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가느무골 풍경
짧은 겨울 해는 어느 새 꼴딱 지고 벌써 땅거미가 기어들기 시작하였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말 실뱀이나 빠져나갈 가느무골 좁다란 골목으로 어지럽게 들어선 이필주(李弼柱) 씨는 분명코 오늘도 대취하였다.
낡은 갓을 모로 재껴 쓴 이필주 씨는 작달막한 키에 응구바지를 해가지고 옹색한 길을 가까스로 휘젓고 있었다. 위태위태하면서도 용하게 걸어 들어가는 것은 이필주 씨 자신이 아니라 이마를 맞대일 듯한 좌우편 담장이 간신히 그를 걸려주는 때문이었다.
염낭 끝 꼬부라지듯한 가느무골 샛길을 한도래 돌아 나가자면 고작해야 담배 두 대쯤 피울 그런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으니 그렇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의 말썽거리가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비록 골목은 누추하고 좁았으나 행인의 잦은 발길은 그야말로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몹시도 빈번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체로 이 가느무골이란 동리를 형성한 종족들의 생활이 즉 그네들의 호흡이, 그렇게 잔숨 찬 것이기 때문이다. 제법 네모가 반듯한 기와집들이 추녀를 나란히 한 골목이라면 그것이 기생촌이고 양반촌이고간에 그 골목이란 으레 한산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나, 바로 이 가느무골과 같이 됨됨이가 널판대기, 양철 조각, 영(이엉) 나부랭이 흡사 조각보처럼 얼맞추어 놓은 주택 지대란 그들의 색다른 직함이 가리키듯 남 유달리 부산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타보로, 뚜쟁이, 은근짜, 날탕패(마루이치 패), 이런 특수한 계급들이 덕지덕지 모여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씨근숙덕거리는 것이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래도 명색에 걷고는 있는 이필주 씨의 뒤를 닿기나 하는 듯이 한 패의 조무래기떼가 ‘와아’하고 악을 쓰며 골목 안으로 좇아 들어왔다.
“이놈들!”
호기를 보이며 악을 쓰려던 이필주 씨는 주책없이 그대로 털썩 길목에가 주저앉고 말았다.
... 책 속에서 ...