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사람에게도 각각 다른 버릇이 있어서 예컨대 작품 중에 나오는 어떤 인물의 이름에 있어서도 가령 이러이러한 성격과 환경의 인물을 등장 시키려 하면, 그런 사람이면 이런 이름을 붙이어야 적당하리라, 혹은 또 이런 이름의 사람은 여사여사한 성격을 가지고 여사여사한 과거, 혹은 환경을 가지어야 될 것이다. ─ 이러한 일종의 독특한 취택벽(取擇癖)이 있다.
그 예에 벗어나지 못하여 나 이 김동인이는 가령 ‘송 첨지’라 하는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 내지 한 등장인물로 쓰고자 하면, ‘송 첨지’라는 이름에 따라서 ‘송 첨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면 그 생김생김은 이러하고 나이는 얼마쯤이며 성격은 어떠어떠한 사람이리라 ─ 적어도 그러한 인물이 아니면 맞지 않으리라. 이러한 예정 혹은 코스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송 첨지’라는 인물 하나를 붙들어서 그의 생애사(生涯史)의 한 토막을 독자 앞에 공개하고자 하는데, 우선 가령 ‘송 첨지’라 하면 얼른 듣기에 ‘복덕방’이라는 시양목 휘장 앞에 긴 걸상 놓고 딱선부 채 딱딱거리며 곰방대 물고 눈이 멀찐멀찐 행인(行人)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중로(中老)의 집주름쯤으로 여기기 쉬울 것이나, 내가 지금 적고자 하는 송 첨지는 학슬 대신 에보나이트 안경을 쓰고 양복 비슷한 옷에 넥타이도 매고 좀 모양은 없으나 단장도 짚고, 일본 말은 무론 영어도 제법 하고, 구두도 신고- 나이는 오십 안팎 ─ 송 첨지라기보다 ‘송주사’라든가 ‘송 선생’이라든가 하여야 빨리 인식될 ─ 판에서 벗어난 종류의 사람이다.
송성(宋姓)을 대표하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몸은 정승까지 지냈으나 생김생김이며 차림차림이며가 끝까지 한 촌부자(村夫子)연하였던 관계로 후일 ‘송씨’라면 얼른 촌부자연한 느낌을 일으키게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송 첨지도 그 칭호만 듣는 것과 실제 인물과의 새에는 꽤 상위 점이 있다.
첨지라기보다 ‘선생’이라든가 ‘주사’라여야 좋을 우리의 송 첨지는, 사실 면주사(面主事)노릇도 해보았고, 선생 노릇도 해본 사람이다. 그러니까 역시 송주사라든가 송 선생이라야 옳을 사람이다.
학업은 동양의 학도(學都)인 일본 동경에 가서 닦았다.
학운(學運)은 좋았던 모양으로 열일곱 아직 어머니의 품 그리울 시절에 어떤 고마운 후원자의 덕으로 현해탄을 넘어가서 그때 한창 명치(明治)의 건설시대를 지나서 대정(大正)의 난숙(爛熟)일본의 공기를 호흡하며 꿈 많고 희망 많은 소년기를 이역에서 보낸 것이었다.
미개한 토인들이 (未開) 사는 열도(列島)를 한데 뭉쳐서 한 개의 근대국가(近代國家)를 형성하여 세계 열강의 틈에 끼도록 끌어올린 일대의 영걸 목인(睦仁) 일본 황제는 마지막으로 대한 합병이라는 위업을 끼쳐놓고 조상들의 나라로 떠나고 그의 아들 가인(佳人)이 당주 ─ 아비는 벌고 아들은 호사하고 손주대에는 망한다는 천칙(天則)에 따라서 표면만은 무르익고 찬란한 대정 동경(大正東京)에 이 고아(孤兒)는 그의 몸을 내어던진 것이었다.
합병된지 불과 사오 년… 조선 안에는 각곳에 그냥 의병(義兵)이 끓고 있고, 사내, 장곡천(寺內, 長谷川) 두 군인의 군정이 ‘조선’이라는 순을 줄(?)질하는 공황 시대에 송 군은 동경서 학업을 닦았다.
시대가 시대니만치 조선 유학생은 대개 정치나 법률에 적(籍)을 두었다.
송 군도 정치를 전공하였다.
내년이면 학업도 끝난다는 그 전해에 송 군은 묵어 있던 사숙(私宿) 주인의 딸과 눈이 어울리어 딸자식 하나를 낳는 바람에 부득이 안해로 맞아 이듬해에 조선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금의환향이라 하지만 송 군의 환향은 결코 금의가 아니었다. 그의 학비를 대어주던 은인도 그가 일본 계집애와 어울린 것을 알자 거래를 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