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인 줄만 알았더니 역 밖에 내려서서 보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장마 때 모양으로 주룩주룩 쏟아졌다.
“많이 오는군요?”
안내역으로 만척(滿拓) 출장소에서 보내준 김군이 앞서 대합실 처마 밑으로 뛰어들며 당황해 하는 목소리다.
철수도 부산하게 뒤를 따라 껑충 뛰면서,
“글쎄요……….”
우장을 꺼낼 생각은 채 못 하고 손수건으로 수선스럽게 어깨를 털고 얼굴을 닦고나서,
“탈 게 있을까요?”
겨우 숨을 돌리고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김군을 쳐다보았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걱정인 양이다.
그러나 채 김군이 무엇이라 대답하기 전에 웬 시커먼 만주 사람이 그들 앞으로 달음질 쳐 오며 고함을 지른다. 손짓하는 꼴이 그들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말은 못 알아들었으나 철수는 직감으로 그것이 마차꾼인 줄 깨달았다.
“타래지 않습니까?”
“네, 됐습니다. 농촌에 가는 마찬가봅니다.”
김군도 덩달아 무엇이라 두어 마디 만주말로 고함을 치고나서 무척 반가운 낯으로
“타시지요.”
하고는 질척거리는 길을, 골라 디딜 여유도 없이 역앞 마을 거리를 향하여 내닫는다. 철수도 비를 무릅쓰고 처마 밑에서 뛰쳐나왔다.
역앞 마을이라야 한 2,30호 될까말까했다. 대개가 흙으로 만든 너절한 객주집 아니면 음식점인데다 그것이 비에 젖어 처량하기 짝이 없는 주위의 풍경이다. 길거리에는 그저 수없는 돼지떼와 만주 토견이 제 세상인 듯이 우쭐거리고 쏘다닌다.
‘── 혼자 왔드라면 혼날 뻔했군!’
철수는 달음질 치면서 맘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에 내려서기만 하면 조선 사람이 눈에 띈다고 하얼빈에선 듣고 왔는데 길거리엔 온통 남루하게 차린 만주 사람들뿐이다. 말을 한마디도 모르고 더구나 만주시골에 처음 발을 디디는 철수는 공연히 고독하고, 공연히 불안했다. 의지할 곳이라곤 김군밖에 없었다.
‘── 마차라두 얻어 탔으니 망정이지 그나마두 없었단……’
혼자 왔으면 그 마차나마 잡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금방 김군이 다시 없이 고마운 사람같이 철수에게는 여겨졌다.
그들이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마차꾼은 자리 밑에서 시퍼런 빛깔의 우산 두 개를 꺼내어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연해 손짓을 하면서 수다스럽게 무엇인지 떠들어댄다. 철수는 그쪽은 보지도 않고 우선 우산을 펴서 받았다.
제법 큰 우산이었다. 아직 헐지는 않았으나 무척 오랜 우산인 듯싶었다.
쇠로 만든 굵다란 대 때문에 무게도 꽤 나간다. 그것을 받아들고, 이윽고 철수는 너털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중국 병정과 우산 ── 만주 마차꾼과 우산 ── 그것이 전연 다른 사실인 것 같지 않아서 철수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김군도 우산을 펴서 받고, 어이가 없는 듯이 철수를 돌아본다.
“하하하하, 우산을 둘씩 준비해가지구 댕기는 게 공연히 우습군요. 하하하하 이 사람들은 늘 이렇게 우산을 가지구 댕깁니까?”
“그런 게지요, 하하…… 좀 기다리라는군요. 또 탈 사람이 있대나요.”
“기다려야죠. 별수 있습니까?”
비는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