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性浩)는 잠이 깨었다. 아직껏 전등불이 힘없이 켜져 있다. 그러나 창문에는 희번한 밝은 빛이 비치었다. 분명히 날은 새었다. 곁에서 자는 아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만 아내의 누웠던 자리를 반이나 차지하고, 누웠는 것은 네 살이 된 그의 아들 문환(文桓)이었다.
전구 안의 심지는 누렇게 물든 굵다란 실같이 보였다. 그것이 하룻밤을 밝혀 주었으리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새어 나오는 빛이 가늘었다. 그래도 성호는 그 전등을 한참 바라보는 동안에 눈이 부시어졌다. 다시 그는 눈을 스르륵 감고 말았다. 감고 있는 그의 눈앞에는 오늘의 할 것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빚쟁이, 원고지, 사진, 활자, 전차, 먼지, 윤전기, 시, 소설, 감상문, 활동사진 같은 모든 것들이다.
그는 아내가 누웠던 반이나 남은 자리까지 차지하여 가지고 몸을 좌우편으로 뒤적거리며 마음껏 뒹굴어보았다. 그는 다시 두 활개를 뻗쳐 기지개를 펴보았다. 팔이 곁에 누웠던 어린 문환의 대가리를 건드렸다. 이때에 가늘게 비치었던 전등도 탐방 껴져버렸다. 방 안이 파래진 듯하였다. 지금까지 붉은빛으로 물들인 방이 파란빛으로 덧바른 듯하였다. 창문으로 흰 광선이 기어들었다. 그의 눈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일시에 나왔다. 그는 뻗쳤던 손으로 눈을 비비고 한 번 하품을 큼직하게 하였다.
기지개 켜는 바람에 잠이 거의 절반이나 깨었던 어린 것은 이 하품 소리에 두 눈이 번쩍 떴다. 그는 두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부스스하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사면을 한참 동안이나 무엇을 찾으려는 것같이 바라보다가, 엄마를 부르고는 “응아!”하고 울음을 내놓는다.
성호는
“인제 잠은 다 잤군! 이게 또 울기 시작하니…….”
하고 중얼거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로 앞을 가리고 어린 것을 달래었다.
“울지 마라! 참 착하다. 착한 사람은 안 우는 법이야!”
이렇게 달래는 어조는 그다지 순하지 못하였다. 거의 나무라는 데에 가깝다 할 만큼 뻣세었다. 아기는 달래는 말도 들은 척 만 척하고 울며 엄마만 부른다.
성호는 골이 났다.
“망할 것이 네 살이나 처먹어 가지고 울기는 왜 울어? 아침마다 꼭 지랄을 부려…….”
하고, 나무라는 성호의 높은 말소리와 문환의 울음소리에 부엌에서 밥을 짓던 아내는 물 젖은 손을 앞치맛자락에다 씻으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오오! 내 새끼! 울기는 왜 울어? 착한 아이는 안 우는 법이야!”
아내는 우는 문환을 이렇게 어르며 두 손을 아이의 겨드랑이에 넣어 번쩍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