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후미끼리>를 지나 서소문 네거리로 나서니 휘모라치는 매서운 바람이 더한층 살을 애인다. 열한시에 떠나는 막차가 끊겨 마포에서부터 쉬엄쉬엄 걸어왔으니 생각할 나위도 없이 자정이되려면 머지 않았으리라. 더구나 금년에 여덟 살 나는 어린 놈을 이끌고 노리장화로 걸었으니 열두시가 혹시 넘었을는지도 모른다. 좀 비탈진 언덕을 걸어올라 가면서
“다리 아프지 않니?”
“아버지는?”
“나는 안 아프지만.”
“나도 안 아프다”
“참 장사로군 그래.”
말이 여덟 살이지 잔망한 품이 숙성한 여섯 살 됨직하다. 동짓달이 생일이라는 한가지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도 돌 안 되어 어미의 따뜻한 품안을 떠나고 어린 것의 생명수인 젖을 어미가 가지고 가버렸다는 것이 그를 내내 연약하게 만든 더 큰 원인이 안 될 수 없다.
문이 헐려 터전만 남은 마루턱까지 이르렀다. 아까부터 별 하나 없이 찌푸린 하늘에선 눈발이 잡히려는 지 갈수록 찬바람만 분다. 네거리가 되어 그런지 회오리바람이 인다. 그들은 마포서 사는 큰집엘 다니러 갔다가 지금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춥지 않니?”
“아버지는?”
“좀 춥다.”
“그러면 나도 좀 추워.”
“흥! 싱거운 새끼 같으니라구. 남 흉내만 내……”
하고 매우 인자한 눈초리로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아버지! 저어 나 짜-켈 하나만 사주 응?”
“그래라. 이번 간조 타거들랑 사주마.”
“꼭 사줘야 허우 아버지.”
“응 꼭 사 주구 말구”
뭣인지 콧잔등이를 스치는 것 같더니 약간 착끈하다. 잼처 손등이 두 군데나 착끈착끈하다.
옳지 ' 거예 눈이 오나보다. 아마 올해는 이게 첫눈이지.'
이렇게 마음먹는 동안에 벌써 눈발이 두 눈에 완연히 띨만치 풋득풋득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