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지 안 자는지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진 덕윤(德允)이는 꼼짝도 안 하고 숨소리만 가쁘다. 핏기라곤 없는 얼굴은 종이장같이 희었다.
침대 앞에서 발을 멈춘 채 기가 막힌 듯이 한참 들여다보기만 하던 천박사는 이윽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찬다. 애처롭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모양이다.
“수술헐 수 있겠습니까?”
창준(昌俊)은 천박사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생사라도 결단할 듯한 거센 어조로 이렇게 묻고나서,
“수 ── 수술 말예요.”
채 무엇이라 대답도 떨어지기 전에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부지중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박사가 어린애 몸엔 손하나 대지 않고 그렇게 물끄러미 보고만 섰는 것이 약간 비위에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그보다도 어젯밤 한잠 못 잔 피곤한 몸엔 그 천박사의 표정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반응되어 저도 모르게 초조함에 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린 것이다.
그러한 창준의 노리는 듯한 시선을 의식하는지 못하는지 외과 수술의 제1인자라는 천박사는 한참 그대로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더니,
“틀림없군.”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차고나서 과학자다운 냉정한 태도로 뒤에 따른 조수들에게 이렇게 외마디 말을 던지고 이윽고 창준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잠깐…….”
이리 오라고 고개를 끄떡한 후 뚜벅뚜벅 앞서서 병실을 나가는 것이다.
천박사에게 최후의 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덕윤이에 대신할 것을 다시는 바랄 가망이 없는 창준이 부부에게는 그 조그마한 생명 하나가 둘도 없는 금이요 옥이었던 것이다.
밤 늦은 병원 복도에는 어두운 구석과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때문인 듯이 군데군데에 촉수 얕은 전등이 맥없이 껌벅이고 있을 뿐, 깊은 산 속같이도 고요하여 두 사람의 발자취 소리만이 유난스럽게 크게 울린다.
그 발자취 소리가 딱 그치자 밀물이 모래 위의 발자국을 지워 없애듯 다시 대령했던 고요함이 빠른 속도로 창준의 전신을 에워싸는 것이다.
“늦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울려 나오는 마귀의 소리같이 천박사의 말이 창준의 귀를 때렸다.
“늦었다니요?”
별안간 탁 가라앉은 목청에서 겨우 웅얼웅얼 이런 반문이 쏟아져 나왔다.
“늦었습니다. 입때까지두 수암(水癌)으루 치료허셨겠지요?”
“네.”
“지가 보기에도 틀림없는 수암입니다.”
“그럼……저……수, 수술해두…….”
“글쎄요. 수술 못 헐 건 없지만 했대야 소용 없을 것 같습니다.”
그예 마지막 선고가 내리고 말았다. 창준은 또 바시시 몸을 떨며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