에서 만날 것이오.”하고 대답한 후 또다시 표연히 가버리었다. “그 사람이 ○○년 ○○○○날 ○시에 관서에서 만나기로 하였사오니 그때 신을 관서로 보내어주시면 만나볼까 하옵니다.” 방금 자기가 타고 가는 남여의 앞잡이를 멘 늙은 노승 - 그 사람이야 말로 공이 여태까지 기다리고 두루 찾던 그리운 스승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다니시다가는 나중에 외로이 임종하실 거니 부디 동행하기 바라오.” 그러나 노승은 현현히 고개를 젓고 “다 천명이니 나는 천명을 봉승할 뿐이오.” 하며 사흘 동안에 여러 가지로 도道에 대한 설법을 들려주었다. 공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스승의 이 가르치심을 널리 달達케 하오리다.”하니 스승은 다시 위로는 나라의 일로부터 아래로는 가사家私에 대한 것까지 여러 가지로 미리 말하여준 후 “이 말대로 행하면 길이 평안히 있을 것이오.” 하고 공의 손을 어루만졌다. 종침교명명유래기 “당신두 법도를 지켜야 남두 예절을 지키지.” “윤비는 성품이 포악하고 투기가 자심하여 용안에 조흔(손톱 자국)이 끊일 날이 없으니 국모의 체례를 잃은지라 장차 어이하면 좋을 것이냐.” 이리하여 정승 윤필상尹弼商을 비롯한 이세좌李世佐 이극균李克均 성준成俊 이파李坡 등등의 중신들이 연서하여 폐비헌의廢妃獻議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허종許琮 허침許琛 같은 유명한 형제도 있었지마는 그들은 교묘히 폐비헌의에 빠지고 말았다. 허종의 아우 허침許琛은 성정이 지나치게 곧은 사람이어서 폐비헌의를 반대하였기 때문에 필경 각 대신들의 미움을 받아 체직을 당하고 말았지마는 허종은 굳세게 반대도 하지 않고 태도를 모호하게 가졌다. “다행히 왕자가 유충하시니 그 비밀을 아실 리 없다고 보는데 천만에. 세상에 비밀이란 없습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드러나기 쉬운 법이요.” 허종은 지각이 깊은 누님의 말에 대답할 말이 얼른 나오지 않아서 잠시 머뭇거리었다. 이 눈치를 본 매씨는 “공연히 자손에게 큰 후환을 남겨놓지 마시우.” 나귀는 금시 다리 중턱에 이르렀다. 이 순간 어떤 생각이 번개같이 허종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 순간 그는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청계천 진흙탕 개천으로 내려 떨어졌다. 이러한 고역의 묘계로서 허종은 필경 폐비헌의서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는 위기를 피하고 말았다. 연산이 왕위에 오른 후에 생모 되는 윤비의 설원을 하기 위한 소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서 전부 죽음을 당하였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같은 사람은 그 묘를 파서 백골에게 욕을 보이는 등의 복수를 당하였건만 허종許宗 만은 폐비헌의에 참가한 문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화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일 위대 사람들이 나무다리가 썩어 위태하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의 추렴으로 돌다리를 놓게 되었고 돌다리를 놓게 되니 자연 이 다리 이름을 짓자하여 이런 이름 저런 이름을 가리던 중 어느 한 사람이 이 다리에서 허종 대감이 낙마해서 청계천 흙탕물에 빠졌기 때문에 이번 사화에 피해를 면했으니 허종의 종琮 자를 따다가 종침교琮沈橋라고 명명하라고 건의한 것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종침교라는 괴상한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집념 “아주머니 이런 말을 하오면 저년 환장을 했다고 하시겠지마는 나는 암만 생각해보아도 김감사 대감을 저버리고는 내내 살까 싶지 않습니다. 이 길로 나는 그 대감 뒤를 따라 서울로 올라갈 테니 아주머니는 이 집과 세간을 다 차지해 가지고 어린 기생 하나 데려다가 살고 계슈.” 여기는 임진강 나루터 주막이다. 김감사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자리를 뜨려하였다. 이때에 함께 서울로 수행하는 책방이 감사의 방으로 들어와서 “기생 두옥이가 대감께 뵙겠다고 뒤를 쫓아왔습니다.” “날 보러 뒤를 쫓아왔다하니 오는 것도 분수가 있지. 수백 리를 쫓아오다니 그게 무슨 망거이냐.” “평소의 소망이 평생을 대감을 모시고자 하오니 행여 저버리지 마시고 일행의 뒤를 따라 서울로 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애원을 하였다. “이 계집 보교에 태워 곧 돌려보내라.” 이 날 밤 삼경에 주막을 빠져나온 두옥이 무심히 흐르는 임진강 물에 몸을 던져 한 많은 일생을 청산해버린다. 하루는 남판서가 어머니 방에 들어가니 전에 보지 못하던 계집애 종 하나이 윗목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다가 조용히 일어선다. 비록 손에는 진 걸레를 들었으되 그의 아미풍협은 청아한 그의 눈과 아울러 진실로 절세의 미인이었다. “저 위인이 삼월이에게 생각이 있는 게로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삼월이는 남구만의 방종이요 겸하여 소첩이 되고 말았다. “네 소중하신 몸을 앉아서 청해서 죄송하오이다마는 요즈음 영감께서 부리시는 삼월이란 계집은 반드시 큰 앙화를 영감께 끼칠 인물이오니 십분 조심하십시오. 요새 영감의 기상을 뵈오니 살기가 뻗쳐있습니다.” 저녁에 남구만은 문갑 서랍에서 문득 한 종이 조각을 발견하였으니 거기에는 계집의 필적으로 “영감 소첩은 영감의 사랑을 못내 받지 못할 몸이오라 이제 영원히 돌아가나이다.”하는 간단한 유서가 씌어있다. 수일 후에 남구만은 뜻밖에 김정승의 부름을 받았다. 김정승이란 지난해 가을에 평양감사로서 내직으로 영전하여 들어온 김감사 그이다. 기괴한 병이란 다른 게 아니라 밤만 되면 온종일 멀쩡하던 사람이 별안간 통성을 내짖으며 온 방을 헤맨다. 그리고 머리를 얼싸안고 반은 죽는다. 그리고 날이 새기 시작하면 씻은 듯 부신 듯 고통은 없어졌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다. 젊은 계집 하나가 이 편을 등지고 서서 무슨 연장으로 김정승 아들의 머리와 몸을 난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은 오직 남승지의 눈에만 보일 뿐이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승지는 자기 방으로 삼월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대관절 네가 귀신인 것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마는 무슨 일로 김정승의 아들을 그다지 괴롭게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삼월이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 영감의 눈에 띄인 바에야 숨긴들 소용이 있습니까. 소첩은 평양 기생 두옥이란 계집으로….” 남판서는 누누이 두옥의 그른 점을 지적하여 타이르고 평생 그의 영을 위로해준다는 조건으로 그를 멀리 떠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